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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17) 2024. 10. 30
솔로몬의 축복과 고백
왕상8:12-21(대하6:1~11)
<지난 시간 요약 – 언약궤 이전>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이 처음 한 일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시온)에서 성전으로 이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언약궤가 성전의 지성소에 자리를 잡아야 공식적으로 성전 완공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습니다.
그때는 칠월 절기(초막절)를 앞둔 때였기에 가장 바쁜 시기였지만,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족장들은 다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이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직접 성전 마당으로 옮겼습니다. 각종 성물들도 함께 옮겼습니다.
언약궤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은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사가 끝난 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 곧 지성소로 메어 들임으로 드디어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이때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지 못하고 다 엎드렸습니다. 이로써 솔로몬의 성전이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임하여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
성전에 구름이 임함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여, 솔로몬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12~13절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라고 말했는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직접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인간의 연약함을 배려하셔서 스스로 (빽빽한) 구름이나 안개, 흑암 속에 감추시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나오는 현상입니다. 지존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사람은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태양도 5분만 쳐다보면 시력을 잃게 됨).
구체적인 내용이 출애굽기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실 때에,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또 산의 연기가 가득했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워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모세만 그 암흑 속에 계신 하나님께 가까이 갔습니다.
출20:18~21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신5:22)
이것은 하나님은 사람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신비롭고 거룩하신 분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제 자기가 성전을 지어 드렸으니 하나님께서는 그 어둡고 캄캄한 데 머물러 계시지 말고 이 웅장하고 좋은 성전에 영원히 머물러 계시라고 기도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제한된 구역에 머물거나 갇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만 솔로몬은 이 성전의 목적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보관하고,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한 ‘하나님의 집’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지성소에는 창문이 없음, 촛불도 없음, 캄캄함 – 여전히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나타나시면 안 됨).
이제 이 건물은 하나님의 집으로 ‘등기 완료’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축복과 고백>
그런 다음에, 왕은 얼굴을 돌려, 거기에 서 있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둘러 보며, 그들을 축복하며, 성전 건축이 이뤄지기까지 어떤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는지 증언합니다.
첫째,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성전임을 밝힙니다(약속의 성취).
14~15절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15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성전 건축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입니다(삼하 7:2-17, 대상 22:6-12, 28:1-10).
그 구체적인 내용을 17~20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7~20절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18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19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2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21 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그러니까 솔로몬은 자신이 주도하여 지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과 맺으신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는 고백을 온 백성들 앞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의 손으로 이루신 성전’이라고 고백합니다.
15절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공로를 자신에게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 이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이는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의 표현으로 주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주권 또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을 뿐, 주도자는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셋째,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켜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16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구체적인 약속은 다윗과 이루어졌지만,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때는 출애굽부터입니다(시내산 계약, 십계명 수여).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사 ‘제사장 나라’를 만드시려고 하셨습니다(출 19:6). 열방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국면, 주요 사건 등에서 이 출애굽 사건은 끊임없이 상기되고 회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을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사상에서 '이름'(*, 쉠)은 단순한 호칭이나 명찰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름은 그 이름의 소유자가 갖고 있는 총체적이고도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냅니다(창 27:36, 32:28, 삼상 25:25등). 즉 이름은 바로 그 이름을 가진 존재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둔다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그곳에 계시하시고, 또한 당신의 권위와 영광을 그곳에 두시겠다는 의미입니다(신 12:5). 그러므로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집’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름을 두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이든 성물이든 그 자체가 하나님을 속박해 둘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 이름을 둘 만한 곳이 되지 못하면’ 언제든지 떠나버리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에서 돌아섰을 때 성전은 무의미한 건물로 전락하였고 결국 파괴되지 말았습니다(사 1:10-17).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임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특정한 지역이 아닌 구별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지역을 통해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특정 민족이나 지역 출신을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하여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니 끝까지 믿고 나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 어떤 사건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사건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예언과 성취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가운데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를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건’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도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라고 고백했는데,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구원의 완성 역시 ‘그의 손으로 이루실 것’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구원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끝내 이루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이 자세일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공로를 자신에게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 민20:7~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므리바는 ‘다툼’이라는 뜻).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인가 해보려 하였습니다(영적 교만).
성경에 보면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다가 망한 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헤롯을 충이 먹어 죽음 – 행12: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헤롯 아그립바’(헤롯 대왕의 손자)가 전 유대를 통치한 지 3년에, 황제를 위한 축제를 열렸다고 합니다. 축일의 둘째날 그는 전부 은으로 만든 찬란한 왕복을 입고 이른 아침에 극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연설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햇빛이 그의 은 왕복에 반사되어 경이롭게 비치었습니다. 그 순간 군중들 속에 누군가가 “그는 신이시오” 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였습니다. 물론 아부 차원에서... 그런데 그는 정말로 자신이 신의 반열에 올라간 것처럼 교만하여졌습니다. 정상적인 왕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야 합니다.
누가는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치니 충(벌레)이 먹어 죽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요세루스 역사가에 의하면 닷세를 복통으로 앓다가 완전히 지친 끝에 죽고 말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기생충에 의해 고통받다가 죽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습니다. 권력자가 교만해지면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와 권력과 귀하게 되는 것은 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되는 것인데(대상29:12),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위한 다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다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하19장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을 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하나님의 천사가 내려와서 치시므로 패전하여 도망가다가 살해 되고 군대는 18만 5천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은 큰 권세와 영광을 얻게 되자 잘나서 된 줄 알고 마음이 높아 교만하다가 결국 쫓겨나 들짐짐승처럼 7년을 살았습니다(단4:30~33).
그리고 그 아들 벨사살 왕은 교만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바사의 고레스에게 패망하고 말았습니다(단 5:20-30).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진노로써 그의 교만을 꺽으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의 진정한 ‘신앙인의 모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행14:8~15),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그가 바울과 바나바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을 보고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선포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본 무리들이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면서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렀습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온전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셋째,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둘 만한 곳’으로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16절a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성전을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둘 만한 집’으로 인정하시고, 역사하실 때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사도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둘 만한 교회’로 인정받고,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성령님께서 내주하실만한 성전’(살아있는 성전, 움직이는 성전)으로 인정받고,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복음이 널리 퍼뜨리는 일에 크게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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