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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5강 2부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2012.01.16
第二十三 淨心行善分
제이십삼 정심행선분
(5강 1부에서 연결)
이것 중도송은 뭐, 낱낱이 설명은 할 수는 없습니다만, 보면은 거의 알 수 있는 거예요.
육바라밀하고 우리 일상생활, 아까 이야기했듯이,
15. 建立水月道場
건립수월도량
건립수월도량, 우리가 사는 도량을 수월도량으로 이해하고 건립하라.
16. 莊嚴性空世界
장엄성공세계
성공세계, 성품이 공한 세계를 장엄하라. 성품이 텅 비어서 공하다면은 장엄할 게 뭐가 있느냐하지만은, 공한 줄 알고 장엄을 해야 된다.
또 供養影響如來(공양영향여래)라 했어요, 18번 보면
17. 羅列幻化供具 18. 供養影響如來
나열환화공구 공양영향여래
羅列幻化供具(나열환화공구)에서, 18. 供養影響如來(공양영향여래)한다, 참!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幻化供具(환화공구)’, 부처님께 우리는 무수히 공양을 올립니다.
뭐 돈도 올리고, 음식도 올리고, 향도 올리고, 촛불도 올리고, 과일도 올리고, 물도 올리고, 별의 별것 다 올리죠. 그게 ‘供具(공구)’입니다. 그런데 그게 ‘幻化供具(환화공구)’예요. 허망한, 환영의 공양구란 것입니다. 환영의 공양구로 이해하고 올려라, 이 말이여.
환영의 공양구로 알고 올려라. 그게 바르게 올리는 마음자세다, 란 것입니다.
환영이라고 해서 안올리면 안 되는 거죠. 으레이 올리되.
그 다음에, 影響如來(영향여래),
供養影響如來(공양영향여래),
그림자와 메아리와 같은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여래인 줄로 알고 이해하고 공양을 올려라.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으면, 헛 거잖아요, 올릴 까닭이 없잖아요.
공양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게 아니란 것입니다. 분명히 있는 입장이 있고, 또 분명히 ‘影響(영향)’, 없는 입장이 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쌍차, 쌍조, 차조동시, 이런 말을 이제 하는 것입니다.
동시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함께한다고 꼭 이해할 필요 없이, 그대로 함께 한다. 있음과 없음을 함께 하고 있다.
남과 북이 함께 하고 있고, 생과 사가 함께 하고 있다.
모~든 상대적인 것은 육조단경에서 36대로 이야기가 되었는가 그렇고, 신심명에는 30대로 이야기가 되어 있는 건가 그런데 그런 온갖 그런 상대적인 것 중에 대표가 뭐냐?
생사입니다, 생사. 삶과 죽음. 또 생사도 한쪽으로 이야기한다면, 열반, 생사와 열반, 이렇게 또 상대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열반도 생사와 마찬가집니다. 세속적으로는 제일 중요한 것은 또 남녀라고 할 수가 있고, 그런 이치를 염두에 두고 금강경을 분석을 하면 아주 쉽습니다. 아, 이런 이치를 드러냈구나, 또 이런 관점으로 봐야 되는 구나, 그런 이야기입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三 淨心行善分(정심행선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三 淨心行善分
제이십삼 정심행선분
제23. 텅 빈 마음으로 선행을 하다[淨心行善分]
復次須菩提야 是法이 平等하야 無有高下일새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부차수보리 시법 평등 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또 수보리여! 이 도리는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
이것이 이름이 최상의 깨달음이다.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로 修一切善法하면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리라
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는 경지에서 여러 가지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22. 須菩提야 所言善法者는 如來가 說卽非善法일새 是名善法이니라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 설즉비선법 시명선법
수보리여! 이른바 선법이란 것은 여래가 말하기를
‘곧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다’라고 하니라.”
그 다음에,
第二十四 福智無比分
제이십사 복지무비분
第二十四 福智無比分 (二十, 斷所說無記非因疑)
제이십사 복지무비분
須菩提야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의 如是等七寶聚를 有人이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
持用布施어든 若人이 以此般若波羅蜜經으로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야
지용보시 약인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爲他人說하면 於前福德으로 百分에 不及一이며 百千萬億分과 乃至算數譬喩로
위타인설 어전복덕 백분 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산수비유
所不能及이니라
소불능급
第二十四 福智無比分
제이십사 복지무비분
제 24분 ‘福智無比分(복지무비분)’이라,
‘복과 지혜는 비교가 안 된다.’
