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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 13구간 산행기
산행일자 : 2005년 4월 23 ~ 4월 24일
산행구간 : 큰재 -회룡재- 개터재 - 임도(윗왕실)- 백학산- 소정재- 개머리재 - 지기재 - 금은봉 - 쑥밭골재 - 신의터재
날씨 : 맑음
소요시간 : 10시간
도상거리 : 약22.5Km
산행인원 : 이경석,황재석,전순영,청암지기
청우제를 지내며 다음 대간 산행일자를 4월 22일로 확정했었다. 홈피에 올리고 광파리도 불렀지만 광파리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출발 일을 앞에 두고 김문식 대장이 이번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인어른께서 감기 치료를 하시다가 큰 병원으로 옮겨 진단한 결과 폐암 말기로 3개월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찰결과를 받아들고 온 가족이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또 대간 길에 양념이 되어 주었던 조원일회원과 이정자회원도 함께 하지 못한다기에 이경석대원과 전순영,황재석, 청암지기 이렇게 단촐하게 대간 팀이 꾸려졌다.
새벽3시 50분 큰재출발
밤하늘이 맑다. 밝게 빛나는 둥근 달 위에 별 하나가 오도카니 올라가 있다. 벛나무들이 달빛 아래서 가지 끝에 매달린 봉우리 마져도 모두 풀어헤치고 흐드러지게 웃고 있다.
인성분교 담장엔 어깨동무를 한 듯 개나리가 활짝 웃는 얼굴로 밤하늘 별들과 해후하는 모습들이 어찌나 이뿐지 발소리를 죽여가며 살금살금 돌아간다.
4시 59분 회룡재
도착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낮은 구간답게 힘들이지 않고 걷는다.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오솔길을 따라 구불구불 산책하듯 걸으며 회룡재에 도착했다. 큰재 출발하며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출을 이야기 하다가 2월 대간 산행 중 황악산 못 미쳐 형제봉에서 바라본 일출의 감동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오늘 일출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한 황재석 대원이 칼라 필름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뒤늦게 확인한다. 전순영 대원이 불편한 사진기 자기와 바꾸자고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디카와 바꾸면 메모리 칲2개와 밧데리 충전지는 그냥 줄테니까 바꾸자고 하니 황재석 대원이 펄쩍 뛴다. 덤으로 디카 케이스까지 주겠다며 약을 올린다. 오랜만에 만난 높낯이가 없는 나지막한 능선길 김문식대장 못 온 것이 못내 아쉽다.
5시 39분 개터재도착
제석산악회에서 붙여놓은 표식기를 디카에 담는다. 다른 대간 산행꾼 들이 20~30명 뒤에 오더니 금방 앞질러 간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맨 앞에 있던 이경석 대원이 정신 없이 따라간다. 덕분에 우리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그리 어려울 것이 없는 능선이지만 야트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기를 여러 차례 30여분 경쟁하듯이 따라 붙는 이경석 대원의 체력 조절이 걱정스러워 불러 세우려니 어떻게 알았는지 발걸음을 늦춘다. 욕심을 버리고 뒤 따라 오던 꾼 들을 앞질러 보내고 잠시 숨을 고르며 나뭇가지 사이로 밝아오는 아침을 맞는다. 일출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진작에 포기했다. 멀리 계곡 저수지에 햇살이 반사되어 능선으로 올라온다. 숲 속의 아침은 새들의 지저김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새들의 수다가 맑고 예뻐서 녹음기에 담아본다. 개터재에서 백학산으로 오르는 임도(윗왕실재)에 육교처럼 동물이동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8시 06분 백학산 도착 (615m)
조금은 숨이 차게 백학산에 도착했다. 백학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윗왕실마을이 보인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마치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어서 이런 지형을 포란지세( 包卵之勢)형으로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하지만 대간 마루금에 모셔져 있는 묘자리들이 돌보는 이 없어 산소를 터 삼아 자라난 커다란 나무들을 보거나 봉분이 벗겨지고 무너져 내린 무덤을 볼라치면 명당이 대수더냐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앞서 갔던 꾼 들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그 팀들은 벌써 아침을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단체사진을 찍으려 백학산 정상 표시석에 모여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그들을 보내고 느긋하게 앉아 아침을 먹는다. 준비해 간 묵은지에 홍어회 그리고 막걸리까지 그 맛이 일품이다. 어제 이번 대간 산행에서 먹으려고 가락시장에서 홍어1마리를 샀다. 갑자기 줄어든 팀원으로 인해 살까말까 망설였지만 청우제 때 한 말이 있어서 그냥 샀다. 며칠 있으면 창빈이도 휴가 나오고 해서 한 마리를 사서 한쪽 날개를 횟감으로 껍질을 벗기고 몸통과 반대쪽 날개는 소금물에 살짝 절였다가 꾸둑하게 말려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 껍질을 벗긴 홍어는 그냥 놓아 두었다가 배낭을 다 꾸리고 난 다음에 썰어서 그릇에 담고 있으려니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형이 강아지 찌린 내 나니 화장실 청소하라고 아이들을 불러 낸다. 나는 킥킥 웃으며 홍어회를 썰어 그릇에 담고 아이들은 화장실 청소를 했다.
