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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역전 시나리오
최병일 지음
랜덤하우스 / 2006년 10월
▣ 저자 최병일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한국 통상협상가로 한미 통신협상,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한-EU 협상, APEC 등 여러 국제무대를 누볐다. 1994년에 시작하여 1997년 2월에 타결된 WTO 기본통신협상에서는 한국 협상대표로 활동하면서 한국 통신서비스 시장의 개방과 국내 경쟁구도정착에 기여했다. 한국경제학계의 양대 산맥인 한국경제학회와 국제경제학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활발한 신문 기고, 방송 출연을 통해 복잡한 통상 문제를 알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는 명성을 얻었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의 기치 아래, 건전한 중도세력을 형성하는 데 공헌했다. 현재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로 재임 중이며, 협상을 연구하고 강의에 열정을 쏟고 있다. 또한 한미FTA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FTA 바로알기 운동을 주도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통상협상: 쌀에서부터 스크린쿼터까지』(모종린 공동편저), 『Korea and International Conflicts』 Volume 1, 2가 있다.
▣ Short Summary
미국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반미주의 자주론, 개방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논리를 앞세우는 회의론, 현 정권의 정치적 책략이라는 음모론, 협상 결과에 대한 비관론 등 한미 FTA 체결을 반대하는 여론의 주요한 기조는 심리적 거부와 반발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왜 ‘지금’, ‘미국’과 FTA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필자는 FTA는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 경제적 기회라고 주장한다. 한미 FTA는 국제무역과 투자로 성장한 우리나라가 다음 단계로 가는 수단의 하나다. 외국과의 협상 없이 우리만의 독단적인 개방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겠지만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크고, WTO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따라서 한국의 통상전략가라면 효과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저자는 2007년 3월까지 협정체결을 완료하겠다는 정부의 로드맵에 맞추어 협상을 진행할 경우 빠지게 될 함정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주도적으로 협상하고 미국을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치밀한 전략을 모색한다.
‘한미 FTA는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로 가는 길’이라는 식의 주장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우리에게도 해롭다. 마찬가지로 ‘한미 FTA가 국민소득 3만 불로 가는 길’이라는 장밋빛 공세 또한 본질을 흐리게 하며, 극단적인 주장은 한미 FTA에 대한 지적인 논쟁을 방해할 따름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한미 FTA를 바라보는 시선을 생계형 반대, 이념적 반대, 회의적 반대, 경계적 중립, 무관심, 비판적 지지, 전략적 지지, 생계형 지지의 8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협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팽팽하게 맞설 가능성이 높은 ‘뜨거운 감자’ 11가지 분야별 이슈를 다루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존스 액트 - 연안 운송서비스를 미국 원산지의 선박으로만 하라는 존스 액트에 대한 공략 포인트는 2가지다. 첫째는 상품 분야 자유화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내국민 대우를 철폐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연안 운송서비스를 양허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2. 무역 구제 - 악명 높은 미국의 무역구제 제도를 공략하기 위해 한국이 성취해야 할 세 가지 목표는 첫째 한국 제품에 내려진 무역 구제 조치 가운데 10년이 지난 조치는 협정 발효 즉시 폐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둘째, 한국 제품에 대한 반덤핑조치 발동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셋째, 반덤핑제도의 운영에서 미국행정부의 자의적 조치를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협정문에 포함하는 것이다.
3. 개성공단 - 미국과 FTA 체결을 성공적으로, 신속하게 이끌어내기 위해 개성공단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것은 대가만 높이고 수익을 낮추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4. 섬유 - 한미 FTA는 섬유시장 위기를 극복할 열쇠인 바, 미국이 고수하기를 원하는 원산지 규정을 공격하면서 더 많은 실익을 얻어낸다면 그것은 성공한 협상이다.
5. 전문직 인력이동 - 한국정부는 인력이동 관련 3가지 협상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전문직 서비스 자격 상호인정을 위한 작업반 구성, 둘째, 기업인의 이동 원활화, 셋째, 전문직 종사자의 대미 진출을 위한 별도의 전문직 비자쿼터 설정이다.
6. 쌀 - 미국이 끝까지 집요하게 미국 쌀의 쿼터를 더 늘려달라고 한다면, 한국은 쌀 관세화 카드를 꺼내야 한다. 그것이 한국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7. 쇠고기 - 쇠고기의 수입재개 문제는 한국정부가 쉽게 양보할 수 없는 분야이다. 쇠고기에 대한 관세철폐는 미국쇠고기의 한국시장 진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8. 의약품 - 미국 제약회사를 의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제도의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다.
9. 자동차 - 한국의 자동차 소비시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외면한 채, 느낌과 선입견에 의한 무분별한 통상 공세는 역효과만 낼 뿐이다.
10. 통신 - 미국처럼 방대한 국내시장도 없고 EU처럼 통합된 시장도 없는 한국이 그동안 쌓아올린 통신기술로 국민들을 먹여 살리려면 여전히 정부는 기술개발을 독려해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의 생존전략이다.
11. 투자 - 정부는 한국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가장 큰 투자자인 미국과의 FTA에 ‘투자자 대 국가 간 분쟁해결조치’ 혀용을 포함시켜 이들과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례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
1. 한미 FTA 막을 올리다
한국 국민들은 느닷없이 한미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와 맞닥뜨렸다. 국민들이 한미 FTA를 처음 들어본 것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 때다.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선거 유세 중 반미 바람을 일으키며 집권한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 추진은 돌출사건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1월 13일 한국정부는 광우병으로 수입을 금지해 오던 미국 쇠고기를 다시 수입하기로 발표했고, 1월 26일 스크린 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스크린 쿼터로 불의의 일격을 당한 영화계는 인기배우들을 앞세운 1인 시위를 시작하면서 한미 FTA 반대 투쟁에 나섰고, 덕분에 한미 FTA는 연일 9시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 뉴스가 되었다.
