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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특강 9강-1 (전통불교문화원)
14-11 地行神通(지행신통)
14-12 三界唯心(삼계유심)
14-13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어제에 이어서 52쪽 14-11 地行神通(지행신통). 제목이 아주 좋습니다.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이다. 여러분, 땅에서 다 걸어 오셨지요?
그것 神通입니다. 땅으로 이렇게 걸어온 것, 강당까지 걸어온 것,
그것이 곧 신통이다. 하는 내용인데 어제 신통이야기를 끄트머리에 조금 언급하면서 수도꼭지 잘 틀어서 물 잘 사용하는가?ㆍ또 불 스위치 잘 올리고 끄고 하는가?ㆍ또 보일러 온도 따라서 잘 높이고 낮추고 하는가?
그것 할 줄 알면 가장 훌륭한 신통이다. 이런 말씀도 드렸습니다.
여기 오늘은 地行神通. 한 수 더 떠서, 모든 사람들은 다 땅으로 걸어 다닙니다. 그것이 곧 신통이다.
사실, 하늘로 만약에 날아다닌다. 이런 능력이 있다. 혼자 날아다녀서 어쩔 겁니까? 날씨는 추운데 날아다니면 더 춥지. 물 위로 걸어가는 능력이 있다손 칩시다. 그것 전부, 배도 좋고 요즘 아주 대 유람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혼자 뭐하려고 그렇게 물 위로 걸어다녀요?
하늘로 날아다니는 것도 비행기 여러 사람 같이 타고 이야기도하면서ㆍ식사도 하면서 그렇게 미국도 가고ㆍ중국도 가고, 그것이 좋은 것이지, 혼자 날아가서 어쩌자는 겁니까? 그것 다 아주 비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또 오래 살려고 辟穀(벽곡)을 한다ㆍ무슨 신선 흉내를 낸다. 이런 것들도 많이 있는데요. 글쎄요. 지금까지 한 1000년씩ㆍ2000년씩 사는 사람이 있다면 또 모르겠어요. 그렇게 사는 사람 없습니다. 조주스님께서는 아주 정상적으로 사셔도 120까지, 도인으로서 120까지 사셨지만, 그것도 길고 긴 세월 속에서 보면, 별거 아니잖아요. 120 살았다고 손치더라도...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고, 건강에 관심이 많고, 또 건강을 관리할만한 그런 생활의 여유가 있고 하기 때문에, 앞으로 젊은 스님들 세대는 전부 100살 넘게 삽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100살 넘게 다 살아요.
지금 보통 80은 사니까요. 50년 전에 평균 연령이 얼만 줄 아세요?
54세인가 그랬습니다. 지금 평균 연령이 70이 넘었습니다. 50년 사이에 한 25년이 늘어났어요. 그걸로 계산해보니까 젊은 스님들 세대는 전부 100살 넘게 삽니다. 그 정도면 신통이지요.
그전에 우리나라에 유리겔라가 와가지고, 하도 오래된 세월이라서, 스님들 기억하는가 모르겠네요. 오래된 세월이라서... 한 20~25년쯤 전인가? 무슨 신통한다는 사람이 와가지고, 아주 마술 전문가지요. 와가지고 만리장성도 통과하고, 또 TV에서, 모두 숟가락 들라 해가지고 자기가 뭘 말하면, 숟가락이 휘어진다 하는 그런 것. 나중에 전부 매스컴하고 짜고 한 사실 아닙니까? TV하고 짜고 한 사기극이었대요. 설사 그런 능력이 있다한들 그것 무엇에 쓸 겁니까? 아무 소용없는 겁니다. 우리가 정상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훨씬 뛰어납니다.
14-11 地行神通(지행신통)
儞道(이도)호대 佛有六通(불유육통)하야
是不可思議(시불가사의)라하니, 一切諸天(일체제천)과
神仙阿修羅(신선아수라)와 大力鬼(대력귀)도
亦有神通(역유신통)하니 應是佛否(응시불부)아?
道流莫錯(도류막착)하라 祇如阿修羅(지여아수라)가
與天帝釋戰戰敗(여천제석전전패)에
領八萬四千眷屬(영팔만사천권속)하고,
入藕絲孔中藏(입우사공중장)하니 莫是聖否(막시성부)아?
如山僧所擧(여산승소거)는 皆是業通依通(개시업통의통)이니라.
夫如佛六通者(부여불육통자)는 不然(불연)하야
入色界不被色惑(입색계불피색혹)하며
入聲界不被聲惑(입성계불피성혹)하며
入香界不被香惑(입향계불피향혹)하며
入味界不被味惑(입미계불피미혹)하며
入觸界不被觸惑(입촉계불피촉혹)하며
入法界不被法惑(입법계불피법혹)하니라. 所以(소이)로
達六種色聲香味觸法(달육종색성향미촉법)이
皆是空相(개시공상)이라.
不能繫縛此無依道人(불능계박차무의도인)하야
雖是五蘊漏質(수시오온누질)이나
便是地行神通(변시지행신통)이니라
儞道(이도)호대 佛有六通(불유육통)하야,
그대들이 말하기를, 부처님에게는 여섯 가지 신통이 있어서
是不可思議(시불가사의)다. 아~ 이것은 대단하다. 불가사의한 것이다.
이렇게들 이야기하는데,
一切諸天(일체제천)과 神仙ㆍ阿修羅(신선아수라)와 大力鬼(대력귀)도 亦有神通(역유신통)하니, 그런 아주 희한한 신통, 그런 것은 다 있다.
부처님 아니라도, 부처님까지 그런 것을 할 필요 없다. 이것이지요.
應是佛否(응시불부)아? 그런 신통이 있다고 부처냐? 유리겔라도 부처냐?