복과 지혜는 비교가 안 된다는 내용인데,
須菩提야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의 如是等七寶聚를 有人이 持用布施어든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 지용보시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의 如是等七寶聚(여시등칠보취)를,
저 수미산만한 칠보의 무더기로써 어떤 사람이
有人(유인)이, 어떤 사람이
持用布施(지용보시)어든, 그것을 가지고 보시에 사용했다,
보시에 사용했다 이 말이여. 그런데
若人이 以此般若波羅蜜經으로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야 爲他人說하면
약인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위타인설
若人(약인)이, 또 만약 어떤 사람은
以此般若波羅蜜經(이차반야바라밀경)으로 乃至四句偈等(내지사구게등)을,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 경전체거나 아니면 사구게 만이라도,
受持讀誦(수지독송)하야 爲他人說(위타인설)하면,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설하면, (받아지녀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설하면)
於前福德으로 百分에 不及一이며 百千萬億分과 乃至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니라
어전복덕 백분 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산수비유 소불능급
於前福德(어전복덕)어전복덕으로는,
於前福德(어전복덕)이 뭐죠?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운 칠보 무더기, 금은보화로써 보시에 사용한 것, 그거 하고는
百分(백분)에 不及一(불급일)이며 百千萬億分(백천만억분)과 乃至算數譬喩(내지산수비유)로 所不能及(소불능급)이니라.
그러니까, 以此般若波羅蜜經(이차반야바라밀경)에서 내지 경전체거나 아니면 사구게등만이라도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설하면,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설하면, 於前福德(어전복덕)으로는, ‘於前福德(어전복덕)이 뭐죠?
보시에 사용한 것, 그거하고는 百分(백분)에 不及一(불급일)이며 百千萬億分(백천만억분)과 乃至算數譬喩(내지산수비유)로 所不能及(소불능급)이니라,
그러니까, 이차반야바라밀경에서 사구게만이라도 수지독송하고 위타인설할 것 같으면, 그와 같이 복이 많다 하는 것입니다. 이건 결코 금강경을 권장하기 위한 방편설이 아니에요, 이거는, 실법입니다. 절대 방편설이 아닙니다. 이걸 대개 이제 방편설로 알고, 그건 금강경 공부하라고 유혹하는 소리다, 이렇게도 더러 해석해요. 사람들이.
그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그렇게 이런 말도 또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금강경만 하더라도 여러 번 있었는데, 이건 정말 이치를 알고 보면, 정~말 맞는 말입니다.
금강경 한 구절의 그 내용의 그 위력과 그 공, 공능이, 또 그 공덕이, 또 그 복덕이 저기 뭐, 금정산만한 금은보화하고 비교가 안 된다는 거예요. 알고보면은.
그게 이해가 안 되니까, 이해가 안 되니까, 그게 납득이 안 되는 거죠. 우리 과제는 어느 날 문득, ‘야~! 참 금강경이 정말 참, 수미산만한 금은보화보다도 더 훌륭한 것이구나.’ 이것이 그냥 가슴에 탁~ 와 닿고, 그냥 눈물이 팍~ 쏟아지고, 그럴 날이 있어야 돼요.
야, 정말 이 말이 맞구나, 진정으로 이와 같이 가치 있는 가르침이구나, 하는 그런 느낌, 그게 있어야 된다는 거죠.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四 福智無比分(복지무비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四 福智無比分 (二十, 斷所說無記非因疑)
제이십사 복지무비분
제24. 복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須菩提야 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의 如是等七寶聚를 有人이 持用布施어든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 지용보시
“수보리여! 예컨대 삼천 대천세계에 있는 산중에서 제일 큰산인 수미산만한 금․은․보화의
무더기를 가지고 만약 어떤 사람이 널리 보시하였다하자.
若人이 以此般若波羅蜜經으로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야 爲他人說하면
약인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위타인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이 반야바라밀경에서 네 글귀의 게송만이라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해설하여 준다면,
於前福德으로 百分에 不及一이며 百千萬億分과 乃至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니라
어전복덕 백분 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산수비유 소불능급
앞의 금․은․보화로써 보시한 복덕으로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 분의 일에
도 미치지 못하며, 어떤 산수와 비유로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그 다음,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제이십오 화무소화분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二十一, 斷平等云何度生疑)
제이십오 화무소화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汝等은 勿謂如來作是念호대 我當度衆生이라하라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須菩提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實無有衆生如來度者니 若有衆生如來度者면
수보리 막작시념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如來가 卽有我人衆生壽者니라
여래 즉유아인중생수자
須菩提야 如來가 說有我者는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일새
수보리 여래 유설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가 說卽非凡夫是名凡夫니라
수보리 범부자 여래 설즉비범부시명범부
제이십오 화무소화분
제25 분, ‘化無所化分(화무소화분)’
‘교화하되 교화하는 바가 없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汝等은 勿謂如來作是念호대 我當度衆生이라하라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汝等(여등)은 勿謂如來作是念(물위여래작시념)호대,
‘勿謂(물위)’, 그렇게 여기지 말라, 이말이야, ‘勿謂(물위)’란 말은.
