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여정은 불교에서 말하는 '견셩에 이르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소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과 눈먼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구도와 치유로서의 새로운 여행서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여행소설은 유유한 여행길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꿈의 환영과 상상력의 발현으로 작가 특유의 풍미를 더하였다.
셋은 마침내 파란만장한 여행길을 마치고 귀로를 발견한다.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담백한 작가의 어조 속에 불교적 교훈이 담겨 있다. 작가 특유의 익살과 의뭉스러운 능청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의뭉과 누추의 경지… 김도연 소설의 진경 1991년 등단한 이래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십오야월』두 권의 소설집을 펴내며, 동향의 작가 김유정에 비견되는 익살과 의뭉스러운 능청, 넉살 좋은 입심,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고도 가볍게 몸을 날리는 서사의 전화 등으로 동시대 작가들 사이에서 단연 여유롭고 단단하게 자신의 위치를 다져온 소설가 김도연의 첫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출간되었다. 소 팔러 나왔다가 팔지 못한 사내 폴, 남편 장례를 마치고 도망치듯 떠나온 여자 메리 그리고 의뭉스러운 암소 피터… 이들 셋은 강원도를 떠나 횡성 우시장, 청도, 해남 땅끝, 고창 고인돌 마을, 대천 해수욕장을 거쳐 안국동 조계사로 향한다. 한바탕 시끌벅적한 꿈을 꾼 듯한 이들의 우습고도 기묘한 여정을 김도연은 한 편의 멋진 소설로 탄생시켰다. 시인 박용하는 김도연의 소설들을 일컬어 “화려하지 않고 유려하지 않으며 낯선 것도 아니고 파격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새로움이란 망령에 들떠 있지도 않다”, 단지 “누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누추함’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삶의 의의를 찾아야 하는 소설쓰기에서 김도연 소설을 빛내주는 오롯한 지점이기도 하다. “말의 게걸스러움과 탐욕그러움이 난무하는 시장판에서” 어깃장을 놓는 듯한 소설에 대한 그의 촌스러운 진득함, 아둔함, 순박함, 모질지 못함, 의연함은 그의 첫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비로소 꾸려놓고 도달한 김도연 소설의 한 진경이라 할 만하다.
구도와 치유로서의 새로운 여행서사의 발견 “소와 함께 어디로 가는 중이야?” “그냥…… 여행하는 중이야.” 여기 외양간의 쇠똥 치우기가 죽기보다 고역인 강원도 산골의 노총각 ‘나’가 있다. 때는 “꽃이 만발한 봄날”(10쪽) 쇠스랑을 집어던지고 홧김에 5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말하는’ 암소 한 마리를 농용트럭에 태우고 집을 뛰쳐나온다. 횡성 우시장에 가서 소를 팔아버리고 홀가분하게 봄날 꽃구경이나 하며 한 바퀴 돌다 집으로 돌아올 심산으로. 하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소값 때문에 차마 소를 팔지는 못하고 소와 함께 고속도로를 떠돈다. 그길에 접한 옛 친구 피터의 부고. 장례식장에서 만난 칠 년 전 옛사랑 메리, 떠오르는 추억의 고독한 심사, 피터와 폴, 그리고 메리 세 사람이 함께했던 그 여행길을 소와 함께 따르며, “참으로 고약한 봄날 속에 갇힌”(25쪽) 500마일 여행길은 비로소 시작된다. 이 여정은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에 이르는 과정’과 닮아 있다. ‘나’는 소와 함께 이 고된 여행길을 함께하며 자신의 심안을 밝혀내간다. 애초에 하필 소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눈먼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과정에서도 그 함의는 드러난다. 그러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획득한 여행소설의 진가는 그 유유한 여행길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꿈의 환영, 상상력의 발현이다. 미욱한 삶을 감싸는 거대한 환으로서의 꿈의 은유는 읽는 재미를 더하며 그것 자체로 김도연 소설의 풍미를 더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피터와 폴, 그리고 메리, 그들의 파란만장, 우여곡절을 지켜보며 온갖 난관을 헤치고 흰 소의 등에 타고 피리를 불며 귀가하는 꿈같은 동자승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풍랑몽(風浪夢), 그 고된 꿈의 기원 “너와 나…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꾸었던 거야…” 그들의 한바탕 소동의 길목에는 어김없이 꿈 이야기가 포진한다. “다량의 수면제라도 들어 있는 듯한” 봄 한낮의 날씨는 ‘나’를 종종 꿈속으로 이끈다. 꿈을 깨어도 그것 또한 꿈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계속 된다. 소의 몸속으로 내가 들어간 듯하기도 하고 내 몸속에 소가 들어온 듯하기도 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이것이 한갓 꿈속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꿈 이야기. 종당에는 세계가 모두 “소가 꾸는 꿈속”인지도 모를 아스라함만 긴 여운처럼 남는다. 기실 소설이라는 작업 또한 거대하고도 지고한 한 편의 꿈속 이야기가 아닌가. ‘나’가 부르짖는 “다 내 마음이 불러낸 헛것들이야. 이제 그만 돌려보내야 해!”라는 말을 되씹어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김도연 소설의 능청스러운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짐짓 시치미를 떼고 한 편의 꿈을 짓는 듯이 느릿한 어조로 꿈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이만하면 재밌지 않냐고.
“소를 탐내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소를 훔친 꿈이 기억나지 않는단 말입니까?” “꿈이라뇨? 누구의 꿈을 말하는 겁니까?” “우리 모두가 같은 꿈을 꿨잖아요!” --- 본문 중에서
귀로의 발견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가는 길 그들 셋은 그렇게 서울로 향한다. 조계사에 도착한 후 죽은 피터의 천도제를 지내고 살아 있는 소 피터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그 도중 ‘맙소사’가 불타는, 소도 불타고 나도 불타는 질펀한 꿈 한바탕을 꾸고 소와 함께 들어간 서울 변두리 여인숙에서 강원도 산불 소식에 셋은 잠을 깬다. 그렇게 그들은 “이제 그만 지지고 볶으러 집으로”(215쪽) 간다.
“폴, 빨리 일어나봐! 맙소사가 불타고 있어!” 텔레비전은 동해안의 산불 소식을 요란하게 전하고 있었다. 소와 함께 들어간 서울 변두리의 여인숙에서 나는 불이 붙은 것만 같은 내 몸을 살피며 불타는 맙소사를 꿈인 듯 들여다보았다. 옆에 앉아 있는 소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소방 헬기도 접근하지 못한다는 산불이었다. 나는 불길에 무너지는 범종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슬그머니 소를 돌아보았다. 소도 나를 돌아보았다. 메리도 그 눈길에 참여했다. 운동장처럼 넓은 여인숙 방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애를 썼다. “이제 그만 지지고 볶으러 집으로 가자.”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우리 셋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 말이었다. --- 본문 중에서
김도연은 한 편의 크고 고된 꿈과도 같은 소설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일구어냈다. 기존 여행서사에서 보이는 상투적인 의미부여, 극복되지 않은 진정성의 억지를 가볍게 뛰어넘어 익살스럽고 능청맞게, 한편으론 결코 손에 잡히지 않지만 아스라하게 남겨지는 황홀몽으로 직조해냈다.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그의 담백한 어조 속에는 소설이라는 꿈의 집을 짓는 그의 부단한 손길이 서성인다. 그의 첫 장편소설『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 성취한 결코 녹록지 않은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스24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