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해일에 원나라의 지정 연호를 폐지하였다.
왕이 교지를 내리기를, “널리 생각해 보건대 우리 태조께서 창업하시고 여러 조상들이 서로 계승하여 모두 선대의 업적을 이어서 의관제도와 예악이 찬란하여 볼 만하였도다. 요사이 나라의 풍속이 바뀌어 오직 권세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기철 등이 군주를 떨게 하는 위세를 기회로 삼아 나라 다스리는 법을 뒤흔들어서 관리를 선발하고 자리를 이동시키는 것을 다 자기의 기분에 따라서 하였으며 법령은 제 마음대로 신축(伸縮)하였다. 남이 토지를 가지고 있으면 속여서 이를 차지하고, 타인이 노비를 가지고 있으면 빼앗아 차지하였으니 이것이 과인이 덕 없는 소치인가, 아니면 정치의 기강이 서지 않아서 통제할 방법이 없어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난세와 치세가 순환하여 반드시 극에 이르면 변하는 것처럼 하늘의 도리가 그러한 것일까? 깊이 그 까닭을 생각하며 늘 근심하게 되었다.
다행히 요사이 조상의 신령에 힘입어 기철 등이 죄를 짓고 처형되었고 석기(釋器)는 서자일 뿐 아니라 종의 자식인데도 반역을 꾀하였으니 손수경과 같은 무리도 법전에 정한 형벌에 따라 처형하였도다. 이제부터 정신을 가다듬어 통치하기를 도모하고 법령을 정비하여 기강을 정돈하며 우리 조상들의 법을 회복시켜 기필코 온 나라와 함께 혁신하여 백성에게 실제적인 덕을 펴고 큰 명을 하늘에서 이어받고자 하노라. 2죄[교살형, 참수형] 이하는 전부 면제해 주고, 기철, 노척, 손수경 등에게 잘못 속아 죄에 관계된 자도 역시 관대하게 용서할 것이다.
<고려사> 권39, 세가 공민왕 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