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기행>
김형수(시인)
1.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울란바토르에서
인간은 가끔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마술의 융단폭격을 받는다. 내가 그것을 모르고 마흔 한 살을 먹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날 고스란히 폭파당했다. 실로 방어할 길이 없는 <초원의 빛>의 습격이었다. 나의 여명기에 이미 그런 일이 있었다. 학교라곤 아직 문턱도 못 봤을 때, 형과 함께 동네 이발소에 갔었다. 그리고 그곳의 어른들 앞에서, 시골 장터에서 자라는 아이답게 성냥곽 같은 상표에서 한 자 두 자 익힌 솜씨로 난생 처음 텍스트 하나를 완독했다. "여기 적힌 이 먹빛이 희미해질수록/당신의 기억 또한 희미해 진다면……." 그때 내가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가 무슨 말인 줄 알았으랴.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만나게 될 미래의 '지상(地上)'을 내가 그렇게 상상해 두었던 건 사실이다. 그 액자 속의 그림처럼, 산다는 것은 광활한 대지 위에 한없이 작아지는 발자국을 남기며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걸어간다는 것. 그 꿈 속 같은, 그 환각 같은, 심연 속의 장소를 내가 실로 34년만에 몽골에서 목도했다.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 동화처럼 치솟은 쌍무지개 아래로 일가족 일곱 명이 말을 타고 멀어져 끝내 몇 점의 먹빛이 되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경이로운 세계를 본 적이 없었다. 지상이 허용하는 하늘의 최대치 면적을 온전히 다 차지하고 있는 20센티의 풀포기들이 장엄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사진을 찍어두고 장소를 기록했다. 비를 몰아오는 구름장 밑에서 초원은 숨을 곳이라곤 없어서 모든 생명체로 하여금 존재의 지난함을 자연에 맡겨둔 채 견디게 하는 것 같았다. 산봉우리도 돌멩이도 둔덕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흔적은 이동하는 물체가 최근에 지나간 자국일 뿐, 길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자동차도 야생동물들 속에 뒤섞여 아무 곳으로나 가고 싶은 방향으로 달리면 되었다. 그 막막한 공간, 눈에는 보이지만 발길은 쉬이 닿을 수 없는 광야는 끝없는 질주의 욕망으로 가슴을 끓게 했다. 그런 곳의 대기를 폐부로 빨아들여 심장의 펌프질을 가속화시킨다는 것, 그것은 희열이기보다 차라리 슬픔이었다. 오, 이 가슴 아픈 회한이여! 사람들이 이렇게도 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왜 잊고 두려워 한다는 말인가. 나는 느닷없이 내가 살아온 곳을 후회했다. 서울은 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물고기가 빼곡한 '문명의 어항 속' 같은 곳. 크기가 한정된 투명 그릇 안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몸을 부딪는 중생들끼리 애정이 깊으면 얼마나 깊을 것인가? 그립지 않아도 만나야 되고, 모이 하나가 던져지면 거기 모여든 이웃들의 경계심어린 눈빛들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야 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보호자, 문명의 조정력에 의해 모든 것은 파악되고 통제된다. 어느 외진 골목 안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어김없이 들춰내는 아홉시 뉴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물샐 틈 없는 정보망, 핸드폰과 호출기와 택시의 무선 송출기와 그리고 각종 전자파들. 그 속에서 우리는 발 한 번 뗄 때마다 짜증을 느꼈던 이웃 중의 하나를 골라 사랑을 약속하고, 또 내면의 본질을 밑바닥까지 읽어버린 가슴들끼리 만나 불확실한 미래를 의탁한다. 존재의 신비도, 세상의 경이(驚異)도, 운명의 굴곡도 '전혀 깊지 않은 강'이 된 마당에 세상이 스스로 존엄할 길은 없다. 바로 그곳에서 지구 어딘가에 이 지엄한 세상이 있다는 걸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힘으로는 쉽게 망가뜨릴 수 없는 하늘과 바람 그리고 땅! 나무 한 그루 없는 녹지와 여인의 알몸처럼 부드러운 대지의 곡선들, 그 유혹적인 지구의 누드 위에서 말들이 달리고 바로 머리 위를 솔개들이 난다. 발밑에서 메뚜기가 튀어오를 때마다 비염에 시달려온 코를 감동시키는 초원의 진한 쑥향기가 고여 있다가 흩어진다. 그 침묵과 약동으로 가득찬 우주의 일각에서 나는 말똥냄새를 풍기며 양고기를 익히는 연기를 만나거든 주저 없이 엎드려 절을 하리라. 광야에 하나 뿐인 민가를 스쳐가며 수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만다면 그것은 이미 장소를 잃어버린 유년의 간이역처럼, 아니 생애에 한번뿐인 숙명의 사랑처럼 오래오래 기억되어 나를 갈증나게 할 테니까.