한미 FTA가 국민의 일상에 등장하는 과정이 느닷없는 느낌이었다면 동시에 그것은 난폭한 경험이었다. 스크린 쿼터 축소 선언으로부터 일주일, 2월 2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한미 FTA 공청회가 개최되었으나, 공청회는 반대단체들의 거센 항의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뉴스를 시청한 국민들은 고함과 아우성, 단상점거로 얼룩진 공청회의 모습과 함께 정부에서 미국과 FTA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된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워싱턴으로 날아가 미국 대표와 함께 미국의회에서 협상개시 발표를 했다. 양국의 통상협상 최고 책임자가 양국 수도에서 동시에 협상개시 선언을 하는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한국의 협상대표가 상대국인 미국에서 협상개시 선언을 한다는 것을 뭔가 어색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한미 FTA 협상은 한국이 미국에 끌려가는 협상’이라고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 요란한 반대와 침묵하는 찬성
왜 한미 FTA에는 거센 반대가 이어지는가? 이유는 3가지이다. 첫째, FTA 속성상 반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높은 수입관세와 외국인 투자 제한이라는 보호벽에 안주했던 경제 분야들이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 적극 대처하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과의 FTA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악의 제국으로 간주하고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를 미국 탓으로 돌리는 시민운동가들에게 한미 FTA는 한국을 합병하려는 미국의 야욕에 다름 아닌 것이다. 셋째, 정부의 미숙한 일처리가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2월 2일 한미 FTA 공청회가 반대단체들의 거센 항의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다음날 협상개시를 선언하였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적 정당성을 소홀히 여긴 정부는 한미 FTA에 관한 좋지 않은 첫인상을 국민들에게 남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요구에 끌려 다닌다는 굴욕협상, 미국의 협상시한에 짜 맞춘 졸속협상이라는 비난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범국본(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 4월 15일 대학로에서 대규모 반 FTA집회를 개최한 바로 그 다음 날인 4월 16일, 중도 보수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바른 FTA 본부(바른 FTA 실현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이들의 시위는 유감스럽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범국본과 바른 FTA본부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범국본에는 노동자, 농민 등 FTA로 피해를 입을 집단이 포진된 반면, 바른 FTA본부에는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집단이 빠져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가? 첫째, 한미 FTA의 가장 큰 효과인 효율성 증대가 개개인의 관심사와 멀기 때문이다. 정부는 FTA의 효과를 국민소득, 경상수지 등의 거시경제변수로 설명하려고 하지만 국민들은 이런 것보다는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 둘째, 한미 FTA로 혜택을 받을 사람은 정작 자신에게 그 혜택이 떨어질지를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FTA로 인해 피해(예: 내가 일자리를 잃는다)는 당장 발생하는데 비해, 혜택(예: 생산성 증대)은 발생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눈에 잘 띄지도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피해는 소수 집단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혜택은 광범위한 집단에 분산된다. 혜택을 볼 집단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대신 해 주겠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모두 이런 생각을 한다면 사회 전반에 큰 혜택에도 불구하고 개방에 찬성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마련이다.
셋째, 한미 FTA로 혜택을 볼 집단은 무임승차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개방은 정부가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공공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넷째, 이념적으로 당연히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하는 보수집단은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의도를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들은 한미 FTA는 반미장사로 재미를 본 현 정권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반미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음모라는 음모론의 공동 집필자들로서 좌파정권 창출의 이념적 동지였던 농민, 노동자, 영화인, 좌파 지식인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이 한미 FTA를 끝까지 밀어붙일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3. 한미 FTA를 바라보는 8가지 시선
한미 FTA의 찬반유형을 나누면 8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생계형 반대. FTA가 자신의 생계를 파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주로 농민, 노동자들에게 나타나는 유형이다. 둘째, 이념적 반대. 이념적 반대론자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를 온몸으로 거부한다. 이들은 “한미 FTA로 무수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농민은 농촌에서 밀려나서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회의적 반대. 개방의 긍정적 효과에는 동의하지만 한미 FTA를 추진하기에는 한국정부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하면 국내 개혁이 완성되지 않는 한 개방은 영원히 할 수 없는 ‘머나 먼 그대’다. 국민 총생산의 70%가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는 어울리지 않는 교과서적 주문이다. 넷째, 경계적 중립. 경계론은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에 정치적 동기가 숨어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참여정부가 협상을 추진하다 성공하면 그 공을 다 차지하고, 만약 삐걱거리면 잘못을 미국 측에 뒤집어씌우면서 2007년 말 대선을 다시 친미 대 반미로 끌고 가려는 노림수가 있다고 믿는다.
다섯째, 무관심. 이들은 한미 FTA가 무엇인지 모르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한국정치에 지친 이들은 “한미 FTA? 정치인들끼리 서로 정략적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난리겠지.”라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여섯째, 비판적 지지. 한미 FTA의 경우 그 상대가 한국보다 15배나 큰 시장을 지닌 미국이기 때문에 위협요인보다 기회가 더 많으며,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FTA 그 자체만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곱 번째, 전략적 지지. 전략적 지지론자에게 한미 FTA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사냥꾼이다. 이들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미국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패권국가로 떠오르는 중국,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러시아, 핵무장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이해득실이 얽힌 한반도에서 한국의 선택은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여덟 번째, 생계형 지지. 미국과의 무역, 투자, 관련 경제활동이 주요 생업인 생계형 지지자들은 한미 FTA를 그동안 누적되어 왔던 통상현안을 해소하는 좋은 기회로 간주한다.
