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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참깨 농사를 소개합니다. 참깨가 무슨 잡곡이냐? 이런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참깨는 전통적으로 농사짓는 집이라면 거의 빠짐없이 심어서 자급해 왔다는 점, 심고 거두는 과정이 다른 잡곡과 비슷하다는 점에 무게를 둬서 여기에 끼워 넣기로 했습니다. 춘천시 사북면 고성리로 귀농해서 4년째 농사짓고 계시는 김태수님을 찾아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참깨는 5월 초순이나 중순 서리가 완전히 그친 다음에 씨를 넣습니다. 참깨는 당근처럼 씨앗 붙이는 게 관건입니다. 잘 못 하면 씨가 안 붙어서 세 번, 네 번 보식해야 하고 그렇습니다. 씨앗 넣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 말씀드릴 수 있어요. 보통 많이 하는 관행적인 방법은 줄뿌림입니다. 트렉터에 삽 네 개 달고 쭉쭉 째면 폭 75 센티 두둑이 나와요. 두둑 맨 위를 괭이로 얕게 줄을 긋고 지나갑니다. 살살 골을 내는 거예요. 두둑을 따라 한 줄로 쭉 골을 냅니다. 여기에 참깨 씨를 쭉쭉 뿌려주는 거지요. 종이컵에 참깨 씨 담아가지고 엄지하고 검지로 조금씩 잡아서 쭉쭉 뿌리고 나가는 거지요. 그러고는 손으로 흙을 살짝살짝 덮어줘요. 깊게 덮이면 안 나고, 안 덮히면 말라버리니까 아주 살짝, 그냥 씨앗이 안 보일 정도로만 덮는다 생각하고 덮어주는 거예요.
씨앗 뿌리고 나면 하얀 비닐을 씌웁니다. 폭 90센티 비닐로 그냥 다 덮어 놔요. 그러고 며칠 있으면 싹이 옴쭉옴쭉 올라와서 비닐을 밀지요. 싹이 올라오는 걸 봐야 되니까, 농자재상 같은 데 가서 참깨 비닐 달라고 하면 다 하얀 비닐을 줘요. 그 때, 작은 뼘으로 한 뼘 간격으로 구멍을 뽕뽕 뚫어 줍니다. 보통은 짤막한 나무토막에 기역자로 꺾인 날을 달아서 툭, 툭, 툭, 치면서 나갑니다. 그러면 싹이 구멍으로 다 기어 나와요. 어떤 경우에는 구멍에서 이삼십 센티미터 떨어진 데서 난 싹도 구멍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래요. 구멍 뚫어주고 흙을 덮어줍니다. 복토를 해주지 않으면 비닐 속에서 데워진 공기가 구멍으로 나오면서 싹을 다 태워버리니까 꼭 흙을 덮어줘야 합니다.”
“비닐을 안 씌우면 어때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든 비닐 안 쓰고 해 볼 방법은 없을까 싶어서 꼭 하는 질문이다.
“제가 작년에 참깨 심은 게 4천 평이에요.”
으흐흐흐 서로 살짝 헛웃음을 웃고 지나간다. 질문과 대답이 영 딴판이어서 농사를 안 지어보신 분들은 어쩌면 멋쩍은 웃음의 의미를 잘 모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비닐을 씌우면 씨앗이 잘 붙어요. 참깨 씨 붙이기가 어려운 건 온도하고 습도 때문인데, 비닐을 씌우면 온도가 맞고, 또 땅에서 올라온 습기가 몽골몽골 맺혀서 떨어질 거 아니에요? 씨앗 넣은 자리는 골을 살짝 내서 비닐하고 약간 떨어진 상태라서 통풍도 되고, 골이 나서 낮으니까 늘 습기가 있어서 싹이 잘 붙는 거예요.”
아하! 씨앗 뿌리고 신문지나 뭘로 덮어 놓으라는 게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씨앗이 아주 작은 작물은 흙도 살짝 덮어야 하고 그러면 얕게 묻힌 상태에서 해가 쨍 나면 흙이 바싹 말라버리니까 싹을 못 내미는 거였구나. 그래서 싹 붙이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농사도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양반이 뭐 이리 아는 게 많을까! 여러 분들은 벌써 다 알고 계신 건가요? 저만 몰랐던 건가요?
“그러고 나서 솎아주죠. 한 뼘쯤 자랐을 때 한 구멍에 서너 대만 남기고 솎아주고 나면 수확할 때까지 풀만 두어 번 잡아주면 돼요.”
