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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중국 오악중의 서악)
華山(2154.9m) - 중국 섬서성 위남시
산행일 :
기후 : 맑음 (최고 25℃), 아침에 연무가 끼었으나 오후에 점차 사라짐
동행인 : 하나은행산악회 회원 및 가족 22분, 거림산악회 4분
산행거리 : 케이블카에서 내려 왕복거리 약 10km
코스 :
케이블카(500m) - 기념정(300m) – 북봉(300m) – 기념정(1,500m) –
금쇄관(400m) – 중봉(500m) – 동봉(2,000m) – 서봉(1,000m) –
남봉(500m) – 장공잔도(1,000m) –
금쇄관(2,000m) – 케이블카
산행시간 : 4시간 (기념정 원점회귀)
산행비용 : 입장료 120위엔, 케이블카 왕복 110위엔 편도 60위엔, 셔틀버스 20위엔, 장공잔도 기하정 안전벨트 각 30위엔 (합계 310위엔)
<화산소개>
화산(華山)은 중국에서 “기험천하 제일산(奇險天下第一山)”과 중국 도교의 사대명산(四大名山)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한국에는 좀 덜 알려진 듯하다. 화산의 상점에 한국인이 좋아할 수 있는 기념품은 별로 없다. 화산은 중국 5岳 중의 하나로 서안 동쪽 약120Km 지점에 위치하며(버스 약2시간) 크고 작은 36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36개 봉우리는 한 개의 크다란 바위덩어리이고 등산로는 다른 중국의 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돌계단이며 3999계단이라고 한다(*태산 7412개). 초록으로 물든 봉우리 사이에 동서남북으로 네 암봉이 암탉이 알을 품듯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세이다.
중국의 오악은 동악으로 산동성의 태산(泰山:1,545m), 서악은 섬서성의 화산(華山: 2,160m), 북악은 하북성의 항산(恒山:2,017m), 중악은 하남성의 숭산(嵩山:1,512m), 남악은 호남성의 형산(衡山:1,290m)이며, 황산은 오악보다 우위를 점하는 명산이다.
화산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한 산으로 유명하며 이산의 이름에 대한 내력은 화산의 산봉우리는 한 송이의 꽃 모양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산의 봉우리가 꽃 모양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꽃 花와 빛날 華를 같이 사용했다 하며 일명 太華山이라고 불리어진다.
화산은 북봉인 운대봉(1614m), 서봉인 연화봉(2038m), 남봉인 낙안봉(2160m), 동봉인 조양봉(2100m), 중봉인 옥녀봉(2042m)으로 모두 5개의 峰으로 이루어지며 순서대로 코스를 잡으면 되고 이산의 최고봉은 남봉으로 2,160m이며 험준하고 웅장하며 거대한 암봉이다.
역사적으로 화산은 중국 민족문화의 발상지로서 “중화”, “화하”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사기에는 요, 순, 진시황, 한무제, 측천무, 당현종 등 56위의 황제가 화산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수많은 명가의 족적과 필적이 있다. 수당이후 이백, 두보 등 문인이 화산에서 시를 읊었고 기록을 남겼다.
화산은 무협지 화산파의 본거지로서 화산파는 6대 문파중 하나이며 오악검파의 하나로서 많은 고수들을 탄생시킨 곳으로 현재 화산의 기념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화산론검이라고 새긴 목검이다.
등산로는 중국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옥천원- 매표소-오리관-석문-운문-태화인후-금수관으로 연결되는 화산계곡과 동문을 거쳐 케이블카를 타고 도교의 발상지인 북봉 아래로 올라가서 북봉을 돌아본 후 서봉-남봉-동봉-중봉을 순서대로 돌아내려 와서 케이블카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네 봉우리가 몰려 있으므로 어디를 먼저 가도 누가 뭐라고 안하고 한 봉우리를 두번 올라가고 시간이 약 30분 더 걸릴 뿐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돌아본다면 빠르면 3시간 늦으면 6시간이 걸릴 것이다.
산행 적기는 봄과 가을이며 봄이라고 해도 암봉이라서 나무와 꽃이 드물어 봄에 꽃이 별로 없고 가을에도 단풍은 없다고 봐야 한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기때문에 위험하고 여름에는 무더워서 물을 많이 준비해야 화산은 해발2160m로 100m올라가는데 기온이 0.6도씩 떨어짐으로 시내보다 13도 낮다고 보면 된다.
