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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의 시인들
김명옥 - 김미선 시인
사이펀의 시인들은 ‘사이펀현대시인선’으로 시집 『옹알옹알 꽃들이 말을 걸고』를 출간한 김명옥 시인과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를 펴낸 김미선 시인을 만납니다. 인터뷰는 사이펀 제1회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온 김 려 시인이 찾아가 두 시인의 시와 삶을 다탁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편집자)
김명옥 시집 『옹알옹알 꽃들이 말을 걸고』
김미선 시집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
▪장소_ 부산 영도 라발스호텔 카페 *인터뷰: 김려 시인
김 려: 안녕하세요. 두 분 선생님. 반갑습니다. 이번에 나란히 시집을 발간하셨는데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더구나 두 분은 강은교 선생님과 산보 인문학을 하는 나비시회에서 자주 뵙는 분들이라 더 반갑습니다. 먼저 이번 시집을 펴내신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김명옥: 반갑습니다. 저는 수십 년간 몸담은 직장 은퇴 후 허전함으로 한동안 울적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생활의 리듬도 바뀌었지요. 그러다 그동안 혹사한 몸이 고장 나고 코로나가 덮치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져 많이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번 시집은 그 어둠 속에서 자기 극복을 위해 쓴 시편이 많습니다. 시집을 묶으며 어두운 단어들이 눈에 많이 띄는 시들은 슬쩍 제외했답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첫 시집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픔이 떠먹여주는 밥을 억지로 먹으며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마법을 걸었던 날들이 떠올라 시집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생기더군요.
김미선: 반갑습니다. 먼저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세 번째 시집은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는 내놓는 순간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길로 가기도 한다는데 독자분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지 기대와 동시에 자못 궁금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김명옥 샘의 시를 좋아하는데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김 려: 네, 시집을 발간한 소회를 잘 들었습니다. 이건 상투적인 질문이긴 합니다만 두 분의 시인으로의 출발점, 가령 시를 쓰시게 된 계기와 본격적으로 창작에 나서게 된 특별한 사연이나 환경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명옥: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일기를 잘 쓴다고 칭찬해 주신 게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문예반에 활동하면서 시의 맛을 알긴 했지만 그 후 직장생활과 결혼으로 가슴에 묻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시 공부를 같이 해보자고 제의를 하였어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셨던 이문걸 선생님(현, 동의대 명예교수)께 한 달에 2번씩 시 창작 수업을 받았지요. 그게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셈이지요. 또한 부친은 월남하신 실향민이시고 저와 남동생이 전부여서 늘 외로움이 따라다녔어요.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낼 상대가 절실해서 나와의 대화를 할 수밖에 없기도 했어요.
김미선: 시인으로서의 출발점, 글쎄요... 오래 전, 편안하게 밥을 참 잘해주는 넉넉한 선배시인을 만나게 되었어요. 어떤 이끌리는 실처럼 시간을 함께하고 시를 접하고 또 시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와 함께 하는 것처럼요. 그 당시 생활의 아연함과 더불어 만져지는 슬픔도 더 시를 가깝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 누가 시킨 건 분명 아니지만 언제나 내 안에서 들려오는 어떤 울림이 출발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김 려: 네. 두 분 시인의 출발점은 선생님과 선배 시인이라는 사람에 의한 인연으로 시작되었군요. 그 인연이 시의 발아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된 것인데, 그러고보면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명옥 선생님은 1995년 국제신문이 신춘문예를 부활시키고 오래지 않아 당선되신 걸로 아는데, 앞서의 당선자들이 많지 않았지요? 어떤 분들이 계신가요?
