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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의 300자 칼럼 (2009년 6월)
▢ 6월 1일 :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한 숱한 작품을 써온 신경숙(1963~)은 1985년 문예중앙에 소설 ‘겨울우화’가 당선돼 등단했습니다. 전북 정읍생인 작가는 얼마 전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제정한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Prix de I'I'n apercu)을 받았습니다. 올해 2회째인 이 상은 언론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숨은 걸작’에 주는 것으로 평론가와 문학 담당 기자들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작품은 『라 샹브르 솔리테르(La chambre solitaire 외딴 방)이랍니다. 언젠가 작가의 서재를 사진으로 봤는데 대단했습니다. 남편은 평론가인 남진우씨지요. 어떤 문학상보다 작품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 상의 의미는 크다 하겠습니다. 멋진 6월 되세요.
▢ 6월 2일 : 한국 윤리학의 체계를 세운 철학계의 원로였고 수필가이기도 하셨던 우송(友松)김태길 선생님이 지난달 27일 별세하셨습니다. ‘철학과 현실’이라는 잡지를 20년 이상 발간하면서 ‘철학의 현실화, 현실의 철학화’를 외치며 철학을 대중 속으로 접목하려 애쓰셨던 분이셨지요. 저는 그분의 수필을 좋아했습니다.『초대』『창문』『삶이란 무엇인가』『웃는 갈대』『체험과 사색』등을 쓰셨지요. 그는 생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더욱 알뜰하고 값진 삶을 가질 수 있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곤 한다”라고 했지요. 철학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철학이 없는 삶은 갈 곳을 모르는 삶이 아닐까요?
▢ 6월 3일 : 전문가들이 말하는 전문직 글쓰기 8계명이 있습니다. ① 전문 용어 남발을 피할 것. ② 문장은 가능한 한 짧게 쓸 것. ③ 하나의 문장에는 주어, 서술어가 하나씩 들어갈 것. ④ 영어나 한자를 많이 섞지 말 것. ⑤ 피동형으로 쓰지 말 것. ⑥ 주어를 생략하지 말 것. ⑦ 딱딱하게 쓰지 말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할 것. ⑧ 항상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쓸 것. 말은 쉽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이 좋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쓰다보면 문장이 길어집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각혈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몇 줄을 매일 쓰네요. 글이란 그 사람의 호흡입니다.
▢ 6월 4일 : 질병도 삶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정말 끼워주고 싶지 않은 영원한 불청객입니다. 며칠 전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왼쪽 어깨와 팔에 시작된 통증은 지독한 삶의 대가를 치르게 하네요. 질병과 결별해 사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습니까만 육신의 고통을 치를 때만 건강했을 때 감사하지 못하고 돌보지 못한 자책에 한껏 연민의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네요. 생각해 보면 육신의 모든 부분은 세상에서 제일 정확하게 자기의 몫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자기의 역할에 투정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네요. 상처는 박박 긁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싸매줘야지요. 잘 치료 받을 예정입니다. 호호 불면서
▢ 6월 5일 : 어느 땐 일주일에도 2~3대의 고장 난 컴퓨터 수리를 합니다. 벌써 10년도 넘게 계속 해오고 있는 이웃에 대한 작은 서비스(?)지요. 컴퓨터가 속을 썩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에 정성을 들여 수리를 합니다. 그런데 고장 난 것을 갖고 오면서 구입할 당시 따라온 CD를 갖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그 CD는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가장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인데도 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도 프로그램을 모두 새로 설치했지만 사운드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었네요. 대기업제품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훨씬 힘이 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제짝이 중요합니다.
▢ 6월 6일 : “돌아온 그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새삼 신기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희끄무레한 안개에 휩싸인 듯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백혈구 수치 때문에 애타던 일, 온몸의 링거 줄을 떼고 샤워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일, 그런 일들은 의도적 기억 상실증처럼 내 기억 한편의 망각의 세계에 들어가 있어서 가끔씩 구태여 끄집어내야 잠깐씩 희생되는 파편일 뿐이다. 그 세월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가슴 뻐근한 그리움이 다시 느껴진다.” - 장영희의《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님이 그립습니다.