4. 가열되는 논쟁
한국 정부가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중요한 것을 양보해 버려 협상할 것이 없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쇠고기 수입재개, 스크린 쿼터 축소, 의약품의 이른바 4대 선결조건 시비이다. 진실은 무엇인가? 미국은 한국 이외에 다른 국가들과도 FTA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면 굳이 한국과 협상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 한국으로서는 가능한 미국의 요구를 최소한 줄이고, 동시에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의 입지를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색해야 했고 그래서 나온 것이 4대 선결조건인 것이다. 사전협상 단계에서 협상을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서로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련의 조치를 굴욕적인 양보라고 이야기해 버리면 곤란하다.
4대 선결조건이 한국의 국익을 침해했는지를 따져보자. 첫째, 자동차 배출기준 완화. 한국이 미국에 해준 것은 유예기간을 2년 연장해준 것이다. 한국의 미국 자동차 수출 대 수입의 비중이 92 대 1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 둘째, 쇠고기 수입재개. 한국은 국제기준에 따라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미 홍콩, 일본은 한국에 앞서 수입을 재개했고 싱가포르, 대만, 중국까지 수입재개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끝까지 빗장을 잠그고 있을 명분이 없다. 셋째, 의약품. 만약 한국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왜 FTA 협상에서 의약품 작업반이 구성되었는지를, 4대 선결조건을 비판의 명분으로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설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크린 쿼터. 김대중 정부에서 축소하지 못한 스크린 쿼터를 왜 현 정권에서는 축소하려고 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영화의 비약적인 성장이다. 상영관의 2/3를 한국영화가 차지하고,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료를 갖고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왜 모든 한국영화들이 스크린 쿼터로 보호되어야 하는지 의아해 한다. 그리고 정부가 풀어야 했던 문제는 “스크린 쿼터를 반으로 줄일까?”가 아니라 “스크린 쿼터를 반으로 줄이고 FTA 협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축소를 거부하여 협상의 기회를 날려버릴 것인가?”였다. 이는 정부의 전략적 판단의 몫이다.
미국과 한국이 추진하는 FTA 협상은 TPA(Trade Promotion Authority)라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TPA는 외국과의 통상협정에 관한 미국행정부와 의회 간의 절차규정으로 협상개시 전, 협상진행 도중, 협상타결 이후 행정부가 의회에 보고하고 협의해야 할 사항을 정해두고 있다. TPA 절차에 따라 추진된 협상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협정체결 95일 이전에 의회에 협정체결의사를 통보해야 하는데, 이 경우 의회는 찬반 표결만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의회에 협정체결의사를 통보한다는 것은 협상은 이미 타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국 행정부는 한국과 FTA 체결의사가 있음을 언제까지 통보해야 하는가? 이 시점이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 협상시한이 된다. 그 시한은 TPA가 만료되는 2007년 6월 30일에서 90일 앞선 2007년 3월 31일이다.
이 시한을 놓치면 어떻게 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TPA를 연장하지 않는 한, 한국과의 FTA는 이 시한을 넘겨 추진되더라도 일반 법안과 같이 취급되어 의회에서의 수정, 변경 절차를 피할 수 없다. 2007년 4월 1일 이후에도 한미 FTA 협상은 가능하지만 미국의회에서의 처리과정은 예측을 불허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강력하게 한국의 수입전면재개를 희망하는 쇠고기, 한국의 조세제도를 바꾸기를 요구하는 자동차는 한국이 절대 조건 없이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만약 한미 FTA가 미국의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쇠고기, 자동차 관세철폐만을 합의하고 끝낸다면 미국의 쇠고기 및 자동차 생산지역의 의원들이 협정체결을 저지할 것이다. FTA 시한을 넘겨 체결된 한미 FTA는 협정폐기를 요구하는 의원들의 공세에 휘말려 재협상 요구가 빗발치고, 최악의 경우 협정체결이 미국의회에서 거부당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의 반덤핑제도 완화, 섬유 의류 원산지 개정, 전문직 비자확보 등 한미 FTA 협상에서 한국이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모든 쟁점들이 정말로 어려워진다. 따라서 TPA 시한까지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한국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 확률이 높다. TPA 시한에 맞추는 협상은 끌려가는 협상이 아니라 끌고 가는 협상이다. 미국의 국내절차가 규정한 시한에 한국이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한 득실을 가름해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굴욕협상이라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경솔한지를 알 수 있지 않는가.
5. FTA 효과를 둘러싼 5가지 의문
정부는 한미 FTA가 되면 경제성장률이 7.75%가 된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여기서 정부 보고서는 제조업은 완전개방, 농업은 80% 개방, 서비스는 20% 개방이라는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관세인하 효과는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지만 서비스 개방의 효과는 계량 분석이 어려운 과제다. 이러한 경제예측 모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미 FTA의 효과를 거시경제 변수로만 설명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접근은 자료 조작시비와 졸속협상시비를 불러 일으켰는데, 정부의 조급증과 정부연구기관의 경제학자들과 관료간의 의사소통 부족이 빚어낸 사태다.
