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 김에 서양미술사를 통해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팜므 파탈의 전형으로 자주 그려진 유디트와 살로메에 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프랑스어인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femme은 '여인', fatale은 '치명적'이라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팜므 파탈의 어원은 '숙명적인, 운명적인'을 지시하는 그리스의 운명의 여신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팜므 파탈은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문학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 미술·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어, 상대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 등 치명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악녀', '요부'를 뜻하는 말로까지 확대·변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팜므 파탈은 남성을 유혹해 파멸과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운명의 여인'을 뜻하는 사회심리학 용어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19세기말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게 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여권에 대한 당혹감은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라는 의미의 파멸적인 여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산업 사회가 요구하는 합리성에 대한 반발은 인간 내부에 있는 비합리적이며 감성적이고 파괴적인 것에 대한 어두운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이 어두운 욕망과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투사된 것이 팜므 파탈의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그 이전 바로크기의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잔혹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서양미술사에서 팜므 파탈의 대표적 유형으로 여러 화가들에 의해 자주 그려졌던 소재는 유디트(Judith)와 살로메(Salome)입니다.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그리고 살로메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팜므 파탈의 대표적 유형입니다. 그녀들은 둘 다 무참하게 잘려진 남자의 머리와 함께 등장합니다. 도상학적으로 볼 때 유디트는 칼, 살로메는 쟁반이 그 둘을 구분하는 지물로 거론되기는 하지만 간혹 유디트인지 살로메인지 헛갈릴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엔 제목이라도 살펴봐야겠지만요. ^^~
I. 유디트(Judith)
유디트는 구약성서의 등장인물로서 옛 이스라엘의 애국 여걸이며, 이스라엘의 논개 같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리아 군대에 의해 도시가 점령되고 위기에 처하자 부유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젊은 과부였던 유디트는 고혹적으로 꾸미고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 유혹하여 만취한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이 사실을 발견한 아시리아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치게 되고 마침내 위기에 처한 조국을 아름다운 유디트가 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카라밧지오, 아르테미시아 뿐 아니라, 보티첼리, 클림트 등 여러 화가들이 즐겨 자신의 그림주제로 채택하였더랬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20년)와 카라밧지오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1598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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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밧지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1598년경, 캔버스에 유채, 145x195cm, 로마,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먼저 카라밧지오 특유의 극명한 명암법을 바탕으로 그려진 유디트는 갓 스물의 아직 젖살이 통통하게 남아있는 소녀 같은 모습입니다. 그녀의 싱싱한 젊음은 곁에 서 있는 주름 가득한 늙은 하녀와의 대조를 통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라밧지오는 빛과 어둠, 미와 추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표현할 줄 알았던 화가였습니다. 늙은 마녀 같은 외모의 노파인 하녀는 보자기를 펼쳐들고 적장의 목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앳된 얼굴의 유디트는 앵두 같은 순진한 입술을 꼭 다물고 마지못한 듯 양미간에 주름살을 찌푸리며 칼로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채를 잡고 그의 목을 자르고 있습니다. 남자의 목에선 선연한 피가 솟구칩니다.
카라밧지오는 같은 해 <메두사 Medusa>에서 다시 한 번 잘린 목에서 솟는 핏물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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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밧지오 <메두사> 1598년.
카라밧지오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형장을 찾아가 사형수들이 처형되는 장면과 도살장의 동물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면밀히 관찰하며 수없이 스케치하였다고 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순식간에 닥친 자신의 죽음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화면 위쪽에 늘어진 붉은색 커튼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뒤늦게 예고라도 하듯 너울대고 있습니다. 새하얀 침대시트를 움켜쥔 왼쪽 손등 위로 방금 잘린 건장한 장수의 목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솟구쳐 내리고 있습니다. 유디트의 날카로운 칼날은 이미 그의 목의 3분의 2 지점을 지나고 있고 목이 뎅겅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지금 이 순간 홀로페르네스는 아직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죽어간다고 해야 할까요? 화면에서 마지막 순간에 내지른 그의 외마디 허망한 외침이 메아리치고 있는 듯합니다. 근육을 뒤틀며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마지막 그의 의식이 이생의 마지막 호흡을 멈춘 뒤 최후의 안광을 쏟아내고 있는 참혹한 그 순간을 카라밧지오는 극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자의 저 마지막 눈빛을 보는 자는 이생을 사는 동안 평생 그 눈빛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하는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네요. 마치 메두사의 눈을 직접 들여다보는 자는 돌이 되어 굳어버린다는 신화처럼……. 400여년 후, 현재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살아있는 걸까요? 죽어가는 걸까요?
