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총이 스페인 근대제국을 일궜다면,
라이플은 현대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
인도와 중국이라면 각각 15억 명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지구촌 유이(唯二)의 거대국가다.
현존 인류를 모두 한 줄로 세우면 두 사람가운데 하나가 인디언(미국 인디언 말고^^) 아니면
차이니즈다.
19세기 중반.
인디언과 차이니즈는 그들에 비해 한줌도 안 되는 조무래기 영국 때문에 피똥을 싸고 나자빠졌다.
나라전체가 식민지가 되거나 황제가 무릎을 꿇고 홍콩을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다.
무엇이 영국을 그토록 ‘쎈놈’으로 만들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강선(腔線)이다.
강선총신(腔線銃身)이란 초창기 화승총처럼 총신 안쪽이 밋밋한 활강총신(滑腔銃身: smoothbore barrel)에서 진화된 근대총신 개념이다. 탄환이 지나는 구멍둘레 벽에 나선상(螺旋狀: 골뱅이처럼 뱅글뱅글 돌아나가는) 홈을 파서 발사된 총알이 그 홈에 따라 돌면서 무지무지 빠른 회전이 걸리게 되는 원리다.
총알은 그냥 직선으로 뻗는 것보다 회전을 하게 되면 더 멀리, 더 곧게 힘을 받아 쭉 뻗는다. 마치 야구 투수가 공의 실밥을 이용해 강한 회전을 걸어 너클볼이나 싱크볼을 던질 경우 그 빠르기에 놀란 타자가 공에 손을 대기 힘든 이치와 같다.
강선총신이 만들어진 배경은 활강총신 구멍을 청소하느라 꽂을대를 마구 쑤셔댔다가 안쪽에 흠집이 생겼고 그로 말미암아 총알 위력이 세졌다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졌다 한다. 강선총신은 영어로 ‘라이플이 새겨진 총신’(rifled barrel)임을 뜻하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라이플(rifle)은 그래서 “강선소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강선소총이 등장하여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1853년의 영국과 1855년 미국에서다.
강선총신은 당대 세계최고의 첨단 산업국가였던 영국의 쇳조각 열처리 가공능력과
야금(冶金)기술이 빚은 결과물이다.
강선총은 영국의 1853년식 엔필드 라이플 머스캣(Enfield Pattern 1853 Rifled Musket)이 시초다.
구경 14.7mm(0.577인치)의 전장식 머스캣이다. 활강총의 유효사거리가 50야드에서
75야드(45-68m)에 불과했던 시절에 강선총으로 말미암아 졸지에 200-300야드(180-270m)로
늘어났고, 심지어는 500야드(450m)밖의 사람도 정확히 맞춰 사살했다.

▲ 엔필드 패턴 1853(Enfield Pattern 1853 Rifled Musket) 강선소총. 엔필드는
런던 자치구중 하나로 총산업이 일찌기 발전했던 곳이다. 여기서 생산된
총은 흔히 엔필드 소총으로 불렸고, 사진의 1853년식 강선총은 영국 제국군
제식화기로 1867년까지 쓰였다. 이 총은 나중에 후장식 카트리지 실탄을
장착한 스나이더 엔필드 라이플(Snider-Enfield rifle)로 개량됐다.
과거 영국식민지였던 미국에도 강선 총이 재빠르게 도입됐다. 1855년부터 생산된
구경 14.7mm의 스프링필드 모델(U.S. Springfield Model 1855)이 그것이다.

▲ 스프링필드 강선총(Springfield).
사진은 1861년에 생산된 모델이다.
영국과 미국의 강선소총은 때마침 프랑스 육군에서 개발된 유선형 납 탄환을 장착하면서 과거 화승총이나 부싯돌점화 방식 활강총에 비하면 사거리와 살상능력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약실의 폭발압력이 늘었고 유선형 납탄은 길고 먼 사거리를 헤쳐 나가 적군의 몸통에 박혀서 뼈까지 산산조각 내 피탄된 신체부위는 절단해야 될 정도였다.

▲ 미니에 볼(Minié Balls) 납탄환. 탄두 앞부분을 유선형으로 깎고, 탄두
아랫부분은 세 줄 홈을 팠고, 탄두 꽁지에는 옴폭한 구멍을 냈다.
이러한 변형은 약실 화약의 폭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장치였다.
미니에 볼은 1848년 프랑스 제국의 육군대위 몽고메리(Montgomery)와
헨리 구스타프(Henri-Gustave Delvigne)가 만들었고, 이 탄두는 이후에
벌어진 전쟁에서 무지막지한 살상력을 과시하면서 개량을 거듭한 결과
오늘날의 뾰족한 소총탄두 모양새로 진화했다.
날선 칼이 마음씨 좋은 푸줏간 주인 손에 들려지면 동네사람이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지만,
강도 손에 그 칼이 들려지면 온 동네가 피비린내 풍기며 사람이 죽고 다치는 생지옥으로 돌변한다.
강선소총이 딱 그 짝이었다.
영국군은 강선 총을 손에 쥐면서 더욱 극악무도해졌다.
활강총으로 아편전쟁(1840-1842)이라는 귀신 굿을 펼쳐 중국의 5개 항구를 강제 개항시킨 것이
못내 아쉬웠던 참에, 강선 총을 쥐자말자 곧바로 프랑스와 편먹고 애로우(Arrow)전쟁이라 불린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을 벌였다.
청나라 황제가 사는 베이징과 톈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무수한 중국군과 인민을 사살했다. 이번엔 홍콩뒷쪽 구룡(九龍)까지 빼앗았다.
강선소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선소총 거머쥔 김에 영국은 더 욕심을 냈다.
인도에 설치했던 동인도회사의 용병 세포이 집단이 악랄한 영국의 착취에 항거하는
세포이 항쟁(Sepoy Mutiny, 1857-1859)을 일으키자 기다렸다는 듯 강선소총을 마구 쏘아대
1858년에 인도정부를 손아귀에 넣고, 드디어 인도 전역을 영국식민지로 만들었다.
강선소총을 거머쥔 미국은 해외 식민지 점령이 아닌
내전(남북전쟁: 1861-1865)에 그 위력을 쏟아 부었다.
4년간이나 남북 연방(연맹)간 피비린내 풍기면서 북군 손아귀에 쥐어진
강선소총은 70-80만명의 사상자를 내고서야 전쟁의 막을 내렸다.
(2)부로 계속
첫댓글 사거리는 유효살상이 가능한 거리인가요?
한글로 표기하는 한자어는 동음이어가 많아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한글 '사거리'는 사거리(死距離)와 사거리(射距離) 모두 포함되거던요.
死距離일 때는 '유효 사거리'의 뜻을 가지고, 射距離일땐 죽고말고를 떠나
총알이 날아가는 총 거리를 뜻하는 단어가 됩니다.
윗글의 사거리는 유효사거리 즉 死距離를 뜻합니다.
강선소총 射距離는 1,000야드가 헐씬 넘는다고 합니다.
요즘의 소총과 별반 다르지 않지요.
그래서... 윗글의 사거리는 이해가 쉽도록 '유효 사거리'로 바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