道流야 莫錯(도류막착)하라. 착각하지 말라.
祇如阿修羅(지여아수라)와, 다만 저 아수라하고, 그리고
與天帝釋戰戰敗(여천제석전전패)에, 天帝釋이 전쟁을 하는데, 전쟁에서 패하면, 제석천하고 아수라하고 전쟁을 해요. 그러면
領八萬四千眷屬(영팔만사천권속)하고, 8만 4천 권속들을 거느리고서, 어디로 도망을 가는가 하면
入藕絲孔中藏(입우사공중장). 이랬어요. 이것은 연뿌리 藕자인데요.
연뿌리 안에 보면 구멍이 있잖아요. 뽕뽕 구멍이 뚫린 겁니다. 연뿌리 속의 그 구멍에 8만 4천 권속들을 거느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 숨는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그냥 이야기로... 실지로 그런지는 안 봤으니까 모르겠고요.
그런 말이 있는데 그러면 이 사람들도, 그 아수라도 성인이냐?
莫是聖否(막시성부)아? 성인인가? 아닌가?
如山僧所擧(여산승소거)는, 예컨대 山僧이 여기서 거량하는 것은
皆是業通ㆍ依通(개시업통의통)이라. 그런 것은 전부 사기극이다. 눈속임이고ㆍ사기통이다. 이겁니다. 業通. 업에 의한 신통이고ㆍ무엇엔가 의지한 신통이다. 의지한데 통한 것이고ㆍ업에 통한 것이다. 신통이라고 붙일 것도 없습니다. 업에 통한 것이고ㆍ의지한데 통한 것이다. 그 어름위에서, 예를 들어서 스케이트를 탄다든지ㆍ또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춘다든지 하는 그런 모습들 보면, 정말 그것은 기가 막힌 기술 아닙니까?
그것은 業通입니다. 익숙하게 하면 業이 돼가지고, 업이 통한 것이지요.
그리고 요즘 TV같은데서 보면, 한 분야에 잘 하는 사람들. 소개 많이 하지요. 뭐 예를 들어서 밥상을 열층ㆍ스무층을 그냥 한 손에다 들고 올라간다든지ㆍ들고 다닌다든지ㆍ그리고 눈감고 그냥 국수를 썬다든지 등등, 그것 보면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거든요. 그것이 業通입니다.
그 업이 익숙하니까요. 우리도 눈감고 목탁 잘 칩니다. 그것도 業通입니다.
그런데 속인들 보고 “목탁 쳐라.” 하면요? 그것 영 높낮이도 안 맞고ㆍ아무것도 안 맞고 아주 엉망입니다. 처음 치라고 해보면...
그런데 스님들은 아주 전문적으로 잘 칩니다. 그 내리는 목탁 치는데 어떻게 그 간격이 정확하고, 내릴수록 소리가 가늘어지면서, 또 올릴 때도 저~ 가는데서 부터, 소리부터 없는데서 부터 차츰차츰 올려가지고 큰 소리까지 치는데, 그 간격이라든지ㆍ그 소리의 강도라든지, 기가 막히게 맞추지 않습니까? 그것이 다 業通입니다.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그런 것 어림도 없어요. 못해요. 아무리 가르쳐도 그것 못해요. 무엇엔가 의지해서 통한 것, 그런 것이다.
夫如佛六通者(부여불육통자)는,
예컨대 부처님의 여섯 가지 신통을 내가 한 번 설명해보겠다. 나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런 뜻이지요. 不然(불연)하야, 부처님의 여섯 가지 신통은 그렇지 아니해서,
入色界不被色惑(입색계불피색혹)하며,
사물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어떤 사물로부터 미혹을 입지 아니한 것, 사물로부터 미혹을 입지 아니한 것. 뭐 세상 좋은 것 많지요. 눈으로 홀리는 것 사실 많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미혹을 받지 않아요ㆍ거기에 빠지지도 않아요ㆍ집착하지도 않아요. 또
入聲界不被聲惑(입성계불피성혹)하더라도,
소리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소리의 미혹을 입지 아니한 것.
소리에 걸리지 않는다 이겁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 소리ㆍ아름다운 음악소리, 다 좋지만 거기에 빠지거나하지 않는다 이것이지요.
入香界不被香惑(입향계불피향혹)하며,
향기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향기의 미혹을 입지 아니하고,
入味界不被味惑(입미계불피미혹)하며,
맛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맛의 미혹을 입지 아니하고,
入觸界不被觸惑(입촉계불피촉혹)하며,
感觸(감촉). 촉감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感觸의 미혹을 입지 아니하며,
入法界不被法惑(입법계불피법혹)하니라.
법계에 들어가더라도,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진리의 미혹을 입지 아니하느니라.
所以(소이)로, 그러므로
達六種色ㆍ聲ㆍ香ㆍ味ㆍ觸ㆍ法(달육종색성향미촉법)이.
色聲香味觸法을 통달하는 것ㆍ초연하는 것ㆍ벗어나는 것.
우리가 그 色聲香味觸法을 늘 마주하고 살지요. 삶이라고 하는 것은 色聲香味觸法을 떠나서 생활이 안 되지요. 우리 六根(육근)이 六境(육경)을 상대로 해서 거기에서 이뤄지는 관계. 그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것. 아주 간단합니다. 六根이 六境을 맞이해서 거기에서 이뤄지는 것.
지금 제가 말하니까 여러분은 듣고, 그러니까 눈을 통해서 또 사물을 보고, 거기에서 또 여섯 가지 인식 작용이, 작용을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보면 皆是空相(개시공상)이다.
是諸法空相(시제법공상) 그랬지요? 空相. 텅 빈 모습이다 이겁니다.
