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람교의 주요 교리
ALLAH에 대한 신앙
1) 무슬림들의 사고 속에서 본 ALLAH의 개념
ALLAH는 한 분 뿐이고 동반자, 즉 부모, 아내, 자식도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QURAN의 114개 장에서 1개 장을 제하고 모든 장에서
“긍휼하시고 자비하신 알라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다.
ALLAH에 대한 수식 형용사들이 99가지나 있는 데 모두 명사용법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ALLAH를 지칭하기도 한다.
ALLAH의 100번째 이름은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아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나
오직 낙타는 그 이름을 알고 있으며 낙타가 당당한 위풍을 가진 이유는 바로 이 지식 때문이다.
ABU HURAIRAH의 전통에 근거한 ALLAH의 99개의 이름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The Merciful ②The Compassionate ③The King ④The Holy ⑤The Peace
⑥The Faithful ⑦The Protector ⑧The Mighty ⑨The Repairer ⑩The Great
⑪The Creator ⑫The Maker ⑬The Fashioner ⑭The Forgiver ⑮The Dominant
⑯The Bestower ⑰The Provider ⑱The Opener ⑲The Knower ⑳The Restrainer
㉑The Spreader ㉒The Abaser ㉓The Exalter ㉔The Honourer ㉕The Destroyer
㉖The Healer ㉗The Seer ㉘The Ruler ㉙The Just ㉚The Kind
㉛The Aware ㉜The Clement ㉝The Grand ㉞The Forgiving ㉟The Grateful
㊱The Exalted ㊲The Greate ㊳The Guardian ㊴The Strengthener ㊵The Reckoner
㊶The Majestic ㊷The Generous ㊸The Watcher ㊹The Approver ㊺The Comprehensive
㊻The Wise ㊼The Loving ㊽The Glorious ㊾The Raiser ㊿ The Witness
The Truth / The Advocate / The Strong The Firm / The Patron / The Laudable /
The Counter / The Beginner / The Restorer / The Quickener / The Killer
The Living / The Subsisting / The Finder / The Refuge or Helper / The One/
The Eternal / The Powerful / The Prevailing / The Bringing Forward / The Defender /
The First / The Last / The Evident / The Hidden /The Governor /
The Exalted / The Righteous / The Acceptor or Repentance / The Avenger /
The Pardoner / The Gracious / The Ruler or The Kingdom / The Lord of Majesty /
The Equitable / The Collector / The Independent / The Enricher / The Giver /
The Withholder /The Distress / The Profiter / The Light / The Guide /
The Incomparable / The Enduring / The Inheritor / The Director / The Patient
무슬림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알라를 열망하고 섬기고 있는지를 알아야 되겠다.
그러나 그들이 유일하신 알라만을 열심히 믿고 있다는 사실에 긍지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2) 기독교적인 믿음에서 비추어 본 ALLAH
Camp David 협정을 앞두고 미국의 Jimmy Carter 前대통령은 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무슬림이 하나님의 존재를 성부, 성자, 성령으로 믿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해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가 같다고 한다면 알라는 누구이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거나 또는 깊이 뿌리박혀 있는 차이점을 의도적으로 얼버무리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1)聖父가 아닌 ALLAH
무슬림들이나 유대인들과의 대화를 위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해 부른 “아버지”라는 이름을
새롭게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복음서에는 적어도 이 명칭이 164번 언급이 된다.
예수님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 감히 신학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하나님의 면전으로부터 있는 베일을 조용히 옮기시며
진정 그분이 계신 그대로 “아버지”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외부 사람들이나 귀신들 또는 그의 원수들에게 이야기하실 때
그는 숨겨진 하나님,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위대한 능력 있는 하나님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친밀히 둘러싸여 이야기하실 때나 기도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가장 깊숙한 비밀인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 되심”을 계시해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종종 참람하다는 정죄를 받으셨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저희가 그에게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가야바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고 또한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첫 말씀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을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그의 아들 예수님께 내리시면서
아버지로서 자신을 감추시고 엄한 재판관이 되셨기에 그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고통 하는 중에도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
그 實在를 붙잡고 “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죽어가셨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가장 깊숙한 實在를 계시해주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우리에게 신약을 통해서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로 보여주셨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이슬람교가 삼위일체를 거절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성삼위일체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시대의 삼위일체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마리아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쳐졌다.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
이슬람교에서는 영적으로가 아니라, 육적으로 이해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깝게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ALLAH는 지존하시고 먼 곳에 계시고 신비하신 분일뿐이다.
(2)聖子가 아닌 ALLAH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은 무슬림들을 격분시키는 또 하나의 주제가 된다.
그들은 ALLAH 이외에 존재하는 제2의 神性의 人格을 생각할 수 없다.
聖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계신 것처럼
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동안에 계속적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영광을 주시고 우편에 앉히신 한편, 아들은 그의 피로 사신 교회를 건설하는 직책을 성령님께 맡기셨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슬림들의 귀에는 참람하게 들린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알라는 더 이상 그의 손에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영은 자만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존재한다면 역시 알라의 절대 주권에 어떤 침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린 양이나 중재자나,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슬람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알라의 전능성을 부인하는 상징으로 보고 있다.
죄를 지은 모든 자에게 죽음을 요구하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동시에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갈망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슬람교에는 감추어져 있다.
ALLAH는 죄인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그를 경외하는 자를 사랑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어떠한 무슬림도 알라가 자신을 위해 낙원을 준비하고 있는 지,
아니면 지옥의 문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 결코 확신할 수가 없다.
이슬람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류를 위해 대속물이 되신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무슬림도 속량을 인식할 수가 없고, 그들은 은혜 없이 살며 그들의 죄 가운데 머물고 있다.
진정한 구원자가 그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
(3)聖靈이 아닌 ALLAH
이슬람교에서는 성부와 성자만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나님이 아니며 단지 천사들이나 마귀처럼 창조된 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령은 마리아와 무함마드에게 알라부터 메시지를 가져 온 천사 가브리엘로 여겨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육체가 되어 지금 신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영이라는 사실은,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에게는 신비로 감추어져 있다.
기껏해야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들인 수피파만 알라가 인간 속에 내주하는 것을 바라며 기대해 왔다.
그렇지만 그들은 십자가를 통하여 의롭게 하는 행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무슬림들이 성령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성령이 그들 안에 내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부를 수 없고 그에게 속해 있지 않다.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없다.
무슬림들과 영적인 상담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들 중 많은 사람에게서 알라의 자비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구원의 실제적인 확신은 이슬람교에서는 없다.
영원한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의 모든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다는 확실한 사실이 이슬람교에서는 놓쳐지고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접촉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집안 식구 안에 받아들여졌다고
증거하는 진리를 무슬림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어떠한 사람 속에 내주하지 않으실 때에 그는 영생을 알 수가 없다고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무슬림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재판과 선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