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석의 남자의 물건] [19] 달콤 쌉싸름한 초록 음료, Z세대 도시남의 감성
말차 라테
김교석 칼럼니스트
입력 2025.08.28. 23:46
올여름 말차라떼는 Z세대의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았다@핀터레스트.jpg
말차와 녹차의 차이를 아시는지. 말차는 녹차와 달리 수확하기 이전에 햇빛을 가리는 차광 재배를 거치고 증기에 찐 뒤 가루로 만든다. 잎을 우려먹는 녹차보다 짙은 색과 맛이 특징이다. 이런 말차로 만든 말차 라테가 올여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최근 미국과 유럽 대도시의 한국·일본식 카페 유행을 이끄는 대표 메뉴다. 주목할 만한 건 말차 라테가 Z세대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남자의 음료’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산뜻한 느낌을 주는 남자가 되고 싶다면 말차 라테를 한 잔 들고 다니면 된다.
도심의 느낌 좋은 카페_ 필름 카메라_ 고전 소설과 인디음악 등은 퍼포남의 정석이다@핀터레스트
‘말차 라테를 든 남자’가 유행 코드가 된 맥락을 살펴보자. 말차 라테는 미국에서 ‘퍼포머티브 메일(performative male)’, 우리나라에서는 ‘퍼포남’ ‘말차남’이라 부르는 밈의 상징이다. ‘퍼포남’이란 데이팅 앱과 소셜미디어에서 뭇 여성의 호감을 얻기 위해 문화적 취향, 진보적 가치관, 예술적 감수성 등을 보여주기식으로 드러내는 남자를 뜻한다. 이를테면 끈 달린 이어폰과 에코백, 빈티지 패션 차림으로 느낌 좋은 카페에서 말차 라테를 한 잔 시켜놓고 고전문학이나 철학 책을 읽는다. 일종의 ‘추구미’다. 근력과 체격, 경제력, 운동 능력과 같은 전통적 마초 내음 대신 무해한 이미지로 이성에게 매력을 인정받으려는 수단이기에 ‘퍼포먼스’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시애틀,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각지에서 이런 세태를 즐기는 최고 퍼포남 경연 대회가 잇따라 열려, 소셜미디어와 주요 매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문화적 취향과 감수성_ 진보적 정치관은 퍼포남 연출의 필수요소다
재밋거리나 유행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이 현상에는 복잡 미묘한 말차 라테의 맛처럼 젊은 세대 남성들의 시대감각과 유머, 애환이 동시에 담겨 있다. 오늘날 남자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달콤한 녹색 음료를 들고, 무해함을 무기로 꺼내 든 데는 남자의 삶이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는 녹록지 않은 현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말차 라테가 남자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을까? 가수 현숙의 노랫말대로 요즘 남자 하기 나름이다. 남자의 물건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만족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퍼포남이라고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고 “말차 라테 한 잔 주세요”라고 외칠 때, 누군가를 위한 의도나 인증샷 없이 오롯이 그 맛을 즐길 때, 달콤 쌉싸름한 말차 라테는 진정한 남자의 기호(嗜好)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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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남자의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