이게 첫 번째 방법이다. 흔히 이렇게 참깨 농사를 한다. 이 방법으로 삼년 정도 농사를 지은 태수형님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점파하는 방법.
“소주병이나 둥근 막대기로 골 중심에서 약간씩 벗어나게 지그재그로 쿵쿵 치고 나가는 거예요. 지그재그로 가면 아무래도 일자로 쭉 가는 거보다 포기 간 간격은 확보하면서 조금 많이 심겠죠? 구멍 뚫을 자리를 미리 정해 놓는 거라고 보면 돼요. 그렇게 살짝살짝 찍어 놓고 그 자리에만 씨앗을 넣는 거죠. 그리고 비닐 씌우고 구멍 뚫을 때 그 자리만 뚫어 주면 되지요. 이렇게 하면 좋은 게, 구멍 뚫어 놓고 뒀다가 한 뼘 이상 자랐을 때 솎으면서 복토해도 돼요. 싹이 한 두 개 올라왔을 때는 복토를 안 하면 타버리는데 예닐곱 개씩 올라와 있으면 서로 그늘을 만들어서 안 타요.”
“씨앗 넣는 거요? 그건 같아요. 종이컵에 씨앗을 담아서 한 번 집어서 서너 구멍씩 쭉쭉 뿌리고 바로 살짝살짝 덮고 나가는 거예요. 종이컵으로 하나면 글쎄...한 백 평 정도 심는다고 보면 될 거 같애요. 참깨 씨앗 한 되 이상 보관하는 사람은 못 봤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검은 비닐을 씌우는 것인데, 이건 미리 비닐을 덮어 놓고 모종삽 같은 걸로 구멍을 내 가면서 씨앗을 넣기도 한다.
“씨앗 달린 비닐 있잖아요? 그거 써 보셨어요? 어때요?”
참깨는 아예 비닐에 씨앗을 붙여서 나오기도 한다. 이건 비닐만 씌워놓으면 되니까 어쩐지 좀 편할 것 같아서 여쭤본다.
“밭에 돌 없고, 평평해서 경사지지 않고, 흙살이 좋으면 할 만한데, 우리 밭에서는 안 돼요. 비닐 가장자리에 씨앗이 붙어있으니까 이게 묻히면 안 되고, 씨앗 달린 부분을 어떻게든 흙에 붙여야 하는데, 그럴려면 두둑이 약간 평평하게 나와야 되거든. 그거 작년에 경사진 밭에 하느라고 아주 죽을 뻔 했어. 그리고 잘 못 하면 중국산이 나와요. 중국산은 담배처럼 꼿꼿하게 쭉 자라 오르면서 가지를 안 내밀어요.”
“참깨 비닐이라고 왜, 구멍이 아예 자리 잡아 뚫려 나오는 거 있잖아요? 그건 어때요?”
“조금 할 때는 괜찮겠지. 참깨는 한 뼘 정도 간격이니까 구멍이 좀 많아? 40~50미터 되는 두둑, 한 줄 심고 나면 힘 빠져서 못 해요. 저 아래 젊은 친구랑 둘이서 하는데, 정말 죽을 뻔 했다니까.”
서로 보면서 웃는다. 농사짓는 게 어느 거나 다 그렇다. 늘 죽을 뻔 한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이것도 조폭과 농부의 공통점이다. 난 올 해 천이백 평 감자밭 싹 꺼내 주느라고 아주 죽을 뻔 했던 얘기를 한다.
참깨역시 거름이 너무 많으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잘 안 단다. 밭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보당 발효퇴비 400~500kg 정도면 무난할 것 같다. 5월 중순쯤 밭에 들어가서 80일 ~ 90일 정도면 수확한다. 그러니, 아주 지랄이다. 온전히 1년 농사다. 게다가 한 참 자랐을 때 장마와 태풍을 겪는다. 작물이 다 그렇듯이 참깨도 일단 자빠지면 수량이 줄고 품질이 떨어진다. 그래서 조금 늦춰서 6월에 심기도 한다.
들깨는 초복에 한 짐 심으면 석짐 먹고, 중복에 심으면 두 짐 먹고, 말복에 심으면 한짐 먹는다고들 하고, 참깨는 일찍 심으면 일찍 먹고 늦게 심으면 늦게 먹는다고 한다. 늦게 심어도 관계없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외려 늦게 심는 게 좋은 해도 있다. 아직 어릴 때 태풍이 지나가면 쓰러지지 않고 견뎌내기 때문이다.
