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문학 137호, 1966.5)
* 즈믄 : 천(千)의 옛말.
* 시늉하며 : 흉내내며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인간은 무한(無限)을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더 영원한 것, 더 완전한 것을 갈망하고 절대적 가치 앞에 심취(心醉)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인간이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할 때, 이 모든 행위가 한낱 본질을 겉도는 시늉에 불과할 뿐, 추구하는 대상은 영원한 그리움과 외경(畏敬)으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한다.
고도의 압축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난해한 시로서 시인 자신의 구도적(求道的) 삶이 집약되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 성격 : 상징적, 종교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운율 : 3음보(7·5조)
▶ 특징 : 달을 눈썹에 비유하여 ‘겹 이미지’로 표현함.
▶ 표현 : 상징, (불교적)은유
▶ 구성 : 단련시(單聯詩)
▶ 제재 : 고운 눈썹(달), 매서운 새
▶ 주제 : 절대적 가치의 영원성에 대한 외경
<연구 문제>
1. 이 시의 분위기로 보아 ㉠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또 ㉠의 상징적 의미를 30-40자 정도로 설명해 보라.
<모범답> (1) 달(그믐달)
(2) 오랜 세월 동안 마음속에 품고 꿈꾸어 온 삶의 고귀한 정신적 가치
2. ㉡에는 화자의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20자 이내로 쓰라.
<모범답> 임의 아름다움에 대한 흠모의 정
3. ㉢에는 어떠한 새의 이미지가 눈앞에 떠오르는지 60자 정도로 말해 보라.
<모범답> 그믐달에 임의 눈썹이 겹쳐진 것을 선망은 하면서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비껴 가는 새의 이미지가 눈앞에 떠오른다.
<감상의 길잡이>(1)
서정주의 시에서 화사(花蛇)에서의 대지적(大地的), 육감적(肉感的) 사랑과 동물적 상상력은 동천에 이르러 천상적(天上的) · 정신적 사랑과 우주적 상상력으로 승화되고 있다고 평자들은 지적한다. 지상의 언어가 아닌 천상의 언어답게 이 시는 거추장스러운 단 한마디의 설명도 배제한 채,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빚어낸다.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는 ‘눈썹’과 ‘새’이다. 겨울 하늘에 차갑게 걸려 있는 눈썹 같은 그믐달과 그 곁을 비껴 가듯 날고 있는 한 마리 새의 모습을 그린 한 폭의 동양화를 생각게 한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화자는 그 그믐달을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이라고 말하며, 오랜 세월 동안 꿈꾸어 오던 것을 하늘에 옮겨 놓았다고도 말한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슬픈 운명을 지닌 한 여인에 대한 승화된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 시를 어떤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눈썹’은 여인의 육체적 심상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시인이 마음속에 품어 온 삶의 어떤 고귀한 정신적 가치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하늘에 옮기어 심어 놓았다는 말은 절대적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간다는 말에는 인간은 물론 새까지도 그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알아차리고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는 외경(畏敬)의 뜻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감상의 길잡이>(2)
3음보 율조의 5행 한 문장으로 된 이 시는 짧은 형식 속에 인간의 본질과 의미라는 무게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체의 설명을 배제하고 고도의 상징적 수법을 구사함으로써 강렬한 언어적 긴장을 이루고 있는 차원 높은 시가 되었다.
싸늘하면서도 유리같이 투명한 겨울 밤하늘 ‘동천(冬天)’에 초승달이 떠 있고, 그 한켠에 한 마리 ‘매서운 새’가 날고 있는 것이 이 시의 전부이다. 이 시는 화자의 행위를 나타내는 1~3행까지의 전반부와 그에 대한 반응, 즉 새의 행위로 나타나는 반응인 4~5행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행의 ‘고운 눈썹’은 초승달을 의미한다. 이 초승달이 화자의 마음 속에서 천 년 동안 맑게 씻긴 것임을 고려한다면, ‘눈썹’은 곧 사랑의 표상이다. 2행의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는 행위는 지금까지 겪어온 온갖 모순과 갈등을 투명화하는 작업을 의미하며, 3행의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는 절대적 경지로 비약하려는 행위로,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화자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4행의 ‘매서운 새’는 공격적 특성을 환기하는 시어로 차가운 겨울 밤하늘과 어울려 그 ‘매서움’이 배가되고 있다. 그러나 ‘매서운 새’는 달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5행의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유순함으로 나타난다. 결국 새는 달을 공격하지 않는, ‘매서움’으로서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지 섣달의 밤하늘을 날며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매서운 새’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 시의 평면적 의미는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임의 고운 눈썹을 천 년 동안 마음 속에 아로새겨 하늘에 옮기어 놓았더니, 동지 섣달 하늘을 나는 매서운 새가 눈썹의 절대적 가치를 알고 비끼어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운 눈썹’인 초승달이 ‘즈믄 밤의 꿈’으로 이어지는 것은 초승달이 여러 차례의 변신을 통해 최종 단계인 ‘만월’에 다다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초승달은 화자가 염원하는 동경과 구도의 상징물로서, 그가 추구하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임’(절대적 대상) → ‘초승달’(미완성의 상태) → ‘만월’(완전한 영원의 세계)의 순서로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매서운 새’는 ‘만월’인 영원의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매서운 새’가 현실 세계인 ‘동천’에 존재하며 끈질기게 영원의 세계인 ‘만월’에 접근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시늉하며 비끼어’가는 한계에 부딪치고 말 뿐이다. 이렇게 이 시는 절제된 시어와 짧은 형식을 통해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畏敬)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맥락 읽기>
1. 서정적 자아(화자)를 지칭하는 시어를 찾아 보아라.
☞ 내
2. 화자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 글씨요,남자요,여자요...
3. 서정적 자아(화자)가 어떤 행동을 했는가?
☞ 님의 눈썹을 씻어서 하늘에 옮겨 심었다.
4. 눈썹을 하늘에 심다니 그게 뭐꼬?
☞ 눈썹, 하늘 눈썹,하늘 눈썹,하늘 하늘,눈썹
☞ 아하! 눈썹이란 하늘의 초승달이로군요!
5. 화자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 남자요. 님의 고운 눈썹 운운 하는 걸로 봐서 님은 여자고 나는 남자가 아닐까요.
6. 그럼 화자가 뭘 보고 있는 건가?
☞ 하늘의 초승달요
7. 하루 중 어느 때인가?
☞ 초저녁
8. 계절은?☞ 한 겨울
9. 화자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
☞ 겨울 하늘에 걸린 파리한 초승달이 님의 눈썹 같다. 님이 그립다. 보고 싶은 순이야!
♣ 그럼 지금까지 밝혀진 것을 정리해 보아라.
☞ 차가운 겨울 초저녁 어떤 사나이가 혼자서 하늘의 초승달을 보며 초승달이 참 곱다 님의 눈썹 같다 요런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10. 자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 났나 ?
☞ 지나가던 새가 초승달을 비끼어 갔네요
11. 오이 ! 뭣이야 ! 왜 그랬을꼬?
☞ 화자의 심정에 공감했군요.
12. 음 그럴 듯 하네 !
♣ 그러면, 이 시가 지니고 있는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