김명옥: 네. 국제신문에서 93년도에 신춘을 부활시키고 제가 두 번째 당선되었으니 앞서 당선된 분은 한 분밖에 없어요. 박정애 시인이신데 활발히 활동하셔서 중견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김 려: 아, 2회 당선이셨군요. 그럼, 국제신춘의 선배로서 후배들에 대한 기대감이 크겠습니다. 그럼 이번 시집이 담고 있는 의미나 지향성에 대하여 묻고 싶습니다. 김명옥 선생님은 앞서의 시집 <프라이팬 길들이기> 이후 5년 만에 발간하셨는데 이번 시집의 의의와 담고자 했던 것들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김명옥: 저는 첫 시집부터 서정과 인간애를 바탕으로 쓰려고 노력했지요. 이번 시집은 새로운 인생을 맞아 끊임없는 삶의 성찰을 통해 보다 나은 나로 살기 위한 의지가 많이 반영되었어요. 아무리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며, 삶은 지루한 듯하지만 늘 변화하고 우주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과정이므로 순환에 무게를 두었지요.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것도 몇 편 있어요.
김 려: 맞습니다. 생성과 소멸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지요. 참, 이번에 김미선 선생님은 《부산시인》이라는 문예지에서 1년동안 발표된 시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게 주는 ‘작품상’을 윤홍조 시인과 같이 받으셨더라구요. 제가 알기로는 부산시인작품상은 오로지 문학성에만 초점을 두어 심사를 하는 걸로 압니다. 작은 무대라지만 선생님 작품에 대하여 나름 평가를 받으신 것이니 축하를 드립니다. 특히 최휘웅 선생님은 깐깐한 작품을 선하시기로 잘 알려진 분인데, 그분이 심사를 보셨으니 보다 더 객관성을 담보 받으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시가 작품상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느낌은 어떠했나요? 시상식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김미선: 아, 네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수상 통보를 받았을 때, 물론 기뻤지만 솔직히 내 시가? 하면서 의아해하기도 했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보통 시간이 있을 때 산에 잘 가는 편입니다. 그때는 가을이 한창인 화왕산을 다녀오면서 햇살에 비친 억새가 유난히도 마음에 새겨진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반짝임을 잊을 수 없어요. 지나고 보니 그 눈부심이 나름 예시를 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 수 없는 신호가 어딘가에서 오는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간간히 느끼게 되거든요. “불면에 대한 자의식”이 시의 내용이었는데 내면의식을 감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 돋보였다고 하셨어요. 상을 받게 되니 시에도 나름 운명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에서 환상은 이미지로 통하여 발현된다고 하시는, 모더니즘 시 세계를 걷고 계신 최휘웅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김 려: 수상은 격려와 기대가 수반되는 책임감이 뒤따르지요. 선생님의 언어의 깊이라면 더 좋은 시들을 써 주시리라 믿습니다.
김명옥 선생님은 1995년 등단이면 28년여 세월입니다. 이 기간에 4권의 시집이면 과작이라해도 무방한데, 평소에 시 창작은 많은데 시집을 적게 내신 것인지, 아니면 평소 시 창작이 작은 것인지요? 특히 이번 시집은 직장에서 은퇴 이후의 시들이라 시 창작에서는 보다 더 자유로웠을 것 같습니다만.
김명옥: 저는 등단 후 2년 만에 시집을 냈으니 빨리 낸 편이지요. 그 후 워킹맘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사느라 작가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어요. 육아와 남성 위주의 세계(지금은 환경이 많이 변화됨)에서 승진의 꿈을 이루고자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사이 세월이 그렇게 흐른 줄 몰랐지요. 16년 만에 2번째 시집을 내고 그 후는 평균 페이스대로 내고 있답니다. (웃음) 은퇴 이후는 시간상으로는 구애받지 않아 전보다 투자하는 시간이 길어져 생산하는 것도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막상 청탁받으면 자신 있는 시가 눈에 띄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좀 더 공부해서 모든 시가 멋진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김 려: 김명옥 선생님의 이번 시를 두고 황치복 선생께서 해설에서 선생님의 “한층 성숙하고 정제된 작시술을 선보이고 있다.”고 전제한 뒤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유가 더욱 품격있는 시적 성취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자신의 시적 성취라면 앞서의 시집들과 이번 시집의 차이나 변별력이 어떤 부분이라고 보시는지요?
