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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연극 이야기하면 밤새는 줄 몰라요 |
최선희 객원기자 |
셰익스피어 극에 한국적 색채를 입히는 등 항상 새로운 시도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아 온 연극연출가 양정웅(극단 여행자 대표・41) 씨의 어머니는 극작가 김청조(63) 선생이다. 연극이라는 같은 길을 걸으며 친구처럼 지내는 모자를 경기도 양평의 한 시골 마을, 인가라고는 오직 김 선생이 머무는 집 한 채밖에 없는 산중에서 만났다. 각각 서울과 양평에서 생활하느라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모자의 만남은 마침 아들이 극단 식구들을 이끌고 대본 연습과 워크숍을 겸해 어머니의 집을 찾으면서 이루어졌다. 덕분에 평소 쓸쓸하던 집 안팎이 사람들로 북적였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배우들의 식사를 챙기는 김 선생은 몹시 분주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이었다. “대본 연습할 때 종종 어머니 집을 이용하는 편이에요. 외딴 집이라 주변에 방해될 만한 것들이 전혀 없어서 편하게 연습할 수 있거든요. 어제는 〈한여름밤의 꿈〉을 연습했는데, 근처에 무덤도 있어서 아주 맞춤이었어요. 배우들도 감정 몰입을 제대로 하더라고요(웃음).” 아들의 말에 어머니도 “정말 그런 것 같더라”며 맞장구를 쳤다. 연극 이야기만 나오면 밤을 새우기도 한다는 이 모자는 듣던 대로, 정말 죽이 잘 맞았다. 1990년대 초 극단을 만들어 어머니는 연출가로, 아들은 배우로 활동하면서 아파트 한 채를 날린 이야기를 하면서도 깔깔 웃었다.
그 뒤 아들은 배우에서 연출가가 되었고, 어머니는 연출가에서 극작가로 자리를 바꾸었다. 그 후로도 모자는 두 편의 작품에서 작가와 연출가로 호흡을 맞추었다. 천상병 시인의 삶을 다룬 〈소풍〉(2005년)과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의 이야기인 〈선동〉(2007년)에서였다. 함께 작업하는 동안 작가와 연출가 사이에 흔히 있는 팽팽한 자존심 대결 같은 것은 없었는지 묻자 아들의 답이 먼저 돌아왔다. “어머니는 대본을 마음대로 고칠 수 있게 해 주어 좋다”고. 다분히 장난기가 섞인 말이었지만, 어머니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젊은 연출가의 감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지, 아들이기 때문이어서는 아니다”라고. “첫 작품인 <소풍>을 할 때였는데, 제가 며칠 동안 힘들게 쓴 대본을 왕창 들어냈더라고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사흘 동안 말을 안 했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장에 가서 보니 훨씬 보기 좋은 거예요. ‘역시 젊은 연출가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사실 저는 이미지극이라는 개념을 아들의 작품을 보면서 제대로 이해하게 됐어요. 제가 했던 연극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참 재미있어요. 덕분에 저도 새로운 장르에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고, 요즘은 아들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요.” 아들의 새로운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직접 티켓을 구입해 관람한다는 그는 자신을 “극단 여행자의 마니아 팬”이라고 소개했다. 팬 카페에도 가입해 가끔은 다른 팬들과 단체관람을 하기도 한다는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아들 극단의 대표작인 〈한여름밤의 꿈〉과 최근작인 〈페르귄트〉를 꼽았다.
공연 끝낸 직후 낳은 아들이 스타 연출가로 성장
어머니의 칭찬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들은 “어머니가 쓴 대사들은 시적인데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 깊이와 연륜이 느껴져 좋다”며 연출가로서의 소감을 말했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를 넘어 어느덧 ‘예술적 동지’가 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성격도, 취향도 참 닮았다”며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전방위 예술가라는 점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고려대 독문과 출신인 김청조 선생은 대학 시절 연극에 빠져 당시 대학 연극의 메카로 불리던 고대 극회에서 손숙, 여운계 등과 함께 활동했다. 그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이자 드라마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환갑의 나이에 독립영화에 빠져 2007년에는 〈웅이 이야기〉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 선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들 양정웅은 지난 10년 동안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스타 연출가. 극단 여행자를 이끌며 절제된 언어와 시적인 이미지 전달에 주력해 ‘이미지극’이라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 〈한여름밤의 꿈〉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국내외 연극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세계적인 페스티벌에 잇달아 초청받으며 한국 연극의 위상을 높였다. 수상 경력도 화려해 이집트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 대상(2003년), 폴란드 그단스크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대상(2006년)을 받은 것을 비롯해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꿈의 무대’인 영국 바비칸센터에 진출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페인에 본거지를 둔 다국적 극단에 입단해 1년간 세계를 떠돌며 공연한 적이 있어요. 그 뒤 1년 동안 인도에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했죠. 그러던 어느 날 석양에 물든 히말라야를 보며 ‘모국어로 연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돌아와 만든 것이 극단 ‘여행자’예요. 여행자라는 이름은, 20세기 최고 연출가로 꼽히는 폴란드 연출가 그로토프스키가 ‘연극은 만남’이라고 한 말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어요. ‘연극은 삶이고, 삶은 곧 만남의 연속이자 여행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당시 그는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과 어울려 세계 각국의 무대에 서며 문화 교류와 충돌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문화에도 인간은 얼마나 보편적인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가 한국적인 코드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되, 인간의 보편성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그의 작품이 호응을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만삭의 몸으로 성당에서 연극 연출을 하다 공연이 끝난 직후 낳은 아들, 이제는 장성해 우리 연극계의 간판 연출가가 된 데 대한 대견함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집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간섭하지 않으면서 늘 든든하게 서로를 받쳐 준다’는 두 사람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김유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1930년대 활동한 영화감독인데, 천부적인 재능에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요. 서른셋에 요절하기까지 꽤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도 남아 있는 것이라곤 스틸 사진 몇 컷뿐이라 취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죠. 다행히 그 분 고향인 구미에서 김유영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 저희 계획도 탄력을 받고 있어요. 저희 둘 다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라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 : 김선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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