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영의 영화본심] 이끼-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공포학습

[박근영]

공포-이완 반복하는 공포학습 …마니아에겐 싱겁다

박근영의 영화로 본 심리학

영화 <이끼>

　이장 천용덕의 마지막 요리는 백숙이었다. 음식은 서서히 그러나 끈덕지게 끓어오른다. 탐욕의 살집도 율법의 뼈대도 한꺼번에 고아져 녹아 내리는 뭉근한 시간. 강우석이 <이끼>에서 관객에게 내민 인성탐구 메뉴다.

　마을. 영화 속의 마을은 이상하다. 무엇이라도 시각화 할 수 있는 구조다. 권력은 집의 위치로 시각화 된다. 의식과 기억의 밀폐 정도는 마을의 조감, 낱개의 집, 개인의 방, 방 안의 장롱, 그리고 장롱 뒤의 지하 통로 순으로 시각화 된다. 인간의 신성에 대한 갈망과 세속적 인정, 폭력과 성욕의 층위도 높낮이로 시각화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시각적 지형도가 보여주는 단순한 질서를 얻지 못한다.

　균열과 질투는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까지 퍼져있다. 갈등은 세속적 상징인 이장과 종교적 상징인 목사 사이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전직 형사였던 이장은 돈과 힘을 좇는 자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법도 살인도 자신의 발아래 놓고자 한다. 반면,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목사는 회개 후에 종교적 이상을 좇는 자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든 포기한다. 자신의 몸과 목숨도 하찮다고 여기고 싶어한다. 두 사람의 욕망과 이상은 한번 교차한 뒤에 꾸준히 어긋난다. 이 대결은 목사의 죽음으로 일단락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부고를 들은 목사의 아들 유해국이 마을에 나타난다. 그리고 유해국이 아버지의 싸움을 이어받으면서 영화는 유해국과 이장의 전면전이 된다. 이 전면전 선포와 함께 영화는 궤도에 오른다.

　반사회성 성격장애. 극에서 공포는 유해국의 감정이다. 아버지가 살해당했다고 믿는 유해국은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라도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그런데 그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자신도 아버지처럼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다. 유해국을 위협하는 마을의 중심인물들은 반사회성 성격장애의 특징을 보인다. 그들은 마을 내부적으로는 어느 정도 위계와 연대감, 서로에 대한 공감도 있다. 필요에 따라서 조직에 순응하는 태도도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사이코패스의 이해할 수 없는 완벽한 자기 중심성이나 무감각과는 구별되는 심리적 특성이다. 그래서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행동을 보면 “어구, 살아보려고 애쓸 때도 가끔 있는 것 같은데, 어째 그러냐?”라는 생각을 잠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민은 도덕적 이해와는 별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도덕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 감정적 교류도 피상적일 때가 많다. 대신 그들은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방어와 공격에 익숙하다. 그리고 덤비면 없애버리겠다는 식의 반사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은 유해국에게 공포상황이 된다.

　공포 학습. 영화가 진행되면서 유해국과 관객은 함께 공포를 학습해간다. 이러한 공포 학습은 어떻게 일어날까? 우선 공포를 느껴야 하는 쪽은 유해국이다. 유해국이 처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보이는 수상하고 적대적인 태도는 불길하지만 아직 무섭지는 않다. 공포가 현실화 되는 것은 복부를 송곳에 찔리는 순간이다. 이때가 최초로 공포를 절감하고 학습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을사람-살인’이라는 연합에 대해 구체적인 공포 조건형성이 이루어진다. 심리학에서 이러한 고전적 조건형성의 예는 ‘파블로브의 개 실험’이나 ‘왓슨의 알버트 사례’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 이전까지는 공포학습에 대한 준비 단계로 보면 된다. 공포학습 준비성이란 ‘생존을 위협하는 특정 자극에 대해서 더 쉽게 공포를 학습하는 성향’이다.

　한편 관객의 공포는 유해국의 공포로부터 비롯된다. 즉 관객은 유해국을 지켜보면서 공포를 대리학습하고 유해국이 알게 되는 정보를 이전 받는다. 이 과정은 친구가 개에 물리는 것을 보면, 이후에 개를 무서워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더 무섭게 할 수 있을까? 만약 공포자극을 비슷한 강도로 반복한다면, 학습자가 자극에 대해 ‘습관화’되어서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니 공포를 유지시키려면 점차로 공포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는 두 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쉬지않고 공포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 경우는 학습자의 피로가 문제가 된다. 두 번째는 이완과 긴장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공포-이완-다시 공포’의 순서를 반복하는 것으로, 이 경우는 지속적으로 공포를 주는 경우보다는 소량의 공포 증가로 다시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 <이끼>는 후자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 물론 두 가지 공포학습 전략에는 모두 약점이 있다. 전자는 일반 관객이 따라가기 어렵고, 후자는 장르에 익숙하고 공포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싱겁다.

　<이끼>는 관객을 숨차게 하지 않는다. 유머로 긴장의 완급을 조절해 주기도 하거니와 보는 것만으로 어지러운 피칠갑도 없다. 예를 들어, 날고기를 먹어도 나박김치 마냥 예쁘게 썰어먹고, 통돼지를 잡아도 용접불로 노릿하게 그을려서 할로겐 렌즈를 비춘 바비큐를 연상시킨다. 두개골 관통상도 액자에 총알의 흔적을 남기고 핏자국을 분무해서 추측케 할 뿐이다. 또한 다시 생각해 보면 이장 천용덕의 백숙도 인스턴트다. 즉 영화는 펄떡거리며 엉키는 날것을 불 위에 올려서 끓고 죽고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라고 권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죽고 조리된 것을 보는 이의 평균적 입맛에 맞춰준다. 그렇기에 관람이 불편하지는 않다. 결국 영화 <이끼>는 장르 마니아용이라기 보다는 강우석식의 대중적 스릴러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2010-07-20

박근영 심리학 박사

분당제생병원 정신과

출처: 청룡시네마 (www.blueaward.co.kr)

[박근영]

이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공포에 대한 대리학습' 예 입니다 ^^

[박근영]

사이코패스에 대해 작성한 글이 하나 더 있기는 합니다만, 영화 내용도 스틸 컷도 학습적 분위기가 아니어서 안 옮깁니다..!!!.... 영화 제목은 <킬러 인사이드 미> 인데요, 청룡시네마에 <영화본심> 코너에 들어가시면 볼 실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