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나’나 ‘잘난 나’ 모두 ‘나’입니다. 잘난 나를 내세울 때 분별심(分別心)이 생기고 못난 나를 부정하고 싶을 때 분노가 생깁니다.”
연일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한창이던 전북 진안군 성수면 원불교 만덕산 수련원. 50여명의 사람들이 최영돈 법사(54·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의 마음공부 강의를 듣고 있었다.
무더위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꼿꼿한 자세로 강의를 들었다. 이 자리는 원불교 청년회 등이 신도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마련한 특별수련회였다.
최 법사는 재가(在家) 신도지만 원불교 최고 의결기구인 수위단(首位團)의 멤버로 교단 내에서 ‘새삶회’를 운영하며 젊은층을 위한 포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원불교의 마음공부에 대해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교차로에서 직진하다가 옆에서 차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두 차가 급정거했다. 직진 차에 우선권이 있으니까 상대 차가 잘못한 것. 그런데 상대 차 운전자가 ‘운전 똑바로 해’라고 소리친 뒤 그대로 차를 몰고 갔다면 어떨까.
“바보가 된 느낌이 들겠죠. 못난 나를 받아들이기 싫은 잠재의식 때문에 분노가 치솟습니다. 이런 마음을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루 종일 분풀이 상대를 찾습니다. 동료나 부인에게 공연한 트집만 잡습니다. 바보 안 되려고 하다가 진짜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습니까?”
그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차근차근 제시했다. 마음이 어지러운 상황을 접했을 때는 우선 마음의 작용을 ‘정지’한다.
마음은 잡으면 생기고, 놓으면 없어지는 것. 마음을 방치해 두면 수없는 업을 짓게 된다. 상황에 따라 생겨나는 마음을 딱 멈추고 공부할 때가 왔다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관찰한다. 옳다 그르다, 잘못이다 아니다를 판별하지 말고 무심히 바라보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성공적이지만 마음을 처리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하겠다고 평소 결심하고 훈련한 대로 마음을 써야 한다. 마음이 일어날 때 잡지 못했다면 마음이 일어난 후에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이처럼 원불교의 마음공부는 정해진 형식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을 챙기는 무시선(無時禪)을 강조한다.
강의가 끝난 뒤 7, 8명씩 모여 앉았다. 마음공부의 경험을 대화를 통해 나누는 ‘회화’ 시간. 쑥스러워 하던 사람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사법연수생인 오세웅씨(33)는 “아까 강의를 듣다가 졸고 있는 사람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것이 우월감에서 비롯된 잘못된 마음인 걸 깨달았다”며 “삼복더위에 마음공부를 위해 이곳을 찾은 것만 해도 감사하고, ‘전날 힘들게 수련해서 졸았겠지’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화여대생 강신오씨(22)는 “다른 사람의 나쁜 행동이나 순수하지 못한 마음에 대해 선악의 잣대로 분별하지 말고 잘못 길들여진 습성 때문에 나온다고 생각하라는 가르침이 인상 깊었다”며 “선악으로 나누면 상대가 밉지만 이를 습성이라고 보면 습성만 고치면 된다는 자비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3박4일의 수련기간 중 마음공부의 경험을 5분간 발표하는 ‘강연’, 하루의 수련을 글로 써서 법사의 조언을 받는 ‘일기’, 오전 5시부터 1시간 동안 갖는 좌선 염불 등 기본 수행도 한다.
▼유무념(有無念) 일기 쓰기▼
마음공부를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유무념 일기를 매일 쓰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을 챙기고 행동하면 ‘유념’, 방심한 채 하면 ‘무념’에 속한다.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을 정하고 그 다음 ‘하지 말자는 일’을 생각한다.
이것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결심한다.
하루 중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하고자 하는 일’을 했는지, ‘하지 말자는 일’을 안 했는지 점검해 일기를 쓴다.
또 ‘하고자 하는 일’을 했어도 마음을 챙기고(유념) 했는지 안 챙기고(무념) 했는지 따져본다.
처음엔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유념, 무념의 횟수만 살펴본다.
점차 익숙해져 유념이 무념의 횟수보다 많아지면 일의 결과까지 함께 평가한다.
최영돈 법사는 “막연히 ‘화를 내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며 “평소 꾸준히 훈련해야 제대로 마음을 처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