반대론자들은 한미 FTA를 대량 실업을 몰고 올 재앙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시장이 이미 개방되어 있지 않은 많은 품목에서 경쟁이 치열하며, FTA가 모든 품목에 즉각적인 시장개방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고, 한국이 여러 나라와 동시다발적인 FTA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 농산물과 상품은 미국 것으로 대체된다는 주장은 개방의 피해를 과장했을 가능성이 높고, 농민과 노동자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주장 역시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또한 반대론자들은 한미 FTA는 한국을 투기자본의 천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투기자본이 이익만 챙기고 빠져나가는 데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가 이를 도와줄 것이라는 명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투기자본이 엄청난 이익을 남기는 것은 아니며 투자자-정부 소송제도는 투자국 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이나 일방적인 수용 등으로 투자이익이 침해되었을 때 그 분쟁을 객관적으로 중재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지 투자자 본인의 경영실패나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투자손실을 보전하는 장치가 아니다. 투기자본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면 그들에 맞서는 국내 경제 집단의 힘을 키우고 정책당국의 제대로 된 감시감독이 필요하다. FTA 자체는 투기자본을 보호하지도 억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FTA의 이익은 미국에만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11.9%인 관세를 철폐해야 하고 미국은 4.9%만 없애면 되니까 한국이 불리하다고 한다. 이것은 유치원 뺄셈에 불과하다. 한국과 미국의 시장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관세철폐로 발생하는 이익 = 관세 인하 폭 × 시장크기’라는 곱셈을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 때문에 거대 경제국과 소규모 경제국가와의 시장개방은 소규모 국가에게 더 유리하다고 주류 경제학은 가르치는 것이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편에서는 지금의 경쟁력으로는 미국과 경쟁이 안 되니까 경쟁력을 키운 다음에나 개방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는 경제학의 비교우위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생명공학 산업은 미국 생명공학 산업과 경쟁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철강, 조선 산업과도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이 국가적 역량을 경주하여 미국 생명공학 산업의 경쟁력을 따라잡더라도, 당장 한국 생명공학 산업의 미국 수출이 증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철강, 조선 산업의 경쟁력이 생명공학 산업의 경쟁력보다 훨씬 크다면, 여전히 한국은 철강과 선박을 미국에 수출하고 생명공학을 수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FTA는 경쟁력이 아니라 비교우위에 따라 무역의 형태를 결정할 뿐이다.
6. NAFTA 멕시코와 KORUS FTA 한국의 미래
2006년 여름 한국은 때 아닌 NAFTA 논쟁에 빠져들었다. “NAFTA 때문에 멕시코 중산층이 붕괴되었고 양극화는 심화되었다.”라고 시민단체가 주장하면, 정부는 “NAFTA 덕분에 멕시코의 외국인 투자가 증가했고, 수출도 증대했다.”고 되받아친다. 이들은 서로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사실 1994년 NAFTA를 추진한 멕시코와 2006년 한미 FTA를 추진하는 한국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당시 멕시코의 수출과 투자 전략은 한국의 1970년대 초 조립가공 수출 위주와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개발 투자와 중화학 공업화로 조선, 철강, 전자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멕시코는 인구의 25%가 절대 빈곤층인 반면, 한국은 개도국에서 소득분배가 가장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개방의 역사도 다르다. 멕시코는 폐쇄경제를 지향하다가 아무런 대책 없이 NAFTA를 추진했지만 한국은 무역정책의 큰 틀에서 단계적으로 개방을 추진하면서 대비책을 마련해 왔다. 멕시코와 한국의 인프라 격차만 보아도 NAFTA 이후 멕시코의 현실에서 한미 FTA가 가져다 줄 한국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7. 한미 FTA 협상의 밑그림
한미 FTA 협상구도는 경제전반에 걸쳐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하는 FTA이다. 협상의 첫 단계인 의제설정(Agenda setting)에서는 큰 쟁점이 없었으나 2가지는 주목할 만하다. 첫째, 농업과 섬유를 각각 별도의 분과(Negotiating group)로 구성하기로 했고, 둘째, 상품 분과 아래 자동차와 의약품을 따로 협상하는 작업반(Working group)을 두기로 한 것이다. 농업과 섬유를 분리시킨 것은 양국이 농업보조금, 섬유 원산지 기준 등을 집중 논의하기 위해 별도의 분과를 만든 것이다. 자동차, 의약 분야 작업반 설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시선도 있다. 왜 미국의 요구는 들어주면서 한국이 요구하는 분야는 반영되지 않았냐고. 뭘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한국이 강력히 주장하는 미국의 무역구제조치의 불합리성은 ‘무역구제’ 분과에서, 개성공단 원산지는 ‘원산지’ 분과에서, ‘전문직 인력이동’은 서비스 분과에서 협상한다. “미국이 부르는 대로 받아쓴 예비협상”이라는 비상식적인 폄하는 이제 그만두자.
FTA 협상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주요 협상분야별 협정문 초안이 필요하다. 초안이 작성, 교환되면 1차 협상부터 양국은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할 수 있다. 한국 측 초안은 5월 11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확정되었다. 말 그대로 초안이기 때문에 협상과정에서 수정 제안이 가능하다. 한국의 협정문 초안은 전부 22개의 장(Chapter)로 되어 있으며, 상품무역 관련 6개(상품에 대한 내국민 대우와 시장접근, 원산지, 통관절차, 무역구제, 위생검역, 기술 장벽), 서비스 투자 관련 6개(투자, 국경 간 서비스 무역, 일시입국, 금융서비스, 통신, 전자상거래), 기타분야 5개(경쟁,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일반사항 관련 5개(정의, 투명성, 분쟁해결, 예외, 최종조항)로 구성되어 있다.
