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읽어보고픈 책이다.
조선시대 얼리어답터들이 사고를 쳤다!
새로운 스타일의 유머와 서스펜스가 경쾌하게 휘몰아친다!
조선시대 제주도, 임금의 명을 받아 진귀한 서역만리의 신문물을
살펴보는 기관이 생겼으니 이름하야 ‘신문물검역소’
마침 제주도에 당도하여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까지 스카우트하니
조선 최고의 얼리어답터 관청으로 손색이 없네!
하지만 그들이 밝혀낸 신문물의 용처는 듣기만 해도 포복절도!
임금이 하사한 코길이(코끼리)까지 어르고 달래야 하니
오늘도 신문물검역소는 요란법석, 왁자지껄, 신통방통!
《신문물검역소》는 미스터리와 모험, 멜로까지 장르소설의 풍성한 장치들을 능란하게 운용하며 독자를 신천지로 인도하는 경쾌한 대중소설이다. 강지영의 첫 단편집을 봤을 때는 병든 인간 내면의 어둠을 가장 깊숙한 곳까지 직시하는 섬뜩한 작가였다. 하지만 《신문물검역소》를 읽고 나서 강지영에 대한 평가를 약간 수정했다.
강지영으로 인해 한국의 대중문학이 성장하고 있음을 너끈히 증명할 수 있다.
-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강지영은 출판계에서 무서운 신예로 통한다. 수년간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카피라이터로 활동해오다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공동 단편집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시작),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황금가지), 《한국환상문학단편선2》(시작)에 단편을 실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자신의 단편집 《굿바이 파라다이스》(씨네21북스)를 통해 중독성 강한 이야기들을 한껏 펼쳐보였다.
추리, 스릴러, 공포, 모험, 멜로, 환상 등 소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장치들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지만 결코 하나의 카테고리로 규정지을 수 없는 강지영의 독특한 작품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본성에 닿으며 잔물결을 일으킨다.
단편 외에도 월간 《팝툰》에 〈심여사는 킬러〉를 연재해온 그녀는 중년의 평범한 아줌마이자 어머니인 심 여사가 전문 킬러로 활동하는 독특한 이야기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그만의 독특한 블랙유머를 선사해왔다. 마치 화가가 그림의 소재에 따라 붓과 물감을 자유자재로 선택하듯 강지영은 작품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신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왔다. 그것도 단 2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리고 그녀를 아는 독자라면 화들짝 놀랄 만한 장편소설을 새롭게 시도했다. 조선시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조선에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과 신문물검역소라는 외래 문물을 조사하는 기관의 관리들이 펼치는 포복절도 대활약을 그린 독특한 작품 《신문물검역소》를 내놓은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하며 천부적인 이야기꾼인지를 잘 보여준다. 단편선에서 보여준 기묘하고 서늘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밀조밀 요란스럽게 펼치는 기막힌 해프닝을 보자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이다. 강지영의 첫 장편소설 《신문물검역소》는 그동안 작가가 모아온 공력을 한꺼번에 쏟아 부은 소설로 한국 대중문학에 단비와 같은 작가가 나타났음을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한국적 상상력과 인물이 살아 숨 쉬는 신선하고 즐거운 이야기, 빠르게 페이지를 넘어가게 만드는 몰입도, 개성 있고 정감 가는 인물들이 자아내는 포복절도할 대사들. 《신문물검역소》는 근엄하고 자아도취적인 소설에 식상해진 한국 독자들을 위해 태어난 신물新物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서역만리 신문물을 둘러싼 조선시대 최고 해프닝!
조선시대 양반가의 자제 함복배는 입신양명의 꿈을 품은 약관의 청년이다. 하지만 과거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의 문이 열리기 전에 참았던 요의가 터지면서 최악의 자리에서 과거를 치르게 된다. 결국 설왕설래하다가 실력도 발휘하지 못한 그는 제주에 새로 생긴 신문물검역소라는 임시기관의 소장으로 부임한다. 그곳은 왜국이 보내온 정체불명의 신문물을 살펴 임금께 보고하는 곳으로, 함복배는 임금의 눈에 들어 한양으로 다시 돌아갈 날만을 꿈꾼다.
그와 함께 신문물을 살펴보는 이는 제주에서 소문난 난봉꾼 한섭과 그치지 않는 식탐에 우둔하기 짝이 없는 관노비 영보이다. 답답해하던 복배는 마침 배가 좌초되어 제주 감영에 잡혀온 서양인을 접하는데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그는 자신을 밸투부레라고 소개한다. 그 역시 신문물이니 자신이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에 군소리 없이 감당하게 되었지만 부담만 더 커질 뿐이다.
밸투부레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그에게 화란 선비 박연이라 이름 지어주고 함께 신문물을 살펴보는데 의외로 이자가 주는 도움이 크다. 소장 함복배를 중심으로 이들이 하나씩 밝혀가는 신문물의 쓰임은 그럴 듯하지만 언제나 조금씩 빗겨나가며 엉뚱한 웃음을 선사한다.