▢ 6월 7일 : 노벨상 수상 연설을 모아놓은 『아버지의 여행가방』이란 책엔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알베르 카뮈, 토니 모리슨,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가오싱젠, 오르한 파묵, 르 클레지오 등 11명의 수상자들의 연설이 실려 있습니다. 문인들의 근원적인 물음도 “나는 왜 문학을 했는가”“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군의 비인간적 행위를 속죄하고 화해를 모색하려 했다”르 클레지오는 “새 시대 작가는 더 나은 삶의 모델 낳겠다는 자만심을 버려야” 마르케스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약탈과 절망에 맞선 우리의 대답은 바로 삶”란 말을 했군요. 파묵은 ‘세상의 중심에 있지 않다’란 결핍감 때문에 소설을 쓰기시작 했는데 “어느 날엔가 우리가 쓴 것들이 읽히고 이해될 거라는, 왜냐하면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강조했고, 마라마구는 “평범한 사람들인 두 분을 문학 속의 인물로 탈바꿈시켜 두 분을 잊지 않기 않기 위해서였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가오싱젠은 “문학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를 지켜 나가야지 정치적 도구가 돼서는 안된다”며 “가장 높은 경지는 냉정한 눈으로 조용히 관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작가는 진실에 대한 섬김과 자유에 대한 섬김’이라는 짐을 지고 있으며 판단하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이’라는 카뮈의 일갈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들과 동시대를 함께 산다는 것이 행복하네요.
▢ 6월 8일 : 캐리커처(Caricature)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특징을 과장하여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글이나 그림. 또는 그런 표현법’을 의미합니다. 지난 78년부터 출간된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표지엔 아름답고 독특한 캐리커처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소설가 이제하(71)님은 캐리커처의 대가지요. 시인 문태준, 김혜순, 최하림, 이성복, 송재학, 김선우, 소설가 서정인 김훈 등의 캐리커처를 그렸지요. 또 한명은 시인이자 무용평론가, 화가로 활동했던 전방위 예술가 김영태(金榮泰(1936-2007)님입니다. 김기택의 시집 ‘소’외 숱한 컷을 을 그렸지요. 사진을 놓고 쓱쓱 그려내는 일필지휘의 그 번뜩이는 혜안이 오늘도 부럽습니다. 정말 닮고 싶어요.
▢ 6월 9일 : 인상주의의 선구자인 르누아르(1841-1919)는 ‘행복을 그린 화가’로 통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알려진 대로 정 반대였다고 하지요. 가난한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고통과 시련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희망의 피안 처였던 그림 속엔 그의 이상세계인 행복이 가득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은 화사하고 풍만과 관능을 감추지 않는 여체는 보는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9월 13일까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시골무도회’ ‘그네’ ‘피아노 치는 소녀들’ ‘햇살 속의 누드’같은 대표작을 비롯한 118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남긴 “고통은 지나간다. 아름다움은 남는다”란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 6월 10일 : 아침에 일어나면 거의 매일 영어테이프을 틉니다. 공부를 위해서죠. 벌써 수십 년째지만 영어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귀가 뚫리지 않은 탓이지요. 귀가 뚫리지 않음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제 얘기지요. 그래서 요즘엔 ‘러브 액추얼리’, ‘The Office', 그리고 Sex and the city'와 같은 영화의 대사를 듣습니다. 자막 없이 계속 듣다가 대본을 구해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도 하지요. 영화 속의 대사는 실생활에 금방 써먹을 만한 얘기들이어서 아주 좋습니다. 대화가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좋지요. 지금은 테이프가 늘어지는 경우가 없는 시대이니 그도 또한 좋지만, 들어가는 연륜은 암기력을 자꾸 떨어뜨리네요. 왕도가 없는 영어공부지만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 6월 11일 :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 작품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제까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네요. 지금도 기억나는 작품은 68년 노벨상을 받았던 가와바타 야스나리(かわばた やすなり,川端康成)의 『설국』과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빙점』이 생각나고 최근에슨 23년간의 하루키 문학을 집대성하는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 무라카미 하루키(むらかみ はるき,村上春樹 1949~)의 소설『해변의 카프카 상·하』를 읽었습니다. 일본이 지금 조지 오웰의 『1984』을 연상시키는 7년 만의 그의 신작『1Q84』라는 이상한 제목의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 합니다. 지난 5월말에 출간됐는데 일주일 만에 100만부가 팔렸다고 하네요. 그는 36개 언어로 번역된 『상실의 시대』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합니다.