상품 분야에서 한미 FTA는 관세를 철폐하여, 양국에서 생산된 농수산물과 공산품에 합의된 특혜관세를 적용하려는 협상이다. 그러나 관세철폐만으로는 상품 협상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협상취지를 살리려면 무엇이 한국산이고 미국산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업계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일본 자동차들이 한미 FTA 때문에 미국산으로 둔갑하여 관세혜택을 보지 않을까 긴장한다. 이런 고민을 다루는 분야가 ‘원산지(Rules of origin)’ 협상이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 역시 여기서 협상된다. FTA의 효과를 높이자면 세관에서의 통관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워도 곤란하다. 통관절차는 이러한 문제를 다룬다. 농수산물은 위생검역을 통과해야 수입된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준과는 거리가 먼 위생검역제도를 자의적으로 운영한다면 외국산의 수입을 저지하려는 의도로 오해받을 수 있다. 공산품에서는 기술표준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두 분야 모두 국내기준과 국제기준과의 괴리, 위생과 건강(농수산물), 기술적 이유(공산품)를 명분으로 내세운 외국산 차별 여부 등이 협상대상이다.
WTO GATS(General agreement on trade in services)에 따르면 서비스의 국가 간 거래의 유형에는 4가지(①국경 간 공급, ②해외소비, ③상업적 주재, ④인력이동)가 있다. 통상협상에서 서비스 분야 개방 협상이란 각 서비스 분야를 놓고 이 4가지 서비스 거래 유형에 대한 개방 문제를 협상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그간의 FTA협상에서 개방하지 않은 서비스 분야를 일일이 유보목록(Reservation list)에 명기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다. 이러한 협상방식은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이라고 불린다. 교육서비스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만약 한국이 교육서비스 가운데 어떤 분야도 개방할 생각이 없으면 전체를 개방유보 목록에 올려야 한다. 하지만 대학교육 서비스만을 전면 개방(4가지 공급유형 모두 개방)할 생각이 있으면 대학교육을 제외한 나머지 교육서비스(취학 전 아동 교육, 초중고 교육, 성인교육 등)를 개방유보 목록에 올리면 된다. 만약 대학교육 가운데 해외소비(유학, 연수)만 허용하고 국경 간 공급(인터넷 강의), 상업적 주재(미국 대학이 한국에 와서 대학 설립), 인력이동(미국 교수가 한국에서 강의)은 개방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대학교육의 해외소비를 제외한 모든 형태의 교육서비스가 한국정부의 유보목록에 올라가야 한다.
서비스 분야의 개방협상에서는 개방의 분야뿐 아니라 규범을 정하는 협상도 동시에 진행된다. 국경 간 공급과 투자 자유화의 핵심원칙은 협정상대국의 서비스 공급자와 투자자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차별에는 내국인과의 차별, 제3국 공급자와의 차별이 있는데 전자는 내국민 대우(National treatment), 후자는 최혜국 대우(Most-favored nation)로 차별적 대우를 극복하게 된다. 이 2가지 원칙에 예외가 있는 서비스나 투자목록은 유보목록에 등재되어야 한다. 서비스의 의미 있는 개방은 상업적 주재와 인력이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투자가 들어오고 법인이 설립되고 외국인이 국내에 상주하는 서비스 개방은, 상품개방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규제와 규제권한을 가진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그 권한을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상실의 시대를 의미한다.
8. 한국의 협상원칙
한국정부의 한미 FTA 협상전략에서 지킬 부분은 쌀, 공공의료제도, 수도, 전기, 가스 등의 공공서비스 체제이고 전략적 개방은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교육, 의료, 법률서비스 등의 개방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미국의 협상은 철저히 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미국은 입으로는 자유무역을 외치지만 자국의 경쟁력이 강한 분야는 상대의 개방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경쟁력이 취약한 부분은 보호하려고 든다. 미국 농업계에게 한국은 놓칠 수 없는 황금어장이기 때문에 미국은 농산물의 전면 개방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대신 서비스 시장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은 규제의 투명성이나 예측 가능성이지 새로운 개방은 아니다. 때문에 서비스를 주고 농업을 지킨다는 한국 측의 전략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준 만큼 받아내야 한다'는 국민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해답은 분명하다. 상대에게 요구할 것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덤핑제도, 섬유제품에 대한 높은 관세, 협소한 원산지 규정, 개성공단, 전문직 비자 등은 한국이 협상에서 반드시 받아낼 수 있는 의제들이다. 개방대책도 협상과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들이 개방의 파고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안전망 정비, 투기자본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국내 규제제도의 정비, 개방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각종 규제의 개혁 등이 필요하다. FTA 협상은 철저하게 상대국가와의 쌍무적인 정치, 경제적인 계산에 따라 주고받는 구도다. 협상에서 상대국이 '선례가 없다'고 하면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협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국은 미국에게 개성공단의 원산지, 반덤핑법, 섬유 원산지, 전문직 비자 등에서 '지금까지 예외적인 상황에서 딱 한번 해준 것'이라는 방어에 직면할 것이지만 이러한 미국의 전술에 주눅들 이유가 없는 것은 그것이 FTA 협상이기 때문이다.