여래가 作是念(작시념)호대, 여래가 이러한 생각을 하되,
我當度衆生(아당도중생)이라하라,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라고 하는 그따위 생각하지 말라 이 말이야.
須菩提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實無有衆生如來度者니 若有衆生如來度者면
수보리 막작시념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如來가 卽有我人衆生壽者니라
여래 즉유아인중생수자
須菩提(수보리)야 莫作是念(막작시념)이니,
수보리야! 이러한 생각 절대 하지 말지니,
何以故(하이고)오, 왜냐,
實無有衆生如來度者(실무유중생여래도자)니,
실로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하는 것은 없다 이말이야.
若有衆生如來度者(약유중생여래도자)면, 만약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했다고 한다면은
如來(여래)가, 여래가
卽有我人衆生壽者(즉유아인중생수자)니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萬善同歸中道頌(만선동귀중도송)’- 42번 한번 볼까요?
41. 廣度如化含識 42. 同證寂滅菩提
광도여화함식 동증적멸보리
꼭두각시와 같은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寂滅菩提를 같이 증득하여지이다.
41. ‘廣度如化含識(광도여화함식)’ 그랬습니다. ‘廣度如化含識(광도여화함식)’.
널리 환화와 같은, ‘如化含識(여화함식)’, 환화와 같은 중생들을 널리 제도한다.
여기, ‘如化含識(여화함식)’이라고 하는 것은 ‘텅빈중생’‘환영과 같은 중생’‘꼭두각시와 같은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 꼭두각시와 같은 중생이라면 제도할 까닭이 없고 그것도 널~리 제도한다는 말은 더욱 안 맞는 거죠. 여기 금강경에
마침 ‘化無所化(화무소화)’, ‘교화하되 교화함이 없는 이치를 알라’, 그 말입니다. 그래 절대, ‘내가 중생제도한다’,‘내가 중생제도한다’, 우리가 하, 얼마나 많이 이야기합니까, 사실은.
부처님은 그런 소리 하지 말라 그랬어요.
‘汝等(여등)은 勿謂如來作是念(물위여래작시념)호대, ’
‘汝等(여등)은 勿謂(물위), 여래가 作是念(작시념) 하되, 我當度衆生(아당도중생)’
‘여래가 중생제도 한다’라고 하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하지마라, 그건 절, 정말이지 그건 나를 모르는 소리다 이말이야.
참으로 나를 모르는 소리다.
중생을 제도해. 하지마는, 廣度如化含識(광도여화함식)이야. 환화와 같은 중생을 제도한다, 그걸 무얼 제도한다고 하겠느냐 이말이야.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본래 부처인 중생을 제도해. 본래 부처인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에 더 이야기할 까닭이 없는 거야.
부처님은 아무 한 일이 없어, 사실은. 할 수도 없어. 그 본질에서 보면은, 인간의 본래 그 가치에서 보면은 부처님은 아무 할 일이 없어. 할 수도 없어. 손도 못대.
정말이지 털끝만치도 건드릴 수가 없어. 부처님 같은 그런 그 위대한 인물도 인간의 본래 갖추고 있는 그 공능, 그 능력에 비춰본다면은, 그 사실을 안다면 부처님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할 필요도 없어. 뭘 할려고 해도 거기에 털끝만치도 건드릴수가 없는 그런 완전무결한 존재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무얼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했다는 거예요. 이런 차원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여기서 ‘化無所化(화무소화)’, 참, 제목 잘 달았어요.
‘교화하되 교화함이 없다’.