황산이 예쁜산이라고 하면 화산은 웅대한 산이라고 본다. 청나라 시인 위원(魏源)은 항산은 걷는 것 같고(恒山如行) , 태산은 앉은 것 같고(泰山如坐), 화산은 서 있는것 같으며(華山如立), 형산은 날아가는 것 같고(衡山如飛), 숭산은 누위 있는것 같다고(崇山如臥) 5악을 묘사 하였다.
화산이 섰다(立)는 것은 기암절벽들로 험하다는 의미이며 험한 바위봉들이 꽃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동서남북 4 봉우리가 직벽으로 서 있다. 그래서 화산입구에서 곧장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중국사람들이 뽑은 중국의 10대명산은 산둥(山東)성 타이산(泰山•태산), 안후이(安徽)성 황산(黃山), 쓰촨(四川)성 어메이산(峨眉山), 장시(江西)성 루산(廬山), 티베트 초모룽마봉(에베레스트산), 지린(吉林)성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 산시(陝西)성 화산(華山), 푸젠(福建)성 우이산(武夷山), 대만 위산(玉山), 산시(山西)성 우타이산(五臺山) 이다.
<화산으로 가는 길>
5월 21일 용문석굴을 보고나서 낙양용문역에서 화산역까지 고속철도로 1시간을 이동하면서 중국이 참으로 빨리 발전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여기저기로 기찻길과 고속도로가 쭉쭉 뻗어나가니 어찌보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기차가 중국이다.
화산역에서 호텔로 이동하니 초작과는 달리 호텔앞에 음식점이 없다. 가이드에게 음식점이 어디있느냐고 물으니 길 건너편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과연 음식점 앞에 자리를 펼쳐놓고 몇몇 현지인들이 술을 들이키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곳을 찾으니 허기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니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다. 양꼬치 20개를 필두로 맥주 20병을 시키면서 안주를 시키고 함께 화산시의 밤을 즐긴다.
<서안 – 화산 – 낙양 – 정주 기차노선>
그리고 호텔에 오니 몇몇은 안마를 받으려고 서 있었으나 별로 내키지 않아 그대로 숙소로 들어왔다. 이 호텔은 중국식 전통 호텔이다. 가운데 정원이 있고 주위로 객실이 배치되어 있다. 몇분은 발마사지를 하러 호텔의 맛사지 ?事막? 들어간다. 좀 비씨고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화산대문을 통과하니 이제 본격적인 산악도로이다. 바위를 깨뜨리고 계곡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약 20분을 중앙선이 있는 협곡도로를 타고 올라 주차장에 닿으니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케이블카(왕복 요금 110元, 전장 1,524m, 낙차 755m)를 타고 오르기로 돼 있는데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반 정도는 한국인이라서 외국같지가 않다. 여기 표지판도 한글 병기가 되어 있는 곳이 많다. 걸어서 오르는 길이 있는데 워낙 고도차이가 많다 보니 계속 오르막길로 800미터의 고도를 높여야 한다. 적어도 1시간을 걸릴 것인데 땀을 진국으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 걷는 길을 오르면서 화산의 진면목을 느껴보리라
줄을 따라 30분이나 소비하고 나서 케이블카에 올라탄다. 케이블카는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쓰릴을 느낄 수 있다. 기둥을 지날 때마다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고 케이블카가 좌우로 흔들린다. 고공에서 느끼는 비행감이 짜릿하다.
거의 수직으로 깎아 내린 암벽의 협곡사이를 지나고 암봉을 배경으로 많은 소나무들이 환영의 꽃다발을 흔들고 시원한 바람이 스쳐지나간다. 좀 더운 날씨라서 케이블카 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하게 느껴진다.
08:41 호텔 내부에 정원이 있는 전통적인 화산시내의 중국 호텔이다
09:03 시내에서 화산을 올려다 본다
10:05 화산으로 가는 케이블카는 또 다른 이벤트
10:30 북봉으로 오르는 길은 너무 복잡하다
우회해서 돌아가면 되는 것을 기다리다 포기한다.
