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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6년 향기로운 불교 송년회 ④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大韓佛敎總本山 曹溪寺)
4. 대웅전 벽화 이야기 ①
우리는 청사 뒷편의 구세존사리탑을 참배하고 나서 바로 대웅전 벽화를 소개하고자 법우 님들과 함께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대웅전에는 앞뒤로 주련이 많이 걸려 있는데 모두 여덟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주련은 일찍이 모두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을 제외한 좌우 측면과 뒷면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 는데 모두 서른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벽화는 대중들에게 쉽게 부처님의 일대기를 이해하도록 그려 놓은 것인데 설명이 없으니 무슨 내용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혹은 보고 그냥 지나치고 혹은 호기심이 생 겨도 누구 하나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도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평소에 주련 8송(頌) 과 벽화 30화(畵)에 대해서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향불교 법우님들을 위하여 설명해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구도심이 촉발하 면 추워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더워도 더워도 더위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날 날씨는 다 소 쌀쌀했다고 하나 저는 워낙 든든하게 입고 나와서 그런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법우님들은 다소 추위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끝내 몇 장면은 다 마치지 못했는데 이제 여기서 다시금 감상하시면서 이해하셨으 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 대웅전
대웅전 어간문의 송학문
대웅전 좌측문의 꽃살문
대웅전 좌측면 모습
대웅전 벽화는 좌측면부터 시작합니다. 벽화의 내용은 도솔천(兜率天)에 계시면서 사바세 계(娑婆世界)에 강생할 뜻을 보이신 호명보살(護明菩薩)의 이야기로부터 마지막 서른 번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까지의 내용인데 인천(人天)의 스승이신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일대기를 담은 벽화입니다. 이 벽화를 통하여 부처님의 일대기를 간략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여겨 벽화를 하나하나 설명하고자 했고 담아왔 습니다.
좌측면 벽화의 모습
제1면의 모습. 한 벽면에 벽화 3화씩 그려져 있습니다.
제1화(畵) 도솔천의 호명보살(護明菩薩)님 입태할 곳을 살피시다.
제1화(話) 도솔천의 호명보살(護明菩薩)님 입태할 곳을 살피시다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전신(前身)인 호명보살(護明菩薩)은 보살만행을 닦아서 갖가지 공덕 을 만족하게 이루어 한 생 있다가 부처를 이룰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의 몸으로 도솔 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서 하늘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었습니다. 그 하늘의 수명으로 4,000년을 누리면서 모든 중생을 교화하셨습니다. 도솔천은 인간의 400년을 주야로 하여 30일을 한 달로 하고 12개월을 1년으로 하는데, 그 4,000년은 우리 인간의 시간으로는 5 억 7천 6백만 년이됩니다.
그때 호명보살은 사바(娑婆) 중생을 제도할 인연이 왔음을 관찰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인간에 태어나려 함은 세속의 온갖 보물과 오욕(五欲)의 쾌락을 위하여서가 아니고 오직 최상의 정각(正覺)을 성취하여 저 중생들을 제도하여 나고 죽음의 고해(苦海) 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로다."
그리하여 호명보살은 금단천자(金團天子)에게 명하였습니다. 너는 <남섬부주>에 내려가서 그 종족이 깨끗하고 복덕을 갖춘 집을 가리어 나의 부모가 되도록 하여라."
호명보살의 명을 받은 금단천자(金團天子)는 사바세계를 두루 살핀 끝에 최후로 카필라국 의 석가족은 대대로 성왕(聖王)이 나타나 백성을 덕으로 교화하였고, 현재는 사자협왕(獅 子頰王)의 아들인 정반왕(淨飯王)이 백성을 통치하고 왕후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인데 매우 현명하고 단정하신 분이니 그를 부모로 정하심이 어떠한가 하고 아룁니다. 그러자 호명보 살은 일생보처보살이 태어날 곳은 60가지 공덕이 구족되어야 하고 어머니 되실 분은 32가 지 공덕을 갖추어야 하는데 정반왕과 마야부인이 마땅하니 부모로 선택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부처님 생애>방을 참조해 보세요.