분야별 협상쟁점을 살펴보자. 첫째, 농업. 미국은 최장 10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는 양허안을 제시했는데 초민감 품목에는 쌀, 쇠고기 등 15개 품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목표는 개방의 충격 최소화다. 이를 위해 15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친 관세 철폐, 관세율 쿼터, 세이프가드 등의 방안을 구상할 수 있다. 관세율 쿼터는 쿼터를 정하여 쿼터 범위 내에서는 낮은 관세로 수입하고 범위를 넘어서는 물량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물리는 방안이다. 세이프가드는 수입품이 급격히 증대하여 국내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때 관세를 인상하거나 수입물량을 한정하여 피해를 막으려는 조치이다. 둘째, 제조업. 제조업 분야에서 양국은 모든 공산품의 관세를 전부 또는 즉시 철폐하는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반덤핑제도의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다. 아무리 관세가 사라진다 해도 미국의 불투명하고 자의적인 반덤핑제도를 그대로 두는 한, 관세철폐의 혜택은 상쇄되기 때문이다.
셋째, 서비스. WTO에서 개방약속을 한 것보다 더 개방할 분야를 협상하는 것이 한미 FTA 서비스 분야의 협상과제다. 우리 정부는 이번 협상을 낙후된 서비스 분야를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전략적인 기회로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은 1차 협상에서 '비영리체제로 운영되는 한국의 교육, 의료시장에는 관심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넷째, 투자.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이 체결한 FTA의 투자조항은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양국이 1998년부터 BIT(투자협정: Bilateral investment treaty) 협상을 해왔고, 스크린쿼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타결되지는 못했으나 규범조항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접근을 보았기 때문이다.
9. 11개의 뜨거운 쟁점
한미 FTA 협상에는 이미 노출된 많은 쟁점들이 있다. 이 가운데는 협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팽팽하게 한국과 미국이 맞설 가능성이 높은 뜨거운 감자들이 있다. 유능한 협상가는 뜨거운 감자를 다루는 방법(①뜨거운 감자는 식혀라, ②뜨거운 감자는 잘게 쪼개라, ③뜨거운 감자를 받을 수 있는 장갑을 준비하라, ④뜨거운 감자를 따뜻한 고구마로 바꾸어라, ⑤뜨거운 감자는 버려라)들을 능수능란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FTA 협상에는 11개의 뜨거운 감자들이 있는데 한국 측 요구사항으로 존스 액트, 무역구제, 개성공단 원산지, 섬유, 전문직 인력이동, 투자가 있고 미국 측 요구사항으로 쌀, 쇠고기, 의약품, 자동차, 통신, 투자 등이 있다.
존스 액트
존스 액트는 '미국 연안의 승객과 화물 수송은 미국 국적 선박과 미국제 선박으로 제한한다'는 미국해상법 27조이다. 이 법에 따르면 한국선박이 미국으로 수출되어도 미국 연안의 승객이나 화물 수송으로는 사용될 수 없다. 국제통상의 관점에서 보면 존스 액트는 명백한 내국민 대우 위반이다. 그동안 미국은 모든 FTA에서 존스 액트를 상품분야 내국민 대우의 예외로 인정받아 왔다. 지금까지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 중에 선박산업이 발달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연안 수송의 그 방대한 범위를 생각하면 세계 최대의 조선강국 한국이 그대로 지나간다는 것은 곤란하다. 국제화물 운송비도 비싸게 들고 배달시간도 길게 만드는 존스 액트는 미국소비자에게도 유해하다. 한국은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존스 액트는 한국선박의 미국시장 접근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소비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그 법을 폐기하라.” 존스 액트의 공략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는 내국민 대우를 철폐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연안운송서비스를 양허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 선박업계는 강력한 로비로 정치권을 압박해 존스 액트는 절대 손대지 못하게 만들었다. 쌀이 한국의 마지노선이라면 존스 액트는 미국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존스 액트는 한국에게 좋은 협상카드다.
무역구제
외국제품의 수입이 증대하여 국내 산업의 매출이 감소하는 등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의 원인을 가려서 정부가 외국제품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를 무역구제라고 부른다. 미국의 무역구제법은 경제논리를 무시한 지나친 보호주의적 성향 때문에 악명이 높으며 미국기업들은 이를 악용하여 제소를 남발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의 무역구제조치의 개선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협상의제 가운데 하나다. 만약 미국의 주장대로 '반덤핑제도는 협정 당사국이 각국의 반덤핑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식으로 합의한다면 그것은 한미 FTA의 무덤이다. WTO보다 더 시장을 개방하자는 FTA에서 WTO의 반덤핑협정보다 더 보호주의적인 미국의 반덤핑제도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협상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그렇다면 무역구제 분야에서 한국이 성취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가. 첫째, 한국제품에 내려진 무역 구제조치 가운데 10년이 지난 조치는 협정발효 즉시 폐기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둘째, 한국제품에 대한 반덤핑조치 발동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 반덤핑제도의 운영에서 미국 행정부의 자의적 조치를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방안들이 협정문에 포함되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한미 FTA 체결 이후 상대국 시장에 수출되는 공산품에 대해서는 반덤핑조치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의회에 한미 FTA를 비준 거부하라는 주문과 마찬가지다. 문제점은 무역구제법이 남용되고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목표는 그동안 드러났던 구체적인 문제점을 시정하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개성공단
한국정부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정상교역국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외가공 방식이라는 묘안이 있다. 이것은 FTA 체약국이 아닌 제 3국에서 가공되거나 생산된 제품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협정체약국의 원산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체결한 FTA에서 요르단 강 서안지구(요르단 영토) 이스라엘 공단 생산 제품을 이스라엘로 가져갔다가 수출할 때 이스라엘 산으로 인정해준 선례가 있다. 하지만 미국은 냉담하다. 요르단과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문제의 본질은 통상 문제가 아니라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관한 미국과 한국의 이견조정에 관한 문제이다. 미국의회가 기를 쓰고 반대하는 개성공단이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반대급부가 너무 많다면 한국은 미국과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는 미래를 기약하는 전략적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섬유
섬유분야의 협상쟁점은 관세, 원산지, 세이프가드 3가지다. 한국은 섬유 분야의 높은 관세 조기 철폐, 미국의 얀 포워드 기준 완화, 섬유 세이프가드 저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어 하지만, 미국은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국의 협상무기는 미국의 얀 포워드를 공격하는 것이다. 한국의 섬유업계가 업종에 따라 얀 포워드에 대한 생각이 제각기 다른 것은 한국에 유효한 협상무기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강력하게 얀 포워드를 폐지하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얀 포워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미국에서 최대한 받아낼 수 있는 것을 파악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 참고: 얀 포워드(Yarn Forward)
의류의 제작과정은 '섬유-원사(얀)-방직-재단-봉제-날염'의 과정을 거친다. 얀 포워드는 수입되는 섬유제품의 국적을 가릴 때 그 제품에 사용된 원사의 생산국으로 규정하는 원산지 식별법이다. 미국의 얀 포워드 규정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FTA가 체결된다면 미국의 섬유관세가 인하되더라도 한국이나 미국의 원사를 쓰지 않는 한국기업에게 그 관세혜택은 그림의 떡이 된다.