2. 저 낮은 곳에서 새들이 날고 있다 -동몽골의 대평원
몽골인들은 그날을 100번째 나담축제가 열렸던 날로 기억할 것이다. 아니, 일본의 오부치 총리가 방문했던 날로 기억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결코 그런 식으로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1999년 7월 11일. 우리는 고원의 황혼을 지나 꼬박 사흘밤 사흘낮을 잠적해 버렸다.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말았다는 인터넷도, 성냥곽 만한 기계 안에 문명의 능력을 압축시켜 놓았다는 디지털 핸드폰도, 하다못해 베트남 수상가옥에서도 가능한 TV전파까지도 우리가 가는 곳을 쫒아오지 못했다. 지상의 모든 질서로부터, 그리고 그것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와 기념비적인 사건들로부터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된 것이다. 서울로 엽서라도 한 장 띄웠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우체부가 활동할 수 없는 나라도 있었다. 카메라가 있었지만 잡히는 것은 모두 바늘구멍으로 들여다 본 세상처럼 불완전한 풍경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를 쓰고 유리창에 고개를 처박았는지 모른다. 기종이 JU 2024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방년 11세짜리 헬리곱터를 타고, 우리는 동몽골 전역이라 부를, 반경 1000킬로의 대평원 위를 방랑했는데, 잠시도 졸지 못했다. 물경 여섯 시간 동안 지평선 하나와 대결했던 시간도 있었다. 끝없이 평평한 초원과 호수 그리고 이동중인 소떼, 이상한 비행물체에 놀라 혼비백산 흩어지는 수만 마리의 노루떼들. 실로 완벽한 평원이었다. 강물이 가로질러 꿰매어진 흔적도, 숲이나 나무의 옷자락으로 가려진 곳도 없었다. 오직 계절과 기후와 자연의 변덕만이 머물다 갈 뿐인 저 광활한 햇빛들의 그라운드 위를, 가고 또 가면 민가가 나오고 그런 곳 어딘가에 고향이 있으리라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완강한 대지를 견딜 수 없어서였다고 말해도 좋고, 육신의 미천함이 뼈아파서였다고 해도 좋다. 헬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서 머리를 디밀었지만, 아서라! 저 낮은 곳에서 새들이 나는데, 그 따뜻한 등덜미를 보는 순간 인간의 영장적 기질이 되살아나 우스꽝스럽게 돼버리고 말았다. 뛰어내려도 혹시 안 다칠 지 몰라, 하는 생각이 완료되기도 전에, 그런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것도 인간의 잠재의식에 대한 만유인력의 지배일까? 하는 의문부터 떠올리는 이 참을 수 없는 이성에 대한 집착, 분석과 추리와 판단을 통해 인과율의 고리를 찾아내지 못하면 잠시도 평정을 찾지 못하는 영혼의 불균형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결박을 풀어버리려 애썼다. 내 몸에 마음을 맡기자. 유목의 땅에서 모든 인간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동하는 목숨들은 나그네요 주인은 오직 대지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그곳의 일들(자연의 질서)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다. 몽골인들은 그랬다. 해마다 무서운 봄바람이 불어 사람이나 가축을 말아올려 죽여도 그들의 의식 속에 저항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첫날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 있는 할힌골솜의 보이르 호수에 닿기까지 우리는 모두 네 차례를 쉬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초원의 고독을 보았다. 어떤 곳에서는 위엄에 찬 뿔을 가진 동물의 두개골이 자연분해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과연, 존재하는 모든 것의 마지막 동작은 '흩어짐'이었던가? 야생동물 하나가 비바람의 처분대로 풍화되고 해체되어 대기 속에 사라지는 것이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었다. 만일 헬기가 내려놓고 가버린 후 세월이 더도 말고 5년만 흐른다면 나도 그러한 '토템'이 되어 초원의 빛에 덮혀 뒹굴게 될 것이다. 그때 이슬 속에 뜨는 별의 신화와 그 속에 지는 달의 신화를 나의 정령들은 노래할 것이다. 그 생각이 내게, 불안한 머리의 명령을 떠날 수 있게 해주었는지 모른다. 살갗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았고, 무언가 수런대는 자연의 말뜻을 전해듣지는 못해도 그것들의 은유를 알 것만 같았다. 풀꽃 위를 떠다니는 바람의 음악도, 땅바닥을 더듬어 별빛을 읽어내는 벌레의 촉수에 사는 시도, 한 자리에서 무한히, 피고 지고 나고 죽고를 반복하는 생물의 저 기나긴 여정에 깃들어 있는 존재의 신화도.
