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내골 큰 엄마 / 손철화 2
1. 세상에는 특별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배내골 사는 J씨도 그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30년 지기 나의 고객이므로 나는 그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다. 그가 사는 방식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우러러보기도 하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2. 그는 배내골과 그 인근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부친이 일찍이 국유지 개간사업을 하여 많은 농지를 소유했었는데 그 땅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3. 배내골은 영남알프스 속의 대표적인 협곡이다. 영축산‧신불산을 잇는 산지와 재약산‧천황산을 잇는 산지 사이에서 8㎞나 뻗어 있는 골짜기다. 부산이나 울산에서 가까우나 교통이 불편한 오지라서 비교적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물이 많아서 지금도 피서지로서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근간에는 여기를 관통하는 울산–함양 고속도로의 나들목이 생겨서 교통이 많이 좋아졌다. 이런 곳에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니 그는 부자라고 할 수 있다.
4. 부자라고 하면 흔히 근사한 집, 고급 차에다 훤하게 차려입고 이것저것 돈 드는 짓 하는 사람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겉모습은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 화장기라고는 없는 검게 탄 얼굴이요, 언제나 검정 아니면 회색 작업복에 등산화 차림이다. 10년도 넘었을 그의 suv차는 흙먼지를 둘러쓴 채 온갖 것을 실어나르는 짐차다.
5. 땅 부자에게는 늘 법적 문제가 따라다닌다. 갈수록 토지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다 보니 조금만 손을 대도 무단 형질변경이니 뭐니 하면서 법적제재를 당한다. 이를테면, 수해가 나서 농지가 휩쓸려 나가면 그는 흙을 사서 복구하는데 묵은 감정이 있는 인접 지주들은 이를 아니꼽게 보고 고발한다. 산마루에 있는 농지에 출입하기 위하여 길을 고치면 산림 훼손이라 하면서 엄청난 복구비를 부과한다. 그래서 그는 계속 송사에 시달리고 있다. ‘천석꾼에게는 천 가지 걱정’이라는 옛말이 그에게 달라붙어 있다. 그래도 그는 굽히지 않고 땅을 껴안고 있다.
6. 그는 고로쇠 물을 채취해서 판다. 이른 봄, 얼음이 채 풀리지 않은 골짜기를 누비며 수액을 받는다. 빈손으로도 다니기 힘든 바위투성이 길을 80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물통을 들고 누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7. 그는 부산 제일의 번화가, 광복동에서 나서 자랐고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다. 교직에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개간사업을 이어받았다. 오빠도 남동생도 있으나 그들은 아버지 사업에 관심이 없었고 산골에 들어오는 일 자체를 싫어해서 그가 승계할 수밖에 없었다.
8.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던 처녀 시절의 그와 산골할머니가 된 현재의 그를 비교하면서 안타까워한다. 곱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거칠게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게 J씨에 대한 보편적 시각인 것 같다.
9. 그는 자녀가 없고 재작년에 남편과도 사별해서 혼자다.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떨어져 살면서 학교 일에만 전념했지 농장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있을 때는 씩씩했는데 요즈음은 대화 중에 “물려받을 사람도 없는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라는 말을 간간이 섞는다. 억척도 이제는 외로움을 타는가 했는데 말과는 달리 땅에 대한 욕심은 그대로다.
10. 그의 집은 배내골을 종단하는 주도로 변에 있다. 그는 그곳에서 개를 키운다. 버려진 개를 모아서 키우는데 160여 마리나 된다. 큰놈‧작은놈, 수컷‧암컷, 토종‧외래종 등 각양각색이다. 넓은 땅에 개집을 많이 지어놓았으나 개체 수가 불어나서 집 주변이 온통 개천지다. 어린 강아지, 아픈 놈, 출산을 앞둔 어미 등은 격리해야 하므로 그가 쓰는 최소한의 생활공간 외의 시설은 전부 개가 들어앉아 있다.
