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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강해(15) 2023. 11. 19
처음 초막절을 지키다
느헤미야8:13-18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하루 종일 쓰는 단어를 정리해 보면, 그중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바로 자신의 인생관이라”합니다. 말끝마다 돈! 돈! 하면 돈에 인생을 건 사람입니다(돈의 지배를 받는 사람).
‘기분’이라는 말을 많이 쓰면 기분파, 낭만주의자입니다(좋게 들리기도 하지만, 철이 늦게 드는 단점이 있음).
밤낮으로 ‘죽겠다’, ‘망했다’하는 사람들은 살아도 죽는 심정이고, 잘 되어도 항상 불평불만입니다(비관주의자).
말은 숨겨진 생각을 고발하는 ‘밀고자’입니다.
2023년 올 한 해, 여러분이 가장 많이 썼던 단어는 무엇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기쁨이 우리의 인생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오늘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특별히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격려해 주신 성도들께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옆 사람과 마주 보고 인사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성도들께 - “함께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
52일 만에 성벽을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달 초하루, 곧 새해(나팔절)를 맞이하여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책을 가져오셔서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에스라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그러니까 여섯 시간 동안 율법을 낭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들의 죄가 깨달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겪은 모든 환난과 고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에 받은 징계라는 것을 깨닫기에 이르렀습니다. 놀라운 회개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자신들의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오늘은 너희 하나님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회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회개할 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뻐하는 성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웃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성벽을 완공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기뻐하며, 이웃과 더불어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라>
이렇게 ‘일곱째 달 초하루’(새해 나팔절)은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더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이튿날’ 다시 모였습니다.
13절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그 이튿날’은 일곱째 달 둘째 날을 말합니다.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하여 에스라에게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급 인사들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고난의 세월을 산 데는 이들의 책임이 컸습니다. 지도자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여 말씀대로 살지 못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책임을 자각한 그들이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든 것입니다. 뒤늦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는 열정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들이 에스라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나가는 가운데, 새롭게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었습니다.
14-15절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그들이 말씀을 배우다가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곱째 달에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신 절기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를 명령하셨습니다.
첫째로, 유월절(무교절)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둘째로, 칠칠절(오순절)입니다. 처음 수확한 열매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셋째로, 초막절(수장절)입니다. 초막절은 애굽에서 탈출한 40년 동안 초막을 치고 살았던 날들을 기억하고, ‘광야의 삶에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절입니다. 동시에 모든 추수를 마치고 저장한 후 드리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절기들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즉 스스로 농사를 짓고 열매를 얻을 때에 지켜야 할 절기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절기가 필요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열어주시지 않았다면, 새벽마다 만나를 내려 주시지 않았다면, 마실 물을 공급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냥 광야에서 다 죽고, 그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절기가 없어도 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았습니다. 자신들이 할 것이 없었기에 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의 삶이고, 감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더 이상 새벽마다 내리는 만나는 없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던 기적도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지파마다 땅을 얻고, 스스로 농사를 지어 열매를 얻는 시대를 살게 될 것입니다. 그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을 모세를 통하여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절기를 주신 목적은 간단합니다. 사람이 가난하고 고생스러울 때는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지만 부유해지면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훗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잘 먹고 잘살게 될 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8:11~14a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즉 이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그들을 지켜주셨는지를 기억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초막을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의 불순종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느8:16~18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7 사로 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밖으로 나가 율법 책에 언급된 나뭇가지들을 꺾어다가 집집마다 초막을 지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집의 평평한 지붕 위에 지었고, 어떤 이들은 자기 집 마당에다 지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뜰이나 ‘수문 앞 광장’이나 ‘에브라임 성문’ 앞의 광장에다 초막을 지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본국으로 돌아온 모든 유다 사람들, 그들은 율법에 따라 초막을 지은 후에 그 안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편안한 집을 놔두고 초막에서 지냈습니다.