제2화(畵)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제2화(話) 마야부인의 태중에 드시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마야부인은 정반왕을 모신지 10년이 되었으나 아직 후사(後嗣)가 없으므로 아침, 저녁으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드리며 훌륭한 왕자를 잉태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지성으로 기도하기를 100일이 되어 가는 초가을 보름달 밤 난간에 기대어 졸다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저 먼 하늘 위에서 오색 광명이 뻗치고 상서구름이 하늘을 덮었는데 그 속에 연화관을 쓴 하늘사람이 여섯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내려오는데 수없는 하늘사람과 하늘아 씨가 그 앞 뒤를 옹호하며 오색광명이 찬란한 구름 속으로 내려오더니 정반왕궁으로 다가 와서 마야부인의 오른 옆구리로 들어가는 꿈이었습니다.
제3화(畵)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제3화(話) 룸비니 동산에서 탄강하시다.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태자를 잉태한 마야부인은 산달이 되자 당시의 풍속대로 콜리국 친정에 가서 순산하기 위 해 화창한 봄날 룸비니 동산을 지나던 중 잠시 연(輦)에서 내리어 백화만발한 꽃동산을 구 경하게 됩니다. 그 동산 한복판에 바라차나무[무우수(無優樹)]가 있었는데 오른손을 들어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그 때에 뱃속의 아기가 태동하여 아주 고통없이 분만하게 됩니 다. 때는 四월 八일이였습니다.
태자가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옮기는데 땅에 서 연꽃이 솟아 올라와 태자를 떠받들었습니다. 이때 태자는 외쳤습니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 나 하나 홀로 높도다. 天上天下 唯我獨存(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가 다 괴로우니 내가 장차 편안케하리라. 三界皆苦 我當安之(삼계개고 아당안지)"
하였고 <가라>와 <울가라>라는 두 용신(龍神)은 덥고 찬 두 줄기의 물을 쏟아 내리어 몸 을 씻게 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하늘 음악이 울렸다고 합니다.
제2면 벽화의 모습
제4화 아시타 선인(阿私陀仙人)의 예언
제4화 아시타(Asita 阿私陀) 선인(仙人)의 예언
태자의 탄생 소식을 들은 정반왕(淨飯王)의 기쁨은 그지없었고 나라 안팍이 온통 경축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리고 곧 이름 높은 바라문을 불러서 태자의 이름을 싯달타(Siddhārtha 悉達多)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싯달타(Siddhārtha)는 '모든 것이 다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그때에 선산(仙山)에서 백여 세 동안 수도하던 아시타(Asita 阿私陀) 선인은 이상한 기운이 하늘에서 무지개처럼 카필라국에 뻗치는 상서로움을 보고 대각성자(大覺聖者)께서 이 세 상에 오셨음을 짐작하고 하산하여 궁궐로 태자를 친견하러 찾아왔습니다. 아시타 선인은 태자의 상을 두루 살피고 일어나서 태자의 발에 경례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에 정반왕은 놀라며 물었습니다.
"태자의 상을 살펴 보오니 정수리에 살상투가 솟았고, 머리털은 검푸르면서 소라 모양으로 위로 돌았으며, 눈썹 사이에는 흰털의 상서가 있고(白毫相), 가슴에는 만(卍)자 무늬가 있 고, 목에는 일광(日光)이 있고, 온몸은 붉은 금빛이며, 발바닥에는 천폭의 바퀴무늬가 있는 등의 서른두 가지(三十二相)의 대인의 모습(大人相)과 여든 가지(八十種)의 미묘한 상호(相 好)를 갖추었습니다.
이러한 삼십이 대인상과 팔십 종의 상호를 지닌 이는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천상ㆍ천하의 제일도사이신 <붓다>가 되실 징조이옵니다. 그러하온데 태자는 반드시 이 세속을 떠나시어 도를 닦아 <붓다>가 되실 것이온데 이 사람은 이미 백여 세라 수명이 다하여 태자가 <붓다>되시는 것을 뵈올 수 없고 법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되오니 그 때문에 슬퍼하옵니다."
