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봄, 진해는 역시 진해 … 더 아름다운 피지 않은 꽃봉오리 소문은 실제의 반도 안 된다. 말로만 들었던 진해 벚꽃은 한마디로 ‘황홀한 봄’이었다. 마산, 창원에서 진해로 들어가는 진입로와 그 좌우의 산들, 시내 길가 가로수는 물론, 공원, 산 중턱을 가로 지르는 도로, 조용한 주택가 작은 냇물에도, 기찻길 위로 벚꽃터널이 만들어진 경화역 등 도시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였다.
밤낮으로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벚꽃천지 진해는 역시 진해였다.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꽃 어떤 꽃이라서 물 오른 꽃송이 보드라운 꽃잎 예쁘지 않은 게 또 있을까. 나는 절정을 맞이하기 전 다 벌어지지 않은 꽃봉오리의 새침하고 요염한 모습에 취하기도 했다. 꽃은 이렇게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존재한다.
만개 후 색 바래고 물기 빠져 비틀어지며 검게 타들어가는 꽃 지는 모습은 사람들 기억에 없다. 그러나 피어났을 때 보다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꽃이 있으니 그게 바로 벚꽃이다.
벚꽃은 활짝 피어 절정을 넘기면 꽃잎 마르기 전에 떨어진다. 그것도 한 잎 두 잎이 아니라 일제히 떨어지니, 눈송이처럼 공중에 흩날리는 꽃잎은 꽃눈이 되고 꽃비가 된다. 그 길을 달리는 자동차는 속도를 줄이거나 멈춘다. 속도와 편리함으로 상징되는 현대문명도 가녀린 꽃잎 한 장에 그 의미를 잃는다. 걷는 사람들은 무리지어 흩날리는 꽃잎 따라 너울거리며 달려가거나 그 자리에 멈춰 고개를 젖혀 꽃눈을 맞는다.
황홀한 봄은 그렇게 완성된다.
축제의 밤, 그 거리에서 술을 마시다 4월 초순이면 봄꽃놀이 한 달째다. 꽃 피었다는 소식 들리기도 전에 발길을 놓은 구례 산동산수유 마을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섬진강 투박하게 흐르는 광양 매화마을에서는 매화가 한 창 필 때를 잘 맞췄다. 길에서 봄을 맞는 일도 지쳐 갈 때쯤 진해에서 벚꽃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도착한 소식이었지만 우리는 봄꽃의 편지를 늦게 확인했고, 길을 서둘렀다.
진해 중원로터리에 밤의 축제가 열렸다. 폭죽이 터지고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공연이 벌어지는 곳이나 먹을거리가 즐비한 음식골목에는 사람 꽃이 피었다.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가로수 벚꽃은 불꽃과 폭죽보다 더 축제 같았다.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어 이리 밀리고 저리 쓸려갔다. 그 물결에 우리도 휩쓸려 다니면서 축제의 밤을 즐겼다. 거리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졌고, 카메라 플래시가 이곳저곳에서 번쩍였다. 이런 밤에 빠질 수 없는 게 술이었다.
우리는 포장마차 거리로 들어갔다. 이집 저집에서 끓이고 볶아대는 음식냄새가 뒤섞인, 정체를 알 수 없는 향기가 그 거리를 떠돌고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아예 바비큐를 내걸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 내키는 집으로 그냥 들어갔다. 풋풋한 봄밤의 향기와 황홀한 축제의 불빛 아래 잔을 기울였다.
꽃 보다 젊어 보이는 청춘들이 삼삼오오 모인 테이블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안주를 만드는 아줌마 등 뒤로 벚꽃 잎이 우르르 떨어진다. 이 모든 풍경이 한 장의 그림에 편집되는 순간 시간은 멈추어지는 듯 했고, 진해 봄밤의 한 토막을 잘라내어 내 마음에 담았다. 햇볕 가득한 벚꽃 거리가 보고 싶었다.
벚꽃터널 아래 기찻길 바다의 안개 때문이지, 산의 연무 때문인지 진해의 오전 하늘은 맑지 않았다. 희뿌연 안개 속으로 차를 몰았고 우리는 경화역에 도착했다. 간이역 건널목 차단기 앞에서 좌우로 이어진 기찻길 위로 벚꽃이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햇볕이 잎마다 부서지는 찬란한 꽃천지는 볼 수 없었지만 기찻길과 어우러진 아름드리 벚꽃나무들의 사열 앞에서 나는 또 다른 꽃세상을 보았다.
