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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27일 일요일, Guanajuato, Casa Kloster
(오늘의 경비 US $19: 숙박료 100, 점심 20, 아이스크림 5, 버스 53, 3, 인터넷 10, 환율 US $1 = 10 peso)
룸메이트 Fred와 며칠 친하게 지냈는데 오늘 헤졌다. Fred는 다음에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내일 Mexico City로 가서 1박 한 후 더 남쪽으로 가겠다고 한다. Mexico City 호스텔로 가는 지하철 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오늘 San Miguel을 떠나서 Guanajuato로 왔다. 아침 9시 버스를 타기 위해서 8시 반쯤 호스텔을 나와서 호텔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전 9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쉽게 올라탔다. 이번엔 2등 버스를 탔는데 화장실은 없었지만 1등 버스 못지않게 편했다.
버스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자리를 널찍이 잡고 편하게 1시간 20분 달려서 Guanajuato에 도착했다. Guanajuato 다음 갈 도시의 버스 시간과 요금을 알아놓고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Casa Kloster 호스텔로 찾아갔다. 화초가 많고 새소리가 끊임없이 나는 아담한 곳이었다. 그러나 숙박료는 하루 밤에 100 peso로 다른 곳보다 비싸다. 멕시코의 호스텔들은 가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Campeche 70 peso, San Cristobal 40 peso, Oaxaca 60 peso, Mexico City 120 peso, San Miguel 80 peso이었고 이곳은 100 peso이다.
숙소 근처에 있는 시장 음식점에 가서 햄 샌드위치와 당근 주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감자튀김이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미국에 흔한 감자튀김이 멕시코에는 잘 안 보인다. 감자가 귀한가? 점심을 먹은 다음에 길가에 나와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호스텔로 돌아와서 좀 쉰 다음에 시내 구경을 나갔다. 좀 더웠지만 그늘만 찾아서 걸으니 다닐만했다. 대학교가 시내 중심에 있는데 건물이 특이했다. 규모가 큰 5층 건물인데 주위 건물들과 잘 어울렸다. 대학교 근처에는 멕시코의 국민 화가 Diego Rivera의 생가가 있었다. 그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서 네 살 땐가 Mexico City로 이사 갔단다. Diego는 Stalin을 숭배하는 공산주의자여서 이 도시에서 외면을 당했다가 근래에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이 도시의 최고 영웅이었으리라.
한국어로 "인터넷"이라고 써 붙인 인터넷 카페가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이 인터넷 카페 컴퓨터들은 모두 한글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 모양으로 한글 읽기와 쓰기 모두 잘 된다. 고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인사말도 올리고 댓글도 달았다.
주위에서 한국말이 들려와서 봤더니 한국 여자 둘이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 말을 걸어보니 이곳에 있는 University of Guanajuato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스페인어 어학연수를 온 모양인데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선배 소개로 왔다며 이 대학이 멕시코에서 제일 학비가 저렴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니던 대학에서 이곳에서 딴 학점을 인정받는단다. 한국 학생들이 이곳에 많이 오는 모양인데 어쨌든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다.
Guanajuato 전경, 가운데 Basilica 성당이 보인다
Teatro Juarez 극장
University of Guanajuato 건물은 특이한 모양이다
국민 화가 Diego Rivera의 생가, 지금은 박물관이다
Guanajuato 거리 풍경
Plazuela San Fernando
Plaza de la Paz 중 어느 것인지 기억이 안 난다
Guanajuato에서 제일 좁은 길 Callejon del Beso
이 개는 좁은 베란다에서 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가 묵었던 호스텔 외부
은광 도시로 시작한 Guanajuato는 산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Alhondiga de Granaditas, 1810년 멕시코 독립전쟁 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수백 명의 스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곡식 창고였던 이곳에서 반란군에게 몰살을 당했다
2003년 4월 28일 월요일, Guanajuato, Casa Kloster
(오늘의 경비 US $18: 숙박료 100, 저녁 20, 간식 10, 식료품 9, 버스 3, 3, 2, 2, 입장료 20, 10, 화장실 사용료 2, 환율 US $1 = 10 peso)
Guanajuato는 지금까지 본 멕시코 도시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스페인 식 도시다. San Miguel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원래 광산 도시여서 꼭 서울의 옛날 달동네 같이 보이는데 건물들은 모두 언덕에 자리 잡고 있고 축구장 하나 있을만한 평지가 없다. 길이 모두 꼬불꼬불한 언덕길이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역으로 지정된 이 도시는 인구가 7만 정도인데 University of Guanajuato의 2만 학생 인구가 포함된 숫자인지 모르겠다.