태자로서 그 운명을 결정지을 것을 결심했습니다.
태자가 탄생한 지 칠일 만에 불행하게도 그 어머니 <마야부인>은 세상을 떠났는데 이에 왕은 마야부인의 친동생인 <마하파자파티부인>에게 태자를 양육하게 하였습니다.
제5화 태자의 관정식(太子灌頂式)
제5화 태자의 관정식(灌頂式)
태자가 일곱 살 되던 해 봄, 그 나라 풍속에 따라 태자로 책봉하는 관정식(灌頂式)을 거행 하게 되었습니다. <인과경>에서는 태자가 15세 때에 했다고도 하고, 남전불교에서는 5 세에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관정식은 사해(四海) 바다에서 물을 길어다가 그 물로 태자의 정수리를 씻으면서 장차 이 나라의 태자가 될 것을 대신과 만민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정반왕은 대신들과 의논한 뒤 길일(吉日)인 2월 8일을 택하여 관정식을 하고자, 사해에서 물을 길어오게 하고 궁전으로부터 성문안팍에 채색비단으로 용과 봉황ㆍ사자ㆍ코끼리ㆍ 기린 등의 온갖 물형을 나타낸 번(幡)과 깃발을 만들어 찬란하게 장엄하고 사대문으로 통 하는 길을 누른 흙을 펴고 좌우에 비단번과 깃대를 진열하여 그날에 모든 이웃나라 임금과 대신ㆍ바라문 등을 맞아 들이며 종을 울리고 북을 치며 광대들이 노래와 춤을 연출하면서 사해(四海)의 물을 보배 그릇에 담아서 모든 바라문들이 차례로 물그릇을 받들어 대신에게 드리면 대신들은 차례로 받아서 나중에 왕에게 올립니다. 왕은 그 물그릇을 받아 들고 태 자의 정수리에 붓고 칠보(七寶)의 인장(印章)을 태자에게 맡겨 주며 큰 북을 치면서 높은 소리로 싯달타가 태자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고한 것입니다.
제6화 문무 예술을 닦아 배우시다.
제6화 학문과 무술과 남김없이 통달한 싯달타태자
태자는 총명과 재질이 비상하여 일찍이 지혜가 뛰어난 스승을 초청하여 범서와 사베다경 전을 비롯하여 오명(五明) 등 경전과 문예를 배워 스승을 능가할 정도로 통달하였습니다.
오명(五明)이라고 함은 ㆍ예술ㆍ기술을 다 통달하였으며, 열 살 이후로는 무술(武術)을 배웠는데 활쏘기ㆍ말달리 기ㆍ칼쓰기며, 군사 쓰는 법 등 二十九종의 무술을 다 익혀 통달하였습니다.
대웅전 뒷편의 제3면 벽화모습
제7화 야소다라비(耶輸陀羅妃)를 맞이하다.
제7화 야소다라비(耶輸陀羅妃)를 맞이하다.
염부수(閻浮樹: 잠부 jambu나무) 아래의 명상(冥想) 이후 태자는 항상 무엇을 깊이 생각하 며 세속의 오욕향락을 달갑게 여기지 않으므로 정반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을 생각하며 태자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세속의 향락으로 유도하였습니다.
태자의 나이가 17세 되던 해, 정반왕은 태자의 혼인을 서둘렀는데 이웃나라 선각왕(善覺 王)의 딸인 야소다라(Yosodhara 耶輸陀羅)공주가 절색이며 지혜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청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총명함이 자자한 터라 이웃나라에서 서로 혼인하고 자 청하여 부득이 무술시합으로 결정하고자 무술대회를 열게 됩니다. 부왕의 명을 받고 태자가 무술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때 사촌인 데바닷타도 무술대회에 임하여, 최종 에 둘이 남았으나 데바닷타는 태자의 적수가 되지 못하여 승리는 태자에게 돌아갔고, 태자는 야소다라 공주를 태자비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8화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제8화 사대문에 나아가 민정을 살피다.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정반왕은 태자가 오랫동안 궁안에 갇혀 있기 갑갑증이 날 것이라 하여 사대문 밖에 나가 바람을 쏘이고 돌아오라 해서 나가게 됩니다. 그때 동문으로 나아가 머리에는 흰 서리를 이고 활등같이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는 노인을 보았고, 다시 남문으로 나아 가 살가죽은 말라붙고 뼈만 앙상한 것이 길가 더러운 땅에 쓰러져 ‘나를 좀 일으켜 달라’ 고 목 메인 소리로 외치는 병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서문에서는 한 시체를 상 여 위에 메고 가는 처자와 권속이 그 뒤를 따르며 가슴을 치며 목메어 울부짖는 처참한 광 경을 보았습니다. 태자는 이런 참혹한 생로병사의 실상을 목도하고 돌아와 더욱 사색에 잠겨 세상에 마음 둘 곳을 몰라했습니다.