五蘊皆空(오온개공). 五蘊皆空의 이치를 사실은 제대로 통달하면 개인의 문제, 개인의 고통이라든지ㆍ아픔이라든지ㆍ기타 속상한 문제라든지ㆍ어디로부터 상처를 받은 문제라든지, 이런 것을 치유하고 그런 것에서부터 초탈하는 데는 제일 아주 특효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외우는 반야심경에도 照見五蘊皆空하면 度一切苦厄(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다.
오온이 텅 비어서 공 한줄 觀照(관조)하면, 비춰보면 度一切苦厄이라.
일체 고통ㆍ일체 문제 다 해결한다. 일체 문제 다 해결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없다.’ 는 뜻이고, 다른 사람의 五蘊도 없다. 는 뜻이니까요. 나도 공하고 너도 공한데 거기에 무슨 시시비비가 있을 수 있으며ㆍ무슨 기분상하고ㆍ상처받고ㆍ자존심 상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반야심경을 늘 외우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기 문제 해결하는 데는 그것 보다 더 좋은 약이 없습니다. 자기 문제 해결하는 데는 아주 특효약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내 살림살이가 되지 못하고ㆍ나의 인격이 되지 못해서 평소에 그것이 살아있는 어떤 경전ㆍ살아있는 법문으로 활용이 되지 못해서, 천 날 만날 외워도 늘 그 자리입니다.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상처받고, 그 五蘊皆空 도리만 사실 제대로 안다면 상처받을 까닭이 없는 것이지요. 사람과 사람관계, 이것이 그야말로 구름에 달 가듯이, 아무 거리낌 없이 달은 달대로 가고, 구름은 구름대로 그렇게 흘러갈 텐데, 그것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특효약이 五蘊皆空 도리입니다. 照見五蘊皆空하면 度一切苦厄이다. 일체 문제를 다 해결한다.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된다고... 그래서 그 좋은 약을 우리는 아침저녁 열심히 외우고ㆍ또 행사 때 마다 늘 외우고 있습니다.
여기도 皆是空相이다. 그랬습니다.
나인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도, 또 그 6근의 객관인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도 다 공이다.
不能繫縛此無依道人(불능계박차무의도인)하야,
이 無依道人.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이 도인을 능히 속박할 하지 못한다. 五蘊皆空 해버리면, 내주인공을, 내주인공 = 참사람 = 무의진인을 어떻게 속박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붙들어 줄 수도 없고ㆍ상처 줄 수도 없고ㆍ고통 줄 수도 없습니다. 도대체 안 된다고요. 그런데 五蘊皆空이 안 되니까 無依道人까지도 거기에 얽혀가지고,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지요.
雖是五蘊漏質(수시오온누질)이나, 비록 이 五蘊으로 된 그 걸리적거리는, 새어나가는 바탕. 우리 몸뚱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五蘊으로 된 우리 몸뚱이지만, 便是地行神通(변시지행신통)이니라. 하지만 곧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이라는 사실을 알아라. 그래서 이 말이 아주 특이해서 이렇게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三界唯心. 많이 들어본 소리지요?
그 다음에 三界가 唯心이다. 오직 마음이다.
14-12 三界唯心(삼계유심)
道流(도류)야
眞佛無形(진불무형)이요 眞法無相(진법무상)이라
儞祇麽幻化上頭(이지마환화상두)에 作模作樣(작모작양)하야
設求得者(설구득자)나 皆是野狐精魅(개시야호정매)요
幷不是眞佛(병불시진불)이니 是外道見解(시외도견해)니라
夫如眞學道人(부여진학도)은 幷不取佛(병불취불)하며
不取菩薩羅漢(불취보살나한)하며
不取三界殊勝(불취삼계수승)하고 逈然獨脫(형연독탈)하야
不與物拘(불여물구)니라
乾坤倒覆(건곤도복)하야도 我更不疑(아갱불의)하며
十方諸佛現前(시방제불현전)하야도
無一念心喜(무일념심희)하고,
三塗地獄頓現(삼도지옥돈현)하야도
無一念心怖(무일념심포)하나니 緣何如此(연하여차)오
我見諸法空相(아견제법공상)일새 變卽有(변즉유)하고
不變卽無(불변즉무)니라 三界唯心(삼계유심)이요
萬法唯識(만법유식)이니 所以(소이)로 夢幻空花(몽환공화)를
何勞把捉(하로파착)가하니라
道流(도류)야 眞佛無形(진불무형)이요, 참다운 부처는 형상이 없고,
眞法은 無相(진법무상)이다. 참다운 법은 相이 없다.
儞祇麽幻化上頭(이지마환화상두)에, 그대들 이러한 허망한 = 幻化.
허망한 것 위에ㆍ無形ㆍ無相한 것 위에 作模作樣(작모작양)하야,
모양을 그려서 設求得者(설구득자)나, 설사 구해서 얻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皆是野狐精魅(개시야호정매)요, 그것은 다 여우귀신이고, 사람귀신도 겁이 나는데 여우귀신이면 오죽 하겠습니까? 허망한 것 가지고 하~~ 그것 참, 온갖 무당짓거리 다 해봤자, 그것은 그야말로 여우귀신이다 이 말입니다.
幷不是眞佛(병불시진불)이니, 아울러 참다운 부처가 아니니,
우리가 뭐 편의상 방편으로 하는 수 없이 불상을 모시고, 거기에 부처님이라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기도도 올리고 그렇게 합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훌륭한 부처님은 우리석굴암 부처님이잖아요. 조각품이 참 잘 되었지요? 비록 돌로 조각했지만 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추우나ㆍ더우나 늘 그 모습 그대로, 추워도 춥다는 소리 한 마디 못하고ㆍ더워도 덥다는 소리 한 마디 못하고, 문을 꽁꽁 걸어 잠가놔도 “나를 여기다두고 너희들 왜 문 잠구느냐?” 항의 한 마디 못해요. 당신 갖으시라고 올려놓은 돈을 부전이 훔쳐가도 항의 한 마디 못해요. 허허허, 항의 한 마디 못해요, 당신 갖으시라고 한 것이지, 부전가지라고 했나요?
