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재 이야기
또 일주일이 금방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 식구 밖에 아무도 대웅재에 아무도 안 올 것 같습니다.
미나리가 많이 자랄 때 즈음에 엄마는 아버지가 미나리 김치를 좋아하신다며, 미나리를 캐다가 데쳐서 미나리 김치를 담아서 먹은 일이 생각나 우리 동네에 미나리가 많이 자라는 곳에 미나리를 캐러 갔습니다.
일주일 동안 미나리는 많이 자라있어서 미나리를 많이 캐서, 시장을 보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왕겨 가마니를 텃밭에 부어놓고 계셨습니다.
“ 아버지 저 왔어요”
“ 왔냐?”
아버지는 활짝 웃으시면서 반기셨습니다.
“ 웬 미나리냐, 참 연하니 맛있게 생겼다이.”
“ 예에, 우리 동네에서 캐왔어요”
시장을 보아온 것들을 꺼내놓고 반찬을 만들고 있으려니 아버지가 동네 아저씨들을 모시고 오셨습니다.
“ 술 한잔 먹자이”
아버지 말씀에 술상을 보아 드리고, 나는 음식 장만에 열중을 하였습니다.
동네 아저씨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에 열중을 하시던 아버지는 취기가 돌자
“ 어이, 여보게들 내 말좀 들어봐이, 어저끄 , 전에 면장 허던 최면장 안있는가이, 그냥반이 기자를 데리고 내가 점심먹고 있는데 왔더란 말이여, 그 기자가 전주 매일신문 기자라고 험서 여기 동네 역사가 궁금하여 왔다고 하더란 말이여, 그리서, 내가 우리동네 역사를 말히주었네, 우리 동네가 자네들도 알다시피 태조 이성계가 지나갔었던 재라고 하여 큰재라고도 허고, 대왕재라고 안허던가, 우리동네가 그리서 대왕재인디, 왜정 때 왜놈들이 민족정기를 없인다고 대웅재로 이름을 바꿨지 않았겄는가, 저어기 큰재에서 보면 우리 동네가 嚥巢(연소) 모양이 아닌가, 제비연자에 새집소자, 제비집 자리란 말여, 그리서 제비집을 보호허기 위해서 육이오 이전까지 저 아래 짐대바위에다 작대기 모냥처럼 큰 나무를 비어다가 세워놓고 그 꼭대기에 나무를 깎어 오리모냥으로 만들어서 엮어놓고, 그 나무위에 세워놓는 행사를 매년 이월 초하룻날에 벌였단 말이여, 자네들은 모를 것이여, 나는 육이오 전 여남살 즈음인가 그 행사를 본 기억이 있네, 그러고 최면장허고 내가 맨들어논 전적비도 데리고 가서 보여줬제, 일제 때 싸우다 의병 열여섯명이 전사 힜다고 내가 자세허니 설명을 힜더니 그 기자가 내 말을 듣고는 자세허니 수첩에 적드란 말이여, 그러더니 그 기자가 내일 그 내용을 오늘 가서 적으면 월요일에 기사가 난다고 허데, 나는 그 신문을 안 보는디, 기사가 어떻게 날랑가 궁금허네이”
“ 최면장이 왔었어라우?, 그 최면장 그 비석허느라고 많이 애썼는디, 딴디로 갔잖아요, 그런디 시방 온 송면장은 최면장을 욕허대요, 일은 몽땅 저질러 놓고, 자기는 설거지만 허느라 힘들어 죽겄담서요 ”
“ 이이, 최면장는 딴디로 갔는디도 한번씩 나를 찾어온단 말여 얼매나 고마운지 몰러, 그 송면장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당게, 내가 그 비석을 맨들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디, 그 송면장은 여기가 지 고향인디도 여엉 신경을 안 쓴단 말여, 허어참”
아버지는 신이 나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 쏟아 내셨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은 아버지의 술에 취하시면 나오는 반복되는 이야기에 싫증이 나는지
가시려고 꽁무니를 뺐습니다.
“ 아니 한잔 더 들제 왜 갈려고 혀, 이리 와”
“ 형님, 이제 저녁도 자시야고, 소 밥도 줘야잖아요”
“ 그려?, 그럼 잘들 가세이”
아버지는 아저씨들을 보내 놓고도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 내가 몽땅 어질러 놨다이, 벨수가 없다이, 근디 뭘 이렇게 많이 사왔냐 나는 벨로 먹도 안헌디”
아버지는 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듯이 말하셨습니다.
나는 저녁 준비를 하고, 남편은 아버지가 어지러 놓은 방들을 깨끗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저녁 식사 중에 아버지는 또 우리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 어저끄 웬 기자가 와서 맹함을 주고 가더라”
아버지는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민일보 기자네요” 하고 남편이 말하자
“이, 그 기자가 전에 성수 면장허던 사람하고 같이 와서 우리 고을 역사를 알려고 왔담서 물어 보데 그리서 내가 자세허니 이야기를 히줬제 그 기자 헌티 잘 히줘서 손해볼 건 없잖여이, 이따가 월요일날에 신문에 나온다고 허더라이”
“ 그럼요 아버님, 제가 신문에 나오면 오려서 갖다 드리겠습니다.”
