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랫골에 걸린 달이 차고 이즈러지기를 반세기 동안이나 반복해도 잊쳐지지 않는 고향, 아니 잊을 수 없는 고향이 있습니다. 바로 고향 법전입니다. 이 할머니 품 같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임제선사가 득도 후 하신 말씀으로 그 의미가 "너가 어디를 가던지 그 곳의 주인이 되면 너가 있는 그 곳이 모두 참이다"라는 뜻이고 보면 인간이 매사에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교훈이기도 하려니와 내가 고향에 대해서 주인의식 없이 또 얼마나 무관심했으며 무성의 했는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합니다. 고향을 떠난 후 한번이라도 내가 법전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내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줄 것이며 법전 사람인 내가 법전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누가 법전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가져 줄 것인가?
내가 법전의 주인으로서 법전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법전이 곧 진실이 되고 법전의 진실은 곧 봉화의 진실이며 봉화의 진실은 경상도의 진실이며 경상도의 진실은 대한민국의 진실이며 대한민국 진실은 세계의 진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테네의 조그만 마을 폴리스가 중심이 되어 그리이스가 한 때 세계의 중심이 되었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아테네의 시민 한 명 한 명이 모두 폴리스의 주인으로서 폴리스를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법전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했던 아내도 아끼던 친구도 헤어지면 남이지만 한 번 고향은 영원한 고향입니다. 버려도 고향이고 헤어져도 고향입니다. 여러분은 고향 마당에서 타향살이에 찌든 영혼을 위로 받아 본 적이 있으신지요?
서머이 재를 교교히 비치는 달빛도 이오당 앞을 스치는 비람도, 경체정 앞을 지나는 시냇물도, 노리미 동구밖 느티나무도, 새래이 가는 길 목 돌배나무도, 양짓마 우물가 앵두나무도, 건문골 할배네 니눈개도, 성재미 아지매네 새끼 밴 암소도, 중간뜰 아제네 얼분스럽던 장닭도 모두 팍팍한 도시살이의 피로를 달래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듯 고향은 언제나 너그럽고 포근한 어머니 품입니다. 또한 인의예지를 떠나 하루도 살 수 없듯이 고향을 잊고서는 진정 행복할 수 없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고향에 대하여 주인됨을 망각할 수 없듯이 수처작주 입처개진은 고향을 가진 이들에게는 저를 포함해 매서운 충고이리라 생각됩니다.
내 고향 법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우리 모두 법전의, 법전에 의한, 법전을 위한, 법전인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버저이 유정을 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