須菩提야 如來가 說有我者는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일새
수보리 여래 유설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가 說卽非凡夫是名凡夫니라
수보리 범부자 여래 설즉비범부 시명범부
須菩提(수보리)야 如來(여래)가 說有我者(유설아자)는 卽非有我(즉비유아)어늘,
須菩提(수보리)야 如來(여래)가 說有我者(유설아자), 이것도 이제 금방 ‘여래가 중생제도함이 있다고 그렇게 한다면은,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는 것이 된다.’ 이런 말을 하니까,
‘아, 그러면은 아· 인· 중생· 수자라고 하는 것은 이건 있는 것이구나’, 또, 얼른 또 우리 중생들은 집착을 잘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싶어서, 또 있고 사실은,
‘아 그 분명히 뭔가 생각 잘못하면 그게 아· 인· 중생· 수자에 떨어지는 구나’
그래서,
須菩提(수보리)야 如來(여래)가 說有我者(유설아자)는 卽非有我(즉비유아)어늘,
여래가 말한 有我(유아), ‘아’가 있다, 아상이 있다고 하는 건 즉비유아, 또 즉비 나왔죠.
그러니까 이 금강경을 ‘즉비경’이라고 안 할 수가 있나요? 벌써 몇 번이나 나왔는데
금방 또 나와요.
‘卽非有我(즉비유아)’, 곧 아가 있는 것이 아니건마는,
그래서
而凡夫之人(이범부지인)이 以爲有我(이위유아)일새
凡夫(범부)들이, ‘而凡夫之人(이범부지인)이’ ‘以爲有我(이위유아)’, 我(아)가 있음으로 그대로 여긴다, 이말이야.
그래 여기 이제 무아가 이야기 되겠죠. 무아설, ‘我(아)’가 없다라고 하는 이야기, 뒤에 또 무아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마는, 범부들이 괜히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我(아)’가 있다, 이런 소리를 범부들이 한다.
또 그럼 ‘그럼 범부는 있네’‘범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은 그럼 범부는 있는 것이군요’이 생각을 얼, 그냥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게 됩니다, 으레이. ‘아 그럼 범부란 말은 있겠군요’ 부처님은 그 속 환~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須菩提(수보리)야 凡夫者(범부자)는 如來(여래)가 說卽非凡夫(설즉비범부)일새 是名凡夫(시명범부)니라,
‘凡夫(범부)’라고 하는 것도 그냥 내가 편의상 이름을 지어서 불러 볼 뿐이지, ‘凡夫(범부)’라는 것도 범부가 아니야, 是名凡夫(시명범부)라!
말하려니 편의상 범부라고 이름 지었을 뿐이지.
얼마나 싹싹 쓸어버립니까? 그 내가 말씀드렸나 모르겠네. 절에서 마당 쓸 때 , 꼭 앞으로 쓸지 않고 뒤로 쓰는 이유, 뒤로 가면서 쓸어요. 절에서의 마당은, 절대 앞으로 가면서 쓸지 않습니다.
왜냐? 쓴 자취까지 쓸어버리는 거야. 앞으로 가면서 쓸면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깨끗이 쓸어도 발자국이 남습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쓸면은 발자국마저도 없어요.
그 이치를 알아야 돼. 우리는 행자 때부터 그거부터 배웠어요. 그래서 꼭 저 아주 좁은 마당을 쓸어도 꼭 ‘뒤로 쓸어라’ 그래. 나중에 그거 뭐 무슨 뭐 그거 저, 쓰레기가 거기에 오고, 사람이 와서 짓밟고 뭐 그림을 그릴지언정 그건 그때 일이고, 최소한도 청소할 때만은 쓴 발자취까지도 쓸어라. 이거예요. 그 절 집안에 그 모든 그 우리가 일상생활하고 있는 행위는 전부 법에 맞게, 그렇게 옛 어른들이 그런 제도를 마련해놨습니다.
예를 들어서 뭐 장삼 같은 것도, 이거 왜 멀쩡한 그 장삼을 이렇게 열십자로 만들어요. 이거 찢어진 게 아닌데 일부러 열· 십자로 만들잖아요. 十信(십신), 十住(십주), 十行(십행), 十廻向(십회향), 十地(십지)...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이 장삼을 입고 수행 점차를 밟아 올라간다, 하는 거라든지 또 뭐 바로 일주문을 들어서면 무슨 다섯 계단을 탁 이렇게 해 가지고, 계단을 뭐 다섯 계단 할 자리도 아닌데 계단을 다섯 계단을 딱 하고, 그 다음에 천안문이 있다든지, 그것도 이제 ‘오계’, 기본적으로 오계를 받아야 이게 불자가 된다. ‘불교에 입문한다’ 이 뜻이에요.
다섯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는 것, 오계를 받음으로 해서, 오계를 받음으로 해서 비로소 불자가 된다. 그런 그 다음에 천왕문에서 뭐라고? 보호해 주는 거야.
오계를 받은 불자이기 때문에 사천왕이 그 사람을 보호해 준다. 그런 내용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신도들에게 설명을 해줘도 불교, 뭐 거의 뭐, 반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는 거예요.