전문직 인력이동
한미 FTA 협상에서 한국정부는 ①전문직 서비스 자격 상호인정, ②기업인의 이동 원활화, ③전문직 종사자의 대미 진출을 위한 별도의 전문직 비자쿼터 설정이라는 인력이동 관련 3가지 협상 목표를 설정하고 있지만, 미국 측은 전문직 비자쿼터가 의회의 소관사항이므로 협상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 대해 이렇게 따져야 한다. "미국의회는 미국 아니냐? 미국의회로부터 협상지침을 받아서 나오든지 이 사안을 협상할 수 있는 의회관계자를 이곳으로 나오라고 하라." 연간 1만 5천명의 비자를 만들어낸 호주도 미국의회와 협상을 벌였다. 싱가포르와 칠레가 이미 찾아 먹었고, 호주도 새로운 떡을 맞추어간 판국에 미국 FTA 협상 역사상 최대의 협상이라는 한국과의 협상에서 미국협상단이 의회 탓을 하고 있다면 왜 협상장에 나왔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또한 전문 인력 부족 현상을 호소하는 미국 업계의 목소리를 이용해야 한다. 미국의 인력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양질의 기술 전문직을 갖춘 한국이 바로 미국과 FTA 협상을 하고 있음을 상기시켜라.
쌀
일부에서는 한미 FTA협상에서 쌀을 관세철폐 대상으로 올리는 것 자체가 WTO 협정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쌀을 지켜냈다고 생색내기 위해서다. 어차피 미국은 국제법적으로 한국에게 쌀 시장을 개방하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한국은 WTO 쌀 협상에서 2014년까지 관세화 유예를 받았지만 도중에 언제든지 관세화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받았다. 또한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이미 WTO협상에서 한국이 합의한 MMA(WTO 쌀 협상에서 배정한 국가별 쿼터) 가운데서 자국 몫을 늘려달라는 게 아니라, MMA는 그대로 두고 별도로 자국 몫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쌀을 관세화한다면 MMA 쿼터는 사라지는데 미국이 이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쌀과 경쟁을 해야 하는 미국이 그나마 얻어낸 쿼터를 FTA협상에서 없애버리고 쌀의 높은 관세를 수용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지는 회의적이다. 협상에서 미국이 계속 쌀을 양허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렇게 원한다면 쌀을 관세화하자. 대신 모든 쿼터는 즉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아마도 미국 측은 당황할 것이다.
#. 참고: MMA(최소시장접근; Minimum market access)
수입금지됐던 상품의 시장을 개방할때 일정기간동안 최소한의 개방폭을 규정한 것을 말한다. 쌀 등 농산물의 시장개방을 하면서 국내시장의 충격완화를 위해 전면적으로 개방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수입해야 한다는 개방정도의 하향폭을 말한다.
쇠고기
2003년 12월 광우병 발견이후 한국은 미국쇠고기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후 미국은 철옹성같이 닫혀 있던 한국 쇠고기 시장을 뚫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다. 통상법의 무역보복조항, GATT 조항, 다른 쇠고기 수출국과의 공동보조 등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한미 FTA 협상에서도 쇠고기 분야는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광우병 의혹에도 불구하고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라는 요구를 한국정부가 수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쇠고기가 수입되어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한편 현재 40%인 쇠고기의 관세가 미국산에만 철폐된다면 미국 쇠고기 가격이 29% 정도 저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철폐로 그동안 수입이 제한되어 온 미국산 최고급 냉장육이 수입된다면 쇠고기 시장의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에 한국정부가 구사할 수 있는 협상전략으로는 관세양허대상에서 제외, 관세할당, 10년 이상의 관세철폐기간확보, 세이프가드 등이 있다.