다음날 북문으로 나아갔는데 그곳에서 어떤 사문(沙門)을 만났습니다. 그 사문이
"이 세상 모든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세계는 이룩되고 또 무너진다는 이치를 깨닫고 집을 떠나서 그 죽음에서 벗어나는 도를 닦는 것입니다."
태자는 이에 감탄하고 돌아와 깊이 명상에 잠기며 생로병사를 종식시키는 길은 출가에 있 음을 알고 하루바삐 궁궐을 벗어나고자 했으나 정반왕은 더욱 오욕락을 누리도록 온갖 수 단을 다해게 되었습니다.
제9화 고히 잠든 깊은 밤
제9화 고히 잠든 깊은 밤
태자의 출가할 뜻을 크게 걱정한 부왕은 제2비 구이(瞿夷)와 제3비 녹야(鹿野)를 더 맞이하 고 연못에서는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피고 겨울, 여름, 우기를 지낼 수 있도록 세 궁궐을 더 세워서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게 하는 등 온갖 배려를 다했습 니다. 그러나 태자는 아름다운 세 태자비의 지극한 애정과 수많은 미녀 궁녀들이 받드는 인간 최대의 부귀영화와 행락을 인생 배후에 숨은 검은 도적의 영상으로 보아 전혀 뜻을 두지 않고 생사를 해결하기 위한 명상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태자의 나이 29(혹은 19세)세가 되었고, 호시탐탐 출가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 는데 이때 야소다라비가 <라훌라>를 낳게 됩니다. 이에 정반왕을 비롯한 대신들은 경축 의 잔치가 벌어졌으나 태자는 우울했습니다. "라훌라!" 출가하는데 또 하나의 장애물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2월 8일 밤 야수다라부인과 구이부인인 등 모든 궁녀들이 고이 잠든 밤, 부왕과 마하파자 파티부인도 고이 잠들었고, 갓난 라훌라도 야수다라의 품에 안긴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 고 마지막으로 보고 태자는 출가의 마음을 굳힙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밤에는 별이 총총한 깊은 밤이라 야수다라부인 이 라훌라를 품고 자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모양이라니... ^^ 이것을 묘사한 다른 그림에는 모두 널부러져 자고 있는 모습입니다. ^^
제4면의 벽화모습
제10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제10화 한밤에 성을 넘는 태자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이 오직 구도 일념으로 뭉쳐 있음을 짐작하고 크게 걱정한 나머지 만 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장수와 군사들로 궁성 안팎을 철저히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렇지만 싯달타 태자는 생의 본래 면목을 밝혀서 생로병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인생의 참 다운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통감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위한 구도의 출가를 단행하기 에 이릅니다. 2월 8일 한밤중에 부왕의 간절한 애정과 아름다운 세 명의 태자비와 이별하 고 애마(愛馬) 칸타카를 타고 마부 차익(車匿: 찬다카chandaka) 한 사람만을 데리고 성을 뛰어 넘어 출가합니다.
제11화 머리털을 끊다. 금도낙발(金刀落髮)
제11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사문이 되다.
