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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 꽃밭이 있었던가 아니면 천상의 꽃밭을 닮았다고 이름하였는가? 감히 인간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 또한 아무나 갈 수도 없는 곳! 그곳을 우리는 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느꼈노라! 아! 천화대(天花臺)!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고 마음 속으로만 그려왔던 그 곳을 드디어 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느꼈노라. 애시당초 우리는 천화대에 대해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공룡능선이나 가던지 아니면 용기를 내어 용아장릉 정도나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개월 후 우리는 전문 클라이머 못지 않는 산꾼들로 변하게 되었다. 오늘의 천화대 등정을 위해 작년 10월 안전벨트와 하강기, 그리고 암벽화와 릿지화를 살 때만 해도 우리는 소풍가는 유치원생마냥 희희낙락거렸다. 그저 바위덩어리 한 두 개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 출발하기 위해 전날 속초 콘도에 도착한 우리는 아침밥과 도시락을 싸 놓은 후 잠깐 눈을 붙였다. 천화대 등정을 위해 이미 금요일은 대부분 휴가를 낸 상태였다. 그리고 토요일인 대망의 5월 1일 새벽 2시 반. 대장의 지시로 기상을 하자 말자 김치국과 쑥국을 섞어 아침 식사를 했다. 쑥은 속초로 오는 도중 도로변에서 뜯은 것이었다. 그리고 도시락을 챙겨 넣은 후 일사불란하게 차를 타고 설악동으로 향했다. 많은 인원이 천화대로 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다. 더구나 우리같이 워킹만 해오던 사람들이 절반을 넘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대장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많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위해 지난 몇 달간의 훈련을 상기하며 마치 종합시험이라도 치러 가는 양 비장한 각오로 신발 끈을 졸라매었다. 설악동에서 다시 대장으로부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서둘러 비선대를 향해 출발했다. 시계는 정확하게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은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금지 기간이다. 그래서 대장은 속보와 절대 정숙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문 채 헤드랜턴 불빛만 바라보며 잰걸음을 옮겼다. 5월이라고 하지만 설악산의 새벽공기는 싸늘했다. 더구나 3일전 영동지방에 폭설이 내린 터이다. 대장은 출발 전일부터 눈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천화대 뒷사면에는 잔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차피 선등을 떠야 할 대장으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선대를 지나면서 통제 철책을 넘었다. 다리 난간을 통해 철문 옆으로 올라붙었다. 밑에는 천불동 계곡 물이 소리를 내며 흘렀다. 잔뜩 긴장이 되었다. 2개의 통제 철책을 24명이 통과하는데 감시원이 눈치를 챘다. 우리는 정신 없이 넘어 왔는데 결국 후미 몇 명이 넘지 못하였다. 난감했다. 더 문제가 생기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 천화대 입구로 향하였다. 대장이 갔으니 문제해결이 되기를 기다리면서....다행히 얼마 후 대장은 웃으며 돌아 왔다. 그런대로 합의가 되었다면서... 5시 무렵 설악골 입구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드디어 제1피치를 오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였다. 여명이 밝아오는 천화대 초입에서 24명의 대원은 한 줄로 늘어서서 급사면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 1,2피치를 정신 없이 오르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우리는 이미 천화대 능선 상에 올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뒤쪽으로 장군봉과 적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울산바위가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다시 앞을 보니 왼쪽으로 칠형제봉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우리는 천화대를 이야기하면서 또 칠형제봉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였던가? 생각만 하여도 가슴 벅찬 칠형제봉이 지척간에서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칠형제봉의 침봉들은 날카로운 예각을 이룬 채 나란히 나란히 그 모습을 사이좋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깊게 패인 잦은 바위골을 언뜻 볼 수 있었다. 이런 감상을 오래 할 수는 없다. 쉴 새없이 앞 사람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최종 목적지는 범봉을 거쳐 잦은바위골로의 하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누누이 지적받아 왔지 않은가? 