의약품
미국은 한국이 국내산업보호를 위해 외국 신약의 가격은 누르고 복제약에 대해서는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2006년 5월 보건복지부가 약값안정화 방안으로 제기한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등재된 약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협상동결의 원칙(통상협상 도중에는 협상의제가 되는 무역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저버렸다는 것이 미국의 불만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이다. '포지티브 방식을 빌미로 협상을 깨고 싶으면 깨도 좋다'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미국은 들끓고 있는 한국의 반 FTA 정서를 고려할 때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 자체를 계속 반대하지는 못하고, 명분은 한국에게 주고 실리를 살리는 방식을 모색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미국 제약회사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도의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다. 갈등이 커지기 전에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장치,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제기하고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데 대해 양국의 협상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자동차
한국자동차가 제2의 일본이 되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는 미국과 일본의 비약적인 성장의 궤도를 따라가는 한국이 자동차 문제로 충돌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자동차는 한미 간의 오래된 통상 분쟁 대상이다. 1995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친 한미 자동차 협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자동차의 한국수출은 별로 증대되지 않았고, 미국의회와 자동차 업계는 한국시장의 폐쇄성을 공격해왔다. 미국은 한국의 높은 승용차 관세, 차별적이고 복잡한 세제, 국제기준과 동떨어진 환경기준과 인증, 외제차에 대한 소비자의 반감을 지적하고 있지만, 관세철폐 이외의 다른 합의를 FTA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통신
통신 분야에는 2가지 중요 쟁점이 있다. 기술 중립성 문제와 기간통신사업자 49% 지분제한 완화이다. 기술 중립성 문제에서 미국은 통신사업자들에게 기술표준 선택의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명분으로 한국정부의 개입을 원천 봉쇄하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통신망간의 호환성을 확보하고 유한한 전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표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지만 정부-국책연구기관-기업의 R&D 시스템은 한국이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중요한 국가전략이다. 미국처럼 방대한 국내시장도 없고 EU처럼 통합된 시장도 없는 한국이 통신기술로 국민들을 먹여 살리려면 여전히 정부는 기술개발을 독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기간통신사업자 지분제한 문제에서 정부는 외국인 지분 제한 49%를 고수하고 싶어 한다.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 위협, 경영권 방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러나 한국 통신사업자의 미래는 포화상태에 달한 국내시장을 지키는 것에 있지 않다. 개도국 시장과 콘텐츠사업에 진출해야 하고, 남북한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49% 외자 지분 제한만으로 이런 목적을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정통부가 해법을 모색하는 동안 한국은 미국을 몰아세워야 한다. 미국은 한국의 통신 기업이 미국에서 투자하는데 아무 제한이 없다고 하지만 그 방식은 미국의 공익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한국의 협상목표는 미국의 공익성 심사가 필요이상으로 과도하지 않도록 확답을 받아내는 것이다.
투자
한국정부는 투자조항 협상에서 미국이 확보하려고 하는 부분인 '투자자 대 정부 분쟁해결절차'를 협상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 전략은 한국이 반드시 얻어내야 할 무역구제제도 개선,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 등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이 지금까지 모든 FTA와 양자투자협정에서 투자자 대 정부분쟁해결 절차를 자신 있게 포함시켰던 이면에는 실제로 상대국 투자자가 이 조항을 사용할 가능성을 높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미국이다. 한미 FTA를 적극 지지하는 NAM (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 전미제조업협회)으로서는 이 조항이 빠진다면 아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다. NAM은 미국의 전문직 인력 부족으로 외국 인력을 더 받아들이라고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NAM에게 투자자 대 정부제소권을 흔들면서 의회가 버티고 있는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 지원사격을 요청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 아닐까.
10. 한미 FTA의 남은 과제, 국내 협상
FTA를 추진하는 전략은 협상구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양국정부가 사전 조율을 거쳐 협상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협상의제를 두고 밀고 당기는 과정이다.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 사람들은 협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대표단 간의 협상이 합의문 작성으로 막을 내리면 공은 이제 양국의 정치로 넘어간다. 외국정부와 체결한 국제협정은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 FTA 협상은 두 번째 단계의 중반에 접근하고 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길고 험하다. 협상은 그 앞을 버티고 있는 협상중단, 타결 실패, 비준 실패라는 이름의 봉우리들을 넘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국제협상가는 상대국과 협상을 하는 동시에 국내 이해당사자들과도 협상을 한다. 국내 이해당사자들은 협상결과에 영향을 받는 농민, 노동자, 노조, 변호사, 공장 소유주, 개성공단 투자자, 생산자, 소비자, 그리고 협상이 타결되면 이를 집행해야 하는 공무원, 비준결정을 해야 하는 정치인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협상가들이 모든 이해당사자들과 직접 협상을 하지는 않지만 공청회, 토론회, 여론조사, 간담회, 국회상임위, 특위, 언론 등의 매체를 통해 이들의 의견을 듣고 어떻게 협상의제에 반영할 지 고심한다. 미국과의 협상에 나가기 전에 한국정부는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청취하고 여러 단계의 정부 관계자 회의를 열어서 한국대표단의 협상범위, 협상전략 등을 논의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내부협상을 통해 정해진 협상범위 바깥으로 협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과 한국대표단과의 국제협상보다는 내부협상이 더 중요하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2007년 초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국회비준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두 가지는 예측 가능하다.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권 때문에 비준이 멀고도 험한 길이 될 것이라는 것과 그렇다면 왜 FTA를 체결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피해 집단에 대한 과도한 보상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지금의 집권당은 2007년 대선에서 재집권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08년 자신들의 선거는 더 오리무중이다. 여당이 당론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비준 안을 지지할지는 의문이다. 협상결과는 나와 있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생산자들, 눈앞의 표만을 위해 현실성이 없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 지망생들. 아마 진짜 협상은 그때부터인지도 모른다. 아직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다. 멀고도 먼 FTA 협상이다.
첫댓글 언젠가 한번쯤의 현실적인 문제니 봐야할듯 하내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