<북봉>
케이블카에서 내려 돌계단을 타고 약 300m를 오르면 기념정(紀念亭)이 있는 암반 능선으로, 약 1억 3천만년 전에 형성된 운모화강암석(雲母花崗岩石)에 중국 모양이 만들어진 바위를
우측 북봉정(北峯頂) 석문을 통과하여 100m가량 가면 북봉으로 오를 때에는 쇠밧줄을 잡고 오르는데 많은 이들이 이 곳으로 몰려 줄을 10분이나 섰으나 그대로 포기하고 우회해서 오르니 금방 오른다. 그래서 거기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돌아오라고 하니 많은 이들이 올라온다. 모두 북봉정상에 모이니 산악회 깃발을 앞에 걸치고 자연스럽게 단체사진을 찍게 된다. 오고가는 중국인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북봉에서는 동서남중봉을 모두 올려다 볼 수 있고 그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남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이들이 나머지 봉우리를 오르고 여기를 와서 산행의 추억을 더듬으며 사진으로 남긴다. 창룡령으로 가는 이들이 공룡의 등을 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꿈틀거리는 비단 실같이 화려한 색으로 빛난다.
북봉의 여관 가운데를 지나 내려오니 기념정이다. 기념정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선두그룹만 형성해서
10:31 화산 고사목도 봉우리마다 정상을 장식한다
마치 죽어서도 화산을 기리는 것처럼
10:33 창룡령은 푸른 용이 승천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올라가는 모습이
용의 등뼈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어느 중국시인은 비단처럼 빛난다고도 했다
10:33 북봉에 왔으니 단체사진을 날리지 않을 수 없다. 인근 중국인들이 호기심있게 쳐다본다
10:46 중국인들은 서로 뭉치려고 노력한다. 중국 지도를 닮은 화석을 전시해 놓았다.
10:50 귀를 붙이고 올라야 한다는 찰이암이다. 워낙 험하여 바짝 몸을 붙이고 오를 수 밖에 없다.
<창룡령-금쇄관>
우리들은 좌측 찰이애(擦耳崖-암벽에 귀가 스칠 정도로 경사진) 방향으로 들어서 군중의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인파에 밀려 빨리 걸을 수도 없으니 오히려 사방을 둘러보기가 좋고 암반을 인위적으로 쪼아 만든 계단을 타고 가다 와우석(臥牛石)으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천제(天梯) 방향으로 직진하면 늘여진 쇠사슬을 붙잡고 오르내리는 두 개의 계단길이 나온다.
그리고는 일월암(日月岩)이라는 바위굴을 처음 보게 되는데 아래 쪽 큰 굴의 입구는 문이 달려 잠겼고 바로 위의 작은 굴 입구는 높아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이후 이런 모양의 굴을 서너 개 더 지난다. 산에서 수도하는 이들이 관광객들로 인하여 도량이 깊어질지 의문이다.
여기 중간에 한유투서처라는 곳이 있는데 당대의 문필가인 한유가 이 곳을 왔다가 이렇게 험한 곳을 와서 돌아갈 것이 막연하여 유서를 써놓았다는 곳이다. 아마 그 때는 이런 돌 계단이 없어서 이 곳을 릿지로 갔을 텐데 그 위험함이란 상상이 될 만하다. 목숨을 내 놓고 갔으리라.
도룡묘(都龍廟) 마당에 향냄새를 피하여 창룡령(蒼龍嶺 ) 날등 오름 길로 들어선다. 날등 상단부 운해(雲海)에서 10분을 오른 비어령복도(飛魚領復道)와 오운봉(五雲峰) 삼거리에서는 W·C 표시가 된 오운봉 방향으로 틀어 2분쯤 가면 화장실과 쉬어가기 좋은 장소가 나온다.
또 다른 양 갈래 절벽 계단을 기어올라 금쇄관(金鎖關)을 통과하여 조금 가면 뒤의 북봉을 비롯하여 동, 서, 남, 중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금쇄관에는 연인들이 자기들 이름을 열쇠에 적고 소원을 빌어 걸고 사진을 찍어 보관한다. 적어도 7년을 보장한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걸게되면 자연소모가 될 게 뻔하다. 행운의 열쇠 속에서 동쪽의 암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중국인들이 눈에 띈다.
