가야산의 겨울은 생각보다 빨랐다.
우리는 종일 눈을 맞으며 눈속을 걸었다.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 있는 명산 가야산은
동으로 두리봉, 단지봉을 거쳐 수도산까지 큰 산줄기를 잇고
두리봉에서 갈라지는 산줄기는
남으로 깃대봉, 비계산, 의상봉 쪽으로 뻣어나가며
가야산 주봉 남쪽에는 가야산 남산(매화산)이라 하여
기암괴석이 절묘한 암릉군을 자랑한다.
가야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벌써 크레모아(?)는 터지기 시작하고
떡, 감, 두치, 개복지, 소내장 수육 등으로
잔치를 방불케 하니
도무지 산행인지 소풍인지 모를 지경이다.
우리는 가야면에서 백운동쪽으로 들어가
용기골을 산행 들머리로 잡는다.
늦가을의 용기골로 들어서
백운교를 몇개나 거쳐 올라
해발을 1,000m로 높이니 드디어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백운사지 지나 서성재에서 한숨을 돌리지만
강풍속에서 눈앞에 펼쳐진 암릉군은 과히 압권이다.
서성재에서부터 계속되는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회원들의 산행실력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짱아님은 벌써 선두로 내닫고
술기가 발그레한 바래미님의 돌파력은 시작되며
보기와는 다른 바우님의 산행력도 여유 속에서 강하기만 하다.
수많은 철계단을 거치면서
암릉을 올라 칠불봉(1,433m)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많이 쳐져
기다리는 방법은 크레모아 뿐이다.
바래미, 바우, 금봉이, 따이한님으로 이루어진 크레모아 특공대와 같이
(제마다 배낭 속에 몇 방씩이나 나온다)
크레모아를 3방이나 터뜨리니
속이 뜨끈해지며 어리어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기암절벽과 짱아님의 웃음 뿐이다.
이제 눈이 막 쏟아져
아이젠을 치고 정상인 상왕봉으로 강행한다.
눈내리는 가운데 거대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진 상왕봉을 혼자서 오르니
정상 밑에 폭설속에서 우리회원들이
발을 구르면서 서성대고 있다.
우리는 방향을 해인사쪽으로 잡고 하산을 시작한다.
가야산에 지천으로 깔린 조릿대의 잎에 눈이 쌓이고
옛 휴게소 자리 공터에서 점심을 챙기나
또 여기저기서 크레모아가 터져
오늘은 완전히 피투성이다.
뒤에서 따르던 제비꽃이 다쳤다는 얘기가 있고
첨 온 여성회원이 암릉에서 쥐가 났다고 하고
꼭 한겨울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쇠주나 까자!
친구 쯤 되어 보이는 돌개바람의 베트콩식 웃음은 대단히 인상적이나
돌방구는 안동권씨 답게 식사 때도 과묵하다.
해인사로의 하산길은
눈 내리는 울창한 원시림과
만고강산님의 산림생태계, 개복지 얘기로 마냥 즐겁다.
돌방구 왈 "이렇게 눈속에서 멋지게 해본 산행은 처음이다"
해인사 입구에서 다시 크레모아는 터지고
모두들 즐겁고 발그레한 얼굴로
성철스님 사리탑에 올라 제각기 생각에 잠긴다.
내려오는 길 옆에 흐르는 유명한 홍류동계곡은
가을날의 붉은 단풍으로 물까지 붉다하여 홍류동이라지만
성철스님 생전에 이 계곡물을 보시고
山是山 水是水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진대
왜 인간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않고
왜곡시켜 오해하고 비뚤게만 바라다 보는지.........
성철스님의 '자신을 바로 보라'는 일침이
지금도 가슴의 폐부를 찌른다.
돌개바람의 재미있는 해프닝과 함께
버스 안에서 구성진 노래가락을 돌려 부르며
고향가는 차는 마냥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