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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요한복음 17장 24절 |
해지는 곳과 해 뜨는 곳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고, 잘 울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리저리 부는 바람이며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눈이며
무르익는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고요한 아침에 깨면
나는 원을 그리며 포르르
날아오르는 알 없는 새이며
밤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으니까요
해지는 곳에서 어느 인디안
어제와 이제가 만나는 곳
사랑하는 그대여,
좀더 가까이 귀에 대고 말하자면
바람, 눈, 햇빛, 비
그 어느 것도 나는 아니요
그들 속에 나는 없답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살아 있음의 환희를 느끼고
온 몸 가득히 햇빛을 받으며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준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어림없는 날갯짓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와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무한을 바라보고
영원을 꿈꾸는 그대의 마음속에
나는 살아 있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거기 서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우리가 함께 했던 기쁨과 슬픔
위로와 상처를 불러 모아
연금술사처럼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바꾸고 있는
그대의 가슴 속에 나는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시를 감상하고 나서 우리는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기에 14처는 나바위 성지에서 하기로 하고 순교 성인들만 참배하고 식사하기로 했다. 천호성지는, 1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교우촌 천호(天呼)로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있으며,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하느님을 부르며 사는 신앙 공동체로 이곳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선지 베드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 요셉과 동년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순교자가 묻혀 계시며, 이 분들과 함께 순교한 수많은 분들이 천호산에 종적을 알리지 않은 채 묻혀 계셨다. 우리는 기도와 참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마친 후 신부님이 추천하신 비봉 가든으로 향했다.
우리는 비봉가든 옆 토속적인 허름한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방안에는 해묵은 식탁이 3개 놓여 있었고 황토 방은 따끈했다. 1시가 훨씬 지난 터라 몹시 시장기를 느끼다 부치개가 나오자 맛있게 먹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방 한 켠에 어느 아침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은 좀처럼 빨리 나올 것 같지 않다. 잠시 후 우리는 만두를 시켜 시장기를 달래고 메인 메뉴인 흑염소탕과 갈비탕이 나오자 맛있게 먹었다. 값에 비해 탕 그릇이 오늘따라 작게 느껴진다. 식사를 마치고 가마솥이 걸린 부엌과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쓰던 생활도구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옛날 영화 소품으로 쓰일 학독, 돌절구, 연자방아, 물을 퍼 올리는 도구며 풍로가 정겹다. 배가 부르니 주위 사물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차에 올라 나바위 성지를 향했다. 예전에 아내가 피정 갔을 때 한번 와본 화산 성지는 고풍스러운 풍모로 친근하게 우리를 맞아 준다.
우리는 성당 내부로 들어가 목조식으로 잘 지어진 성당을 둘러보고 감탄 하였다. 아내가 피정올때와 달리 14처가 있는 동산 입구에는 김대건 신부상이 우뚝 서서 우리를 반겨준다. 큰 석상은 어느 부부가 기증한 모양이다. 나바위 성당은 김대건 신부께서 11명의 교우와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안)신부와 함께 타고 갔던 배편으로 귀국길에 올라 죽을고비를 넘기며 1845년 10월 12일 밤 8시경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단다. 나바위로 정박한 이일을 페레올 주교는 ‘하느님의 섭리’라 하였다 한다.
1907년에 완공 되었다 하니 100년 천주교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14처 오솔길을 기도로 오르면서 화산에 불붙인 성령의 불에 마음이 숙연해 진다. 우리 뒤로 노부부도 기도하며 오르고 있다.
기도를 마치고 망금정과 너럭바위위에 김대건 신부 시복 30주년 세워진 순교 기념비를 보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내려와 김대건 신부 석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성당 앞을 지켜선 푸른 소나무가 늠름하게 세월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각자 승차하며 영광성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보람찬 하루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영광성당 교우들은 저녁 모임이 있어 홍농 성당 교우들은 홍농에서 식사하기로 하고, 우리 교우가 운영하는 녹향 식당서 늦은 저녘을 먹으며 삼겹살과 소주도 곁들였다. 오늘 성지순례에 미사 때문에 참여하지 못 하시면서도 찬조금을 넉넉히 주신 김서규 마태오 신부님과 부친상으로 동참하지 못하면서 찬조금을 내 놓으신 다미아노씨 너무 감사하고요 성지순례에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진촬영 해주신 콜베씨 감사 몽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