더구나 당초 예상인원보다 크게 늘어난 24명의 대원이 되고 보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시 앞사람을 따라 정신없이 오르고 그리고 클라이밍 다운이나 하강을 반복하다 어느새 노란벽에 다다르게 되었다. 노란벽이란 낙석된 바위면의 흔적이 노란색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란벽을 현수하강하고 난 후 다시 간담을 서늘케하는 나이프릿지가 나타났다. 이곳을 조심조심 지나 끝자락의 한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예각의 침봉 위에서 곧추 서 봉우리 위로 발을 뻗어 올릴때는 수십미터의 고도감에 순간 다리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 뒤돌아 보니 바로 그 곳이 돌고래와 인어바위라고 하는 곳이었다. 돌고래의 주둥이 끝자락에 올라서서 인어바위로 올라가는 형국이었다. 기가 막힌 광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어 그 유명한 사선침니크랙코스가 나왔다. 사선침니크랙코스는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침니크랙이 사선으로 30미터 정도 뻗어 있다. 홀더가 비교적 양호하지만 초보자들은 고도감에 자꾸 몸이 크랙 안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럴수록 등반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크랙 날개 바깥쪽으로 몸을 빼야 등반이 용이해 진다. 살려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면 살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다시 한번 생각났다. 사선 크랙에서 다소 시간이 지체되었다. 사선침니크랙을 지나 왕관봉을 향해 다시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하강했다. 그리고는 보았다. 왕관봉 오르는 사면에 지천으로 나 있는 에델바이스를.... 아! 에델바이스... 몇 개는 함초롬이 꽃을 피운 것도 있었다. ...눈 속에 피어라...에델바이스... 노래 가사가 가슴을 때렸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에델바이스는 열악한 토양과 기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서 산사람의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왕관봉에 올랐다. 멀리서는 잘 몰랐으나 꼭대기에 오르자 왕관을 닮은 모습에 감탄을 내 질렀다. 더구나 왕관 사이에 난 구멍은 인위적으로 파낸 것 같아 더욱 신비감을 더했다. 산꾼들은 그 틈으로 슬링줄을 걸어 자연이 준 선물을 최대한 활용했다. 왕관이 왕의 것인지 여왕의 것인지는 뒷면으로 하강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에 손으로 왕관을 한번 만져보고는 얼른 하강했다. 아직 하강에 그리 숙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답을 찾기도 전에 하강이 끝나 버렸다. 오버행 하강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답을 찾으려 하였지만 풍화작용으로 움푹 패인 바위구멍만 무성했다. 왕관봉을 지나 다시 나이프릿지가 이어졌는데 이 길은 그대로 희야봉으로 이어진다. 희야봉은 아직도 거대한 성처럼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희야봉으로 오르는 길 왼쪽으로는 측백나무가 무성했다. 무성한 측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다시 희야봉까지 날카로운 나이프릿지가 이어지는데 희야봉 정상 바로 못미쳐서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때 시각은 11시 20분. 천화대에 오르기 시작한지 6시간 20분 만이다. 짧지만 점심시간은 항상 즐겁다. 하지만 목이 메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할 수 없어 물에 말아 도시락을 비워 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출발사인이 떨어졌다. 희야봉 마지막 봉우리는 만경대 피아노 릿지같은 코스를 일렬로 통과한 후 다시 칼날능선을 지나야 한다. 이곳 희야봉 정상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사선방향으로 질러 나가면 밑이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서게 된다. 여기서 범봉 오르는 길이 보인다. 하강준비를 하는데 벌써 대장은 건너편 범봉가는 직벽위로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기어코 범봉까지 갈 모양이다. 하강준비를 하고 있던 대원들은 모두 긴장이 되었다. 멀리 공룡능선에서부터 내려온 개스가 범봉부근의 봉우리를 모두 집어 삼키고 있었는데 그 속으로 대장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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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배님도 산을 무지 좋아하시나 봐여... 저두 설악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까여?? ^^
눈 앞에 등반하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낯선 단어들이지만 모두 익숙한 듯한 느낌...제게도 이런 경지에 도달할 날이 있을련지...아득하지만 좋은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