그런데 멀뚱하게 앉아가지고 항의 한 마디 못하는 겁니다.
“내 돈인데 왜 네가 가져가냐?” 그 말한 마디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앉아있는 부처님들은(대중들) 허허허허허허, 단돈 1000원만 누가 부당하게 가져가 봐요. 가만히 있는가요? 뭐 같이 그냥 화를 내가지고, “왜 내 돈 가져가느냐?” 고 당장에 그냥 그렇게 방광을 하잖아요. 방광을... 막~~ 그냥 빛을 어디까지 쏘아 붙이는 겁니다. 아주 훌륭한 방광을 하지 않습니까? 그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늘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상 사용하고 있는 부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번 우리가 돌이켜 곰곰이 觀照 해볼 줄 모르고, ‘도대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신통방통한가?’ 곰곰이 한 번 궁리해 볼 줄 모른다고요.
우리 불교는 일찍이 그 문제가 온 인생의 근본이고ㆍ온 우주 삼라만상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는, 끊임없이 그것을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눈뜨라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입니다. 대승불교가 전부 그렇고, 선불교에 와서는 오롯이 그 문제만가지고 이야기하고요. 오로지 그 문제만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선불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그 존엄성ㆍ그 가치, 여기에 대해서 우리 불자들이 정말 깊이 인식 하고 세상에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일깨우는 일.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포교ㆍ포교” 하는데 포교할 때도 자기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 주안점이 딱 있어가지고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포교 한다ㆍ이것을 인식시키고ㆍ이것으로써 세상을 정화하고ㆍ이것으로써 사람을 개조한다.’ 하는 그런 건더기가 딱 서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관음재일이 됐든지ㆍ지장재일이 됐든지ㆍ초하루가 됐든지ㆍ성도재일이 됐든지ㆍ부처님오신 날이 됐든지 항상 자기 노래가 있어야 됩니다. 자기 노래가... 남의 노래 부르니까 허허허허허허허 실컷 목 아프게 부르고도 그 품값 얼마 못 받잖아요. 노래 부르는 재능은 비슷하다고 그랬지요? 그런데 자기 노래 부르는 사람은, 그 값을 어마어마하게 받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교ㆍ포교” 하는데 정말ㆍ정말 자기 확신이 있는 ‘아~! 나는 불교를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봉이라고 하든지ㆍ반야심경 한편에 대해서 달통하든지, 그것이 자기 소신이 딱 되면 그것 하나 가지고 하든지, 어떤 스님들은 자나 깨나 법상에 올라갔다하면 그냥 전설 따라 삼천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하다못해 그것이라도 하든지요. 우리가 포교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그것 중요한 것입니다.
幷不是眞佛이니, 임제스님의 그 노래는 정말 우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한 가지 사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 외의 것은 전부 여우귀신이다 이 말입니다. 여우귀신 = 野狐精魅. 여우귀신이라는 뜻입니다. 眞佛이 아니다.
是外道見解(시외도견해)니라. 이것은 외도의 견해다.
夫如眞學道人(부여진학도인)은, 예컨대 참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幷不取佛(병불취불)하며, 아울러 부처도 취하지 아니하며
不取菩薩羅漢(불취보살나한)하며, 보살이든ㆍ나한이든 이것도 취하지 아니해요. 不取三界殊勝(불취삼계수승)하고, 삼계의 수승함도 취하지 아니하고 逈然獨脫(형연독탈)하야, 저~~ 멀리 싹~~ 홀로 벗어나가지고ㆍ천연해져가지고 不與物拘(불여물구)라. 어떤 사물로부터도 구속받지 아니한다ㆍ사물로 더불어 구속받지 않는다. 어디에도... 이렇게 까지 됩니다.
부처에게도 구속받지 아니하고, 보살ㆍ나한에게도 구속받지 아니하는데, 하물며 무슨 그까짓 것, 종회의원에 구속받고ㆍ알량한 몇 푼어치 안 되는 절하나 막 그냥, 절하나 못 얻어 가지고 그저 혈안이 돼가지고, 또 좀 나은 절 차지하려고 막 그냥 선거전에 들어가 가지고 그저 추태를 보이고... 참 정말 이렇게 고급스런 삶의 길이 있는데, 누더기를 입었든ㆍ어디 평생 그냥 객으로 다니든ㆍ선방에서 그저 늙어죽든 이러한 자기 살림살이가 딱~~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하나 어떻게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 그렇지 아니한 사람도 많지만, 또 세상에 비춰진 그런 모습들을 보면 너무 알량한 그 명예ㆍ또는 물질ㆍ돈 많이 생기는 절, 그래가지고 저기 강남에 있는 그 절 차지하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 나고 야단법석이잖아요.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우리의 선배 스님들은 바로 이러한 정신을 늘 우리의 삶으로 이렇게 앞에다가 내세워 놨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자꾸 가까이 하면, 비록 세속적인 그런 관심이 가슴속에 많이 있다 손치더라도 이런 것을 자꾸 가까이 함으로 해서 이것이 훈습이 됩니다.
