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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7.17 03:30
우리 전통 춤의 현대화
▲ 오는 20~22일 우리나라 춤 장르 최초로 미국 뉴욕 링컨 센터에서 공연되는 ‘일무’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우리나라 전통 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보통은 한복을 입고 느릿한 장단에 맞춰 움직이는 장면이 떠오를 텐데요. 최근 몇 년간 우리 전통 춤과 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창작한 공연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일무'(5월 25~28일)와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산조'(6월 23~25일)를 꼽을 수 있어요. '일무'는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우리나라 춤 장르 최초로 세계적 명성의 공연장 미국 뉴욕 링컨 센터 무대에도 올라 큰 화제지요. 이처럼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 춤의 변신에 대해 알아봐요.
제사 때 줄 서서 추던 춤 '일무'
먼저 공연 제목 '일무(佾舞)'에서 일(佾)은 '춤을 추기 위해 벌려서 선 줄'이라는 뜻입니다. 왕가의 신주를 모신 왕실의 사당 종묘와 공자의 사당 문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그리고 조선 시대 설날과 동지에 임금과 관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누던 큰 잔치 회례연 때 여러 사람이 줄 서서 일제히 함께 추던 춤이 일무예요.
일무는 중국 주나라 때 궁중 제사 음악인 아악에 쓰이던 무용이에요. 1116년(고려 예종 11년) 우리나라에도 전파돼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 때 췄지요. 종묘에서 추는 일무는 조선 세조 때 창작돼 '시용무보(時用舞譜)'에 전해져요. 원래 일무에서는 줄의 수가 신분에 따라 네 종류로 나뉩니다. 중국 기준으로는 천자(天子)는 8명씩 8줄로 늘어선 64명의 8일무로 하고, 제후(諸侯)는 36명의 6일무, 대부(大夫)는 16명의 4일무, 선비는 4명의 2일무로 춤을 춥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와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데요. 공자의 제사인 문묘 제례에는 8일무를 췄지만, 조선 역대 왕의 제사인 종묘 제례 때는 이보다 인원이 적은 6일무를 췄죠. 조선 왕의 위치가 공자보다 낮다는 인식이 있었음을 일무 규모로 짐작할 수 있어요. 고종 때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에는 황제국의 격에 맞는 8일무로 추다가 일제강점기에는 다시 6일무로 추는 등 춤의 규모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롭게 해석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이처럼 여러 일무의 형태 중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에서 원형을 찾습니다. 총 55명 무용수가 열을 맞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대형 군무를 선보이는 장면은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어요. 작년 초연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공연된 '일무'는 초연을 수정해 완성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작품은 1막 '일무연구', 2막 '궁중무연구', 3막 '죽무', 4막 '신일무' 등 총 4막으로 구성되는데, 깔끔한 검은색 톤 무대를 배경으로 큰 장대를 들고 춤을 추는 남성 무용수들의 힘과 강렬함을 느낄 수 있는 죽무가 올해 새롭게 추가됐지요.
정반합의 철학을 춤으로 표현한 '산조'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국립무용단 작품 '산조' 역시 전통 춤의 현대적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일무' '산조' 모두 정구호 연출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겠어요.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했던 정구호 연출은 춤 무대에서도 '정구호 스타일'이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로 획기적인 반응을 일으켰어요. 무대·의상·조명·소품 등에서 전통적인 조형미와 색감들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해석을 더한 미장센(무대 위에서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으로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움을 관객에게 전했지요.
원래 산조란 다양한 장단이 흩어지고 모이는 기악 독주곡을 의미해요. 총 3막 9장으로 구성된 '산조'는 '중용과 극단 그리고 중도에 이르는 정반합'이라는 산조 양식의 음악이 가진 철학을 춤으로 표현해 낸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1막 중용은 6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한 명의 무용수가 추는 정제된 움직임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남녀 군무로 확장되는 변화를 아름답게 표현해요. 2막 극단에선 불안정한 삼각형 도형을 배경으로 산조 음악의 비대칭과 비정형이라는 불규칙성이 펼쳐지고, 그 속에서 도달하는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음악 역시 우리나라 전통 장단과 악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현대적 감각을 더하기 때문에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지요. 3막 중도에선 신구(新舊)의 새로운 균형에 이르는 과정이 부채춤과 장구춤 등 전통 춤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언어를 배제하고 음악과 어우러지는 몸짓으로 만들어지는 춤은 인간에게 내재된 가장 오래된 본능이죠. 전통을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전수하는 노력과 함께 이처럼 다양한 해석을 더한 공연이 창작되는 것은 전통이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겠지요. 'K팝'의 전 세계적 열풍 속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 춤도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링컨 센터]
공연 예술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뉴욕에서 이곳을 빼놓을 수 없지요. 바로 링컨 센터입니다. 1962년 개관한 링컨 센터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종합예술센터로 화제가 됐어요. 음악·무용·연극·오페라·발레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총 1억4200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공사비는 록펠러 가문이 후원했어요. 부지 마련을 위해 빈민가였던 웨스트 사이드가 철거됐는데, 이곳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배경으로도 등장해요. 링컨 센터는 훌륭한 공연시설도 자랑할 만하지만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뉴욕 시립 발레단, 뉴욕 줄리아드 음대 등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단체가 상주하며 최정상급 공연을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 오는 20~22일 우리나라 춤 장르 최초로 미국 뉴욕 링컨 센터에서 공연되는 ‘일무’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 오는 20~22일 우리나라 춤 장르 최초로 미국 뉴욕 링컨 센터에서 공연되는 ‘일무’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 지난달 23~25일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무용단의 ‘산조’ 공연 장면. /국립극장
▲ 지난달 23~25일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무용단의 ‘산조’ 공연 장면. /국립극장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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