3. 지상의 마지막 유목민
초원은 인간을 외롭게 만드는 곳이었다. 바다에서 표류하는 조난자의 마음처럼 모든 것을 애태워 그립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들 지독한 고독의 냄새를 풍기는지 몰랐다. 한 곳에 서 있으면 어디선가 유유히 사람이 나타나고는 했다. 말을 타고 질주하다가도 인적이 포착되면 말머리를 돌려 찾아온다고 했다. 겉웃음을 보이는 건 위선이라 하여 처음에는 반가움도 내색하지 않지만, 마음만 맞으면 의형제를 맺으려 들고, 취하면 금방 문명이 몰아내버린 저 20세기 이전의 어휘들, '충성' '신의' '용사' 따위를 들먹인다고 했다. 그랬다. 그들의 언어는 지식과 외교력의 연금술로 닦여 있지 않았다. 그들의 친화력은 저 영악한 상품거래 사회의 전략과 전술로 무장돼 있지 않았다. 하늘을 외경하고 벼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성스러운 것(운명)을 깨끗한 것(과학)보다 중시하는 사람들, 모든 행위의 동기를 손익계산이 아니라 길상(吉祥)과 불길(不吉)에다 두는 사람들. 그들 속에 있으면 전라도의 장터에서 순정을 배우던 내 인생의 여명기가 돌아올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입맛이 썼다. 전날 어느 분이 텔레지(휴양도시)의 바위산을 보고, 이쪽을 깎아내고 조금만 다듬으면 퍽 쓸 만한 휴양지가 되겠다며, 산이름이 뭐죠? 하자, 산이 듣는 데서 신성한 이름을 입에 올리면 안 된다고 했을 때 느꼈던 차이! 한 번은 저녁에 양을 사려고 했다. 도축할 때 가슴에 칼자국을 내어 손으로 심장을 뽑고 관절을 해체시킨다는 몽골인들의 야성(野性)에 홀려 보챘던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완곡히 거절했다. 궃은 날 길도 어두운데 양을 보낼 수는 없다고, 양을 죽이는 동작도 심장을 뽑는 것이 아니라 안락하게 죽도록 동맥을 끊어주는 행위이며, 관절을 해체시키는 것도 동물의 뼈에 칼을 대는 '야만'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인간을 대할 때 극치를 보였다. 유목민의 사회에서 거지는 없었다. 모든 나그네는 귀빈 대우를 받았다. 누가 한 번 다녀가고 나면 언제 또 사람을 만날 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어느 곳의 풀이 좋고 물이 많으며 다른 소식은 더 없는지 묻고는 정성껏 숙식을 제공한다. 그 가난 속에서, 아직도 칭기스칸 시대의 주식이었다는 야생 타르박(토끼보다 조금 큰 동물)을 사냥해 13세기식의 삶을 연명하면서도 자기 구역에 들어온 사람의 안녕을 지켜낸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황송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위안받아도 되는가? 그들의 역사가 얼마를 더 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 장중한 대지의 운명을 버리고 그들이 저 유혹에 찬 사이버 공간으로 잠적해버리는 때가 몇 년 후에 올 지 우리는 모른다. 그 탓이었다고 해두자. 어쩌면 지상의 마지막 유목민이 될지도 모르는 눈동자 두 개를 나는 진정으로 가슴을 열고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은 이 풍경을 믿을 것인가? 때는 아침이었다. 호수에서 내가 머리를 감는 동안 먼 지평선에서 말 두 필이 나타났다. 이웃집에서 손님(우리)을 보러 놀러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앞 사람은 아저씨였고 뒷 사람은, 맙소사! 걸음마나 떼었을까 싶은 예쁜 여자 아이였다. 네 살짜리라고 소개되자, 누가 내 귀에 속삭였다. "말이 세 발 자전거 같죠?" 하지만 성숙한 여인 같아서 볼에 입을 맞출 수 없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연락병 정도는 능히 할 것 같은 위용에 찬 인간 하나. 아무리 말과 함께 산다지만 핏덩이 하나를 이토록 빨리 대지의 주역으로 길러내는 사회가 있다는 것이 나는 믿어지지 않아서 그 아이의 등 뒤로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초원의 일생을 끝없이 상상했다. 온몸은 늘 적막 속에 있으리라. 바람과 가축을 제외하고는 어떤 움직임의 소리도 들을 수 없어서 귀는 언제나 비어 있고, 눈은 항시 지평선으로 열려 풀잎 위를 밟고 가는 바람의 발자국이 몇 개인지를 판별하리라. 그리고 저녁이면 귀를 땅에 대어 먼 곳에서 돌아오는 가족들의 발굽소리를 들으면서 얼굴 가득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는 지상에서의 하루를 감사해 하리라. 아, 그 막막무제의 초원에서 네 살 난 그녀가 말 위에 앉아 아스라히 멀어지는 노을 끝을 응시하면 누가 감히 구도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4. 나담축제에서