또 우리 마음속에 선천적으로ㆍ또는 과거 생에 수행을 많이 했던 분들은 이런 소리 딱 들으면, ‘아! 이거구나!’ 하고 그냥 그 길로 돌아서버리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크게 시간 많이 안 걸리고 ‘아! 이런 삶이 있구나ㆍ이런 길이 있구나.’하고, 그만 이 길로 그냥 자기 인생을ㆍ모든 가치관을 여기다가 딱 이렇게 실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참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훈습이라도 해야지요. 자꾸자꾸 훈습. 자꾸 훈습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고ㆍ우리의 갈 길이고ㆍ우리에게 제일 소득이고ㆍ또 그것이 행복한 수행자의 생활이라고요. 그것이 정말 행복한 수행자의 생활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공자도 그랬잖아요.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간의 행복은 배우는데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 이것만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다.
아~ 근사하잖아요. 그 분도 진짜 성인인가 봐요. 인간의 행복이 뭐냐?
딱 그 한 마디가 논어 첫 머리의 답입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니까요. 그 행복에 대한 답입니다.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 배우고 때때로 그 배운 것을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여러분 돌아가서 열심히 익히라고 하는 뜻입니다. 자꾸 익히고 한 번 새겨보기도 하고요. 또 임제록에 대한 번역한 책 세상에 많이 나와 있으니까, 사서 좀 더 야무지게 이해하고 하면, 그것 정말 행복입니다. 진짜 행복입니다.
그리고 또 스님으로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면, 참 보기 좋잖아요.
멋있잖아요. 그 절 신도들이 “아이고 우리스님 공부한다. 저 가까이 가지 말라.” 이런다고요. 아~, 우리스님 공부하는 스님이라고...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절 문제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아이고 스님 공부하는데 우리가 알아서 하자.” 공부하느라고 밥 짓지 않고 며칠만 굶어보세요.
그럼 와서 밥해주는 사람 다 있어요. 진정으로ㆍ진실로 공부에 빠져서 밥 짓지 않고ㆍ청소 안하고ㆍ염불도 안하고 있어보세요. 염불해주는 사람ㆍ 청소해주는 사람ㆍ밥해주는 사람 다 있어요. 수행하는 사문에게는 帝釋而與衣食(제석이여의식)이라. 제석천이 의식을 다 제공해준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어떤 젊은, 아주 순박한 스님이 그 말을 듣고,
수행사문에 帝釋而與衣食이라. 제석천이 의식을 준다. 그래가지고 혼자 ‘야~ 나는 이제 공부 해야지.’ 하고 낯선 산 중에 홀로 들어가지고 굴을 하나 발견했어요. 그래 굴에 들어가 가지고 탁~ 앉아서 자기가 염불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그 때는 어리니까 염불밖에 몰랐지요. 염불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하루가가니 제석천이 무슨 밥을 갖다 주나? 무슨 옷을 갖다 주나? 이틀이 가도 안 오고ㆍ3일이 가도 안 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4ㆍ5일쯤 지나니까 허기져서 죽을 지경인겁니다. 그래서 겨우 굴에서 나와 가지고, “제석아~ 제석아~~” 하고 이놈 제석천이 어디 갔나? 하고, 소리를 냅다 있는 힘을 다해서 지르니까, 저~ 밑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예~~” 하고 대답 소리가 들려요. 신기하잖아요? 그래서 또 힘을 내가지고, “제석아~ 제석아~~” 하고 불렀어요. 그러니 차츰 가까이 오면서 “예~~” 하는 소리가 더 가까이 들리는 겁니다. 좀 있으니까 어떤 떠꺼머리 나무꾼 총각이 하나 올라오는 겁니다. “내가 제석을 불렀는데 당신이 어찌 까지 왔느냐” 고, “제 이름이 재석입니다.”
“아이, 재석이나 마나 내가 지금 며칠을 굶었는데 먹을 것 좀 없냐?” 하니까, 마침 나무하러 오는데 도시락을 싸왔는데, 도시락을 끌러놓는 겁니다. 그래서 한 끼는 잘 먹었어요. 그래 그 청년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동네에 내려 가가지고 이이야기를 퍼뜨려가지고는 그날로부터 그냥 암자를 짓는다ㆍ밥을 해온다ㆍ옷을 해온다. 야단법석인겁니다. 이런 사실이 실지로 있었습니다. 실지로 帝釋而與衣食.
아무튼 하늘이 감동했는지 어떻게 됐는지 간에 아주 골똘하게 공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 문제가 다 해결 됐어요. 그래서 진정 공부에 관심이 있으면, 그 뭐 절이 어떻게 돌아가고ㆍ뭘 먹을까?ㆍ뭘 입을까? 아니, 성경에도 그런 소리 있잖아요. “뭘 입을까?ㆍ뭘 먹을까? 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 저 길 거리에 피어있는 풀이나 꽃도 다 살아가지 않느냐?” 그런 소리 성경에 있잖아요. 하물며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이 천지 사이에 오직 사람이 존귀한 존재이고, 거기다가 또 부처님제자가 됐어요ㆍ부처님 상수제자가 됐어요ㆍ부처님 맏아들이 됐어요ㆍ우리는 부처님 아들딸입니다.
그런데 뭘 걱정한다 말입니까? 먹고 입을 것을 뭘 걱정해요?
그래서 逈然獨脫. 참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逈然獨脫.
不與物拘라. 사물로 더불어 구속받지 않는다.
乾坤倒覆(건곤도복)하고, 하늘과 땅이 뒤엎어진다 하더라도,
我更不疑(아갱불의)하며, 나는 다시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며,
十方諸佛이 現前(시방제불현전)하야도, 시방부처님이 그냥 내 앞에 다 나타나서 나한테 그냥 절을 3000배, 30000배 막 한다 하더라도
無一念心喜(무일념심희)하고, 한 생각도 기뻐하는 다음 없어,
부처? 지 부처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이겁니다. 十方諸佛이 다 나타나가지고 나한테 절을 하고ㆍ그냥 공양을 올리고 한다 하더라도,
無一念心喜라. 아~ 참! 우리 선불교에 정말 어떤 안목을 가진 사람의 자존심은 최소한도 이쯤 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스님들 자존심입니다. 뭐 꼭 선불교 참선하는 사람의 자존심만이 아니라, 스님들의 자존심은 이렇게 돼야 된다고요. 그것이 설사 객기라 하더라도, 객기 좀 부려야 됩니다.
