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구간 1999년 3월 14일(일) 흐림. 비 조금
정맥능선:가루고개-동암산(33분)-은봉산(62분)-간대산(59분)-
성연고개(129분)-성왕산(47분)-198봉(75분)-윗갈치고개(30분)
약 23Km 7시간 15분 소요
4시가 되지 않은 시각에 일어나 등산장비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원동에 있는 청주해장국 집으로 가서 아침식사로 한 그릇 반을 먹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나침반을 챙겨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가루고개를 향해 차를 몰았다. 도로에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아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당했다는 해미읍성을 지나 삼화목장의 초원이 나타나자 산행이 가까워져 마음이 설레인다. 7시 20분부터 빠른 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널찍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니 능선 바로 왼쪽에서는 서해안 고속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모래고개 정맥 능선은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마구 파괴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1차 목표지점인 동암산 오르는 정맥 길은 처음에는 무덤까지 가파르게 올라갔고 평탄한 길이 나타나자 솔잎을 밟으며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가끔 철조망이 나타나는 능선을 지나 동암산에 오르자 고스락에는 삼각점과 깃대가 세워져 있었다.
무르티고개로 진행을 하는데 오른편 건설현장의 쇠망치 소리가 신경을 거스린다. 한번 가볍게 내려가다가 오르막이 되면서 작은 봉우리에 이르고 완만한 내리막의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진행 도중에 영지버섯 2개를 얻고 서산휴게소가 있는 32번 국도인 무르티고개에 도착했다. 고개마루에 있는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가 돋보인다. 휴식도 없이 은봉산을 향해 한번 오른 후 평평하게 나아가다가 무덤 2기가 있는 곳에서 내려가니 소로가 지나가는 매봉재가 나타난다. 계속 오르는 길로 진행하니 송전탑이 나오고 은봉산이 가까이 보였다. 지도에도 높이가 표시되어 있는 봉에서 왼쪽(서쪽)으로 틀어 조금 더 진행하여 은봉산 고스락을 올라갔다. 고스락은 사방으로 탁트여 전망이 좋았다. 날씨는 흐렸지만 지나온 상왕산이 보였다. 북쪽 건너로는 손에 잡일 듯 가까운 봉화산이 있고 남쪽 아래로 성암 저수지가 넘실거린다. 은봉산은 산줄기가 갈리는 분기점이다. 정맥능선은 길이 좋지 않은 곳(서쪽방향)으로 가야 되는데 좁은 길에다 잡목이 많아 여름 산행은 곤란할 것이다. 날씨는 잔뜩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정맥 능선을 걷는 기분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고스락에서 두 번째로 나타난 작은 봉우리에서 길이 좋은 쪽으로 진행하면 정맥을 벗어난다. 작은 봉우리 고스락 밑에 왼쪽으로 길이 잘 나있는데 그쪽으로 가지 말고 봉우리를 오른 후 나침반 방향을 확인하고 진행을 해야 된다. 작은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정맥능선은 소나무 숲이었고 길이 좋아졌다. 이곳에서도 좋은 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정맥 능선을 벗어나니 올라가는 능선으로 가야된다. 솔잎이 수북히 깔린 소나무 숲길을 걸을 때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고 산 위에는 명당인 탓인지 연속해서 무덤이 나타난다. 올라간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나아가니 또 무덤이 나왔는데 그곳부터 길은 넓어졌다. 뛰어서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인 나분들 고개이다. 나분들 고개에는 쓰레기 집하장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간대산 오르는 길은 희미한 길이었다. 여름에 오른다면 시간도 지체되고 무척 성가실 것 같았다. 금방 도착한 간대산 삼각점엔 005 복구 760 건설부라고 써있었으며 은봉산, 봉화산이 잘 보였다. 아직도 갈 곳이 많아 쉴 새도 없이 서둘러 길이 없는 곳을 내려갔다가 올라가니 고산자 산악회 리본이 달려있다. 이곳은 리본이 있는 곳에서 뚜렷한 길을 피하고 오른쪽으로 가야 올바른 정맥능선을 탈 수 있다.