젊은 남녀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철로의 평행선위를 걷고 있었다. 내 옆에도 저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거나, 둘이 하나가 될 정도로 진하게 그녀를 끌어안고 싶었다.
혼자서 걸었다. 오래된 나무껍질을 뚫고 새순이 돋았고 그 끝에 꽃이 피었다. 무리를 지어 핀 굵은 가지의 꽃보다 새순에 달린 가녀린 꽃이 마음을 끌었다.
벚꽃나무 가지가 드리운 철길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다. 꽃 매달린 가지 아래로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너머에 기찻길과 벚꽃나무 터널이 만들어 놓은 소실점이 찍혀 있었다. 그 끝까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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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에서 창원으로 넘어가는 벚꽃길 산 중턱에 하얀 선이 그어져 있다. 푸른 산 가운데 흰 띠를 두른 산의 모습에 이끌려 산으로 향했다. 그곳이 안민도로였다. 진해에서 출발해 고개 정상 관문을 통과하면 창원 땅이다.
산길 6킬로미터 정도가 다 벚꽃이다. 도로 양쪽에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어 그 안에 있으면 벚꽃터널길이 되고 밖에서 보면 산을 두르고 있는 흰 띠가 되었던 것이다.
경화역 기찻길과 벚꽃이 만들어 내는 풍경과는 또 다른 운치가 느껴진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진해 시가지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길에는 전망대도 있고 쉬어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꽃걸음을 즐기고 있는 사이 우리를 추월해가는 한 무리가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었다.
벚꽃터널 아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르막을 올라간다. 짧지 않은 그 고갯길을 저렇게 제 다리 힘만으로 올라가는 저들이다. 페달을 구르지 않으면 돌지 않는 바퀴, 한 번 구른 다리의 힘만큼 앞으로 나가는 자전거는 생(生)을 담고 있다. 살아 있음 그자체이며, 살아가는 삶을 상징한다.
저들은 꽃그늘 아래서도 쉬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는다. 우리는 그들을 뒤쫓을 뿐이다. 신록과 붉고 흰 벚꽃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푸르른 생(生)을 찾았다.
햇볕 고인 냇물, 반짝이는 꽃잎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조용한 주택가에 저렇게 꽃들이 피어 웅성댈 줄을. 햇살 가득 안고 있는 마을은 조용했다. 여좌천, ‘졸졸졸’ 흐르는 주택가 냇물 위를 벚꽃이 뒤덮었다. 꽃잎을 통과한 파스텔 톤의 햇볕이 시냇물에 닿아 물결마다 반짝거린다. 꽃잎 마다 빛이 나고 물결마다 햇볕을 머금었다. 때로는 꽃잎이 냇물을 이루어 흐르는 것 같았으며, 냇물이 흰 꽃을 피운 것 같았다.
하늘은 맑아졌고, 안개도 걷혔다. 꽃잎마다 부서지는 햇볕의 향연을 이곳에서 보았다. 흰색도 진해지면 붉어진다는 것을 이곳에서 알았다. 흰색 꽃잎이 햇볕을 받아 맑고 투명한 붉은빛을 띠었다. 붉은 기운이 도는 벚꽃은 더욱더 반짝였다. 진해 벚꽃 여행의 길을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 자가용으로 가는 길 *서울 - 경부고속도로 - 대전 - 대진고속도로 - 진주 - 남해고속도로 - 서마산IC - 2번국도 - 진해 *부산 - 하단 - 명지 - 녹산 - 진해용원 - 진해 *강릉 - 영동고속도로 - 원주 - 중앙고속도로 - 대구 - 구마고속도로 - 서마산IC - 2번국도 - 진해 *광주 - 순천 - 남해고속도로 - 서마산IC - 2번국도 - 진해 *동대구, 경주, 북부산 - 장유IC - 창원터널 - 안민터널
● 대중교통으로 가는 길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마산 가는 버스를 탄다. 마산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에서 진해 가는 직행버스를 탄다. 평소에는 30~40분 정도 걸리는데 벚꽃축제 기간에는 더 걸린다.
● 벚꽃축제 주차정보 진해시는 벚꽃축제 기간인 3월23일부터 4월8일까지 군항제행사 기간 중에 시내 곳곳에 임시 주차장을 마련했다. 주차 가능한 장소는 시민회관과 진해중·고등학교, 진해여중·고등학교, 도천초등학교, 파크랜드, 신흥동 해군아파트 주차장(700여대), 남산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제황초등학교, 대야초등학교, 제덕매립지 등이며 학교 임시주차장 주차 시간은 토요일(13:00 ~ 18:00), 일요일(09:00 ~ 18:00)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