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1~12일 날씨;맑음
에메랄드빛 하늘이 눈부신 가을날이다.
금요일 오전 잠깐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한 기운마저 도니,
그빛이 마치 차가운 보석처럼, 자못 도도함마저 느껴지는 가을날...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는날이다.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능선으로, 그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하여 공룡릉이라 불린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곳...
어떤이는 공룡을 가보지 않고는 설악을 말하지 말라할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소문난 아름다움만큼 감히 범하기 힘든, 아무나 쉽게 도전 할수 없는 등산로라 하니,
맘은 설레임 반, 또 그만큼의 두려움이 앞선다.
저녁 9;00 계양구청앞에 집결해 버스를 타고 출발,
12시경 휴게소 들러 간단히 요기, 2시가 좀 안된 시간 설악산국립공원에 도착.
소공원에 내리니 적당히 쌀쌀한 날씨에, 코끝에 닿는 설악산 가을 밤바람의 향기는 달콤하기까지 하다.
서둘러 비선대를 향해 출발...
비교적 완만한 구간에서 시간을 단축하려 바쁘게 걸어가며 올려다 본 하늘... 권금성 꼭대기엔 구월 열사흐레 달이 지고 있다.
와선대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뒤로하고, 비선대 아래서 마등령을 향해 오름하는데,
세존봉 안부까지는 경사가 가파른 돌계단의 연속이라 무척이나 애를 먹는다.
능선길로 들어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여우굴을 지나 철계단 오름길에 돌아본 밤풍경은,
북두칠성 아래로 속초시내 불빛들이 빛나고,
샘터에서 물보충도 하고 전망대 오르는길,,, 가을밤 하늘, 수없이 많은 별들이 손에 잡힐듯 보석처럼 영롱하다.
갖고 있는 지팡이로 툭 건드리면, 맑은 구슬소리를 내며 그대로 와르르 쏟아 질것만 같다.
05;30경 마등령에 도착해 일출을 보기좋은 널찍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해가 뜨려면 아직 1시간 가량 기다려야하니 아침식사를 먼저 하기로 한다.
땀으로 젖은 옷과 정상의 찬바람으로 많이 추웠지만, 라면을 준비해주신 고마운 분들 덕에
따뜻한 국물로 추위를 견뎌본다.
식사를 마칠즈음,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그곳도 부지런히 일출 준비를 하느라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그 짧은 시간동안, 순간순간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빛깔로 장관을 이뤄내는 동해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그리고 마침내 떠오르는 붉은 태양!!!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런 순간엔 소원이라도 빌어얄거 같은데, 텅빈 머리는 아무것도 떠오르질않고, 사진 찍는 기술도 없으니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에만 열심히 담아본다...
이제 드디어 공룡을 정복해야할 시간...
희운각까지 거리는 5.1km, 10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동안 중간에 탈출로도 없어, 일단 들어서면 끝까지 가야한다.
사자바위가 있는 봉우리부터 지나는데, 시작부터 소문대로 난코스다.
심한 너덜길 한참을 오르내리며, 겨우 나한봉에 도착했는데,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능선을 보노라니,,, 인생 여정길 그 자체다...
뒤로는 포효하는 두마리 사자가 좇고 있고, 앞에서는 날카론 부리를 치켜세운 독수리가 내게 달려들듯 날개를 웅크리고 있고,
발아래도 허공, 머리위도 허공, 날자니 날수도 없는, 오도가도 못할 진퇴양난의 길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저멀리 세존봉은 자신의 남성미를 뽐내며, 나의 속물스러움을 안다는 듯 비웃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용아장성과 서북능선의 위용은 내가 탐내선 안될 그 무엇처럼 나를 주눅들게 하고,
가야할 신선봉은 아득하게 멀기만하다... 휴우~~~
그렇다고 인생이 이렇게 고난길 뿐이라면, 어느 누가 살아낼수 있을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힘들게 오른 정상에선 뿌듯한 성취감과 발아래 아름다운 세상도 있고,
울긋불긋 어여쁜 단풍잎과 파란 하늘 올려다 볼땐 힘든 발걸음도 잠시 잊어지고,
또 눈을 들어 앞을 보면 설악의 최고봉인 대청봉이 말씀이 없으셨던 내 아버지처럼 굽어보며 지켜주고,
그렇게 독수리 모양의 큰새봉을 지나고,
산이름 짓는 신령이 그 장관에 취해 이름도 못짓고, 그 높이가 이름이 됐다는 1275봉도 지나고,
또 가장 힘들다는 공룡의 등뼈 7봉도 지나고,
신선대에 올라, 더 욕심을 내서 아찔한 신선봉까지 오름해 보니...
이 벅찬 감동을 오르지 않고야 어찌 알수 있을까? 내 짧은 소견으로 어찌 그 느낌을 표현할까?
내 몸의 고통을 감내하며 시름을 잊어보는 나만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볼뿐...
11;00 시경 무너미 고개에 도착해 천불동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소공원까지 8.3km! 지리한 내림길이다.
하지만 천불동 계곡의 단풍이야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니, 그 단풍의 화려함에 취하고,
하늘이 맑아선지 그 어느때보다 맑은 계곡물에 마음도 정화해 보며, 지루함도 잊고
그렇게 소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경, 19km가 넘는 긴 산행길을 13시간만에 마친다.
가을 바람에 맘이 쓸쓸해지는건 이별의 아픔을 아는 탓일까?
저토록 아름다운 단풍잎들, 마른잎 되어 흔적도 없이 부서지는 모습에,
언제나 그곳에 있을줄만 알았던 사람 다시 볼수 없게된 기억을 가슴 먼저 하는 까닭일까?
인생사 회자정리,,, 모든 만남엔 이별이 정해진 이치이거늘,
왜 가까이 있을땐 그걸 깨닫지 못하고
늘 이별이 찾아온 후에나 후회와 미련을 남기는 어리석음과,
해마다 오는 가을임에도
단풍이 채 물들기도 전부터, 이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소한 바람에도 가슴앓이 먼저하는 우매함의 반복을 되풀이 하는건지...
이렇게 만날수 있을때 만나보고 오면 될것을, 그렇게 만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면 될것을
무슨 핑계가 그리 많았던건지,,,
그러니 이가을, 이렇게 발이 부르트는 고통을 견디며 날 기다려준 널 만나 맘껏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왔으니,
늦은가을 쓸쓸한 이별에도 의연할수 있을까?
허긴, 아무리 깊은 사랑을 한들 이별이 아프지 않을수 있을까마는, 후회는 덜 할테지...
이렇게 온몸이 붉게 타는 열정으로 내마음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너의 사랑을, 결코 잊지는 못할테지...
2008년 10월 12일 공룡능선을 다녀와서... 코스모스
p.s; 멋진산 보여주려 늘 애쓰시는 벙개산행대장님! 그리고 지회장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또 함께 고생하며 산행하신 여러분! 만나서 반가웠고 행복한 산행이었습니다. 담에 또 뵈요~~~ ^*^
별이 내리는 강언덕 (하옥이 시, 김동환 곡, 소프라노 이현정)
첫댓글 그날의 감동이 밀려 옵니다.... 13시간 산행 하며 힘들었던 기억 이지만..... 뒤돌아 보니 너무 멋진 추억이..... 인생사 회자정리 라는 말에 한 참을 나를 되돌아 보게 하는구려..... 친구들 오늘도 행복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