“근디 너그 오빠헌티 며칠전에 전화 히보고는 안히봤는디 어쩐다냐?”
“ 예에, 모레 쯤에 항암치료를 더 해봐야 안대요”
“ 쉽게 말을 허자면 병조마니를 수그려뜨린 담에 수술을 헌다 이말이제이, 근디 그 병조마니가, 안수그러지면 죽는거 아녀?”
“...... ”
“ 허어참! 진작에 서두렀으면 좋았을거 아녀, 허어참 ”
아버지는 한참이나 ‘허어참’을 하시면서도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해지셨는지 계속 웃으시면서 남편을 붙잡고, 아버지가 취하시면 하시는 단골 이야기들을 하고 또 하고 하셨습니다.
“넉아부지는 술 잡수고 와서는 그놈의 헌소리 또허고 헌소리 또허고, 내가 귀에 못이 백히겄어, 존 소리도 아님서, 맨날 동네 사람들은 일만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바보들이라고 허질 않나, 하여튼 간에 자개만 잘났다고 큰소리 친당게” 엄마는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시고 오시는 날에 아버지의 푸념을 듣다못해 성질이 나면 이렇게 말하곤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왜 사선제하고 소충제를 묶어서 행사를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둥 사선제 하는데 돈을 몇 억씩 쓰면서,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소충제는 겨우 이백오십만원만 준다는 계속 한탄만 하시다가는 잠이 드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버지는 서울 예식장에 가신다면서 고추하우스와 못자리 비닐을 걷어 놓으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혼자 논에 가는 일이 심심할 것 같아 아들에게 가자고 꼬드기자 둘째 아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내가 장화를 신자 “ 엄마 나도 신을래” 하기에 아버지가 신던 장화를 신겨 주고 논으로 향했습니다.
산에는 아름답게 피어 내 마음을 흔들어 놨었던 벚꽃들이 모두 지고, 이제는 갖가지 연두빛으로 색을 바꾸어 가면서 여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산에서는 나무들이 진하게 새순 향기를 내품어 내 콧속을 새순 향기로 가득 채우게 만들었습니다.
‘ 아! 이파리향기 참 좋다’ 이 좋은 신선한 공기를 날라다, 오빠의 병든 몸에 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기 모판에 파랗게 올라오는 거 보이지? 모가 올라오는 가보다!”
“ 엄마 아니야, 연두색이야”
논에 들어가서 모판에 덮어놓은 부직포를 열어 젖혀놓고 다시 집으로 향해 걸어왔습니다.
“ 나는 발이 250신는데 할아버지는 260정도 되나 봐, 논이 질퍽거려서 힘만 들었어. 엄마도 어렸을 때 농사일 해봤어?, 여기 논에 있는 흙이 진흙이야?, 엄마 있잖아, 아마존에는 약이 되는 식물들이 많대, 그 식물에서 어떤 성분들을 만들어서 마데카솔 같은 약을 만든대, 책에서 보았어, 저 나무는 여름에 비 많이 오면 쓰러지겠다, 엄마 이건 무슨 꽃이야, 엄마 이건 그냥 잡초야? 엄마 저기 물은 먹을 수 있어?, 깨끗해?, 일급수야 이급수야, 엄마 엄마가 어렸을 때도 이 나무 냄새가 똑같았어? 엄마, 그리고 어렸을 때 독수리, 멧돼지 산토끼 살쾡이,.....도 보았어? 엄마는 참 좋겠네 동물도 많이 보고, 엄마 저기 무덤 옆에 할미꽃이 피었잖아, 그 할미꽃이 구부려져 있잖아, 그래서 내가 구부러진 걸 한번 펴봤어 그런데 다시 넘어가, 그래서 참 신기했어, 엄마 민들레 꽃이 어떻게 피어?, 엄마 저 새가 뻐꾸기야?, 엄마 어디서 멧돼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엑엑’ ”
둘째 아들의 끊임없는 질문과 재잘거림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논에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 엄마 저거 제비꽃이야?”
“ 아니 자운영 꽃이야 제비꽃은 저기 있어 엄마가 보여줄게”
비탈진 길을 올라서서 회관 광장 앞 계단 제일 아래 밑에 조그맣게 제비꽃이 피어있었습니다.
“ 이게 제비꽃이야, 작아서 참 예쁘고 귀엽지?”
‘제비꽃 너를 보니 마치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본 것 같구나, 너는 내가 학교에 다닐 적에도, 작은 길 옆 비탈진 논두렁, 위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맨 아래 길 한쪽 귀퉁이에 행여 누가 볼까, 수줍게 피어있었지 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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