11:08 창룡령은 멀리서 보면 매우 험하지만 실제로 구두신은 신사 숙녀가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11:48 금쇄관은 금으로 만든 열쇠를 걸어 놓는 곳인데 정말 이들은 여기서 소망을 풀어놓는다
<중봉>
금쇄관 갈림길에서 먼저 중봉을 가기로 한다. 어떤 산 봉우리를 예상했는데 도교사원이 버티고 있다. 좀 실망인 것이 산정상에 오르면 주위 경관을 보고 호연지기를 넓혀야 할 텐데 도교사원에 옥황상제가 버티고 앉아있으니 이거는 좀 심했다. 2천미터가 넘는 산이 이렇게 동네산보다 더 초라할 줄 몰랐고 도교사원이 이 중봉을 모두 장악하고 버티고 있을 줄도 몰랐다. 도인들이 여기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터전이다. 동봉과 남봉 사이의 약간 꺼진 곳에 위치한 중봉(玉女峰 2,042m)은 '중봉(中峰)' 현판이 걸린 석문을 통과한 작은 사당 앞마당 격으로 양 옆으로 동봉과 서봉을 끼고 있다. 다시 석문을 내려오면 우측은 동봉 뒤쪽이나 남봉가는 길이고 좌측은 동봉 앞쪽, 금쇄관 갈림길, 서봉으로 갈 수 있다.
중봉인 옥녀봉은 가운데 위치하여 4개의 봉우리를 조망할수가 있으며 춘추전국시대 은둔거사 소사라는 사람은 퉁소를 아주 잘 불렀다고 하며 진나라의 황제 목공에게는 예쁜 딸 롱옥이 있었는데 퉁소 소리에 감동되어 궁중생활도 버리고 이곳 중봉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고 하며 그래서 옥녀봉이라고 한다. 동봉, 남봉, 서봉에 싸여 있어 운둔생활을 하기에 적합하였을 것이다. 옛날에는 길도 닦여 있지 않았고 케이블카도 없었을 때니 깊은 운둔생활에 적합한 곳일 게다.
12:01 중봉은 정말 허접하다. 도교사원이 있을 뿐...
<동봉>
그대로 내려와서 금쇄관쪽으로 갔다가 중봉쪽으로가니 인봉정이 있다. 깍아지는 동봉 옆에 있는 정자에 몇몇 사람이 쉬고 있다. 그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져 있고 사방으로 암봉들이 기둥처럼 늘어서 있다. 사진 포인트가 몇 군데 있어 사진을 찍어주는 이가 반갑게 맞이한다. 중봉 턱밑에서 좌측 운제쪽으로 발길을 옮겨 절벽 위 넓은 터에 세워진 인봉정(引鳳亭)에서 벼랑 밑으로 펼쳐지는 경치와 서봉으로 가는 바위 능선의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서봉 허리의 잔도를 잠시 감상한다.
인봉정을 다녀오는 길은 약 50m 인데 중봉으로 가는 길에 접어드니 앞에 석벽이 나타나고 밧줄과 사다리가 있다.운제이다. 운제(雲梯)라고 쓰인 벼랑에는 철계단을 만들어 놓아 그 것을 이용하는 것이 보다 수월하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송과장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교대로 사진을 찍어준다. 운제란 이름은 거창하지만 높이는 약 10m에 불과하다.
이어 올라선 동봉(朝陽峰 2,100m)에는 사면에 각각 다른 글귀가 새겨진 탑이 있고 좌측 천길 낭떠러지 쇠사슬 안 쪽으로 조심스럽게 진행한 조금 높은 봉에 동봉절정(東峯絶頂)이라 새겼으며 그 옆에는 '華山東峰測量標志' 스텐레스 원판이 설치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삼각점과 같은가 보다. 멋들어진 소나무와 그 밑 절벽에는 동봉반점과 2층 석루(石樓) 박태(博台)가 있다.
동봉의 동쪽 아래에는
동봉을 일영봉이라고 한다. 해맞이를 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앞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남봉이 저 건너편의 암봉인 줄 알았는데 남봉, 중봉, 동봉이 하나의 봉우리에 붙어있어 봉우리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 지나치다고 할 정도이다. 남쪽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는 그 멋이 빼어나지만 개발이 되지 않아서 절벽을 내려와 절벽을 올라가야 한다. 아마 언젠가는 개발이 될 것이다.
12:18 동봉은 정말 멋있다.
오르는데 감동있고 조망은 더 감동이다.
12:39 하기정은 바둑을 두는 곳. 물론 신선들이 겠지만,
여기를 가려면 30위엔을 내고 수직절벽을 내려가야 한다.