▢ 6월 12일 : ‘워드프로세서’란 이름도 생소하던 지난 1990년, 지금도 기억이 새롭습니다만 저는 286 XT에서 디스켓 3장짜리로 처음 나왔던 1.51판을 잊지 못합니다. 구동용 DOS디스켓을 넣고 컴퓨터를 컨 휴 HWP라고 씌여진 첫 번째 디스켓을 넣고 다시 HWP라고 치면 실행이 됐었지요. 정말 까마득한 옛날 얘깁니다. 그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워드로 모두의 자랑이 아닐 수 없지요. 세계적인 공룡 MS-Word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늘 을 사용합니다. 부침을 거듭하던 한컴(한글과컴퓨터사)은 이찬진 사장이 설립한 이후 이제 일곱 번째 주인을 맞게 된다고 하네요. 더 많이 사랑받길!
▢ 6월 13일 : 과외선생 33년 만에 어제는 가장 가슴 떨리는 날이었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공부를 시작하셨던 분이 저와 함께 주변에 그렇게 배움에 목말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백만 원을 갖고 오셨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공부를 할 수 없는 학생 2명을 뽑아 6개월씩만 지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녀는 오랫동안의 질병으로 지금도 병중에 있고 기초수급을 받는 가난한 분입니다. 함에도 선뜻 그렇게 내어 놓을 수 있는 마음에 놀라움과 감동이 컸네요. 사람을 키우는 것에 돈을 쓴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는지 모릅니다. 우리 독서회 회원이기도 한 그분의 아름다움이 6월을 한껏 더 푸르고 싱싱하게 하네요.
▢ 6월 14일 : 『청춘을 불사르고』는 김일엽(1891~1971)스님의 저서입니다. 일제 강점기 유학파 출신의 여류문인으로 1928년 출가해 한국 불교 최고의 여승으로 불렸고 나혜석(1896~1949)과도 절친했던 인물이지요. 그녀는 출가 전 일본 명문가 집안의 한 남자를 만나 아들을 낳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에 이르진 못했습니다. 이당 김은호화백의 제자였던 그의 아들 김태신이 60년대 중반 출가 후 2002년 출간한 자전 소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에서 14살 때 처음 찾아갔을 때 어머니 일엽스님은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으로 불러라”란 말은 유명하지요. 화승(畵僧)인 그 아들이 흘렸을 눈물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 생이란!!!
▢ 6월 15일 :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입니다. 2002년 쿠르트 마주어의 후임으로 뉴욕필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에 취임한 이후 지난해 역사적인 평양공연을 이끌기도 했던 그는 올가을 뉴욕필을 떠나지요. 80살의 노거장은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뉴욕필을 떠난 후에도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2014년까지 일정이 꽉 차 있다고 하네요. “95살에 ‘조기 은퇴’할까 생각하고 있다”는 농담을 읽으면서 건강에 너무 주눅 들어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맨 날 잠만 깨면 아프다는 소리를 달고 사는 요즘인데 그러지 말아야겠어요. 가급적 병원 약을 안 먹을 참입니다.
▢ 6월 16일 : 법정스님의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북동의 작고 아름다운 절에 찾아가 몇 번 듣기도 했던 법문집이지요. “봄에는 향기로운 꽃그늘 아래서, 여름에는 장맛비를 피고 천막을 치고서, 가을에는 마음까지 물들이는 단풍나무 아래서, 겨울에는 예고 없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스님의 말씀에 고요히 귀를 귀울인다” 그랬습니다. 제가 갈 때마다 그런 모습이었고, 풍경이었지요. 글자 한자 한자에 이렇게 강한 힘이 느껴지기는 실로 오랜만입니다. 법정스님은 우리시대의 영원한 학승(學僧)이지요. 참 멋있게 사시는 분입니다.
▢ 6월 17일 : 1953년 발표된 ‘국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황순원(1915-2000)의 「소나기」가 소설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지난 13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 ‘소나기 마을’얘깁니다. 황순원 문학관을 비롯하여 징검다리와 개울, 수숫단 오솔길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란 전경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합니다.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섶 다리 개울은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오늘도 그 시절 풋사랑이 그립습니다.