그 어떤 인생에도 '마음의 유배지'는 있다. 나는 그곳을 열 살 때 체험했다. 우리 일가족, 할머니와 두 부모 그리고 육남매가 제각각 여섯 개 장소로 흩어져서 살 때였다. 나는 할머니와 형과 함께 외딴 마을에서 셋방살이를 했는데, 형은 중학교 입시 때문에 밤늦게 귀가하고, 나는 외롭게 저물어가는 할머니를 지켰다. 내가 밥을 지을 때도 있었고, 할머니가 온종일 눈을 뜨지 않아서 돌아가시지나 않았는지 확인할 때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태어나서 딱 한 번 반장이 되었는데 두 달을 못 넘기고 반납하고 말았다. 그때 보았던 어둠 속의 세계, 감잎 뒤에 몸을 감춘 미자르별이며 짐승처럼 낮게 웅크린 산 그리고 그곳에서 전해오던 대지의 심장이 박동치는 소리……. 지금은 우리 가족 누구도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내게만 영원한, 채워도 채우지지 않는 사랑과 슬픔의 밑빠진 항아리일 뿐. 그러나 나는 그 때문에 깊어진 내면을 얻었다. 그것이 내게준 '척도'에 비하면 그 후에 있었던 교육의 빛들은 지나칠 만큼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믿건대, 세계는 오직 인간의 경험 속에서 신성한 것. 그리고, 이것은 내 말이 아니다만, "나는 인간 각자가 만물의 척도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뽈 발레리) 모든 존재는 밤하늘에 가득찬 별빛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주의 심층에 뿌리박혀 있는 것! 나의 몽골행은 대체로 그것이 확인되는 마음의 여로였다. 나는 곳곳에서 정지해 있는 동안에도 광야를 내달리는 것 같은 유목민을 보았다. 사진을 찍자고 곁에 서면 야생동물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을 만났으며, 또한 셔터가 눌러지면 훌쩍 날아가 버리는 새처럼 등 뒤에 바람을 달고 있는 아낙네들과 작별했다. 그리고 그들의 땅 위를 맴돌면서 들었는데, 몇 개의 군(郡)에서는 구성원이 모자라 지역사회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몇 개의 군에서는 그나마의 인적조차 없어서 대지가 그냥 인간 없는 대지로만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추억 속에서 성스러워진 땅, 그들과 나누는 영혼의 우애 속에서 이웃이 된 짐승들, 그들의 운명 속에서 퇴화되거나 강화된 인간성의 부품들이 어디에 사용되는가를 묻고 또 물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이동의 의무로부터 면제 받은 손으로 성(聖)과 속(俗)을 만들고, 축제와 노동이 있는 역사를 만든다. 그것은 하나의 마술과 써커스처럼 유럽의 방랑자나 일본의 사업가들에게 경이감을 주지만, 거기에 교양과 야만의 차이 같은 것은 없다. 문명과 미개의 차이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는 것을 바로 나담축제가 증거했는데, 멀리 지평선 끝에서 점점이 나타난 경주마들이 순식간에 바람을 가를 때, "츄- 츄-" 외치며 말갈기를 내리치는, 열한 살, 열두 살짜리들의 야성·속도·전율·경쟁·갈등…… 그 속에 사람살이의 깊이와 위대함이 있었고, 초원의 시련이 경배하는 영광이 있었으며, 인생사의 모든 두려움과 환희의 경계가 있었다. 4세마 경주에서는 400 마리 중 한 마리가 질주하다가 즉사했지만 아무도 통곡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하늘의 뜻이리라. 과학의 지식보다 길흉(吉凶)의 전조(前兆)를 먼저 믿는 그들. 지상의 말보다 하늘의 언어를 먼저 듣는 그들. 그들은 쉽게 영웅성을 띄지만,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법은 없다. 예컨대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린다는 신궁(神弓)의 활솜씨도 동물의 몸에 고통스러운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관자놀이가 아니면 쏘지 않는다. 어떻게 그것이 시가 아닐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런 삶이 가히 초원의 예술이 아닐 수 있는가? 그래서 누군가 그곳에 닿아 사치와 애교와 위선이 없이 지상의 한 사람을 사랑하고 죽어가는 몽골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환락과 풍요가 민망해질 것이다. 그래, 그랬다. 울란바토르에 있는 어느 사원에서 나는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를 보았는데, 처음에 섬뜩했던 느낌이 사연을 듣자 감동으로 변했다. 아이를 낳다가 죽은 18세 소녀의 한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오, 피리여! 피리 소리가 되고 만 여인의 육신이여! 그녀의 흰 뼈가 지상에서 우는 것을 나는 미워하지 않으리라. 그녀가 사랑했던 초원의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오직 광야를 횡단하는 구름의 그림자만 남을 지라도, 지상에는 반드시 듣는 귀가 있어 깊게 깊게 울어줄지니.
