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 活着(huo zhe, 1994, Vivre ! 1994, Lifetimes 1995)
장예모(张艺谋 Zhang Yimou 1951-), 정보 드라마 | 중국, 대만 | 125 분 | 1995-05-27
출연 공리(巩俐, .Gong li),, 게유(갈우 葛优, Ge you)
- 장이머우(張藝謀, 장예모, 1950-) 중.위키에는 1950년 생으로 되어있다. 1989 : Ju Dou (菊豆, jú dòu) / 1994 : Vivre ! (活着, huózhe)
- 위화(余華, 여화 Yú Huá, 1960년 4월 3일-) 중국의 소설가. / 1960년 저장 성 항저우 시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에 취직하여 의사를 도와 발치인(이빨을 뽑아주는 사람)으로 일하였고, 베이징 제국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 대표작으로 『첫 번 기숙사』,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 2004)』, 『인생(活着, 1993)』, 『형제』 등이 있으며, 『인생(人生) / 活着』은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하고 궁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인생의 원작이다. 외국인들에게 그의 소설은 '중국을 들여다보는 창'으로 통한다. // 중.위키에는 이상하게도 저자들의 저술에 출판연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영화 제목을 잊었지만 그래도 자, ~
내가 이 영화를 본지 오래 되었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삶이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 인간이 3세대를 걸쳐서 산다면 그렇게 많은 변전을 겪는 것이 거의 없다. 소위 말하는 격변기가 반전에 반전을 겪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상으로 외부의 침입으로 뒤죽박죽이 되면서 개인의 삶이 상층에서 심층으로 심층에서 상층으로 자기 자신의 힘(노력)과는 상관없이, 말하자면 우연(hasard)처럼 느껴지듯이,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 영화에는 큰 변전기가 두 개인데 하나는 중공이 성립하기까지 겪는 국내외 전쟁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0여년의 걸친 문화대혁명의 장면들이다.
주인공 노름꾼이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는 이야기야 평시에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가산을 탕진하고 난 뒤, 국민당을 물리친 공산당이 들어왔을 때, 자기의 거대한 집을 뺏어갔던 자가 공개적으로 처형당하는 장면에서 주인공 노름꾼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진다. ‘저 죽음이 나의 죽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대지주로서 살면서 룸펜으로 지냈더라면 그 죽음은 그 주인공의 것이었으리라.
빈털터리가 된, 대지주의 아들인 노름꾼이 그림자극을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은, 먹고 산다는 것은 여러 방식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변혁기에 국부군(장개석 군대)에 합류되어 전쟁 중 쉬는 틈에 병사들에게 그림자극을 보여준다. 중공군(모택동 군대)이 마치 매끈한 공간을 쓸고 가듯이, 국부군의 지역을 휘쓸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전투병이 아니었다는 것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고, 이번에는 중공군 병사들의 이동을 따라가면서 중공군 병사들에게 그림자극을 연출한다. - 들뢰즈를 읽고 난 뒤에 이 작품이 생각난 것은 중공군 전투가, 국부군의 전투처럼 선과 점의 전투가 아니라, 면의 전투라는 점이다. 매끈한 공간의 개념은 이런데 쓰는 구나. 마치 전염병이 휩쓸 때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리고 영화 장면에서는 없지만 국가 권력이 기구를 통해 행사하는 방식과 달리 노마드의 전쟁기계는 이럴 수가 있겠구나 였다.
중국 내전이 끝나고,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가진 것은 그림자 연극에 쓰이는 몇가지 소품 가방 하나이었다. 더하여 승리한 군대는 그에게 해방 전쟁에 참여하여 문예선전대원으로 활동하였다는 증명서(종이 한 장)뿐이었다.
귀향하여 가족과 합류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세상이 또 한 번 소용돌이치는데, 이 흐름이 무엇인지 그는 모른다. 그는 노동자가 아니다. 사람들이 빨간 책자를 들고 다닌다. 그가 모르는 그 혼란이란 문화대혁명이다. 농민도 노동자가 아닌 그가 자기의 생명을 부지해줄 수 있는 종이 한 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렇게나 가지고 있어서 낡은 종이이지만 혁명군에 가담했다는 증서가 아닌가! 이번에는 부르주와 세력을 제거하는 문혁의 홍위병들을 위해, 선전대로서 다시 그림자극을 상연한다.
그 와중에 딸이 임신을 하고 병원에 출산을 하는데, 의사가 없다. 홍위병들이 의사뿐만 아니라 학자들과 교수들을 사상개조를 위해 노역에 보내거나 반성하게하기 위해 하방 하던 시기였다. 홍위병 젊은 수련의가 얘기를 받아내고 출혈을 정지시킬 줄 몰라서 우왕좌왕하는데, 주인공이 몇 날을 굶었는지도 모를 의대교수를 찾아서 데려왔을 때, 딸은 이미 사망했다. 그 신생아 손녀는 생명을 구했었지만.
일반적으로 모택동을 평가할 때, 장정과 국공합작으로 일본을 몰아내고,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한 것은 큰 업적으로 삼는다. 그런데 1966년에서 마오(毛澤東, 1893-1976)가 죽을 때까지 행해졌던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은 과오에 속한다고들 한다.
1968년을 기점으로 보면, 마오의 중국은 인민 속에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치를 한다고 하였다. 새로운 노마드일 수 있으나, 20세기 중반은 이미 철기시대를 넘어서 규소의 시대로 전화하고 있었다. 서양 특히 프랑스가 바라보기에 국가 권력 없는 새로운 정치라고 보았을 수도 있다. 프랑스 자신이 실험을 했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더 집요한(미세하게 포획하는) 권력이 들어서지 않았던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서, 후세의 평가는 마오 이외의 권력없는 평등화의 고른 평면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보다 지식 분자를 반동으로 몰아세웠던 인적 손실과 기술(제작기술)을 손으로 되돌리면서 생긴 자산의 손실이 더 컸다.
이점에 대해 생각하면서 중국(및 우리나라, 일본은 인식체계를 받아들였다)는 삶을 도덕적 또는 인성적 관계를 중시하여 물질적 대상에 대한 체계적 지식의 축적이 일반화되어 있지 못하였다. 물론 서양이 지식축적이 된 것이 18세기 계몽주의 이후이다. 그러나 유럽은 인민과 더불어 지식 체계를 갖추는 방식으로 나아간 것이다.
도덕성은 사회적 관계에서 이지만 삶은 토지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리고 인구증가 또는 집중화는 질병과 과학적 인식이 중요하다. 의료와 교육이 일반화와 무상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어쩌면 20세기의 전쟁을 겪고 난 뒤에 인류는 무상화의 길을 가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그다음에는 하늘길, 땅길, 물길이 공공화 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국가라는 체제가 자본이라는 제국에 밀려나는 듯하다. 21세기에도 국가라는 이 잔여물이 인류의 삶에 족쇄로 남아있는 것 같다. 족쇄. 들뢰즈 표현으로는 긴 세기에 크게 보아 토지, 국가, 자본이다. 그런데 인민의 흐름도 있다.
토지로부터 탈영토화 시대는 오랜 과정을 겪어왔다. 그래도 토지는 삶의 토대이다. 인간 생명체라는 점이다. 왕국의 권력과 종교의 권위, 그리고 국가가 권력을 행사하고 과학이 권위를 뒷받침해주는 시대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도 지나가는 듯하다. 자본과 제국은 다른 양상으로, 즉 인민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인간이 자유로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다. 달리 말하기, 달리 되기, 달리 사는 삶이 필수적일 것이다. (51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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