김명옥: 며칠 전 비가 온 날 도로에 나가니 바닥에 단풍잎이 손가락을 활짝 벌린 듯 누워있었어요. 겨울 추위와 가뭄으로 오그라든 몸이 비를 흠뻑 맞고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지요. 나뭇잎 하나 꽃 한 송이가 그렇게 다 가슴에 와닿을 수가 없어요. 예전에는 미처 느껴보지 못한 것이지요. 온천천 산책길 물오리들의 자맥질을 보면 숭고하기까지 하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빠져 나와 몸과 마음이 부서져 내리고 폐허가 된 자신을 바라다보며 끊임없이 나를 성찰했어요. 아직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또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것에게 애정과 찬사와 격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전 시집에서의 깊이와는 다른 우주에 순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공감하는 따뜻한 사유가 곳곳에 숨어있답니다.
김 려: 이번 시집의 2부에는 ‘타로’를 주제로 한 시가 많이 나옵니다. ‘타로’ 주제의 시를 여러 편이나 쓸 만큼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김명옥: 은퇴 후 주민센터에서 개설하는 무료강좌로 평소 관심 있던 타로를 공부하였어요. 코로나 대유행으로 몇 번이나 수업을 중단하여 메이저카드만 배우고 마이너카드는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운세를 보는데 활용하는 그림카드 한 장마다 심오한 우주의 철학이 깃들어 있지요. 타로카드가 암시하는 운명과 그것을 해석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우리네 삶과 접목하여 풀어냄으로써 세계관을 넓히고 삶의 태도가 변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지요.
김 려: 제가 그동안 김명옥 선생님을 보고는 낯가림이 심한 분 같지만, 솔직하고 정확한 사람인 것 같아서, 이런 분은 어떤 시를 쓸까 궁금했어요. 어려운 시는 안 쓸 사람으로 보였는데, 정말 그렇네요. 벚꽃잎 물고가는 개미를 바라보는 시간, 바람에 날아가 버린 벚꽃잎 생각하는 개미의 시선이 선생님 눈빛이랑 닮았어요. 아주 여릴 거로 생각했는데, 시집 읽고 마음이 놓였어요. 뜻밖으로 강건하세요. 약간 능청스럽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가 재밌어요. 특히 3부가 더 좋네요. 가는 곳, 보는 것, 하는 일, 온갖 것을 다 시로 만드는 재주가 부러워요. 무슨 비결이 있나요? 한 수 배웁시다.
김명옥 : 시 잘 쓰시는 김려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 하시니 부끄러워집니다. 저는 소재를 가까운 곳에서 찾으려고 해요. 직,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상의 이야기 중 제 가슴에 와닿는 것을 풀어내는 거죠. 요즘 몇 번이나 읽어도 이해 안 되는 시가 많잖아요? 저는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지만 읽으면 공감할 수 있고 마음 따뜻해지는 시, 어두운 시보다는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어요.
김 려: 105p 「어쩌다 짝을 바꾸면」에서 ‘눌러앉은 구름 한 자락 나를 마음껏 요리하고 있네요’ 같은, 시의 분위기를 환기하면서 깊이도 주는 마지막 행이 이번 시집의 시에서 더러 보이던데 의도하신 건가요? 아니면 자동으로 이렇게 되는지요? 자동으로 되시는 거라면 정말 부러워요.
김명옥: 시의 첫 행과 마지막 행에 공을 들이는 편인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 고민이 많습니다. 어떤 시는 마지막 행을 먼저 쓰는 경우가 있고 어떤 시는 첫 행 이후 잘 풀리지 않는 때도 있지요. 그러니까 내재된 감정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때가 있고 좀 임펙트 있게 쓰려고 자다가 중간에 잠이 깨면 그 행을 완성하려고 새벽까지 머릿속에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곤 해요.