이번엔 앞선 카라밧지오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작품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20년)를 살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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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12-21년, 1620년 완성으로 추정됨, 199x162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피고 타시는 성추행 혐의가 인정되므로 유죄. 금고 팔월 형에 처한다.” 이처럼 1612년 10월 로마의 한 민사 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7개월 동안 끌었던 법정 공방이었습니다. 상대를 먼저 유혹한 저질스런 꽃뱀의 혐의를 받으며 진행되었던 세기의 강간사건으로 불린 굴욕적인 재판 후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지는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작품입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유디트의 얼굴에 자신을,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 자신을 칼로 위협한 후 강간한 타시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카라밧지오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명암법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감상자의 시선을 이 극적 살해 사건에 주저없이 몰입하도록 만듭니다.
여리고 가냘픈 몸매의 카라밧지오의 유디트와는 달리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서른은 족히 넘긴 듯 보이는 아줌마처럼(^^;) 튼실한 어깨와 목 그리고 강한 팔뚝을 지닌 풍만한 체구의 완숙한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완강한 표정으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육간의 고기를 썰듯 적장의 목을 따고(?) 있는 유디트 옆에, 같은 연배로 뵈는 역시 튼실한 하녀는 보자기를 들고서 적장의 목이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리던 카라밧지오의 늙은 하녀와는 달리 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갑작스레 닥친 이 위기를 모면하려 버둥대는 적장의 몸을 자신의 체중을 실어 짓누르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적장의 목에서 튀는 피보라에 자신의 드레스가 더렵혀진다는 사실 따위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는 듯합니다. 유디트의 손에 들린 칼은 그의 목을 거침없이 가르고 목에서 흘러나온 붉은 선혈은 침대시트를 적시며 화면 아래로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선 카라밧지오의 작품에서 보인 배경에 드리워진 붉은 커튼은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에서는 희생자의 식어가는 몸 위에 느슨히 걸쳐진 시트가 되어 절망적인 죽음 앞의 선 희생자의 무력감을 더욱 극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620년)는 이렇게 자극적이며 노골적인 주제를 그림으로써 당시 남성위주의 사회에 대해 반발하고 복수하려 하였던 한 여성화가의 <회화의 우의로서의 자화상(Self-Portrait as the Allegory of Painting)>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아르테미시아를 강간한 타시는 당시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이 외에도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이야기는 여러 미술가들의 주제가 되었지만 그 중에서 세기말 빈의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에서 또 다른 매력적인 유형의 팜므 파탈로서의 유디트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클림트의 유디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극작가 C. F. 헤벨의 희곡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헤벨은 자신의 처녀작 <유디트>를 5막 희곡으로 구성하였는데, 이 희곡은 1839년 완성되고 1840년에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데까지의 줄거리는 성서대로이지만, 그 행동의 동기는 사뭇 다릅니다. 이 희곡에서 유디트가 적장을 죽인 것은 동포 시민을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관능의 욕망에 약한 자신의 죄를 통감한 나머지, 그러한 자기에게 스스로 복수하기 위해서였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초인(超人)인 적장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은 유디트는 비탄한 나머지 미쳐버린 광녀로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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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클림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 1901년, 캔버스에 유채, 84x42cm
그러면 구스타브 클림트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I>(1901년)를 살펴 봅시다. 이 작품은 클림트의 황금빛 에로티시즘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클림트는 여기서 앞선 작가들과는 달리 이미 잘린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신의 왼쪽 옆구리에 가져다 대고 있는 묘한 표정의 유디트를 그렸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성적 황홀감에서 미처 다 벗어나지 못한 듯합니다. 치켜든 턱에 거의 감겨진 눈꺼풀, 반쯤 벌여진 그녀의 관능적인 붉은 입술사이로 곧장 쾌락의 신음이라도 새어 나올 듯 합니다. 그녀의 시선 때문일까요? 대부분의 감상자는 그녀를 자연스레 올려다보게 됩니다. 황금빛 목걸이와 팔찌, 벨트의 장신구로 인해 그녀는 더욱 아름답고 냉혹한 요부처럼 보입니다. 풀어 헤친 옷깃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아직도 붉게 흥분된 유두와 묘하게 강조된 배꼽 그리고 적장의 잘려진 머리를 들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은 잠시 전 황홀한 절정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의 머리칼을 애무하듯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렇게 클림트는 유대민족의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관능적인 욕망의 순간에 취해 있는 유디트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글은 계속됩니다.) 미재합장 _()_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경주부처님...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사마귀의 사랑! _()_
사마귀 사랑...그렇게 밖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마귀...그래도 사랑이라 이름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보강부처님..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수형부처님...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양면의 바탕을 보며...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보타전부처님...양면을 보는 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상,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_()_
원행부처님..반가워요...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해천부처님....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그냥 보면 그냥 뜻모를 그림일 뿐인데,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림 안에 참 많은 사연들이 숨겨져 있네요.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원왕생부처님...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瑞彌(오혜식) 부처님...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아미타불_()_
섬결부처님...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죽어가는 눈빛을 차마 보기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모야부처님...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무념부처님..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경란부처님...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아미타불_()_.
현로부처님...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유디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