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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08 03:30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
▲ 기축통화는 국제 거래를 할 때 결제의 기준이 되는 화폐예요. /오종찬 기자
Q. 미국은 국제 거래에서 적자가 지속돼도, 흑자가 지속돼도 세계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왜 그런 건가요?
A. 우선 기축통화(세계의 기준 축이 되는 화폐)에 대해 알아볼게요. 기축통화는 국제 거래를 할 때 결제의 중심이 되는 화폐예요. 미국의 달러화(貨)와 영국의 파운드화, 유럽에서 쓰는 유로화 등이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달러가 가장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한때 국제 거래를 할 때 금과 함께 달러만을 사용하도록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각국 정상은 미국의 브레턴우즈에 모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 체제(국제통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합니다. 여러 나라의 화폐가 제각각이기에 교역할 때 각 나라 화폐의 교환 비율을 얼마로 해야 할지 정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국제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 되는 화폐를 달러로 정합니다. 이를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해요.
당시 미국은 언제든 35달러를 가지고 오면 금 1온스(약 28.35g)와 바꿔주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합니다. 이 체제는 전 세계의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을 만큼 미국에 금이 보관돼 있다는 걸 전제로 한 거예요.
그런데 이 전제는 지켜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한동안 무역할 때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았어요.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된 거지요. 이렇게 되면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본 나라로 달러가 많이 흘러가게 됩니다. 미국이 보유한 금의 양은 한정돼 있는데, 외국에서 보유한 달러가 금의 가치보다 더 많아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달러를 많이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 과연 금으로 달러를 바꿔줄 여력이 있는지 불안해질 거예요. 한꺼번에 여러 나라에서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면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죠. 달러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럼 미국이 흑자를 유지하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외국으로 흘러가는 달러의 양이 줄어듭니다. 교역을 달러로 해야 하는데, 달러가 부족해지면 무역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면 세계 경제가 위축되겠죠.
결국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가 적자여도 문제고, 흑자여도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달러의 신뢰도와 국제 유동성 확보는 한꺼번에 잡기 힘든데요. 이런 기축통화국의 구조적인 모순을 두고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고 합니다. 미국 예일대 로버트 트리핀 교수가 문제를 처음 지적하며 붙은 이름이에요.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며 1960년부터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내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유럽 국가들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미국에 요구했고, 미국은 그 모든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었어요. 결국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것을 더 이상 못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달러는 국제 거래를 할 때 가장 많이 쓰이며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런 이유로 지금도 국제 거래에서 미국의 흑자 폭이 크면 세계 경제가 위축될 수 있고, 반대의 경우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는 문제가 있는 거랍니다.
김나영 양정중 사회과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