객기. 수행하는 사람이 객기 좀 부려야 된다고요. 철들지 않을 때는 객기도 좀 부리는 것이지요. 이런 객기는 부릴 만하다고요.
三塗地獄이 頓現(삼도지옥돈현)하야도,
三塗地獄이 한꺼번에 다 나타나더라도
無一念心怖(무일념심포)야, 마음이 전혀 두려운바 없어,
緣何如此(연하여차)오? 무엇을 인연하여 이와 같은가? 무슨 까닭인가?
我見諸法空相(아견제법공상)일새. 나는 본다. 무엇을요? 諸法空相.
모든 존재는 텅 비어서 공하다고 하는 사실을 보기 때문에, 그러니 부천들 안 공하겠습니까? 보살인들 안 공하겠습니까? 뭐 어디서 방광 했다고요?
뭐 사리가 방광 했느니ㆍ어디 불상이 방광 했느니ㆍ무슨 불사하고 나니까 방광 했느니, 요즘 형광등이 훨씬 더 밝은데요. 2키로ㆍ3키로 씩 비추는 써츠라이트도 있는데요. 무슨 방광이 그렇게 빛나는 것을 봤습니까?
거 쓸데없는데 속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주 옛날 아주 상고시대, 우리가 미개할 때, 그 때는 그런 것이 좀 신기하게 들릴지 모르지요. 지금은 이렇게 밝은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그러니까 자꾸 스님들이 사회에 뒤쳐지는 겁니다. 중 僧(승)자는 “사람보다 한 걸음 앞서가는 사람” ←이런 뜻입니다. 사람 人변에 일찍 曾(증)자 했잖아요. 일찍 曾자가 뭡니까? 한 걸음 앞서간다. 이 겁니다.
諸法空相. 變卽有(변즉유)하고, 그것이 변하면 있는 것이 되고,
不變卽無(불변즉무)여. 변하지 아니하면 곧 없는 것이다.
三界唯心(삼계유심)이요 萬法唯識(만법유식)이다.
三界가 오직 萬法이고, 萬法은 오직 의식 = 識뿐이다. 인식 하는 것.
우리가 인식함으로 하니까 그것이 있는 것입니다.
所以(소이)로 夢幻空花(몽환공화)를 何勞把捉(하로파착)가?
得失是非(득실시비)를 一時放却(일시방각)하라.
夢幻空花를 何勞把捉가? 得失是非를 一時放却하라.
신심명ㆍ증도가는 외워야지요. 신심명에 이다음 구절인 得失是非를 一時放却하라. 하는 그런 글이 있습니다. 꿈이요ㆍ환영이요ㆍ헛꽃인 것을 어찌 하여 수고로이 그것을 붙들려고 하느냐? 말입니다. 붙들어 봐야 빈손이다. 크~! 붙들어 봐야 빈손이다. 설사 무슨 장관이 되고ㆍ국회의원이 되고ㆍ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그 붙들어 봐야 빈손이다.
갈 곳은 비판 받는 일이고ㆍ자살하는 일이고ㆍ결국은 감옥소 가는 일이지요. 사람들로부터 그저 욕 듣는, 그런데 알량한 그까짓 것, 주지ㆍ종회위원ㆍ무슨 부장이다ㆍ총무원장이다. 최소한도 우리가 임제록 차원에 있어서는 그런 것 아주, 저기 발톱에 때보다도 못하게 볼 줄 알아야 돼요.
그 정도 객기는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그 정도 객기는... 발톱에 때보다도 못한 그런 것으로 봐야 됩니다. 그 정도 자존심이 있어도 나중에 이리저리 때 묻고ㆍ이리 휘둘리고ㆍ저리 휘둘리고 하다보면, 지저분하고 막 그냥 영~~, 속화 다 돼가지고, 속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그냥, 속은 그저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돼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가지고는 출가한 보람이 사실 없잖아요.
14-13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唯有道流(유유도류)의
目前現今聽法底人(목전현금청법저인)하야
入火不燒(입화불소)하며 入水不溺(입수불익)하며
入三塗地獄(입삼도지옥)호대 如遊園觀(여유원관)하며
入餓鬼畜生而不受報(입아귀축생이불수보)하나니
緣何如此(연하여차)오? 無嫌底法(무혐저법)일새니라.
儞若愛聖憎凡(이약애성증범)하면
生死海裏沈浮(생사해리침부)하리니
煩惱由心故有(번뇌유심고유)라
無心煩惱何拘(무심번뇌하구)리오?
不勞分別取相(불노분별취상)하면
自然得道須臾(자연득도수유)니라.
儞擬傍家波波地學得(이의방가파파지학득)하면
於三祇劫中(어삼지겁중)에 終歸生死(종귀생사)하리니
不如無事(불여무사)하야 向叢林中(향총림중)하야
牀角頭交脚坐(상각두교각좌)니라.
唯有道流(유유도류)의, 오직 도 닦는 여러 벗들의
目前現今聽法底人(목전현금청법저인)이 있어서, 바로 눈앞에, 지금 이 순간에 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남자도 아니고ㆍ여자도 아닙니다. 비구도 아니고ㆍ비구니도 아닙니다. 말소리 듣는 것이 남자로 들어요?ㆍ여자로 들어요? 비구로 들어요?ㆍ비구니로 들어요?