5. 멀고 먼 노래의 길 위에서
예정에 없던 표류였을까? 나의 몽골행은 처음부터 기약을 갖지 못 했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그 숱한 변수들.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해서 만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위·경도 상의 저 '불멸의 표준'은 처음부터 유용하지 않았다. 나침반이 있었지만 자꾸만 길을 잃었고, 떠날 시간이 되었지만 떠나지 못 했다. 거의 모든 일은 우리의 의지가 통제하지 못했다. 도우미들은 우리와 동행하기 전에 이미 우리보다 더 큰 무엇과의 동행에서 훈련된 질서를 따르고 있었다. 이를테면 유목민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계절이었다. 그들은 햇빛과 물과 풀의 양을 조절하는 초원의 권력, 계절을 따르기 위해서 동물의 번식기에는 사냥을 참았으며, 계절이 가자는 데로 끌려다니느라 이동에 불편한 모든 것, 예컨대 주식에 요긴한 울타리 안의 짐승들(닭이며 오리 따위)을 버린 사람들이었다. 탈탈 털면 목덜미에서 땡볕이 털릴 것 같은 더위가 구름 한 장만 막아서면 순식간에 추위로 돌변하곤 했다. 한 번 에델바이스를 만나면 그것을 포착한 의식의 끈이 끊길 때까지 에델바이스들의 세상이 계속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인간의 의지는 미약했다. 그 멀고 먼 노래의 길이 끝나도록 카페 하나, 정자 하나 없었다. 그 여정에서 내가 뼈가 시리도록 느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신체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존재는 자연의 올가미에 매달려 있다. 실존은 오직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어떤 곳에서는 인간의 머리카락이 수천 년의 바닷바람과 햇살에 간섭을 받은 끝에 갈색이 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숱한 왕조가 교체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더위 때문에 인간의 몸집이 작고 야위게도 되었다. 그것은 동식물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캄보디아에서도 쌀은 쌀이고 돼지는 돼지이지만, 한국의 것은 한국 산천을 닮아 있고, 독일의 것은 독일 자연을 닮아 있다. 몽골의 메뚜기는 몽골의 대지를 벗어난 그 어떤 곳에 내놓아도 이물질처럼 낯설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절묘하게 반영이라도 하듯이 우리를 인간이라 부르게 하는 내용, 인간성이랄까 영혼이랄까 의식이랄까 하는 것들은 오직 신체 안에서 활동한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울란바토르에서 테레지를 거쳐 할힌골솜의 보이르 호수에 닿기까지, 또 보이르 호수에서 다시 다달솜과 빈데르솜을 거쳐 푸른 호수에 닿기까지, 유목민들과 우리 정착민들의 접경에서 숱한 창조적 충돌들이 발생하고는 했다. 예를들어 우리가 김을 먹으면 그들은 얕잡아본다고 했다. 양에게 먹인다면 모르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런 종이장 같은 바닷풀을 먹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도 그들에 대해서 마찬가지였다. 통역을 맡은 울란바토르 대학의 교수가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무서운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길래 까닭을 물었더니, 주변이 온통 바다잖아요? 했다. 딴은 끝없이 자연의 힘을 몰아쳐오는 파도가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이가 본 곳이 겨우 인천 앞바다임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 일행은 모두가 폭소를 터뜨려 버렸다. 