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3일
세월을 아끼라
말씀: 에베소서 5장 15-17절
현대인들은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여유를 누리지 못한 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쁘게 산다는 것이 반드시 ‘제대로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죠? 바쁘게 살지만 동시에 잘못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살고 계시나요?” 라는 질문 앞에 무엇을 기준으로 ‘네’ 혹은 ‘아니오’ 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삶의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 있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네 저는 제대로 살고 있어요” 답합니다. 그러나 같은 조건에도 미래를 위해 충분한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니요. 저는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해요.” 라 답할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일까요?
에베소서 1-3장은 그리스도는 누구이신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교리 부분입니다. 4-6장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실천 편입니다. 이처럼 에베소서 후반부는 “성경이 말하는 “ 제대로 사는 삶”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시간 사용’에 대한 주제입니다.
15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하나님께서 시간을 주의하여 사용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하루 24 시간 주셨습니다. 남녀노소 주어진 시간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혜 없는 자” 같이 말라 말합니다. 여기 “지혜 없는 자”란 “어리석은 자”죠? 왜 어리석습니까?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사는데 성도로서 꼭 알고 행해야 할 중요한 일들에 대해 간과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지혜 있는 자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조심 스럽게 살펴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들 입니다. 즉 세상을 살 때, 주의해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울까? 생각하며 결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합니다. 일반적으로 시간관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 관리에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 그 목표를 따라 시간을 정렬하는 것, 중요한 것과 긴급한 것의 차이를 알아 중요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 등입니다. 한마디로 ‘효율성’ 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목표에 맞게 사용하면 그것이 효율적인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잘 못 잡고 산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잘 못 찾은 사람은 열심히 노 젓고 항해를 하다 어느 새 자신이 태평양 한 가운데 있음을 발견한 것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노를 젓고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지도를 잘 못 보고 있던 것입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방향이 잘못되면 표류하는 배와 다름이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결국 망망대해 가운데서 죽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죠?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 가는지 모르고 열심히 노만 젓고 살아 왔습니다. 겉으로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여 언뜻 성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요한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열심히만 산 사람입니다. 목적지가 서울인데 부산쪽으로 운전하는 꼴입니다. 성경은 업적을 많이 남기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남들에게 칭찬과 인정 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 있는 자’란 오늘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그 분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남들이 볼 때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를 주님의 뜻대로 산다면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사람이며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15절에 지혜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살피라” 하십니다. 성경 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번제를 드렸죠? 먼저 일어나면 하나님께 아침 번제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번제의 의미는 “하나님 오늘 하루 제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시고 도와 주세요.” 라는 의미의 제사입니다. 또 해가 질 때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녁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번제는 “하나님! 하나님을 위해 오늘 온전히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부족한 부분은 없었나요?” 이렇게 자신을 살피는 제사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벽기도가 있죠. 또 하루를 마무리 하기 전 잠시 무릎 꿇고 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한 모세도 항상 회막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세히 주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들에서 양 치던 다윗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세히 주의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의 뜻에 더 합당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기도하며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계속 질문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계속 이렇게 하나님께 물어보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하나님께 많이 묻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사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라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사람은 오늘 방식 그대로 내일을 살 것입니다. 문제는 좋지 않은 습관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삶의 패턴이 되어 고치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철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은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라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늘 살피며 어리석은 자처럼 산 것이 있다면 끊어내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는 문자적 의미로 술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판단력이 흐트러지죠? 영이 원하는 대로 행하기 보다 육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의 비유적 의미는 세상이 가는 대로 무분별하게 좇아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영혼에 가득 채워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는 방향으로 살아 가라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끝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라” “1분 1초도 아껴 사용해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문은“ 너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살려서 잘 사용해라!” 는 뜻입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 하루가 스물 네 시간 정해져 있죠? 삶은 결코 영원하지 않고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때문에 한정된 시간 속에서 주어진 모든 기회를 함부로 버리지 말고 모든 세월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돈이다” 라는 말이 있죠? 실제로 시간은 금보다 귀합니다. 금은 열심히 일하면 살 수 있으나 시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돈 쓰는 것은 아까워 하면서 정작 시간은 의미 없는 것에 낭비 하는 것에 둔감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기독교 학자는 “그리스도인들은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영원한 것에 투자한 사람들이다.”라 말했습니다.
시편 90:9,10,11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도 우리 시간이 신속히 가는 것이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계수하여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40년간 애굽에서 왕자로서 살며 왕의 후보자가 받는 왕실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40년은 광야에서 양 치며 세월을 보내야 했죠? 모세가 자기 삶을 돌아보니 하나님 뜻을 모르고 살면 결국 인생은 의미 없이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깨닫았던 것입니다. 민수기서에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정탐한 자들 중 열명은 하나님 뜻을 구별 못하고 어리석게 행동하자 하나님이 같은 날 목숨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동조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심판 하셨습니다. 2주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무려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의미없이 이 세상을 방황하며 살다 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맞게 사는 지혜로운 삶을 선택 하는 이는 놀라운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삶을 꽃피웁니다. 어린 목동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자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고, 전쟁의 노예로 끌려간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 나라의 셋째 가는 치리자가 되었습니다. 왜 복 있는 사람이 주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간 사용은 단순히 시간을 1분 1초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 하는 것입니다.
16절에 “때가 악하니라” 했습니다. 바울이 살던 세대가 악했습니다. 실제로 그때 로마 시대는 성적으로 음란하고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어 노예를 물건 다루듯이 했고, 살인 청부업, 고리대금업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와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악하니라 말은 바울 시대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여전히 악하죠? 이는 바울이 살던 시대나 우리가 사는 시대나 동일한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악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자세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주류는 악하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성도도 어리석은 자들처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말씀합니다. 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을 함부로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영어에 “ Better late than never ” 라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 ” 안하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것이 낫다 ”는 말입니다. 비록 지나온 시간 우리가 어리석은 자처럼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살아 왔을지라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갈 남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늦게라도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그렇게 안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으며,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했고, 요한은 백발의 노인이 다 되어서 온 우주의 마지막을 환상으로 보고 요한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결코 늦은 때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주 선교교회 성도 여러분 과거를 뒤로하고 앞에 있는 날들을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 살아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