흑인으로 들어요?ㆍ백인으로 들어요? 아무 관계없는 그런 것으로부터 초탈해있는ㆍ그런 것으로부터 다 벗어나있는 그 한 물건이 듣고 있는 겁니다. 그것은 지금 알 수 있잖아요. 아무리 몰라도 그것은 알 수 있잖아요.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말소리 듣고 있는 그것이, 이것이 남자냐?ㆍ여자냐?
이것은 남자ㆍ여자 아니잖아요. 무슨 승이다ㆍ속이다. 이것도 아닙니다. 여기 속인도 듣고 있네요. 속인이라는 듣는 그 사실ㆍ그 능력ㆍ그 물건. 그 물건에는 무슨 속인. 그것 없습니다. 표시 없습니다. 승려? 아무 표시 없습니다. 그 물건... 그것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것만 하나 건지면 이번 교육 아주 큰 보람이 있을 겁니다. 그것은 전혀 분별없습니다.
거기에 어떤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은, 사람을 아주 평등하게 존중합니다.
평등하게... 무슨 돈 많이 가져오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보고ㆍ돈 없는 사람이라고 하찮게 보고, 그런 생각이 안 납니다. 남자다ㆍ여자다. 그런 생각이 안 납니다. 왜냐? 모든 사람이 이 물건 가지고 있으니까요.
말하는 소리 듣는 그 능력ㆍ그 물건. 그 물건은 만인 평등입니다.
부처든ㆍ보살이든 똑 같습니다. 거기는 관세음보살이고ㆍ지장보살이고 할 것 없습니다. 한결같이 나와 그들과 하나라고요ㆍ한 덩어리고ㆍ그 가치도 똑 같고요. 시종일관 임제스님은 그것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入火不燒(입화불소)하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아니하고,
入水不溺(입수불익)하며, 물에 들어가도 물에 빠지지 않아요. 물에 젖지도 않아요. 그것은 젖는 것이 아니니까요.
入三塗地獄(입삼도지옥)하대, 삼도 지옥에 들어가되
如遊園觀(여유원관)하며, 저기 놀이공원에서 노는 것과 같다.
入餓鬼畜生而不受報(입아귀축생이불수보)하나니, 아귀ㆍ축생에 들어가더라도 그 과보를 받지 아니해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이것은 몸을 버리고 아귀ㆍ축생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 가운데서도 우리가 아귀도 되고ㆍ축생도 되고ㆍ무슨 아주 부처님같이 될 수도 있고ㆍ별별 그런 어떤 상황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본체는, 그 한 물건의 본체는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 잠깐 한 생각 바뀌어가지고 아귀도 되고ㆍ축생도 되고 하루 중에도 별별 짓 다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해요. 하지만 그 주인공, 한 물건에 대한 그 가치는 잊지 말라고요.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고, 내가 어쩌다 아귀 노릇도 하고ㆍ축생노릇 해도 ‘아, 이것은 진짜 내가 아니다. 어쩌다가 잠깐 인연에 의해서 내가 이렇게 아귀로 떨어졌고ㆍ축생으로 떨어졌지, 실지로 나는 아니다.’ 그러고 바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혹 떨어지더라도 확 돌이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데에 중심이 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귀노릇ㆍ축생노릇 잘 아니해요. 하라고 해도 잘 아니해요. 재미없어서 아니해요. 아귀노릇ㆍ축생노릇하고 싶어도 재미없어서 안 한다고요.
자기의 일상의 가치가 거기에 가있으니까요. 한 물건, 내 주인공에 가 있기 때문에 잠깐 아귀가 될 일이 있고ㆍ축생이 될 일이 있더라도, 그것 뭐 이렇게 보니까 재미없어요. 재미없다고요. 안 돼요. 하고 싶어도 잘 안 돼요. 어쩌다가 깜빡해서 설사 아귀ㆍ축생노릇을 한다 손치더라도 금방 거기서 빠져나가져요. 그러니까 隨緣消舊業(수련소구업)이라. 인연 따라서 저절로, 과거 내 업은 저절로 봄날에 눈 녹듯이 녹아 가는 겁니다.
재미없으니까 안 하지요. 사실 재미없어서 안 해야지, 그것이 재미있는데 안 하기는 참 어렵거든요. 그래 근본의 방향을 이렇게 바꾸어 놓으면 재미가 없어져 버려요. 그야말로 끓는 가마솥 물이 있는데, 거기에 한 바가지 붓고ㆍ두 바가지 붓고 해봐야 조금 있으면 또 끓고ㆍ또 끓고 한다고요.
불을 빼야 됩니다. 밑의 불을 제거해 버리면 끓는 물이 저절로 잦아듭니다. 이것이 한 물건에 대한 말하자면 올바른 인식으로써, 다른 어떤 문제도 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緣何如此(연하여차)오 無嫌底法(무혐저법)일새니라.
싫어할 것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좋다ㆍ싫다하는 것이 없는 도리다. 하는 것이지요.
儞若(이약) 愛聖ㆍ憎凡(애성증범). 그대가 만약에 성인의 경지를 사랑하고, 범부의 경지를 미워할 것 같으면
生死海裏沈浮(생사해리침부)이라.
그러니까 但莫憎愛(단막증애).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다만 憎愛心(증애심).좋아하고 미워하고 하는 그런 마음만 갖지 말라. 그것이 벌써 生死입니다. 生死의 바다 속에 浮沈하게 되는 것이지요.
煩惱는 由心故有(번뇌유심고유)라.
마음을 말미암은 까닭에 번뇌는 있다.
無心하면 煩惱가 何拘(무심번뇌하구)리오?