김 려: 67p 「허공에서 부르는 노래」에서 페인트칠하는 사람 이야기, 62p 「질주의 중심」에서 rider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 등 선생님의 마음이 하나같이 따뜻해서 참 좋았어요. 선생님, 좋은 사람 같아요. 좋은 사람 맞지요? ^^
김명옥: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김 려: 저는 김미선 선생님의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시의 운율이 가지런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내재율이 잘 다독여져 있다는 느낌? 그랬어요. 시의 운율은 시인의 정서와도 일맥상통하거든요. 평소 즐기는 음악은 어떤 장르인가요? 또 미술관람이나 여행 등 외부와의 다양한 만남도 즐기시는 것 같았어요. 시 속에서요. 평소 어떤 생활을 즐기시는지 궁금하군요.
김미선: 아하, 그렇게 보셨군요. 시는 의미가 아니고 표현 방법이 중요하다고 시를 배웠습니다. 그림을 그리듯이 이미지를 구체화, 심상화 되어야 한다고... 그러다 보니 찬찬히 다독여진 느낌이었을까요. 시의 운율이 정서와 일맥상통하다고 하시니 아마 오랜 시간 명상을 통한
제 종교적인 영향도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평소 즐기는 음악은... 저는 이태리 가곡을 즐겨 듣는 편입니다. 인생과 신에 대한 비유라든지 많은 부분들이 공감과 일깨움을 주는 것 같아요. 조금 장르는 다르지만 이탈리아 캰쵸네 “일 몬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주로 즐기는 생활이라면, 어느 시인이 “걷는 것은 나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저는 트레킹을 좋아합니다. 저의 집 주변의 강변이나 뒷산을 산책하기도 하고 알프스, 몽골, 네팔 등등... 시간을 자유롭게 만끽하는 방법이기도 해서요. 얼마 전에는 히말라야 산군을 여기저기 밟고 왔는데 4,000미터 이상이다보니 고산증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 히말라야 용담도 만나고 네팔 트레커의 맑은 눈빛과 그 속의 순수함, 랑탕 계곡을 지나면서 네팔 강진으로 인한 산사태로 아들을 잃은 롯지 여주인의 신에 대한 갈망, 염원... 설산에서 느꼈던 그 바람의 향기가 제 몸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느낌들이 시의 소재가 되는 것 같아요.
김 려: 아... 트레킹. 그럼 천천힉 걷는 저희 ‘나비시회’에서는 걷는 재미가 없겠습니다.
김미선: 하하! 걷는 것에는 목적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지요. ‘나비시회’는 사람 걷기가 아니던가요?
김 려: 네, 특히 이번 시집의 제목이 앞서 펴낸 시집들의 제목보다는 강렬하면서도 전투적이라는 느낌입니다. 시집의 제목만큼 앞으로의 시 창작도 강렬하게 보다 더 큰 언어의 바다로 헤쳐나가는 전투적 시인이 되실지 궁금합니다.
김미선: 그 동안의 저의 사회적 물결에 무참함이 담겨서 일까요. 아니면 앞의 두 시집보다 이미지나 메시지가 뚜렷하게 담겨서일까요. 저도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어떤 형식과 사회적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시의 길로 가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김 려: 저는 선생님의 이번 시집에서 언어의 밀집도 못지않게 이미지의 구체성이 서정적으로 잘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생각일 수 있지만 선생님은 시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요?
김미선: 입체적으로 사물을 보는 눈을 가지라고 어느 선배님이 말씀해주셨어요. 그것을 오래 바라보면 황당무계, 오리무중, 이판사판인 어떤 시선들을 가지고 표현하고 배치를 하다보면 제 마음에서 나타내려는 길이 보인다고 일러주셨어요. 아직 제 시가 그런 즐거움을 담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탈출의 새로움에서 또한 이미지가 구축된다는... 암튼 열심히 읽고, 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김 려: 김미선 선생님의 이번 시집을 두고 황치복 선생은 “몽상과 명상을 결합하여 삶의 신비와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구도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셨는데, 이번 시집에서 선생님이 추구하신 구도의 열정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들 수 있을까요? 이건 어디까지 황치복 선생의 말을 곧이 이해하신다는 전제 하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의 시집해설을 황치복 선생이 쓰셨더군요.