한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한 싯달타태자는 차익과 함께 히말라야산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머리에 쓴 보관의 귀중한 보물과 몸에 장식했던 패물을 찬타카에게 주며 부왕과 이모와 태 자비와 구이부인 등에게 갖다드리라 하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보배칼로 머리를 끊었습니 다. 그리고는 어떤 사냥꾼이 짐승을 속이기 위해 사문의 가사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바 꾸어 입고서 사문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찬타카는 목메어 울면서 돌아갔고 궁중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제12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제12화 설산의 6년 고행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태자는 당시의 수행자였던 <박가바>와 <알라라 칼라마> 그리고 <웃다카라마풋타> 등을 찾아가 수행하여 스승의 법을 통달했으나 수행의 목표가 천상에 태어나고 무소유처정(無 所有處定)을 증득(證得)하여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 목표이지 일체종지(一切種 智)를 성취하여 궁극적인 생사(生死)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미련없이 떠나 게 됩니다.
태자는 마가다국의 니련선하(尼連禪河) 동쪽 가야산(伽耶山) 깊은 곳 나무 아래에 자리하 여 고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태자는 그 당시 인도의 고행자들이 수행하는 가운데 가장 어 려운 고행만을 골라 수행했습니다. 몇 톨의 낟알과 한 모금의 물로 하루를 보내어 눈은 해골처럼 움푹 들어가고 뺨은 가죽만 남았습니다. 몸은 뼈만 앙상한 몰골로 변해갔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6년 세월이 흐르면서 몸과 마음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온갖 감정과 본능의 욕구와 충동을 다 항복받고 번뇌를 뿌리 뽑았습니다. 그리고 적정부동(寂靜不動)의 선정 (禪定)을 닦아서 다시는 어떤 경계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세간을 길이 뛰어나는 해탈의 성도(成道)와 온갖 것에 자세한 지혜는 아직 성취되지 못했 습니다. (계속)
벽화이야기가 길어져서 다음편으로 넘깁니다.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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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처님의 일대기를 벽화에 그려놓은 것이군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_()_
처음엔 벽화를 한 곳에 정리하려 했는데 쓰다보니 넘쳐서 둘로 나누려 했다가 이제는 셋으로 나누어 _()_
올리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벽화로 보는 부처님일대기 잘봤습니다. _()_
벽화를 보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훈적인 이야기 참 많은데... _()_
부처님의 일대기를 다시 공부 하고 갑니다....나무묘법연화경()()()
조계사 대웅전은 이렇게 부처님 일대기가 팔상도(八相圖)가 아니라 삽상도(卅上圖)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_()_
감사합니다.
준비하고 글올리느라 수고많으셨네요
감사합니다 _()_
예, 무척 시간이 많이 들었네요. 잘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백우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일대기 많은 분이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_()_
아, 이것이 연말이고 보니... 그러나 많은 분들이 향불교를 찾고는 있으나 여기까지는 발이 잘 미치지 않는 것 같네요. 많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모두 바쁘다고 간과하시는 것 같네요. 그래서 늘 깊은 사색에 잠기곤 합니다. _()_
백우님 스크랩해 갑니다. _()_
와 벽화를 이렇게 일요목연하게 소개하시다니 놀랍습니다. 그 정성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설명을 직접 들으신 분들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누가 이런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벽화 12화(畵)에 12(話)를 소개해 주신 백우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_()_
감사합니다~ 이렇게 재미나게 글 로 남겨구시니 감사합니다~
다녀가셨군요. 잘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의 글을 잘 보아 주시는 것도 카페생활의 육바라밀을 행하시는 겁니다. _()_
부처님의 탄생에서 설산수도에 이르는 상세한 글과 그림 잘봤습니다. _()_
제9화(畵)는 그림의 오류로 느껴집니다. 작가는 그림을 향락을 주제로 그린 듯한데 지금 시점으로 보아 밤에는이 총총한 밤에 태자가 출가를 결심하고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밤에 애수다라 처소를 찾아가 창문을 열고 라훌라를 안고 잠든 야수다라부인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악기를 연주하는 모양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경전에는 모두 널부러져 잠든 모습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향락의 뒷모습을 묘사한 것이지요. _()_
백우님 덕분에 다시한번 공부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_()_
잘 보셨나요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