무슨 번뇌가 나를 구속하겠는가? 엊그저께 제가 말씀드렸듯이 송광사 관음전에 캄캄하든, 어둡든 ‘아, 여기는 내가 부전보고ㆍ내가 아끼는, 내가 관리하는 법당이다.’ 하는 그 마음은 밤이 됐든 낮이 됐든 아무 상관없이 있는 겁니다. 그럼 어둡다고 해서 나에게, 부전에게 그것이 문제가 된다든지ㆍ밝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든지 그런 까닭이 없습니다. 그냥 내가 지키고ㆍ내가 보호하는ㆍ내가 좋아하는ㆍ내가 책임 맡은 법당이다. 이것뿐입니다. 煩惱何拘리오? 어둠이 무슨 관계가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어둘 수도 있고 밝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우리 일상 속에서 이런 저런 탐 진 치 3독이나 기타, 다른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그것 그렇게 염려할 것 없어요. 하등에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것이 나입니다. 그것이 나라고요. 불교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런 어떤 본래의 의미를 잘 이해해서 가장 평범하고ㆍ가장 정상적인 사람노릇 하도록 하는 겁니다. 가장 정상적인 사람노릇...
괜히 공부한다고 엉뚱하게 사람이 뒤틀려지는 그런 상황이 사실은 많습니다. 임제스님의 가르침은 가만히 들여다보면요? 사람으로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노릇을 하도록 그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 가르친 것을 그대로만 우리가 마음에 새기면, 뭐 특별히 할 것도 없고, 또 인연 따라서 하게 되면 또 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목을 맬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주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無心할 것 같으면 煩惱가 何拘리오? 번뇌가 어찌 구애되리요?
不勞分別取相(불노분별취상)하면, 수고로이 분별해서 相을 취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自然이 得道須臾(자연득도수유)니라,
저절로 도를 얻는 것이 순식간일 것이다. 특별히, 이것은 특별한 것이다. 그래 특별한 것을 취해야 된다. ←이렇게 가치를 판단하고 분별해 가지고서 그것을 취한다ㆍ버린다.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도하고 영원히 먼데, 그것 괜히 하지 아니 할 것 같으면 저절로 도다 말입니다. 일상 삶이 도입니다. 일상생활이 도라고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고요. 길 道자. 사람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이미 우리는 도인입니다. 우리는 다 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괜히 옆 길로만 새지 않으면 됩니다. 그대로, 그저 강의 한다면 가서 듣고ㆍ뭐 이렇게 점수 따야 된다면 가서 점수 따고ㆍ또 시험 쳐야 된다면 공부 좀 해서 가서 시험치고, 정해진 그런 상황 속에서 그대로 물 흐르듯이, 정말 물 흐르듯이 순수하게 그렇게 살면,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도 조용하고ㆍ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안 주고ㆍ내 삶이 첫째 편안하고요.
儞擬傍家로 波波地學得(이의방가파파지학득)하면,
그런데 그대들이 옆집으로 = 傍家. 옆집으로 아주ㆍ아주 바쁘게 = 波波地.
옆집으로 아주 바쁘게 뭔가 배워서 얻으려고 그렇게 할 것 같으면,
於三祇劫中(어삼지겁중)에, 3아승지겁 가운데서
終歸生死(종귀생사)하리라. 마침내 허망한데로 돌아가리라.
여기서 生死는 허망다ㆍ허사다 이런 뜻입니다. 결국은 生死에 돌아가리라.
不如無事(불여무사)다. 차라리 일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런데 生死라는 말은 그냥 허망한데로 돌아간다. 그런 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봤자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나가지고 하는 것은 결국은 망조만 드는 일이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서두에 그랬지요?
行行本處요 至至發處(행행본처지지발처)라.
행하고ㆍ행해봐야 늘 본래의 장소이고, 이르고ㆍ이르러 봐야 본래의, 本處에 이른다.
向叢林中(향총림중)하야, 여기 대개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그런 법문이 아니고, 대개 叢林에서 스님들을 상대로 한 법문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叢林中을 향해서...
牀角頭交脚坐(상각두교각좌)니라, 선상에서, 중국에는 전부 좌선하는 상이 있어요. 거기 올라앉아서 좌선하니까, 그러면 밑에서 차가운 것이 올라와도 그것을 막을 수가 있고ㆍ더운 것이 올라와도 막을 수가 있고요.
우리나라도 그 전에 우리 선방에 있을 때 보면, 중국의 그것을 본떠가지고서 판자로, 옛날 우리 그 앉은뱅이 스케이트처럼, 그것을 조금 넓게 만들어가지고 그 위에다가 방석을 놓고 올라앉아요. 그러면 밑에서 차든 덥든 아무 상관없이 앉아있기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약간 탄력이 있어가지고, 앉는데 더 좋고요. 중국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좌선을 했습니다.
그것을 본떠가지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하는 스님들이 그전에 더러 계셨습니다. 요즘은 불을 떼지 않으니까 한 곳에 막 그냥 눌고 타고하는 그렇게 뜨겁고, 저기 윗목에는 그냥 추워가지고... 지금은 그런 것이 없잖아요. 골고루 똑 같이 따뜻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 전에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아랫목에 앉은 사람은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고, 구들을 잘못 놔가지고 윗목에는 도대체 차가워서 앉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판이 많이 필요한 겁니다. 특히 중국에는 불 떼는 온돌이 아니니까요. 그런 것이 꼭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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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隨緣消舊業..._()()()_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배우고 때때로 그 배운 것을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고맙습니다. _()()()_
三界唯心(삼계유심)이요 萬法唯識(만법유식)이니 所以(소이)로 夢幻空花(몽환공화)를 何勞把捉(하로파착)가하니라...삼계는오직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의식이나 꿈이요 환영이요 헛꽃인 것을 어찌하여 그것을 잡으려 하는가...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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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스님! _ ()()() 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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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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