▢ 6월 18일 : 작가 이미륵(1899~1950)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녀가 번역한 『압록강은 흐른다』와 정규화가 번역한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벌써 오래전에 읽었지요. 그는 스무 살 경성의대생시절 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일제의 추적을 피해 독일로 간 근대 지식으로 알려져 있고, 그가 독일어로 쓴 글들은 명문으로 독일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독일 뮌헨 근교의 그레펠링 시 공동묘지에 잠든 그의 묘지 임대료 낼 사람이 없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맑은 영혼의 작가의 묘지는 이제 개인의 후원금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6월 19일 : 한 나라의 문화척도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고전(古典)번역의 역량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문으로 된 번역도 물론이려니와 서양의 고대사부터 중세·현세에 이르는 고전들의 번역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것이기에 그 중요성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인 세계 3대문호중의 한 사람인 괴테(Johann Wolfgang Goethe-1749년~1832년)는 수많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작가입니다. 그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은 작가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기도 했지요. 그이 시 전집 770편이 15년에 걸쳐 서울대 전영애교수에 의해 번역됐습니다. “내가 시를 만든 것이 아니다. 시가 나를 만든 것이다.” 란 대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 6월 20일 : 지난해 9월 대장암판정을 받으시고 투병 중이신 어머니에겐 두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큰 아들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고 둘째는 셋째아들(청죽)이 장가를 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죠. 오랫동안의 그 소원이 이워지지 않아 무던히 애도 태우셨는데 며칠 전 큰아들의 소원이 이뤄져 오늘 집들이를 합니다. 대전까지 어머닐 모시고 가려하네요. 큰 병중에 모험인줄 알지만 워낙 평생의 소원이셨기에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어머닌 며칠 전부터 오늘의 나들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체력을 보강하셨고, 죽어도 갔다 오신다 하네요. 빗속에 제 건강도 좋지 않지만, 7남매가 어머니와 함께 모여 얘기꽃을 한 아름 피우고 오겠습니다.
▢ 6월 21일 : 『호모 쿵푸스』라는 낯선 이름의 저자인 고미숙선생님(아이디 ‘곰숙’)을 만난 것은 지난 2007년 7월이었습니다. 그 전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꼭 한 번 뵙고 싶었던 선생님은 고전평론가라고 할 수 있죠.『호모 에로스』『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등을 재밌게 읽었고 공부와 생활을 일치시킨 대안적 지식공동체를 실험해온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모든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 공간이 소규모 연구공동체의 지역 간 네트워크 형태로 조직을 개편한다고 하네요. 이름은 코뮤넷(CommuNet). 앞으로 저도 살고 있는 지역에 인문학 공부방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토론의 열린 공간을요!
▢ 6월 22일 : 저는 개인적으로 수학이나 물리 화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좋아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잘하지도 못했지요. 그 중에서도 수학은 더했습니다. 수학은 논리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학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어쩐지 인문학 분야보다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네요. 그럼에도 ‘수학’하면 떠오르는 책이 있는데 바로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입니다. 지난 1966년 처음 나왔던 이 책은 지금도 매년 120만권이 판매된다고 하네요. 알찬내용으로만 승부를 하기 때문에 판매를 위한 마케팅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43년 동안 4000만권을 판매했다는데 큰틀 유지하되 개정 땐 10%씩 바꾸며 변화에 적응한다 합니다. 삶도 내용으로 승부하고 싶습니다.
▢ 6월 23일 : 지난 1988년 해금된 작가 중에 임화(林和)(1908~1953)는 시인이자 혁명가였고 그 존재 자체로 한국 근대국문학사의 척추를 이룬 인물입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비평 이론에서 두루 당대 최고의 성취를 보여준 말 그대로 전 방위적인 지식인이었지요. 식민지 지식인!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민족-이식문학론등은 반세가 후에 남한에서 부활했고 지금도 계속 연구되고 있지요. 풀잎의 작가 김수영이 2~30년 앞서갔다지만 임화는 훨씬 더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임화문학예술전집1~5』가 나왔다고 하네요. 우리 민족문학사의 자랑입니다.
▢ 6월 24일 : 팔이 아프다는 핑계로 이것저것을 미루다 보니 46번째 독서회 날이 바로 오늘인데 허둥대며 회지를 만드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시와 그림을 고르고 알맞게 편집을 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네요. 글자가 많으면 책이 딱딱하고 그림을 많이 넣으려 해도 적당한 그림을 선택하는 것도 안목이 필요합니다. 영어와 달리 한글은 띄어 씌기와 붙이기 등 할 일이 많지요. 문맥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바쁠 땐 거기까지 손을 못대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그대로 드러나지요. 짬을 많이 들이 곳은 확실히 표시가 납니다. 인생사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급박하게 준비하는 것엔 늘 허점이 있습니다.
