迎日 鄭氏 圃隱의 가훈
고려 말의 충신, 포은 鄭夢周(1337~1392)의 초명은 夢蘭 夢龍, 자는 達可, 호는 포은, 시호는 文忠 본관은 영일, 鄭瓘(정관)의 아들로 경북 영천(一說에는 浦項市 烏川邑 文忠里)에서 태어났다. 1360년(공민왕 9년) 三場에 연달아 장원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390년(공양왕 2년)門下侍中에 이르렀다.
당시 이 성계의 위력이 날로 커져서 趙浚 鄭道傳 등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매 우선 조준을 제거하려 하는 동시에 고려조를 끝까지 받들고자 하다가 李芳遠(태종)의 문객 趙英珪 등이게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성미가 豪放하고 충효로 일관했으며 성리학에 매우 밝아 五部學堂 . 鄕校를 설치하여 儒學을 진흥시켰다.
조선시대 성종 때 孫舜孝가 경상도의 안찰사가 되어 영천을 순시하다가 古老들에게 물어 사당의 옛터를 다시 찾아 다시 지었다. 지금도 경북 영천시 임고면 良巷동(속칭 書院골) 에는 그를 제향한 임고서원과 그의 부친을 모신 日城君齋舍가 있어, 해마다 춘추 두 차례 그 지방의 유림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포은 惕若齋銘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글이 보인다.
<하늘의 운항하는 것은 날마다 9만리라, 잠깐이라도 끊어짐이 있다면 물이 나지 못한다. 운행하는 것은 이와 같아서 쉬지 않는다. 잠깐 동안이라도 병이 생기면 혈맥이 중단되는 것이니, 군자가 그를 무서워하여 낮에는 부지런회 일하고, 밤에는 두려워 반성하여 공부를 지극히 쌓으면, 하늘에게 대할 수 있을것이다.>
첫째, 충효의 큰 절개가 있으라.
둘째, 젊을 때에 학문을 좋아하여 게으르지 말라.
셋째, 性理의 학문을 정밀히 연구하여 깨달은 바가 있으라
넷째, 仁을 이루어라
다섯째, 님 향한 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여섯째, 儒者의 도는 모두가 일상 생활에 있는 일이다. 음식이나 남녀의 관계는 사람들이 같이하는 것인데, 지극한 이치가 거기에 있는 것이요, 堯舜의 道도 이 밖에 있느 것이 아니다.
鄭(영일 정씨)
본관(本貫): 영일(迎日)
시조(始祖): 지백호(智伯虎): 정습명(鄭襲明),정극유(鄭克儒)
유래(由來):
정씨(迎日鄭氏)는 신라(新羅)의 전신(前身)인 사로(斯盧)의 육부촌(六部村) 중 취산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가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 봄 유리왕(儒理王)으로 부터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賜姓)받을 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下賜) 받은 것이 시초가 되며, 그의 원손(遠孫) 종은(宗殷)이 신라조(新羅朝)에서 간관(諫官)으로 직언(直言)을 하다가 인동(仁同) 약목현(若木縣)에 유배된 후 후손 의경(宜卿)이 영일(迎日)로 이거(移居)하여 호장(戶長)을 지내고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영일정씨 (迎日鄭氏)로 시적(始籍)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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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정재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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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齊斗(정제두)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서울에서 출생해 어려서는 이상익(李商翼)에게 수학하였다. 몇 차례 과거 시험에 실패한 뒤 24세 때부터는 과거 공부를 그만둔 다음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74세에는 사헌부대사헌 · 이조참판에 임명되고 그 뒤 성균관좨주 · 사헌부대사헌에 임명되었다. 78세 때는 이정박(李廷撲)이 조정에서 그가 양명학을 한다고 배척했으나 영조의 보호를 받았으며, 80세에 의정부우참찬, 88세에는 세자이사(世子貳師)로 임명되었다.
鄭齊斗(정제두)의 말씀
義然後取(의연후취)=(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의롭고 정당다는 것을 안 연후에 취하도록 하자.)
---위 말은 정제두 공(公) 이 남긴 많은 말씀들 가운데 한 가지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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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정몽주 선생 영정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몽주 선생 묘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몽주 선생을 제향한 덕암서원: 전북 임실군 지사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몽주 선생을 배향한 도남서원: 경북 상주시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몽주 선생을 배향한 삼은각: 충남 공주군 반포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몽주 선생이 피살 당한 선죽교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몽주 선생을 배향한 숭양서원 : 경기 개성시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모주 선생을 배향한 옥산서원 :경남 하동군 옥종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몽주 선생을 배향한 옥산서원에 중국 주엽나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몽주 선생을 배향한 임고서원 : 경북 영천군 임고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경세(임란 때 의병대장) 선생이 세운 강호정: 경북 영천군 지암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심(조선중기 문신) 선생을 배향한 설재서원: 전남 나주군 노안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호 선생을 제향한 누암서원: 충북 중원군 가금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호(조선후기 문신) 선생 초상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정철 선생의 유적지인 송강정: 전남 담양군 담양읍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철(조선중기 문신) 선생을 배향한 월정서원: 전남 나주군 노안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철(조선중기 문신) 선생 글씨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습명(고려중기 문신) 선생을 배향한 오천서원: 경북 영일군 오천면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세아(임란 때 의병장) 선생 글씨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양(조선후기 문신)선생 글씨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수기(조선후기 문신) 선생 초상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완(조선중기 문신) 선생 글씨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우량(조선후기 문신) 선생 글씨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희량(조선후기 문신) 선생 글씨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좌 <정사진(조선중기 문신) 선생을 배향한 직천서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 <정대임(조선중기 문신) 선생을 배향한 창대서원: 경북 영천시 (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