얼마 후 전망 좋은 바위에서 주변 경치에 취해본다. 산을 내려오니 낮은 정맥 능선이 도로로 변했다. 정맥 능선이 포장도로로 변해 이어지는 장자울 마을은 도로가 여러 군데 나있어 헷갈린다. 도로 따라 한동안 나아가다가 오른쪽 밭으로 변한 정맥 능선을 올라가니 넓은 길로 이어진다. 탱자나무가 줄지은 사이로 오르니 140봉이다. 고스락엔 송전탑이 세워졌다. 내려가는 정맥 능선에는 억새와 칡덩굴 등 잡초가 뒤엉킨 곳이라 누군가 길을 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금방 내려온 모가울 고개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앞에는 성황제단을 설치하였는데 주변에는 쉼터 의자도 있었다. 쉼터 의자에서 간식을 먹고 금방 삼각점이 있는 113.2봉에 올라갔다가 요란히 짖어대는 개의 소리를 뒤로한 채 장송지대를 지나니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는 걸 청승맞다 하겠지만 산을 좋아해서 자주 산에 가는 나에게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깊은 산중에서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할 때는 나뭇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만이 온산에 가득하고 오직 산과 나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도 산의 한 부분으로 산과 한 덩어리가 되어 산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다. 금남정맥 종주 때는 두 번이나 큰비를 맞으며 산행을 했는데 금북정맥은 오늘로써 17번째 산행인데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았다. 비가 많이 쏟아졌으면 좋겠는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맥능선 오른쪽에는 서산구치소 신축공사로 산을 마구 부수고 있어 씁쓸했는데 조금 내려오니 소로가 나타났다. 희미한 길을 따라 또다시 올라가는 정맥 능선에서 낙원 산악회 리본을 발견했다. 이렇게 종주 리본이 달려있는 곳을 보면 갈림 능선에 안 달려 있어도 내가 바르게 정맥 능선을 가고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12시 28분이 되어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성연고개에 도착했다. 리본을 달고 10분간 머무르며 주변을 살펴보니 민가 한 채와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내 이름과 한자까지 똑같은 성연고개를 보며 나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충남 서산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성연면은 면적이 42.58㎢ 에 9개리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 때는 성연부곡으로 불렸다가 조선시대에 성연면이 되었다. 성연천 유역을 중심으로 미곡 농업이 활발하고 마늘, 생강, 연초 등을 생산하고 서산 시내와 접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하다.
성연고개에서 성왕산 오르는 정맥 능선은 길이 잘 나있지 않았다. 첫 번째 봉을 오르고 난 후부터 나아졌고 2개의 봉을 오르고 내려가니 임도가 나타났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버려져있어 화가 난다. 또다시 첫 봉우리를 올라가니 오른쪽에 철조망이 쳐져있다. 고스락은 두 번째 봉우리에 있었고 길게 펴져 있었다. 삼각점과 깃대를 확인하고 고스락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 조망을 하니 남쪽 아래로 서산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헬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에 비는 그쳤다. 성왕산에서 무심코 길이 좋은 서쪽 방향으로 잘못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와 진행했다. 경사가 급한 길을 한동안 내려오니 성황당 고개다. 다시 오름길이 되어 작은 봉우리를 밟고 완만한 내리막길로 진행하여 북쪽은 비포장도로 남쪽은 시멘트 포장도로인 내동 고개에 도착했다. 내동 고개에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간 180봉은 전망이 좋아 지나온 정맥 능선을 관찰할 수 있었다. 180봉에서는 오른쪽(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야되고 조금 내려오니 임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임도에서 잘 살펴보니 198봉으로 연결되는 좁은 길이 나있고 조금 밑으로 진행하니 넓은 길로 전환된다. 천천히 위로 올라가 198봉에 도착하니 삼각점은 없고 부러진 깃대만 있었다. 윗갈치고개를 향해 진행을 하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에 있는 고산자산악회 리본을 따라갔다. 오늘은 고산자산악회 리본을 많이 보았다. 또다시 송전탑이 정맥능선에 거만하게 우뚝 서있어 쓴웃음을 짓고 송전탑 밑을 통과해 내려가니 폭이 2m나 되는 좌우 장송의 길이 나타난다. 조금 더 내려가 임도와 송전탑을 또 만났는데 주변에는 가구가 마구 버려져 있었다. 15시 50분에 29번 도로가 지나가는 성연면과 갈산 3동의 경계인 윗갈치고개에 도착했다. 앞으로 두 시간 정도는 더 산행할 수 있겠지만 수랑재까지는 9.8km라 도저히 갈 수 가없고 마땅한 탈출로가 없어 아쉽지만 산행을 마감했다.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호출택시를 부르지 않고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17시 20분에 차를 세워둔 가루고개에 도착했다.
해미읍에 와서 시간이 좀 있기 때문에 해미읍성을 둘러보고 피로한 몸을 가누고 운전을 했다. 홍성과 수없이 다녔던 청양을 지나 잘 달리던 차는 32번 도로와 35번 도로가 만나는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를 2km나 남겨둔 지점부터 밀리기 시작해 공주시내까지 교통체증을 일으켰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사고가 난 것일까?’ 지원조 없이 왕복 6시간 운전하고 단독산행을 23km나 하고 힘든 점도 참 많았지만 나의 생활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