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에밀 졸라
19세기의 서양 미술사에서 미술평론은 문학인들이 많이 썼다. 새로운 유형의 그림을 그리는 젊은 화가들을 후원한 비평가 중에는 유명한 문인이 많았다. 보들레르, 말라르메, 에밀 졸라 등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당시의 문학인은 진보적인 사고를 하였다. 오늘에는 수필인이 미술가에 비하여 엄청나게 보수적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화는 잡지에 호평을 하여 실어 준 졸라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그려준 것이라고 한다. 졸라는 아카데미나와 대중들이 적대시 하였던 젊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열렬히 옹호해 주었다.
1867년에 마네에 대하여 전기적이고, 작품의 비평적인 글을 아주 길게 써서 잡지에 발표하였다. 이때의 마네는 살롱전에도 낙선을 하고, 대중들의 시선도 곱지 않아서 아주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었다. 졸라는 대중들이 싫어하는 그림을 호평하여 게재한 댓가로 잡지에 당분간 기고를 할 수 없었다.
졸라가 쓴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우리가 알고 있는 마네의 대표작을 언급하고 있다.
졸라는 19세기 후반기에 서양에서 유행하였던 과학신봉 사상에 푹 젖어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과학적 분석에 의한 사실적 그림이라는 사실을 아주 높이 평가하였다. 종교와 철학이 기능을 상실해가는 시대에 과학이 미래의 인류를 구원해주는 구세주로 생각하였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의 개념은 절대적인 미가 있다. 예술가는 능력껏 절대미를 표현해 내어야 한다. 그러나 졸라는 절대미를 인정하지 않았다. 예술가는 각자의 개성적인 미를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전통의 부정을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그래서 마네를 모더니즘의 원조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개성을 드러낸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마네 그림의 특징은 극도로 단순화 하면서, 색조를 이용하여 물체의 묘사를 명확하고, 질저정연하게 묘사한 것이다. 마네의 기법은 무모할 만큼 단순한 것이지만 물감만은 용의주도하게 사용함으로 아주 세세하게 표현하였다. 대상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대로 옮겼다.. 전통적인 회화의 기법은 미술관에 가서 대가의 그림을 보고 닮게 그렸다. 마네는 대상물을 보고 자신만의 해석을 하여 그렸다.
이 비평문에서 졸라가 예로 든 마네의 작품은 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 피리부는 소년 등으로 지금도 대표작으로 꼽고 있다. 빛으로 충만한 화면은 간결하게 표현하여 단순성을 부여한 것이 마네 회화의 특징으로 꼽는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예로 들면 풀밭 위에서 소풍을 즐기는 이야기식의 내용으로 이해하지 말고, 넓게 채색된 경고한 전경, 미려하고 밝은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 빛나게 묘사한 육신, 유연하면서도 강렬한 물감의 사용 등이다. 명암에 의한 입체감보다는 색면의 강렬한 대비 효과만으로 읽으라고 하였다.
졸라의 평문은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마네의 미술을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