무릎께 만큼 자라면 벌써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계속 자라면서 계속 꽃을 피운다. 이것도 참 곤란하다. 위는 시퍼렇게 열매 막 달기 시작했는데, 아래는 벌써 송아리가 벌어져서 깨가 쏟아져 버린다. 그러니 아래를 먹으려면 위를 포기해야 하고, 위를 먹으려면 아래를 포기해야 한다. 보통은 위를 포기한다. 더 이상 자라지 말라고 순을 쳐버리기도 한다. 병도 오는데, 덜썩 큰 놈이 갑자기 주저앉기도 하고, 물순을 받으면 녹아내리기도 하고, 대궁이 뻘겋게 타버리기도 한다.
“참깨는 베기도 어려워요. 이렇~게 봐가지고 벌었나 안 벌었나 보고, 밑에 한 두단 정도 벌었을 때 베는데, 이게 한꺼번에 다 똑같이 자라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거는 벌써 벌어져서 깨가 다 쏟아졌고, 어떤 거는 아직 시퍼렇고 그렇거든. 그러니까 그냥 들깨처럼 한 번에 싹 베버릴 수도 없고, 싹 벤다고 생각하고 갔다가도 그렇게 안 돼요. 또 낫질도 힘차게 싹싹 할 수가 없어. 조심조심 잡아서 조심조심 베서 한 움큼쯤 되면 조심조심 들고 가서, 참깨 수확할 때는 바닥에 깔 게 꼭 있어야 돼, 그 위에 살짝 놓고, 또 베고 그래야 돼요. 그 자리에서 한 번 살짝 떨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떨어지는 깨를 ‘아람깨’라고 해서 최고로 쳐요.”
벤 깨는 한 움큼씩 밑둥을 묶는다. 네 묶음을 모아서 다시 머리를 묶어 세우는데, 이렇게 네 묶음 한 세트를 세는 단위가 ‘조자리’다. 다리가 네 개가 됐으니 세워 놓을 수 있다. 보통 세워서 말린다. 말릴 때 비 맞으면 끝장이다. 썩는다. 통풍이 잘 돼야 한다. 비도 맞춰서는 안 되고, 통풍이 안 돼도 안 된다. 비 안 맞친다고 하우스에 넣으면 십중팔구 ‘사고’가 난다. 머리 맞닿은 부분이 떠버린다. 그러면 깨가 하얗질 않고 시커멓게 돼버린다. 대체 어디에 널어 말리란 말인가? 모르겠다. 그냥 펴 널기도 하는데 그러면 땅과 닿은 부분이 상한다. 수시로 뒤집어 줘야 하는데, 바빠 죽겠는데 언제 그 짓을 하고 있나? 적당히 먹을 생각을 해야 한다.
수확량은 보통 아주 잘 됐을 때, 한 조자리 한 식되(600g), 열 조자리 한 말, 백 조자리 한 가마 그러는데, 3백 평에 한 가마 하면 농사 아주 잘 됐다고 한다. 잘 말려서 맑은 날 골라서 떤다. 그래도 다 안 떨어진 게 있으니까 더 말렸다가 또 떨고, 또 떨고 해서 보통 세 번은 떨어야 한다. 떤 깨는 잘 말려서 키질해서 검불을 골라내고 깨끗이 씻어서 잘 널어 말린다.
기름집에 가서 짜는데 한 말 짜면 2홉 들이 병(소주병)으로 8병에서 8병 반 정도 나온다. 그러니까 최소한 두 되는 돼야 짤 만하다. 일반 국산 참깨는 생산자 가격이 한 되에 만 원 정도고, 형이 내는 가격은 한 말에 14~15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손 많이 가는 참깨를 유기농이으로 지었으니까. 기름을 짜서 춘천생협으로 내기도 하는데 ‘국산-유기농-참기름’이다. 값을 여쭤볼 엄두가 안 나서 그만뒀다.
농민은 헉헉대고 지은 농사, 정당한 대가를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아무리 비싸도 못 미치고, 소비자는 어떻게든 좋은 농산물 당연히 먹어야 하는데 아무리 싸도 엄청 부담스럽다. 세상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것일까? 해법은 없을까?
“형, 키질이 돼요?”
“내가 어떻게 해? 노인네들 계시니까 하지, 난 못해!”
잡곡도 그렇고, 참깨도 그렇고, 수확한 후에도 밭에 있는 동안 들인 데 버금가는 만큼의 공을 들여야 겨우 입으로 들어간다. 게다가 수확 후 선별은 나름의 노하우와 오랜 숙련이 필요하다. 농사, 쉬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