11. 철망 울타리를 쳤지만 배고픈 야생 개들이 넘어와서 사료를 훔쳐먹기도 한다. 그 주변에 돌아다니는 야생 개는 수십 마리나 된다. 이놈들은 도로를 배회하다가 차에 치이기도 하고 관광객들에게 공포감을 주기도 하므로 민원을 일으킨다. 군청에서는 그 부근도로에 개 출현을 경고하는 현수막을 걸어두는 한편 J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의 개가 탈출했거나 아니면 그가 개를 키우니까 야생견들이 모여들어서 민원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라믄 우리 개 전부 풀어뿔란다. 그리하까요.”하면서 그는 대든다. 담당 공무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하다.
12. 더 큰 문제는 못난 견주들이 늙었거나 병든 개를 슬그머니 그의 집 앞에 버리고 가는 일이다. 그의 집 앞에는 ‘평생 주인에게 충성하는 반려견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라고 쓴 팻말이 서 있다. 그래도 버리고 가는 얌체족들이 종종 있으니 그는 개보다 못한 인간을 원망하면서도 버려진 개를 거둔다. 거기에다 새로 태어나는 놈도 있으니 개 식구는 자꾸 늘어만 간다.
13. 그는 월 사료비 600만 원, 관리하는 인부의 급료 200만 원에 시설비, 약값, 주사비 등 하여 한 달에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한다. 외부의 도움 없이 전부 그가 부담한다. 고로쇠 물을 채취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그의 차에는 항상 개 사료가 가득 실려있다.
14. 나는 그에게 권했다. 당국에 도움을 청하든지 인터넷에 올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관공서에 도움 구하면 뭐 쬐끔 줘놓고는 온갖 것 다 간섭합니더. 인터넷이나 TV프로에 오르면 전국에서 개 버리러 우리 집으로 몰려올 겁니더.”
15. 나는 개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집에 가면 10분을 있기가 힘들다. 낯선 이에게 수많은 녀석이 꼬리를 세우고 한꺼번에 짖어대니 집이 떠나가는듯하다. 그래도 조금 깊이 살피면 힐링이 된다. 몇몇 지체 불구도 있으나 아이들이 어쩌면 그리도 건강할까? 늙고 병든 애들이었다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통통하고 활발하다. 지네들끼리 서열이 매겨졌는지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들의 분주한 움직임에서 생기를 얻는다.
16.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야생견들도 열심히 사료를 훔쳐먹어서 튼실하다. 어떤 놈은 버림받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목도리를 달고 있기도 하다.
17. 알밤처럼 키워놓은 애들을 보고 있노라면 J씨의 ‘생명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애들이 튼튼한 것은 하늘이 의로운 이를 돕는 징표가 아닐까. 내가 아는 사람은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키우던 개를 유기견으로 신고함으로써 개는 살처분 당했다. 그는 꼭 한 번 이 집에 와서 보고 여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18. J씨, 겉모습은 허름해도 그의 속은 진주요 에메랄드다. 넓은 마음 씀씀이는 성자聖者를 닮았다. 토지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약한 존재에 대한 사랑도 강하다. 한곳으로 치우쳤다면 그의 삶은 절뚝거릴 텐데 똑바로 걸어간다. 그의 걸음걸이는 끝까지 균형을 잃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이기심과 이타심을 잘 섞어서 살아갈 때 '조화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와의 관계가 계속되는 한 늘 쳐다보면서 그의 삶에 내 삶을 비춰볼 것이다. 나는 그를 ‘배내골 큰 엄마’라 부르고 싶다.
첫댓글 선생님
배냇골 큰엄마 대단하신 분입니다.
연세도 많고 개 거두기가 만만찮을 건데 걱정이 드네요.
개 거두는 분이
건강해야 되는데 연세는 많고,
혹시 도움받는 단체는 있는가 모르겠습다.
잘 읽었습니다. 올해도 행복하게 공부하셨음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에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