또 우리가 뭐 그 저기 저 목탁도, 아침에는 목탁을 올리고, 오후에는 목탁을 내리고, 그래 돼 있잖아요.
올리는 것은 뭡니까? 새벽을 깨우는 것, ‘從體起用(종체기용)’이라, 그래요. 체에서부터 작용으로 나아간다. 아침 새벽을 열면서 이제 활동이 전개되니까.
‘체’는 고요한 자리거든. ‘용’은 움직이는 자리거든. 그래 종체기용이라, 체에서부터 용으로 이렇게 펼쳐지고, 그럼 저녁에는 ‘攝用歸體(섭용귀체)’라, 작용을 攝(섭)해가지고, 다 걷어 들여가지고, 말하자면 體(체)로 돌아간다, 섭용귀체.
이런 식으로 해서 그래 목탁을 저녁에는 내리고, 또 아침에는 올리고, 이런 식으로 돼 있는 것도 전~부 이 불교 이론에 하나도 안 맞는 게 없어요. 뭐 옷 입는 것부터 목탁 치는 것에서부터, 계단에서부터 일체가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보십시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야기 얼핏 했지요? 하니까 또 그게 있는 줄 사람들이 알까 싶어서 그걸 싹 쓸어버렸죠?
범부들이 아상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니까 또 이 범부란 말에 집착할까 싶어서,
須菩提(수보리)야, 수보리야!
凡夫者(범부자)는 如來(여래)가 說卽非凡夫(설즉비범부)일새 是名凡夫(시명범부)니라,
‘凡夫(범부)’란 말도 내가 부득이 해서 했다 이 말이야.
그러니 뒷걸음질 하면서 마당을 쓸면서 이러한 이치를 우리가 깨닫는 거야.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는 거야.
방에서 이제 걸레로 방을 닦을 때에도 앞으로 나가며 닦는 게 아니라 뒷걸음질하면서 닦는 것. 마당을 쓰는 것이나, 방을 닦는 것이나 전부 뒷걸음이에요.
그건 자취를 없앤다는 뜻이고, 자취를 없앤다는 것은 바로 금강경의 도리!
이 금강경의 도리에 부합한 그런 청소법, 얼마나 근사합니까? 그냥 청소하는 게 아니라, 금강경의 이치를 몸으로 실현한다 말이에요. 몸으로 실현하는 이치라.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五 化無所化分(화무소화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二十一, 斷平等云何度生疑)
제이십오 화무소화분
제25. ‘교화하되 교화하는 바가 없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汝等은 勿謂如來作是念호대 我當度衆生이라하라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여래가 ‘나는 반드시 중생들을 제도한다.’라고 생각하리라는 말을 하지 말라.
須菩提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實無有衆生如來度者니
수보리 막작시념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수보리여!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실은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니
若有衆生如來度者면 如來가 卽有我人衆生壽者니라
약유중생여래도자 여래 즉유아인중생수자
만약 중생이 있어서 여래가 제도한다면,
여래는 곧 나와 남과 중생과 수명이 있게 되는 것이다.
須菩提야 如來가 說有我者는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일새
수보리 여래 유설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수보리여! 여래가 말하는 ‘내가 있다’고 하는 것은 곧 내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거늘,
범부들은 ‘내가 있다’여기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가 說卽非凡夫是名凡夫니라
수보리 범부자 여래 설즉비범부 시명범부
수보리여! ‘범부’라는 것도 여래가 말하기를 ‘범부가 아니다. 그 이름이 범부일 뿐이
다.’라고 하였느니라.”
그 다음,
第二十六 法身非相分
제이십육 법신비상분
第二十六 法身非相分 (二十二, 斷以相比知眞佛疑)
제이십육 법신비상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
須菩提가 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니이다 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수보리 언 여시여시 이삼십이상 관여래
佛言하사대 須菩提야 若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者인댄 轉輪聖王이 卽是如來로다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여래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不應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니이다 爾時에 世尊이 而說偈言하사대 若以色見我어나 以音聲求我하면 是人은
이시 세존 이설게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
行邪道라 不能見如來니라
행사도 불능견여래
第二十六 法身非相分
제이십육 법신비상분
제26 분, ‘法身非相分(법신비상분)’
법신은 형상이 아니다
‘ 法身非相分(법신비상분)’, 법신은 상이 아니다, 형상이 아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수보리 어의운하
須菩提(수보리)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可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不아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不(관여래부)아,
可以三十二相(가이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觀(관)’하는가?
