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지난 주말, 정말이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바둑알만 한 얼음덩어리가 후두두 떨어지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으며 시간은 오후 3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온 사방은 깜깜하여 하늘이 어디로 도망간 줄 알았습니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밤을 달리고 있는 기분으로 쩌렁쩌렁 가끔 들려오는 천둥.번개를 마주하면서 떨리는 핸들을 차마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친정 아버님의 회갑 잔치에 참석하기 위하여 동행하는 시부모님과 올케, 그리고 조카 등이 함께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살아온 나날들 다 합쳐서 난생처음 겪는 기상천외한 날씨 탓에 은근히 행사가 걱정되면서도 어쩌면 이런 현상이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우선은 어서 빨리 시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고 저도 친정집에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빌었습니다.
친정 동생들은 미리 도착해 있었고 집안 일가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차려놓은 음식을 드시며 옛 추억담을 나누시는지 하하 호호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밤이 깊어 갈수록 간헐적으로 쏟아붓는 빗줄기 때문에 여전히 내일이 걱정되면서도 이미 정해진 일이니 기다릴 밖에요.
이튿날 새벽 5시에 눈을 떠 세 자매와 올케, 그리고 조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단체샤워를 마친 후 근방에 예약해 놓은 미용실에서 머리와 화장을 하는데 미용사 혼자서 네 명을 손수하려니 여간 번거롭고 부산한 게 아니었어요. 넉넉한 시간을 두었음에도 가까스로 행사시간에 맞출 수 있었답니다.
친정 아버님의 회갑을 위해서 저희 형제는 5년 전부터 적금을 들었습니다. 그때만 하드래도 친정 부모님이 젊은 편이어서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막상 그날이 다가왔을 때 각자의 부담을 덜려는 방법이었고 나중을 미리미리 대비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함이었지요. 그래서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도 저희 형제들은 맘 편히 부담이 없었습니다.
친정 부모님께서는 저희에게 답례라도 하는 듯이 4형제를 포함 손주 손녀를 포함 직계까지 한복을 모두 맞춰 주셨고 우리들은 그 고운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란히 서서 친정 아버님의 회갑을 축하해 주시러 오시는 손님들께 공손히 인사를 함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형제 부부가 차례대로 절을 올리는 순간에는 왠지 콧등이 시큰하리만큼 눈시울이 적셔졌는데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이 물밀 듯이 다가와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으리.
친정 아버님이야 연세보다도 훨씬 젊어 보이는 동안(童顔)에다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음악만 나오면 흔들어대는 기운에 젊은 사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댑니다. 그 열정과 힘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차시고 인생을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가시려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선 하답니다.
그런데 사실은 친정 어머님 때문에 늘 걱정이에요. 3년 전에 교통사고를 겪은 후 당뇨가 찾아와 부쩍 늙으신 모습. 잠시라도 끼니를 놓치시면 기력을 잃고 마는 친정엄마. 아직도 창창한 나이인데도 힘든 일은 전혀 못 하고 계십니다. 부잣집 막내며느리로 시집와서 젊어 죽도록 고생한 까닭이십니다.
가끔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을 먼저 살아가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당신들의 나머지 인생이 더욱 아름답고 고귀하게 빛나기를 빌어 보지만 우선은 내 앞에 주어진 생을 알 수 없으므로 그저 부모.형제 각자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만 살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각자의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친정엄마의 동갑네 계를 하시는 친목회원 두 분이 화장실에서 나오십니다. 같은 동네, 같은 방향이기에 제 차로 모시고 가는 중 눈물을 훔치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정말로 이럴 땐 내 모든 건강을 엄마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영미야, 니 엄마랑 내가 젤루 친한 친구여. 근디 니 엄마가 당뇨가 있어서 저렇게 힘을 못 쓰고 있는 것이 얼마나 한이 되고 가슴 아픈 줄 아냐? 내가 아주 속상해 죽것따야.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 하는디 그래야 존디 많이 댕기구 맛있는 거 많이 먹을 수 있는디...” 하시더니
"영미야, 인저 앞으로는 남자들하구 절대루 같이 여행 안 갈껴~ 아 글씨 전번에 제주도 갔을 때 잠수함 한번 태워 달라니께 이누무 남편들이 죽어두 안태워 주잖냐~ 내 드러워서 이번에는 여자들끼리만 해외루 갈껴~ 그때 용돈 좀 두둑히 넣어서 드려라잉~ 니 엄마 구경 실컷 시켜줄랑게~"
아직도 시골의 아낙네들은 논농사에 밭농사까지 거들어야 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분들이 꽤 되며 풀지 못한 가슴앓이가 맺혀 있지만, 마땅히 풀어헤치지 못하는 마음. 그 속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속해 있고 10월의 햇살 아래 뽀얗던 얼굴이 까맣게 변해가고 있음을 저는 압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천만번을 불러 속이 시원해지리까? 맘껏 눈물 흘려 속이 시원해지리까? 어쨌든 이런저런 상념을 접고 친정 아버님의 예순한 번째 생신을 맞이하여 두 분, 늘 건강하시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저희도 알콩달콩 예쁜 가정 꾸려 나갈게요. 저희에게 늘 빛이 되시고 그늘이 되어 주시는 부모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작성일: 200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