이 도시에는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시내 중심가에 지하도로가 많은 것이다. 차도 다니고 사람도 걸어 다니는 지하도로다. 지하도로 때문에 시내 교통이 다른 도시보다 덜 혼잡스러운 것 같다. 서울 중심가에 지하에 도로가 거미줄 같이 퍼져있다고 상상하면 되는데 서울에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옛날에 강과 내가 Guanajuato 시내 중심가를 흘렀는데 1910년경 큰 홍수로 큰 피해를 본 후에 제방을 쌓아서 강물과 냇물이 시내를 통과하지 않도록 돌려버렸다. 그리고 옛날 강과 내가 있던 곳을 지하 도로로 만들었다. 그 후에 계속 지하 도로를 더 늘려서 시내를 다니는 차들이 이용하게 했고 주차장으로도 사용한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 같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라 박물관과 광산을 둘러 봤다. 박물관에 갈 때 버스 기사에게 박물관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런다고 하더니 잊어버리고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내려 주었다.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나는데 해결책이 없다. 버스 기사들이 잊어버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일러서 나 혼자뿐이었다. 박물관에는 200여구의 남녀노소와 유아 미라가 있는데 흉물스럽기 짝이 없다. 이들 미라는 1865년에 처음 발굴되었는데 아주 최근에 발굴한 미라들도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미라를 발굴하게 되었는가? 이 도시 공동묘지가 너무 좁아져서 유지보수를 위한 회비를 안 내거나 연고자가 없는 묘지를 파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묘지를 파서 보니 (처음에 186구) 일부 시체가 썩지 않고 미라로 된 것을 발견했다. 이 지역의 건조한 기후와 특수한 토양 때문이란다. 일부 미라들을 화장하지 않고 진열하기 시작하면서 이 박물관이 생겼는데 특이한 박물관이라 금방 유명해졌다 한다. 현재도 무연고 묘지를 계속 발굴해서 질이 좋은 미라 1% 내지 2% 정도는 박물관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화장한단다. 이곳은 비위가 약한 사람은 안 가는 것이 좋다. 나도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라들이 너무 흉물스럽게 보여서 화장이 제일 깨끗한 장례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한방에 묵는 사람들에게 (독일 여자 2, 프랑스 남자 1, 스위스 1) 미라 박물관에 갔다 온 얘기를 했더니 자기네들은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그러면서 다른 얘기로 이어졌는데 자기네들은 세계 여행을 많이 한편인데 일본 여행객들은 많이 만났지만 한국 여행객은 내가 처음이란다. 전에도 그런 얘기를 가끔 들었는데 들을 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나는 어디를 가거나 한국인이라는 얘기를 안 물어도 꼭 한다. 한때는 조그만 태극 마크를 배낭과 모자 앞에 달고 다녔는데 너무 과시하는 것 같아서 떼어버렸다. 캐나다 사람들이 자기 나라 국기를 (단풍 잎) 많이 달고 다니는데 미국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 것이 싫어서 그런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 사람들은 멕시코,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별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오늘 설사를 했다. 그래서 음식점에 가지 않고 시장에 가서 사과 1, 토마토 1, 감자 4, 계란 4개를 사서 숙소에 가지고 와서 삶고 있다. 배가 정상이 아닐 때는 음식을 조금 먹거나 아예 안 먹거나 한다. 조금 먹어도 깨끗한 음식을 가려서 먹는다.
오후에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서 숙소에서 책을 읽다가 한방에 있는 MBA 공부를 하는 프랑스 청년과 독일 여자와 두어 시간 동안 중국과 EU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독일 여자는 중국을 5주정도 여행했는데 인상이 별로 안 좋았단다. 주로 침 뱉는 것과 쓰레기 버리는 것에 대한 얘기였다. 나도 1999년 여행했을 때 안 좋게 경험했던 일들이다. 대신 음식에 대한 칭찬은 대단했다. 나는 중국 대변을 많이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고. EU는 성공적으로 되고 있는 것 같다. 그 동안 여러 유럽 사람들에게 EU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는데 한결같이 찬성이다. 프랑스 청년도 찬성이었는데 자기는 공부가 끝나면 스페인에 가서 직장을 잡으려 한다.
선선해진 저녁때 시내 산보를 나가서 University of Guanajuato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대학교는 거대한 건물 하나뿐인고 운동장도 정원도 없다. 대신 실내에 제법 큰 마당이 하나 있었다. 학생 수가 2만이라는데 이 건물 하나라니, 어쩌면 다른 곳에 분교가 있는지 모르겠다.
버스 터미널에 가서 내일 갈 Guadalajara 버스표를 미리 사놓고 공원으로 갔는데 같은 숙소에 묵는 독일 여자를 만났다. 벤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더니 어디라고 가르쳐주는데 얼굴을 처다 보니 일본친구다 (일본어 책을 읽고 있었다). 독일 여자와 함께 샌드위치를 사다가 공원에서 저녁으로 먹었다. 독일 여자는 이곳에서 한 달간 스페인어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 동안 독일에서 비행기 승무원 일을 했으나 뉴질랜드 사람인 자기 남자 친구가 미국에 직장이 있어서 미국 Oregon 주에 살 것 같다고 한다.
Guanajuato는 아름다운 달동네 같다
Guanajuato 시내에는 지하도로가 많다
University of Guanajuato 건물의 웅장한 내부
La Valenciana 은광은 한때 세계 총 은 생산량의 20%를 생산했단다
가방을 떨어트리고 흐트러진 물건을 주어답고 있는 귀여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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