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종의 자아 개발이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 발전시키는 것 등이다.
“옳은 말인가?” 대답은 압도적으로 “예, 물론이죠” “당연하죠” “옳아요” 등이다(적어도 이것은 내가 질문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답변들이다). 미안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은 악마가 되는 길로 인도할 뿐이다.
“뭐라고? 지금 저 대머리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농담조로이렇게말하곤한다. “이제 여러분은 이 대머리 아저씨가 완전히 돌았다고 생각하시죠?” 자, 농담은 접어두고, 왜 이 길이 악마에게 이르는 길인가? 나 역시 이것이 영적인 길이며, 자신을 계발하여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바로영적인수련길에서의위험요소이다. 마음이나 심정, 감정, 심리, 양심, 영혼 등을 다루는 일은 매우 섬세하다. 단 하나의 작은 무지(無知), 한 작은 오해, 잘못 설정된 작은 가설이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추한 곳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나는통일교인이거나아니거나상관없이, 영적인 길을 따른다고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나무를 심으면서,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면서, 또는 기도하면서, 그들은 이제 성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하루에 열 시간이나 기도한다.” “나는 50명의 노숙자들을 먹여주었어!” “나는 1년 반 동안이나 봉사 생활을 해 왔는걸! 나는 참으로 가치있는 일을 많이했어. 모두들 감사해야 해.” 그들은 뽐내고 있었다.
불행히도그들은영적인길이자기계발에있다고믿기때문에, 자기 강화, 자만, 자신의 행동이 무조건 옳다고 인정하는 일이 생긴다. 물론 옳다.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거만함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인류에, 역사에, 우리의 운동에, 또 세계에 온전히 공헌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며, 무언중에 자신의 위대함과 자랑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신(여러 종교 전통에서 보이는) 앞에 나타나는 악마의 교만이요, 자만, 자기 과시인 것이다. 또한 이것이 영적인 길에서의 가장 근본적인 오류이다. 사람들은 영적인 길을 하나의 자아 계발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불행히도 그 길은 더욱 자기 중심적이요, 자기 집착적인 길로 인도할 뿐이다.
결과적으로자신을증명하려는시도이며,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람이며 얼마나 선한 존재인지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심판적인 경쟁, 공포, 의심, 불신 등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위대성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다. 공포와 불완전한 자신감, 거대한 이기적 자아(자신 속 환상으로 만들어진)로 채워진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진정한 화합을 이루지도, 타인을 위한 삶을 살지도, 서로 깊이 사랑하지도 못하며,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단순하게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정신 이상적으로 자기 도취에 깊이 빠져 있어서 소위 자기 계발이나 성장 또는 발전이라는 데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자아성찰
이것은처음에는스스로인정하기어렵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즉시 불편함을 느끼고 방어적이 된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방패, 벽, 높은 탑들, 장애물 등이 갑자기 보이게 되며,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볼품없는지를 알게 된다. 위대하다는 느낌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자신감, 자긍심 등을 제공하였었는데 이제 이것들은 파괴되었다. 거울을 통해 왜곡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겁에 질려 떨고 있는지 느낀다. 보는 것 자체가 두려울 뿐이다.
그러나누구도이과정이쉬울거라고는말하지못한다. 영적인 길은 거친 길이다. 고된 길이며,냉혹할 만큼 정직하다. 우리는 생각했던 것처럼 위대하지도, 자신감에 차 있지도, 신과 같지도 않다. 가시밭길이며, 빡빡하게 들어찬 죽음의 함정으로 가득한 땅과 같다. 우리는 그 길을 통과하려 하기 전에 적어도 그 정글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만 한다. 적어도 이것은 내 의견이다.
우리가잘못세운가설들(이미 죽어버린 것도 포함하여)을 바로 직시할 수 있다면 무지의 길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비로소 영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길 자체가 될 수 있다. 그 길은 더 크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것이며, 이기적 자아를 없애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비우고,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주권 앞에 완전히 자신을 굴복시키는 데서 참된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비로소하나님과인간의본심그리고본연의신성한선(善)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만약 그것이 우리 자신의 선과 힘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이기적인 자아만을 더 크게 할 뿐이다. 스스로를 확대시키려는 경향을 반드시 억제하며 늘 경계해야 한다.