저 앞에서 ‘견여래부아’라 그랬어요. 볼· ‘見(견)’자, 여기는 볼· ‘觀(관)’자가 하나 더해지는데,
‘見(견)’은 사물을 직접 보는 것을 ‘見(견)’이라고 한다면은, 여기서 ‘觀(관)’은 사물을 통해서 그 이면을 보는 것, 관찰이잖아요, 관찰, 관조라고도 하고,
‘觀(관)’자는 이제, 육안을 통해서 그 이면을 이해하는 것,
‘見(견)’은 바로 육안으로 현상을 보는 그 자체,
그래서 여기도 이제,
須菩提가 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니이다 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수보리 언 여시여시 이삼십이상 관여래
須菩提(수보리)가 言(언)하사대, 수보리가 말하기를
如是如是(여시여시)하니이다, 예, 그렇습니다.
뭐, 부처님도 외양을 통해서 부처님의 정신세계를 충분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누구든지 생각할 수가 있죠.
무슨 뭐, 身言書判(신언서판)이라고, 사람 얼굴보고, 외형보고 사람 내면 대강 짐작하듯이, 부처님 32상보고 그것을 통해서 부처님의 정신세계도 어느 정도 아, 저 정도 생겼으면은, 참 저 정도 근사한 모습, 그리고 행동거지가 저 정도라면 그 부처님 정신도 참, 어지간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죠. 如是如是(여시여시)하니이다,
그러니까
以三十二相(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관여래)니이다,
이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봅니다.
그러니까,
佛言하사대 須菩提야 若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者인댄 轉輪聖王이 卽是如來로다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여래
佛言(불언)하사대 須菩提(수보리)야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若以三十二相(약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者(관여래자)인댄
이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관한다면은,
삼십이상을 통해서 여래의 이면을 관찰할 수 있다면은
轉輪聖王(전륜성왕)이 卽是如來(즉시여래)로다,
전륜성왕도 역시 32상을 갖췄으니까 즉시 여래이라,
‘그럼 전륜성왕 32상을 통해서도 그러면 그 사람보고도 여래라고 볼 수 있겠네’ 이런 말이라. 그런 생각해보니까 수보리가 잘못 생각한 거죠.
그래, ‘如來(여래)’라고 하는 것은, ‘如來(여래)’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엄격하게 말하면은, ‘見聞覺知(견문각지) 卽是佛(즉시불)’이야.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것, 날씨가 춥고, 덥고, 배가 고프고, 밥 찾아먹을 줄 알고 하는 이 능력이 곧 부처라.
그거는 형상하고 아무 상관없어. 어린 아이도 할 줄 알고, 노인도 할 줄 알고, 남자도 할 줄 알고, 여자도 할 줄 알고, 동쪽사람도 하고, 서쪽사람도 하고, 흑인도 하고, 백인도 하고, 다해. 형상하곤 아무 관계없어.
그런데 형상을 통해서, 만약에 백인이라고 하는 형상을 통해서, ‘아, 그 사람 어떻게했구나’, 그러면 그럼 흑인에게는 해당이 안 되잖아요.
동양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그러면 서양사람에게도 해당이 안 되잖아.
여기 전륜성왕이야기하고도 똑 같은 거예요.
이‘見聞覺知(견문각지)하는 그 본성’, 우리가 ‘佛性(불성)’이니, ‘眞如(진여)’니 하는 그런 표현을 쓰는데, 그 본성이야 말로 그게 진짜 부처라!
‘善惡(선악)’하고는 관계없어요. 선한행위하는 사람, 세상에 천지야. 그런데 그걸 보고 부처라 하지 않잖아요. 아주 뭐 보살이다, 점잖다, 훌륭하다, 이런 표현을 하지마는 진짜 ‘부처’라고는 보지 않아.
뭐 우리 속담에는 뭐 ‘부처님 가운데 토막’ 이런 말을 씁니다.
사람이 아~주 선량하면은 ‘아 그 사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이것도 역시 잘못 이해하는 거야. 진짜 부처는 선한 행하고 관계없어요.
점잖은 것 하고 관계없어요. 점잖하고 선한사람은 세상에 불교하고 관계없는 사람도 천지야. 저기 인도에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들은 천하에 관세음보살 아닙니까, 행이. 그렇지만 그를 보고 누가 부처라 합니까? 아니거든요.
부처라고 하는 차원은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닙니다.