12:50 동봉 영객송은 황산에 있는 영객송처럼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산꾼을 맞이한다.
13:12 1000미터 이상을 걷다보면 서봉에 닿는다. 멀리서 보면 수직절벽의 맨 꼭대기이다.
<서봉>
동봉에서 내려오니 남봉과 서봉 안내판이 있다. 정상이 있고 장공잔도가 있는 남봉을 마지막에 오르기로 하고 서봉으로 향한다. 서봉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산책길이다. 많은 중국인과 한국인들과 함께 서봉을 향하여 올라간다.
'진악궁(鎭岳宮)·서봉' 방향으로 들어서 잠시 후 보게되는 우측 암벽은 솜씨 좋은 조각가가 어느 지방 산줄기를 깎아 놓은 듯 기막힌 광경을 연출한다. 여기서 왼쪽은 남봉이요 오른쪽은 서봉이라 서봉에서 남봉을 가려면 이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한다.
서봉가는 길에는 침향벽산구모(沈香劈山救母)라는 곳을 지난다. 말뜻은 침향나무가 산을 쪼개어 모친을 구했다는 것 같은데 무슨내용인지 모르겠다.
능선으로 향하는 동안 진악궁 문을 통과하면 일월암과 비슷한 모양의 '약왕동(葯王洞)'이라는 동굴이 있고 수령 600년이라는 소나무 일종의 거목도 보고 나서 날 등에 닿게된다. 서봉에 오르니 길에 음식과 과일을 팔고 있다. 중국에서는 산이 하나의 편의점이고 호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연환경 보호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봉정상에 오르니 앞에는 남봉이 버티고 있다. 저 아래로 북봉이 아련하다. 동봉이 중봉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마치 징검다리처럼 북봉, 창룡령, 금쇄관, 동봉, 중봉, 남봉이 한 줄로 서봉으로 달음질 쳐 오는 듯하다.
서봉의 북쪽에도 탑이 있다. 그런데 사진 포인트가 여기에도 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듯이 길다란 바위가 절벽위로 뻗어 있고 그 위에 앉거나 서거나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여기를 놓칠리 없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천하제일신혼방으로 내려가려는데 중국인 여인이 여기로 가서 남봉을 가면 너무 멀다고 아까 왔던 길로 가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왔던 길로 들어선다.
13:17 여기서 한번 날아볼까.
그러나 밑에 받침석이 있어서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13:33 산에 이렇게 많은 낙시가 있어서야
13:38 화산의 정상인 남봉을 오르며 서봉의 지나온 길을 보니 암릉의 멋이 절로 우러난다
14:05 우리 화산 올랐시유
<남봉>
올랐던 단애의 능선을 타고 내려가 남봉을 향해 부지런히 걷지만 오르막길이라서 걸음이 더디다. 굴 사이로 바라보이는 운해가 흐르는 고산준령, 수 백년을 암반에 뿌리내리고 억새게 살아 이름을 얻은 나무들, 좌우 전후 어디에도 건성으로 봐 넘길 것이 없다.
남봉은 정상이니 절벽끝에 매달려 있는 몇백면 묵은 소나무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음식점이 하나 있고 어디서인지 물을 올려 쓰고 있다. 남봉에 이르니 영천지(迎天池)에 파란 하늘이 가득 담겨있었는데 동전 때문에 하늘이 조금 어그러져 보인다. 주봉인 정상은 많은 암봉을 거느리고 든든히 서있다.
중국 5악(동악-산동성 태산, 서악-섬서성 화산, 남악-호남성 형산, 북악-산서성 항산, 중악-하남성 숭산) 중 하나인 남봉에 올랐다. 안내지도에 의하면 '남봉(落雁峰) 2160.5m'라고 되어 있지만 2007년 4월에 세운 정상표지석에는 '華山(南峰) 2154.9m'라고 새겨 화산 주봉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상의 직경 3m, 깊이 1m인 앙천지(仰天池)에 물이 고여 있으며 가까이 보이는 3개 산봉 우측의 바위 기둥 세 개의 봉우리를 삼공산(三公山)이라고 한다.
화산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모두 이 아래로 보인다. 북봉은 까마득하게 아래에 있고 서봉으로 가는 암릉이 활처럼 뻗어있고 동봉의 칼날능선이 오른쪽으로 뻗어있다. 양 날개 사이로 창룡령과 북봉이 사다리처럼 멀리 펼쳐져 있다. 화산시내가 멀리 드러난다.
