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최근 학문의 동향은 주로 학제간 (혹은 다학문간) 교류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학이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의도라면, 그러한 교육학이 다른 학문분야와 가질 수 있는 學際間 (혹은 다학문적) 협력관계는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답:장상호
학제간 연구는 어떤 특정한 생활세계적 주제에 대한 다양한 분과학문들의 참여를 의미합니다. 가령 학교라는 생활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다양한 학문적 시각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실과 논의맥락을 가진 철학, 심리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이 참여한다면 그만큼 우리가 쉽게 상식에 의존하여 알고 있는 학교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양태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 점에서 최근의 학문동향이 학제연구의 방향으로 나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제연구는 기존의 분과학문을 전제로 하는 협동연구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은 그 각각의 분과학문이 드러내는 것은 그 분과학문적 사실들이라는 점입니다. 가령, 학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학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사실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것은 학교에 대한 심리적 사실과 결코 섞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학제연구는 하나의 통일된 관점을 만들어 내는 분과학문이 아니라 분과학문들간의 제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현존의 교육학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학교에 대한 학제연구가 마치 교육의 사실을 밝히는 교육학이 될 수 있다는 도식이 아무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는 앞으로 교육학이 그 나름의 학문적 체계를 갖추려면 우선 그런 전통에서 탈피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학교라고 하는 생활세계와 교육적 사실은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또한 학교에 대한 학제연구가 교육적 사실을 드러내 줄 어떤 비결책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 존재적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아니한 교육적 사실은 오직 그것을 포착하는 고유한 관점을 요구합니다. 나는 최근에 그런 의미의 교육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학은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청소년집단, 문화회관 등과 같은 제반 생활세계에 잠재된 교육적 사실들을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학교에 대한 학제연구(나는 이것이 현존하는 교육학의 골간을 이룬 것으로 믿고 있다.)와 내가 모색하는 새로운 교육학간의 큰 차이의 하나입니다.
이런 새로운 교육학과 학제간 연구간의 관계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교육학은 학제간 연구에 참여하는 제반 분과학문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점에서 그것은 사회학과 학제연구간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장차 학교연구에서 이제 사회학을 포함하는 제반 분과학문들과 더불어 교육학이 그 나름의 학적 체계를 갖춘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고유한 참여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은 학교에 대한 학제연구를 교육학으로 치부했던 착각에서 비롯하는 이제까지의 혼란을 피한다는 점에서 교육학 자체뿐만 아니라 학제간 연구 자체의 진로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새로운 면모의 교육학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생활세계에 관한 부분에까지 그 학제연구의 한 분과학문으로서 제 몫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직 새로운 교육학 자체의 정립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제연구에서 다른 분과학문들과 교육학간의 협력에 대한 사례를 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평생교육과 관련하여 하나의 가설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우리의 생활에서 앞으로 직장의 교육적 의미와 그 가능성이 확장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직장에는 동료간 혹은 상관과 부하간 이미 교육이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에 교육적 의미를 부여할만한 개념체계가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들이 외면되거나 은폐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교육은 직장 내의 다른 제반 사실들과의 관련하에서만 이해되고 활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교육은 많은 경우 직장이라는 생활세계 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과 갈등하거나 혹은 그들의 견제를 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한편으로 그런 사실들이 교육에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교육이 그 부면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타협책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교육학과 여타의 제반 분과학문간의 제휴는 불가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