선악하고 관계없고, 생긴 모습하고 관계없고, 그래서 선불교적 차원에서 우리가 불교 궁극적 안목으로 볼 때, ‘見聞覺知(견문각지)’하는 것은 ‘즉시불’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하는 그 능력,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똑 같습니다. 여기는. 그러니까 ‘不思善(불사선), 不思惡(불사악)’이야.
선도 악도 그 자리엔 해당이 안 된다는 뜻이지요. 진짜 그 자리에는 선악이 해당되지 않는 자리다. 그러니 ‘불사선, 불사악하라’는 거지요.
‘선에도 걸리지 말고 악에도 걸리지 말라.’
우리가 그렇게만 이제 이야기하면은 또 도덕적인 그런 입장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또 그러한 것과 다 도덕적으로 아주 뛰어난 그런 모습도 다~ 포함한, 또 그야말로 ‘부처’도, 쌍차쌍조 차조동시로 이해해야 된다. 궁극적으로 ‘부처’란 것도 쌍차쌍조 차조동시로 이해해야 된다. 중도정견을 이해해야 되고, 사람도 중도정견으로 이해해야 되고, 종이 한 장도 중도정견으로 이해해야 되고,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시면서) 종이 한 장이 이게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또 안 있고, 또 안 없고... 그런 면들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근래에 뭐, 완전히 삼당?이 전부 여인천하다, 어제부터 여인천하란 말이 신문에 막 나는데, 사실은 남자도 여자도 그게 일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구요.
남자도 여자도 그게 꼭 치우친 소견으로 볼 일이 아닌거라, 절대로.
우리 구세대에는 ‘그래도’또,‘그래도’라고 하는 그런 말이 뒤따르는 거라.
그게 아직도 덜 떨어져서 그런 거야. 덜 떨어져서 그런 거라.
아닌 거예요. 불교적인, 제대로 된 불교안목, 불교의 중도적인 안목으로 보면은 남자가 할 일 따로 있고,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절대 아니란 겁니다.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가정에서도 남자 일, 여자 일, 이거 나누는 거 이제는 아주 촌놈이 되는 거야.
이 시대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또, 불교의 입장으로서 더욱 더 그렇고. 그게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니까.
그 고정되어 있는 것을 ‘치우친 소견’그래요. 그래 이거는 치우친 소견을 다 부정하는 것입니다. ‘쌍차쌍조 차조동시’라고요.(?)
그래, 치우친 소견은 절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不應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須菩提(수보리)가 白佛言(백불언)하사대, 수보리가 부처님께 고하여 올리되,
世尊(세존)하 , 세존이시여!
如我解佛所說義(여아해불소설의)컨댄,
부처님 말씀 듣고 보니까,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 뜻을 이해하는 거와 같아서는,
不應以三十二相(불응이삼십이상)으로 觀如來(관여래)니이다,
응당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관찰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爾時에 世尊이 而說偈言하사대 若以色見我어나 以音聲求我하면 是人은
이시 세존 이설게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
行邪道라 不能見如來니라
행사도 불능견여래
爾時(이시)에 世尊(세존)이 而說偈言(이설게언)하사대,
제 삼 사구게죠. 금강경에 네 개의 사구게가 있는데 이것은 제 삼 사구게.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어나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하면 是人(인)은 行邪道(행사도)라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니라 ’,
형상에 치우치거나, 부처님의 설법소리에 치우쳐서 그것을 여래다, 또는 부처님이다 하면은 그 사람은 부처님을 이해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 말이야, 사도를.
‘是人(인)은 行邪道(행사도)라 ’사도를 행하는 것이니라.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니라, ’능히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견문각지가 즉시불이야.
형상이나 음성이 있는 게 아니야.
우리 내면에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활발발하게 작용하고 있는, 사랑할 줄 알고, 미워할 줄 알고, 시기 질투할 줄 알고, 처~ 불쌍한 사람보면 불쌍한 마음, 자비심이 또 나기도 하고, 그러면 뭔가 보살심이 일어나서 정~말 보살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도 있고, 그 반대로 전혀 얼토당토 않는 생각도 할 줄 알고 하는 그 근원자리, 그 본성자리, 이것만이 답이에요.
뭐, 뭘 해가지고 얼마만치 쌓는다, 뭘 획득한다 하는 것은 이건 답이 없습니다.
본래 부처자리, 그것만이 답이란 것입니다. 그거 제대로 이해하면요 또 모든 문제 다 해결입니다. 모든 문제 다 해결.