▢ 6월 25일 : 문지시선 352번째로 나왔던 『광휘의 속삭임』은 정현종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분의 시를 읽으며 좋아 했지요. 어제 한 티비 프로그램의 주선으로 그분과 약 30분 동안 인터뷰를 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시를 쓰신 분이지요. 특히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란 시집은 제가 늘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제 인생의 화두 같은 제목이기도했지요. 시선집『이슬』등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읽었고 이번 달에도 그가 번역한 『불과 얼음』을 읽었습니다. 닮고 싶은 분과의 만남은 인생에 큰 자극이 되는군요.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남아있는 생을 역을 참입니다.
▢ 6월 26일 :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詩)가 잘 외워지지 않습니다. 좋은 시를 만나면 전엔 한꺼번에 외우곤 했었는데 요즘엔 겨우 한 연을 외우고 미뤄뒀다가 또 나중에 다음 연을 외우곤 하네요. 저만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영시(英詩)는 가급적 원어(原語)로 외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러려고 노력합니다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영시를 외우고 나면 여러 가지로 짭짤합니다. 영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영어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고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돼 오는 것 같아 정말 좋아요. 시어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시인의 호흡을 직접 체험할 수 없기에 그가 선택한 언어의 맛은 더 향기롭습니다.
▢ 6월 27일 : 지난 1980년대부터 팝의 황제라는 닉네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58-2009)이 세상을 떠나 ‘하늘 무대’로 장소를 옮겼네요. 음악이 곧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이 어찌 그뿐일까만 그는 참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숱한 성형수술과 성추행, 그리고 복잡한 사생활 등등 세상을 떠나가 직전까지 그를 ‘괴물’취급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던 그는 ‘빌리 진’, ‘비트 잇’ 37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의 ‘스릴러’ 등 숱한 히트곡을 냈고 지금까지 판매된 앨범은 7억 5천만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영원한 ‘팝의 전설’이 될 듯합니다. 팝의 역사를 새로 쓴 그지만 인간적인 연민도 없지 않네요.
▢ 6월 28일 : 지난 토요일 녹화분에 빠진 부분을 어제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잘 마쳤습니다. 질문은 총 3가지였는데 첫째 ‘책 읽은 소감’, 둘째 ‘인상적인 구절’, 셋째 ‘시 낭송’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미리 받았었기에 함께 간 회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시집을 꼼꼼히 읽고 인상적인 구절을 찾았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두 차례나 여의도까지 갔다 오느라 애도 썼지만 회원들의 가슴속엔 그 어느 때보다 문학의 향기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책을 깊이 있게 읽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낭랑한 목소리를 뽐내기도 했던 어제는 받은 출연료로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동행의 기쁨에 감사를 전하며!!!
▢ 6월 29일 : 재미작가 김은국(미국명 리처드 E 김)의 『순교자』(The Martyred)는 지난 1964년 미국 문단에 화려하게 등단했던 작품입니다. 그해 뉴욕타임스는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가 보여준 위대한 도덕적, 심리적 전통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품”이라며 한 신작(新作)소설을 격찬했고 이 소설은 미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미국 문단에 소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이 작품으로 그는 1969년 한국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지요. 1932년 함흥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던 작가가 지난 23일 타계했습니다.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아서 서가를 채우고 있네요.
▢ 6월 30일 : 6월의 마지막 날이군요. 지난 반년을 어떻게들 보내셨습니까? 생각해 보면 참 부지런히 달려 여기까지 왔네요. 이제 장마 인 듯합니다. 날씨가 궂으면 삭신 마디마디가 아프시다 던 할머니들의 얘기가 자꾸 현실로 깨어나 그동안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삶을 엿보게 하고 동참케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한 달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어깨의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도 계속 앓고 있네요. 좀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부딪치는 모든 것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달갑잖은 질병과의 동행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지만,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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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집사님의 글을 매주 청년부 주보에 올립니다..짧은 글이지만 생각을 깊게 하게 만드는 너무 좋은 글이라고 얘기합니다^^ 염치 불구하고 계속 퍼가겠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