함복배는 브래지어를 서양인의 관모라 여기고 자랑스럽게 쓰고 다니는가 하면, 칫솔은 치질을 다스리는 의료용구로, 콘돔은 골무로 착각해 여종의 손가락에 끼게 만든다. 박연은 그때마다 제대로 된 쓰임새를 설명하려고 몸부림치지만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지라 서로 간에 엉뚱한 오해만 쌓여간다. 브래지어를 설명하려고 그린 그림 때문에 음험한 남자로 몰리고, 그런 전력으로 콘돔의 쓰임을 설명하려 허리를 휘젓다가 아예 상종 못할 인간으로 오해받는다. 여기에 이미 영보가 자신의 치질에 시험 삼아 사용한 칫솔로 이까지 닦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소장 복배가 연모하는 아리따운 규수 이연지가 화란어를 배우기 위해 검역소에 드나들고 박연도 차츰 그녀를 통해 조선의 말과 문화를 깨우쳐간다. 그러던 중 제주에 혼례를 앞둔 처녀들만 노리는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
시계, 총, 망원경, 비누, 선풍기, 여기에 임금이 하사한 코끼리까지……. 그들은 조선 최고의 얼리어답터가 되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프리스타일 시대극 《신문물검역소》
새로운 스타일의 유머와 서스펜스가 경쾌하게 휘몰아친다!
《신문물검역소》는 종래의 시대극이나 역사소설에서 보기 힘든 경쾌함과 발랄함,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기발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과거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라면 당연 고증이라는 굴레 때문에 상상력이 제한되기 십상이지만, 작가는 과감하게 상상력의 극한을 달려보려는 듯 조선시대의 제주와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을 소재 삼아 자유분방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마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재가 소설이라는 공간 속에서 허구와 어떤 황금비율로 뒤섞일 때 가장 절묘한 맛이 나는지 작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구수한 한국 특유의 입말이 감칠맛을 더해주면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가장 유쾌한 소설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소설 속에서 임시기관이었던 신문물검역소가 신문물연구소로 거듭나고, 또 다른 귀화 네덜란드인 하멜을 맞이하면서 끝날 때쯤, 그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등장인물들과 어느새 정이 들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지도 모른다.
[나름 그럴 듯하게 밝혀 적은 포복절도 신문물 보고서]
불아자
두 개의 볼록하고 둥근 천을 이어 붙인 두건으로 아니 불, 높을 아, 놈 자자를 써 불아자라 칭하였습니다. 서양 벼슬아치가 사용하던 관모로 추측되오며 관리라 함은 모름지기 백성을 섬기는 낮은 자리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불아자라 이름 지었습니다.
입수한 불아자는 봉이 두 개지만 고급 관리일수록 봉의 개수가 늘어날 것으로 추측됩니다. 추후 외국에 사신을 보낼 때 벼슬아치의 관모도 불아자로 바꾸심이 어떠한가 아룁니다.
치설
항문에 질환이 있는 자가 사용하는 의료 용구로 추측되는 도구입니다. 긴 막대의 끝에 짐승의 갈기로 보이는 뻣뻣한 털이 붙어 있습니다. 손잡이인 막대로 치핵을 밀어 넣고 털이 달린 부위로 항문 주변을 잘 문지르자 치질이 완화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심한 변비가 있는 아녀자나 찬 곳에서 장시간 둔부를 방치하는 상인의 치질 예방에 사용이 가능하나 그 용도가 항문에 쓰이므로 타인의 도구를 공용하기는 곤란할 것으로 보입니다.
치질 치, 가죽 다룰 설자를 써서 치설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앞으로 가정 상비용품으로 보급하는 것이 어떠한지 아뢰옵니다.
곤도미
연하고 얇은 가죽을 단련해 만든 물건으로 반 자 정도 되는 길이입니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면 조금 넉넉할 정도의 이 물건은 서양에서 바느질을 할 때 손가락에 끼고 쓰던 골무로 추측되옵니다. 조선에서는 과부나 가난한 여인네들이 생활고를 덜고자 삯바느질을 하는데, 이때 이 물건이 요긴하게 사용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곤할 곤, 인도할 도, 어루만질 미자로 곤도미라 이름 지었으며 이는 가난을 어루만진다는 뜻으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강인한 조선의 여인들을 달래줄 귀한 물건이라 생각됩니다.
강지영의 첫 단편집을 봤을 때는, 병든 인간과 사회를 동정 없이 후벼 파는 날선 시선에 감탄했다. 강지영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직시하는 섬뜩한 작가였다. 하지만 《신문물검역소》를 읽고 나서 강지영에 대한 평가를 약간 수정했다. 조선에 들어온 서구 문물의 정체를 분석하는 신문물검역소의 코믹한 설정으로 출발하는 《신문물검역소》는 미스터리와 모험, 멜로까지 장르소설의 풍성한 장치들을 능란하게 운용하며 독자를 신천지로 인도하는 경쾌한 대중소설이다. 조선시대의 제주를 배경으로, 당대의 신기한 풍물을 이야기 적재적소에 끌어들이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한국의 대중문학이 성장하고 있음을 《신문물검역소》로 너끈히 증명할 수 있다.
_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 자료출처-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