14:32 이제 장공잔도를 가볼까.
회장님, 문팀장, 송미영, 김팀장, 김지점장 등 몇 분이 벌써 다녀왔다.
우리가 갈 때는 한적해서 좋았다.
<장공잔도>
남봉에서 장공잔도로 가는 줄 알았는데 장공잔도는 동봉 뒷면을 향하여 약 300m를 내려가서 남천문을 통과해야 한다. 남천문에서 50m 진행하니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앞에서 장공잔도를 가는 이들에게 안전벨트를 대여해 주고 있다. 대여비는 30위엔인데 아래에서 올라오는 이들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카리비나 두개를 걸고 하강 10m, 수평이동 30m, 상승 5m를 가서 무협지에 나오는 화산파의 본거지 동굴로 들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이 목적이다.
하강길은 올라오는 이가 있으면 무조건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괜스리 내려갔다가 시간만 지체하고 올라오는
화산파 본거지는 조그만 도교 기도동굴이 마련되어 있다.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좀 숨을 돌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 돌아가는 길은 더 쉬웠다. 한 번 경험했는지라 무서움도 없고 성큼성큼 다가서지만 반대로 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 외국인들에게 양보를 하면서 “헬로” 하면 그들은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니 하오”한다. 그러면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그들이 다시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절벽에서의 인사는 이렇게 흐뭇한 인정을 남긴다. 다시 오르막길을 거쳐 잔도 입구에 이른다. 갔다 오니 좀 허전한 생각이 들고 지나치게 돈벌이에 집중한 곳에 갔다 왔다는 생각도 든다. 주말에는 하루에 500명 정도 온다면 우리돈으로 3백만원의 수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5:15 장공잔도, 이름만 듣던 곳.. 드디어 여기에 섰다
14:36 장공잔도를 거쳐가면 겨우 이런 자그마한 도교당뿐이다.
그런데 여기가 무협지 화산파의 본산이라니
15:56 이제 내려오면서 선장이란 곳을 지난다. 어떤 신령한 이의 손바닥이 보일까?
16:23 내려오는 길은 비어령 참으로 한적하게 오늘을 느낄 수 있는 오솔길
<하산로 – 비어령>
쉬 하면서 심호흡을 하고 배를 움켜쥐고 내려가면서 식사할 곳을 찾는다. 남천문 아래 쉼터에 자리를 잡는다. 지점장님이 곶감 2개를 주어 먹는데 이 맛이 꿀맛이다. 가이드가 챙겨 준 도시락은 밥과 반찬이 범범이 되었고 고추장이나 김도 없어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지점장님은 동봉으로 가신다고 해서 갈 길이 바쁘니 먼저 가시라고 하고 좀 더 쉰다.
케이블카는
다시 선두그룹이 뭉쳐 계속 아랫길을 밟으며 내려오니 그 길은 참으로 시원하고 밝은 상쾌한 길이다. 그렇게 북봉갈림길을 거쳐 내려오니 케이블카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동봉에서 오시는 김지점장님을 만나 케이블카 정류장에 닿는다.
16:36 이 할아버지는 75세인데 삶을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2000천미터가 넘는 산으로 오른다.
취미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고 생업을 위해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른다.
우리 선량한 산꾼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이 분을 도와준다
벗이 되어주고 근황을 물으면서 생활에 조그만 보탬을 더하며,
16:49 화산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안고 내려오면서 아리랑을 부르는 중국인 가이드
하모니카 소리와 도라지 타령은 잠시 떠났지만 나그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매너좋은 중국인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17:00 내려오는 길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지만
한마음 한가지로 화산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은 너무 시원하다
17:28 케이블카 하산
20:52 화산북역에서 바라본 화산 원경
하산하여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청도 맥주를 시키고 수박을 시켜 또한번 잔치를 벌이니 화산에서 쏟은 땀만큼 시원함이 몰려온다. 편의점에서는 많이 팔아주니 아주 좋아라 한다. 현지 가이드소녀가 밖에서 가이드가 기다린다고 또박또박 중국어로 얘기하는 것을 알아듣고 밖으로 나오니 가이드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은
좀 여유로운 여행을 했으면 하는데 너무 숨가쁘게 돌아간다.
이렇게 화산의 추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더듬어 본다.
(포인트별 산행시각은 한국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