김미선: 네, 해설 부분은 출판사의 일이라.... 불교적 바탕을 가진 제가 이번에 다녀온 히말라야 트레킹은 제 개인적인 구도의 열정이 아니었을까요. 고산증에 시달리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고통과 롯지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면서 느낀 평온함 이런 소재로 한 편 한 편 써내려가다 보면 그런 느낌이 오는 걸까요. 우리들의 일상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으로 걸어가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순응하면서 삶의 신비와 이치를 깨달아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시의 이미지를 깨우쳐주신 황치복 평론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김 려: 구체적으로 선생님의 시집들을 보면서 22p ‘생피 다 쏟고도 직립으로 서 있는 침묵’ ‘나는 허공을 딛고 당신을 견디고 있었다’ 32p ‘살아간다는 것은 불륜을 바라보는 일’ 등 아프고 멋진 문장이 많았어요. 비발디, 니체, 자라투스트라, 아포리아, 고흐, 고갱, 마티스, 렘브란트, 아다지오, 아디오스 노니노, 펜로즈 계단, 페르소나, 신드롬, 묵시록, 분망하다, 폐사지 등 외래어와 한자어도 많고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름도 모르고 얻어먹는 비싼 요리 같은 맛이 시에서 났어요. 선생님은 여행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풍경이 많이 나오고 그림, 음악에 관한 시도 많던데 그림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지요? 그 모든 일에 어떻게 시간을 내시는지 궁금해요.
김미선: 시를 시작할 때 선생님께서 미술품을 많이 보고 그 작품에서 생각 가는 대로 글을 적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글에 사유를 담아 시로 엮어보는 습작을 했었습니다. 허나 눈에 띄게 외래어나 한자어가 많은 것은 아직 서툰 탓이겠지요.
제 오랜 친구가 시립미술관에서 수석 도슨터로 봉사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새로운 기획의 전시가 있으면 초청도 하고 사적인 만남에서도 여러 설명을 많이 해주기도 한답니다. 미학에 대한 관심과 그런 이유 등으로 그림과 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저는 또 종종 여행을 원하고 여행에 집중하는 나를 만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프랑스 파리에 한 달 정도 머물면서 미술관 투어를 해보는 것이 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김 려: 파리에서 한 달이라... 부러운 일입니다. 시집을 보면 붉은 이미지가 많습니다. 16p 붉은 방에서, 붉게 물든 풍경 27p 붉게 자란다 29p 붉은 밤, 붉은 꽃 35p 붉은빛 번지는 36p 검붉은 면죄부 44p 붉어지는 틈 49p 붉어진다 57p 붉어져요 66p 붉히며 68p 불콰하게 71p 붉은 바퀴 74p 붉게 일렁이는 91p 붉은 파도 94p 빨강 106p 붉은 변주곡 107p 붉게 물들기, 붉은 흔적 등 정말 온통 붉습니다. 또 슬픔이란 말도 많고 92p 슬픔, 슬픈 104p 슬픔 106p 슬픔, 울음이란 말도 많아요. 104p 울음 107p 울음 108p 울음 등 더 있는데 생략했어요. ㅎ.
선생님은 단아하고 평온해 보이는데 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붉은빛과 슬픔, 울음이 너무 많이 나와요. 알고 쓰신 건가요? 영혼에 스며들어 있는 건가요?
김미선: 제 시의 신기루가 붉은색일까요. 저도 붉음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줄 몰랐습니다. 새날은 언제나 붉게 시작되지요. 모든 만물을 깨우고, 축복을 내리고 이 땅의 곡식을 기름지게 하고... 수없이 울게 하는 몸부림도 붉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슬픔, 울음이 단아해 보이지만 평온하지 못해서 일까요. ㅎ... 산다는 것은 조금 슬픈 것 아니겠습니까. 각자의 크고 작은 자리에는 늘 슬픔이 있고 상처가 있으니까요. 슬픔과 울음은 상통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기쁨과도 통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슬픔은 기쁨을 기다리게 하고 무참히 떨어지는 울음도 또한 평화로운 미소로 오지 않을까요. 단지 그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시를 한 번 더 빗질하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조금 과했나 봅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도 자제해야 겠습니다.
