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찾았을 때는 도로에 오수관로 매설작업이 한창이었다. 좁은 1차선은 이 마을이 ‘도심 속 오지마을’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범서읍 망성리 욱곡(旭谷) 마을은 촛뱅이(촛단지·옛날 식초를 만들거나 저장할 때 이용하는 용기)를 닮았다. 주둥이보다는 배가 더 부른 형태로, 좁은 입구를 따라 마을로 들어오면 드넓은 감나무단지가 펼쳐진다. 마을 뒤로는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요새같은 마을이었다.
벼농사 짓기 힘든 천수답 마을
비탈진 산 개간해 뽕나무 심어
수출길 막히자 감나무로 전환
2000년 하천공사 중 할배돌 찾아
마을제당 할매돌 옆에 고이 모셔
하천엔 가재 사는 무공해 마을
◇하천에서 발견된 할배돌= 마을 입구에 다다르면 왼편에 수령이 수백년된 적송숲이 있다. 숲 아래 하천 쪽으로는 말끔하게 단장된 제당이 있다. 제당에는 할배돌과 할매돌이 고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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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호(74·왼쪽) 전 이장과 김지윤(76)씨가 황골 약수터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뒤로 감나무들이 보인다. 욱곡마을에는 대략 10만평에 1만그루의 감나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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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넓적한 할매돌 밖에 없어서 이 마을 사람들은 할매돌만 모시고 제를 지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인근 하천 공사를 하던 중 제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근석을 발견했다. 마을 사람들이 할매돌로 보아 어딘가 짝인 할배돌이 있을 거라고 믿어왔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최문호(74) 전 이장은 “할배돌을 하천 공사하던 사람들이 실어갔는데, 공사관계자한테 조상대대로 망한다고 머라캤더니 도로 가져다 놨다”며 “이 제당을 다시 지으면서 공사를 맡았던 업자는 대박이 났는데, 일이 첩첩이 물고 들어온다”고 웃었다.
제사를 지낼 때 새끼로 꼰 금줄에 종이를 한장씩 꼽았는데, 종이를 빼서 글을 쓰면 재주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마을주민들은 종이를 서로 빼가려고 줄을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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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종기 이장이 집 앞 하천에서 잡은 가재를 보여주고 있다. |
마을 뒷산에는 유명한 약수터가 있었다. 황골 약수터로 인근에 만병통치약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울산과 경주 사람들이 줄을 지어 약수를 받아갔고, 마을 사람들은 물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과자를 팔기도 했다.
이 마을 조진사댁 정각을 지키던 정각지기가 풍병으로 고생하다 이 약수를 마시고 깨끗이 나았는데, 몇년 뒤 정각지기가 물을 마신것만 아니고 약수로 몸을 씻었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안종기 이장의 집 하천에는 지금도 가재와 다슬기가 살고 있었다. 여름에는 반딧불이도 볼 수 있고, 마을 뒷산에는 송이버섯도 난다고 한다.
◇욱곡단감= 4~5월은 감나무에 새순이 올라오는 시기다. 옷깃만 스쳐도 새순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인도 안들어갈 정도다. 새순이 떨어지면 감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욱곡마을 감나무는 안종기 이장의 부친인 고 안영원씨가 울산종묘사를 통해 일본산 종묘를 들여와 심은 것이 시초다.
이 지역은 산간고지대의 특성상 거의 천수답이어서 쌀농사가 힘들었다. 비탈진 산을 개간해 감나무 이전에 뽕나무를 심었다.
최문호 전 이장은 “비가 오면 모를 심고 비가 안오면 모를 못심으니까 농사가 안됐지.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먹이기 시작했는데, 울산 울주에서 잠업왕으로 표창장을 타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본 잠사 수출길이 막히는 바람에 뽕나무 사이 사이에 돌감나무를 심었던 것이 이제 단감대단지로 변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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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제당에 모셔진 할배돌(왼쪽)과 할매돌. |
최 전 이장은 또 “처음에는 예비군병(녹반증)이 걸려서 감이 얼룩덜룩해서 못 팔아먹었다. 그래서 진영에 있는 사람한테 조언을 구했더니, 석회를 다부지게 처보라고 해서 그대로 했더니 병이 생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1987년 서울 가락동시장에서는 범서 욱곡단감하면 최고로 알아줬다. 하지만 단감이 과잉 생산되면서 5년 전부터는 단감나무를 베면 돈을 줄 정도로 사양품목이 됐다. 대미 수출은 까다로워서 어렵기 때문에 주로 동남아 쪽으로 수출을 많이 하고 있다.
최문호 전 이장은 4년째 구영리 단감조합에서 당도 1등, 수출 1등, 전국 택배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이 마을은 조승수 국회의원의 고향으로 알려져있다. 선산으로 가는 길에는 조승수 국회의원의 부친이 심어놓은 벚꽃이 만개해, 벌들이 앵앵거렸다.
안종기(44) 이장은 “정부의 색깔있는 마을 사업 지정 등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며 “마을 숙원사업인 2차선 도로 개설 등이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