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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애니메이션 표현 기법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린 <매트릭스> 시리즈. 트리니티 캐릭터 원형을 쿠사나기 소령에서 찾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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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B外 | 극장에서 다른 영화들을 제치고 할리우드 영화를 고르는 이유를 묻는다면 '화려한 볼거리'를 꼽는 이들이 많다. 할리우드는 새로운 시각을 찾기 위해 그림,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장르를 뒤져 왔다. 최근 할리우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장르는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20세기 말에 등장해서 21세기 할리우드 영상을 규정하고 있는 <매트릭스> 시리즈는 처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장면들을 실사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면서 긴장감을 높이고 각도를 바꿔 가면서 동작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법들이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려 할리우드 영상으로 소화됐다.
할리우드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교류는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방법이나 할리우드 영화 캐릭터들을 쉴 새 없이 빌려갔다. 다만 철저하게 파고들어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버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할리우드에서 간 것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일본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영상들은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영향을 주고 받는 할리우드와 일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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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스타워즈> 시리즈. 사소하게는 다쓰 베이더를 닮은 <기동전사 건담>의 샤아 헬멧에도 흔적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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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casFilm |
| 일본 애니메이션 작가들 스스로 고백하기로는 형식에서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충격이었고, 내용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장면들을 큰 스크린에 펼쳐 보인 <스타워즈>의 시각 충격은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블레이드 러너>(1982)와 <공각 기동대>(1995), <로보캅>(1987)과 <패트레이버>(1989)처럼 할리우드 영화의 줄거리와 캐릭터는 이내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소화되고 발전되었다.
극단을 추구하기보다는 대략 일반적인 선에서 정리하는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끝을 보고야 마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래서 더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일반 관객들에겐 거부감을 주더라도 창작자가 되거나 되어 있는 이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들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 자리에 올랐을 때 앞 다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영화 스크린에 옮겼다. 이렇게 옮겨진 장면들은 다시 할리우드 관용구가 되어 다른 영화들에도 폭넓게 쓰이면서 일반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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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다이의 귀환>에서 <아키라>로 전해진 스피드 바이크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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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casFilm外 | <제다이의 귀환>(1987)에 등장했던 스피드 바이크 장면은 <스타워즈> 시리즈 전체에서도 속도감과 박진감이 대단했던 장면이다. 이 장면은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1988)로 흡수되었고 <아키라>에서 등장했던 거대한 에너지가 반구를 넓혀 가며 도시를 집어 삼키는 장면은 <터미네이터 2>(1991)에서 핵폭발 장면으로 응용되었다. <터미네이터 2>가 정리한 핵폭발 장면들은 이후 할리우드 핵폭발의 기본이 되어 최근작 <콘스탄틴>(2005)처럼 지옥불이 도시를 휩쓰는 장면에도 응용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고받기가 활발한 것은 독특한 발상을 잘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그런 독특함을 실사로 거뜬히 소화해내는 할리우드가 서로를 잘 보완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에 영향을 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할리우드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 모두 세계적인 배급망을 갖고 있어 서로 접하기 쉽다는 점과 미국을 동경하는 일본 분위기와 일본에 환상을 갖는 미국 분위기가 맞아떨어지는 탓도 있다. 특히 미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영향받는 것이 어린이, 청소년들이어서 당분간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고받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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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키라>에서 <터미네이터 2>로 이어진 거대한 폭발 장면. <터미네이터 2>의 핵폭발 장면은 핵전쟁의 위험을 너무 실감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편집되었다가 LD와 DVD로 살아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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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olco |
| 일본 애니메이션을 할리우드로 흡수한 대표적인 영화가 된 <매트릭스> 시리즈의 완결편은 <매트릭스 레볼루션>(2003)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대결 장면에서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를 그냥 가져다 써서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에 정통한 어느 미국인 평론가 표현을 따르자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드래곤 볼>을 섞었다고 할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이명세 감독이 만들어낸 영상은 배우들을 이동차에 실어 움직이는 등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여러 노력을 거쳐 만들어낸 것으로 충무로에서 가능한 발상과 표현력을 보여준 걸작이었다.
이명세 감독이 만들어낸 영상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내 <매트릭스>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달궜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워쇼스키 형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새로운 영상 자극이 필요하다면 충무로 영화까지 섭렵하는 할리우드의 소화력이 무섭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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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쇼스키 형제는 침묵했지만 <매트릭스> 시리즈에 비를 내리게 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이명세 감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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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B外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