김 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애써 지울 필요는 없겠지요. 그리고 68p 「콜라텍」 시가 재밌던데 혹시 경험에서 나온 시인가요? ㅎ.
김미선: 아, 네.... 경험이라기보다는 막, 콜라텍을 나온 듯한 늙수그레한 두 분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겨울,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에 콜라텍이 즐비한 부전시장 정류소 앞에서요. 두 분의 어눌하면서도 무언가 교환하는 듯한 눈빛을 보고 제 나름 상상입니다.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을 향하여 ~ ㅎ..
김 려: 네. 그런데,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시나 평소 기억하는 특별한 시인이 있는지요?
김명옥: 저는 시신경에 문제가 있어 안타깝게도 많은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최근 읽은 시집으로는 천병석 시인의 『양들에 관한 기록』이라는 시집을 구매했는데 몇 편의 시가 와 닿았어요. 예전부터 기억하는 특별한 시인은 김승희 시인을 들 수 있는데요. 현실을 강렬한 이미지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후련함이 좋습니다.
김미선: 몇 년 전 타계하신 임명수 선생님께서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시를 쓰면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와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속에 나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들여다봅니다. 생전 선생님이 계셨던 강구항을 떠올리면 108배 참회하듯 시를 가다듬고 쓰라고 하신 말씀 생각납니다. 그 말씀을 늘 귀담아 두려 합니다.
김 려: 네, 돌아가신 분이라면 더욱 아련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가 있다면 어느 작품인가요?
김명옥: 작품마다 사연이 있어 다 애착을 느끼지요. 특히 애착을 느끼는 시는 「킥보드는 당신을 버리고」 입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전동 킥보드가 여기저기 방치된 것이 너무 안타깝고 마치 따뜻한 위로를 기다리는 내 모습 같기도 해서 쓴 작품입니다.
김미선: 저는 “삶, 또는 사랑”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 원래 제목은 “La Vita" 라는 이탈리아어로 ”인생이란“ 뜻이지요. “순탄하면 아름다움이 아닌 것처럼” 문장이 아끼는 부분입니다. 상처가 많을수록 향기가 진하다는 삶의 이치가 담겨져 있는...
김 려: 네에... 김명옥 선생님은 이제 은퇴 이후의 삶을 잘 살고 계시는 중이라 시가 더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최근의 시 창작은 잘 되고 있는지? 또 어떤 고민의 시를 쓰시는지요?
김명옥: 작년 12월까지는 집안일로 쓸 수 없었고 새해부터는 마음을 다잡고 쓰고 있어요. 저는 주로 일상 주변의 일을 소재로 하되 종종 폐허 같은 마음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늘 끼고 다니는 불안과 걱정을 시를 통해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전 나를 구원해야 하니까요.(웃음)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생명 존중과 인간애가 묻어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 려: 선생님의 시집 자서를 보면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울림의 문장을 끌고” 나아가고자 하는 시적 다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자서만으로도 김명옥 선생님의 시에 대한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음 시집은 지금까지의 발간 시기보다는 한결 빨리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듭니다. 다음 시집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김명옥: 지금 바로 확답하기는 어렵지만 좀 더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다만 작품집의 수량보다 작품 한 편이라도 독자의 가슴에 남는 좋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김 려: 김미선 선생님은 다음 시집을 언제쯤 예상은 되는지요?
김미선: 앞으로 더 많이 써 오래지않아 준비해보겠습니다.
김 려: 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두 분의 이번 시집에 담긴 시적 세계를 부족하나마 탐닉할 수 있는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아마 ‘사이펀’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