인간의 삶은 결국 이같은 것이었다. 모든 종족은 그들에게 맞는 자질밖에는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는 서로 배우는 것이다. 초원에서 살다보면 평균 시력이 5.0에 이르게 된다는 그들의 눈을 빌려서 나는 안경을 쓰고도 1.0 너머의 범위를 못본 채 살아가는 존재에게 결여된 많은 것을 배웠다. 하늘!(초원에서 인간에게 충동을 유발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땅이 아니라 하늘일 것이다. 침묵하는 대지를 견딜 수 없어서 갖은 변신을 다해보는 구름들의 유혹). 빛! (대기에 혼탁한 입자라고는 없어서 태양이 쏘아보낸 그대로의 빛살이 내리꽂히는 자리마다 자연이 내뿜는 모든 원초성이 지상의 생명들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 벌이 우는 것처럼 웅- 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모든 것들에게 소리가 붙어 있었다. 보이르 호수 위로 해가 떠오르는 소리, 천막 같은 지붕 위로 별똥이 떨어지는 소리, 별빛들이 쨍그렁 부딪치는 소리, 말(馬)과 사람이 주고받는 소리. 특히 충격을 준 것은 보이르 호수의 동틀녁이었다. 한 소녀가 물가에 나왔는데, 아침노을을 받아 붉어진 얼굴이 눈빛을 더욱 영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뒷쪽으로 멀리 말이 물을 먹는 실루엣을 확인하는 순간, 내 귀에는 웅하고 지상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나는 그곳에서 끝내, 지구가 도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내 안 어딘가에 있지만 지금은 내가 잃어버린 장소들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 영롱한 아름다운 과거들. 그러나 나는 나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하고 그 댓가로 과거를 찬미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가의 비극은 그가 한때 어린애였다는 사실에 있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비극을 갖는 것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람에 스치우는 별'들의 하늘도 우리에게 그 마지막 비밀을 드러낸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발은 내가 초등학교때 이미 달의 표면을 딛어버렸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눈앞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들을 여전히 꿈꾸는 자유와 대상 없는 그리움들을 소멸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 생각이 내게 갑자기 돌아갈 길을 찾아주었다. 초원에 떠가는 구름들아, 꺾을 사람도 없는데 숨어서 핀 꽃들아, 말에서 내려 잠시 소변을 누고 가는 아낙네들아, 아, 대상도 없이 타오르는 사랑아,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신체 안에 구금된 나의 영혼을 잠시 탈옥시켜준 그대들을 나는 지상에서 과연 두 번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험난한 여로를 마치고 나는 다시 '문명의 어항속'으로 귀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자제품 안의 미세한 부품들처럼 제각각의 주파수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는 서울사람들 속, 황급한 발길들로 범람하는 신도림역의 지하철 환승계단과, 와이셔츠의 단추만으로도 몽골의 산 하나는 거뜬히 될 상품들을 소비시켜내는 새벽 네 시의 남대문 시장을 절망하지 않고 지나다니리라. 그리고 혹시는 모른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 오후에, 더는 오도 가도 못 하고 도로 위에 붙박혀 있어야만 하는 호남선과 영남선의 회덕 분기점에서 느닷없이 내가 해 뜨는 보이르 호수에서 들었던,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기억해낼지. 아, 그 일을 생각하면 인생은 다시 얼마나 아득하고 안타까워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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