우리자신(미움, 분노, 욕심 등)을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맞이할 수 있다. 이기적 자아의 달라붙고 잡고 뒤트는 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타고난 성품인 따스함, 동정심, 사랑, 그리고 자비심은 밝게 빛날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러운 선함과 사랑하는 마음을 깊게 해주는 영적인 길의 기반이 닦아지는 것이며 신성한 존재로 하여금 현현하여 이 고통의 세계를 어루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기적자아
항상앞서가려하고, 발전시키려 하고, 성장하며 팽창시키려고 노력하는, 나 속의 이기적 자아라는 것이 실제 눈에 보이게 분리되어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보다 깊게 그리고 분명한 이기적 자아 속에 빠지게 될 것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이기적 자아’를 볼 수 없다.그러나 깊이 들여다볼 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많은 부분적인 생각, 감정, 정신적 상태, 육체적 상태 등의 복합체인 것을 본다. 구체적인 ‘자아’의 인식이 무너질 때, 또 다른 이기적 자아 개념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공포, 참된 자신감의 부족, 불안정, 잠재되어 있는 부적당한 감정에 대한 보상 심리, 또는 스스로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 등이 복합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어느순간우리는자신감을갖게되지만, 그 그림 속으로 다른 사람이 걸어 들어오게 되면 즉시 우리는 위협을 느끼며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을 즉시 적으로, 경쟁자 또는 나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정해버린다. 우리는 거의 병적으로 이기적 자아에 집착하며 살고 있다.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주위에서다른사람들의실수나잘못을재빨리집어내곤하는사람들을본다. 그들에게는 전세계가 문제투성이다. 불행히도 그런 사람들은 깊은 반목, 분노, 원한, 자신감의 부족, 자기 학대 등으로 가득차 있다. 스스로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가장 결여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감의 기운을 곁들일 수 있으나, 그 뒤에는 자기 장난감을 다른 아이들 것과 비교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징징거리는 어린 아이가 살고 있어 자기 방어를 위해 다른 사람을 비하시키곤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되돌아보면, 우리도 이러한 일들을 종종 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소유한자신감과자기가치성은소위자아, 이기적 자아라고 불리는 변화하는 아말감같이 변덕스러운 것에서부터 생기는 것으로, 그 자신감이라든가 자기 가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기 방어와 자기 안전, 견고함, 성취를 기르게 하는 한 단어만을 취하게 하며, 압도적인 의심으로 ‘자아⋅자신감’을 파괴하고 그것을 대신 채울 감정과 정신(혹은 의지) 상태의 변화만을 요구할 뿐이다.
우리가완전히자아자신감을가진다는것은어떤것인가? 무엇보다도 자아 자신감은 자기 중심적 자신감(그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보았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진정한 자아⋅자신감은 스스로가 참된 자아, 본심, 그리고 하나님과 연결될 때에만 오는 것이다.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내적인 요소, 즉 본질적인 따스함, 동정, 사랑, 보살핌, 연민, 심정 등을 깊게 할 때를 말한다.
자신을완전히버린다는것은우리의모든요구, 욕심, 미움, 편애, 원한, 이기심과 같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이다. 계속하여 떠오르는 자기를 비우는 것이다. 이기적⋅자기중심적인 자아의 창살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키며, 본성의 선함, 사랑, 동정적인 마음 등을 빛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기 평화속에서 쉴 수 있다. 이것이 참된 자아이다. 타인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뇌뿐 아니라 육체적 고통이나, 질병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동정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부지런히자기중심적인것을비워낸다면, 자연스럽게 본심의 때를 닦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춘다면, 사소한 문제가 있는 날, 작은 하나의 논쟁, 한마디의 비난이 우리 전체를 압도해버려 하찮은 것 하나가 세상을 파멸의 그림자 속으로 휘몰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이 이끄는 대로 다른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면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인해 생기는 뒤틀어짐이나 고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다른이의 고통을 우리의 시각 안에 포함시켜 마음에 보듬을 수 있다면, 사소한 문제가 있는 날쯤이 세상의 종말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사람을사랑하고돕는것은정신적안정의참된근원이된다.우리는 이제 우리의 본심인 사랑의 본성 안에서 쉴 수 있으며,온전히 안전하게 된다.자기중심적 자아를 버리고 본심에 따르고 굴복할 때만이 하나님이나 본심이 힘과 광채를 가지고 빛날 수 있다.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을 우리 안에 가득 채울 때만이 하나님의 심정에 보다 깊게 접근할 수 있고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