그래서 오늘도 나눠드린 책,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글이 불교를 평생 공부한 결론으로 그렇게 이제 간단하게 썼는데, 혹은 어떤 사람은 불교를 ‘공’이라고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고, 혹은 ‘인연의 이치다’라고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고, 혹은 ‘중도’라고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고, 뭐 그건 이제 각자 소견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됩니다마는, 저는 ‘人卽是佛(인즉시불)’, 사람이 곧 부처다, 라고 하는 ‘人佛思想(인불사상)’으로써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것만이 곧 답이란 것입니다. 가져 가셔서 열심히 읽어보십시오. 거기는 뭐, 법화경이니, 화엄경이니, 무슨 육조스님이니, 온갖 스님들 근래에 성철스님에 이르기까지 다 망라해놨습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六 法身非相分(법신비상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二十六 法身非相分 (二十二, 斷以相比知眞佛疑)
제이십육 법신비상분
제26. 법신은 형상이 아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겠는가?”
須菩提가 言하사대 如是如是하니이다 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수보리 언 여시여시 이삼십이상 관여래
“예 그렇습니다.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는 있습니다.”
佛言하사대 須菩提야 若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者인댄 轉輪聖王이 卽是如來로다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여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도 곧 여래라 하겠구나?”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不應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반드시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없겠습니다.”
爾時에 世尊이 而說偈言하사대 若以色見我어나 以音聲求我하면
이시 세존 이설게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만약 육신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려한다면
是人은 行邪道라 不能見如來니라
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이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 결코 여래는 볼 수 없으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 다음,
第二十七 無斷無滅分
제이십칠 무단무멸분
第二十七 無斷無滅分 (二十三, 斷佛果非關福相疑)
제이십칠 무단무멸분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莫作是念호대 如來가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라
수보리 막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호대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說諸法斷滅가 莫作是念이니
수보리야 여약작시념하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설 제법단멸 막작시념
何以故오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於法에 不說斷滅相이니라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第二十七 無斷無滅分
제이십칠 무단무멸분
제27 분, ‘無斷無滅分(무단무멸분)’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無斷無滅分(무단무멸분)’ , 단멸이 없다.
단도 없고 멸도 없다, 단멸, 이렇게 한 마디로도 말할 수 있어요.
이건 이제 무슨 말인고 하니, ‘단멸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쌍조’만 있다, 그런 뜻이 돼요.
‘단멸이 없다’하면 무엇인가 ‘형상이 있다’, 이런 말이 됩니다.
‘형상이 있다’.
그동안은 ‘없는 것’으로써 이야기가 많이 되었어요. 부정하는 것으로, ‘쌍차’입장으로만 많이 이야기했어.
여기는 ‘쌍조’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쌍차’,‘쌍조’
그래서 쌍과 쌍이 아닌 것을 함께 수용하고, 함께 수용한다는 것은 곧 중도적인 안목이고 그것이야말로 그야말로 최상의 깨달음이다, 이런 뜻입니다.
(참고)
[我] [불교] 영원불멸하는 실체로서의 자아(自我). 일반적인 교설에서는 부정되지만 《열반경》에서는 열반의 네 가지 덕 중 하나로 꼽힌다.
출처 Daum사전
5강 2부(2012.01.16) 마침
첫댓글 고맙습니다._()()()_
대연화님 늘 평안하심을 원합니다. ^^_()()()_
[자취를 없앤다는 것은 바로 금강경의 도리!
見聞覺知하는 그 본성..佛性이니 眞如니 하는 표현은 그 본성이 진짜 부처다. 선악하고 관계없고, 생긴 모습하고 관계없고, 선불교적 차원에서 우리가 불교 궁극적 안목으로 볼 때, 見聞覺知하는 것은 ‘즉시불’이다][若以色見我어나 以音聲求我하면 是人은 行邪道라 不能見如來니라..형상에 치우치거나, 부처님의 설법소리에 치우쳐서 그것을 여래다, 또는 부처님이다 하면은 그 사람은 부처님을 이해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도를 행하는 것이라 능히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見聞覺知 卽是佛...고맙습니다 _()()()_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일새....고맙습니다_()()()_
見聞覺知 하는 그 본성이야말로 진짜 부처라! ...고맙습니다. _()()()_
見聞覺知 卽是佛_()()()_
明星華님의 法行에 늘건강하시길...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귀하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합장합니다.
불국정토 함께 이뤄감을 소원합니다.
_()()()_
@明星華 어두운 밤하늘에 이정표가 되어주는 밝은별빛이 아름다운꽃과 같아서 벌과나비를 모으네 사경하심에 감탄하며 감사합니다 부럽기도 하구요
나무 금강반야바라밀경
_()_
_()()()_
고맙습니다 . . .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