일찍이 눈의 아들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성대하게 초막절을 준수한 일이 없었기에, 모두는 큰 행복감을 느끼며 남녀노소가 하나같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초막절을 지키는 유일한 이야기가 역대하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를 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솔로몬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매일의 일과대로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 곧 일 년의 세 절기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대하8:13)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모세는 민수기 29장에서 초막절에 드려야 할 제사와 제물에 대한 규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민29:12-38). 아마도 그 규례에 따라서 솔로몬은 초막절에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막절에 번제를 드리기는 했지만, 초막절에 빼먹지 말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초막을 만들고 일주일 동안 거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
이렇게 지내는 것이 80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800년 동안 제대로 드리지 못하던 예배를 이제 제대로 드리게 된 것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고 충만한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을 지키는 7일 동안, 첫날(7월 15일)부터 마지막 날(7월 21일)까지, 에스라는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였고, 마지막 여덟째 날에 부흥회(성회)를 열었습니다(18, 레23:39).
<초막절에 지녀야 할 신앙 정신>
느헤미야서에서는 초막절에 초막을 지은 내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율법에서는 초막절을 지키면서 가져야 할 신앙적인 태도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신16:13-17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첫째로, 가난한 이웃과 함께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신16:13-14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사는 자기중심적인 자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절기를 지킬 때는 자신과 자기 가족끼리만 지키지 말고,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 등 가난한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감사 절기는 모두 이웃과 더불어 즐거워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는 그들 자신도 과거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했고,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것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 도시환경의 변화로 낙후됐던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중상류층이 유입되고 땅값, 임대료 등이 상승함에 따라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면 결국은 같이 망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술인들이 외진 곳에 모여 특성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많이 몰립니다. 이때 집주인의 마음에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꾸 임대료를 올립니다. 결국은 그들이 떠나게 되고 특성 있는 환경이 사라지게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고 맙니다. 집주인의 입장에서 당장은 이득이 될 것 같지만 결국은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지나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겁니다(이대 입구, 이태원, 경리단길, 명동, 연남동, 홍대 앞 등등).
있는 사람들이 자꾸 집값을 올리면 청년들이 집을 사지 못하고, 결혼도 포기하게 되어 결국은 인구가 줄게 됩니다. 결국은 그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고, 크게는 나라가 쇠퇴하게 됩니다. 있는 사람들이 욕심부리지 말고, 더불어 살려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상생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연한 말이지만, 기쁨은 이웃과 함께 나눌 때 더 크고 풍성하게 됩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 시간, 재능까지도 영육 간에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란 말씀은 모세가 이 명령을 내리는 시점이 아직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이니 미래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한다면,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변함없이 그들과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고, 각양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온전히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근거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통해서 기뻐하고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기쁨과 감사의 근거가 눈에 보이는 결과에 있지 않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래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고귀한 약속을 주심으로 그들이 염려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언제나 한결같으신 하나님은 가장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때 복을 주시지, 원망을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16:16-17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물질을 드리도록 하신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도록 하신 것이요,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신 것은 인색함이나 아까운 마음으로 드리지 말고 받은바 은혜만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신 것입니다.
헌금하는 자세 – 내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가운데 일부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
고후9:5~7(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에 연보를 부탁)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요약하면, 1) 준비된 헌금, 2) 마음에 정한 대로, 3) 인색함이 억지로 하지 말 것.
그런데 그 이유를 설명하심 1) 손해가 아님(6절 씨를 심는 것과 같음), 2)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심.
이처럼 초막절은 7일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으로 감사하는 영적 각성의 시간입니다.
또한, 주변의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함께 나누는 시간입니다.
또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힘을 다하여’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와 불평은 ‘시소’와 같습니다. 한쪽이 올라가면 반대쪽은 내려가고,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쪽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소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까? 감사의 무게가 더 무거워서, 불평을 누르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이 가져도 감사하지만, 많이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높이 올라가도 감사하고 몸이 건강해도 감사하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감사를 ‘전천후(全天候) 감사’라고 부릅니다. 어떠한 날씨나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몹쓸 병에 걸리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 못 할 고통을 겪고 있는데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유로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범사’란 말 그대로 ‘모든 일’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건강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한 번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합니다. 매년 이렇게 감사를 생각할 수 있는 절기가 돌아온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올 한해 지켜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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