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구미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뭐라고? 어딜 다녀왔다고?"
화천 비수구미마을을 아는 사람은 드믑니다. 파로호나 평화의 댐을 얘기하면 '아, 거기 근처야!'하고 비로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 산골 오지 마을을 제가 활동하는 한국문화답사회 회원들 100여 명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마을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 피난 왔다가 정착한 화전민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 이전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비수구미마을이 그만큼 오지였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어지러운 세상과 연을 끊고 이곳에서 조용히 살다 간 사람들은 아마도 있었을 겁니다. 이름의 유래가 되는 非所古未禁山東標(비소고미금산동표)는 왕궁 건축에 필요한 나무를 베지 말라는 금표라고 하는데… 도무지 한자 해석이 안 됩니다.
해산터널 앞에서 내리막 산길을 따라 6Km를 걸으면 마을이 나옵니다.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걷기 편한 산길인데 '비수구미 생태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해산터널은 '그 유명한'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한 찻길을 내려고 '마침' 1986년 아시안게임을 기념하여 1,986m 길이로 뚫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터널이라는 게 미리 정해놓은 길이만큼 뚫을 수 있는 건가요? 혹시 그 옛날 신화나 용비어천가처럼, 그냥 뚫었을 뿐인데 마치 하늘의 계시인 듯 1986미터가 딱 떨어지더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해산터널은 한때 3관왕 터널<국내 최장(1986m), 최고(해발 700m), 최북단(북위 38°)>이었다가 지금은 3개 타이틀을 다 뺏긴 무관입니다. 현 타이틀 보유자는 각각 배후령터널(5100m), 대관령터널(750m), 돌산령터널(북위38.14°)입니다. 딱 봐도 통일 전까지는 강원도가 타이틀을 독식할 수밖에 없는 종목이네요.
비수구미생태길은 굳이 등산화가 필요 없을 정도로 완만한 내리막길입니다. 이날 같이 걸었던 참석자 중에는 70세가 훨씬 넘어보이는 노인도 계셨습니다. 계절별로 각각 야생화, 계곡물, 단풍, 함박눈과 함께 걷는 편안한 산책길입니다.
올해처럼 눈이 많이 온 겨울엔 산책길이 아니라 눈썰맷길이 됩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함박눈에 경사도 급하지 않으니, 이때는 다른 어떤 것보다 비료포대가 제격입니다. 마을 앞 파로호가 꽁꽁 얼면 축구장보다도 넓은 호수 전체가 썰매장이 됩니다. 4륜 오토바이가 끄는 대형 썰매를 타는 재미가 테마파크의 탈것들 저리가라라고 합니다. 저도 중앙일보 기사(Click!)를 보고 알았습니다.
아무리 만만한 산길이지만 2시간을 걷게 되면 배가 고프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때, 생태길의 끝 비수구미마을에서 먹는 산채비빔밥과 막걸리 한 사발은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저는 산나물을 많이 먹고 싶은 욕심에, 밥에 비비지 않고 밥반찬 삼아 먹었습니다.
마을에서 민박할 생각이 아니라면 내려온 산길을 되짚어 올라가거나 마을 앞에서 보트를 타고 파로호를 건너야 합니다. 마을에서 나가는 방법은 오직 이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야 있나요? 파로호를 건너야지!
모터보트의 백미는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얼굴을 강타하는 강바람! 이때는 누구나 올백 헤어스타일이 됩니다.
파로호는 화천댐을 막으면서 생겨난 호수입니다. 이렇게 댐과 함께 생겨난 호수는 모두 댐과 같은 이름을 씁니다. 팔당댐에 팔당호, 의암댐에 의암호, 안동댐에 안동호처럼 파로호도 처음엔 화천호였습니다. 그러다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큰 전투가 있었고 중공군 3만 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오랑캐를 물리친 호수라는 뜻으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는 휘호를 내린 후 그 이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혹시나 중국 관광객과 함께 간다면 비밀로 해둡시다.
설명이 필요 없는 평화의 댐. 참으로 역설적인 이름입니다. 63빌딩이 허리까지 잠긴 서울호(?) 시뮬레이션을 TV로 보며 어린 가슴이 느꼈던 분노와 공포,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물문화관에 가면, 홍수조절 기능이 확인되면서 댐의 가치가 재부각되고 있다는 둥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 "말을 맙시다!"
이 일대를 돌아보면 비목공원, 세계 평화의 종, 평화공원 등 사람들의 수요와는 무관하게 안보교육의 요람으로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곡 '비목'(Click)을 들으며 글을 마칩니다.
2012. 10. 20.
첫댓글 좋은 곳 다녀오셨군요.. 이글을 최근 글인가요?...^^ 저도 이 길을 꼭 한번 걸어 보고 싶었는데, 아직입니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요 요번 가을입니다. 제 여행기 끝에는 항상 날짜를 적습니다.
70세 노인보다 더 시들한 저도 갈 수 있을까요
3시간 동안 걸어오시면 됩니다.
^^....어제도 오늘같이...ㅋㅋㅋ...지난 여행얘기도 좋으네요...
조만간 저에게도 여행기를 쓸수 있는 날이 오겠죵?!^^
3월 여행 후기 부탁드립니다.
가을이 그립습니다. ㅡ,ㅡ
걷기 좋은 길 많아요. 제가 얼마 전에 걷기모임에 가입했어요. 내공을 쌓아서 우리 회원들과 함께 걸으려고...
비수구미......
비수구미... ...
뭔가 바스락거리는 것 같은 이런 이름을 가진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
때묻지 않은 좋은 곳이지만 신비롭거나 환상적이거나 그런 곳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