10시 07분 소정재 도착
아침을 먹고 구불구불 능선길을 걸어 소정재에 도착했다. 왼쪽으로는 밭이 있고 우마차도 인 듯 길이 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상주 모서면 함박골에서 원소정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듯 하다. 고개를 내려오며 1시간 정도 자고 가자고 했지만 지금 1시간 자면 2시간 늦어지니 잠시 쉬어만 가자고 결정한다. 따뜻한 햇살에 잠시 쉴 겸 배낭을 벗고 앉으니 눈꺼풀이 붙어 버린다. 코고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5분 정도 잠들었다고 하는데 온 몸이 개운해 졌다. 저쪽에서는 밤 세워 운전 한 전순영 대원이 따뜻한 햇살에 취해서 아예 대자로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전순영 대원이 깨기를 기다리며 쑥을 뜯고 있으려니 트럭 한 대가 우리 쪽을 향해 올라오고 있어 핑계 낌에 잠들어 있던 전순영 대원을 깨워 지기재로 출발한다. 40분 정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11시 10분 개머리재 도착
주위가 온통 과수원이다. 배나무는 쇠막대기에 팔다리가 묶여 하얀 피를 토해낸다. 포도나무 몸뚱이도 오라에 줄줄이 엮여 옴짝 못하고 매달려 있다. 복사꽃은 안타까운 마음에 얼굴만 붉힌다. 그 아래에는 노랗고 하얀 냉이꽃들이 바람에 무심히 흔들거린다.
12시 02분 지기재 도착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지기재에 도착했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잘 닦여져 있었고 정신없이 차가 쌩쌩 달리고 있다. 오늘 산행을 시작한 큰재와 지기재, 신의터재, 화령재 모두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다. 1시 금은봉 통과한다. 지기재에서 신의터재까지 화려하지 않지만 깨끗하고 단아한 묘들을 여러기 만날 수 있다. 산행 중 처음으로 할미꽃을 보았다. 엎드려서 디카에 담아본다.
1시 50분 신의터재 도착
신의터재 또한 분수령이다. 상주시와 화동면을 연결하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계획했던 것 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화령재까지 가자고 하였으나 4시간 정도를 더 운행하는 것이 무리인 것 같아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큰재에 있는 차량으로 이동하려고 이경석 대원이 미리 준비해간 택시회사에 전화를 하였더니 삼천포에 있어서 못 온다고 한다. 주위에 오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밭에서 한 아주머니가 내려와 세워놓은 차에(티코?) 타고 있다. 급히 달려가 사정을 하니 아주머니께서 선선히 큰재까지 데려다 주신다기에 불편함도 마다하고 올라 탔다. 화서면에 살고 계신 아주머니인데 오늘 화령장에서 대추나무 2그루를 사다가 감자밭에 심고 집으로 가시는 길이란다. 화서면에서 아저씨와 함께 조그마한 전자제품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고 농사도 지으신다고 한다. 내친김에 우리가 묵을 민박집을 찾고 있다고 하니 친정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이 있는데 지금은 상주에 나가 계셔서 빈집으로 있으니 가서 보고 불편하지 않으면 묵고 가란다. 고마운 아주머니를 만난 것이 대간팀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큰재에서 차를 가지고 아주머니를 따라 우리가 묵을 집으로 가니 허름하기는 하지만 하루밤 자고 가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고 아주머니가 구워주신 삼겹살에 집에서 직접 담구었다는 포도주로 저녁을 푸지게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내일 산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아주머니께서 화령재까지는 금방이란다. 저수지 건너서 고개하나 넘으면 화령재에 도착하는데 무슨 4시간이 걸리냐고 화들짝 놀라신다. 우리들은 웃으며 말씀드린다. 우리가 가는 길은 조금 멀어요...
백두대간 제 14구간 산행기
산행일자 : 2005년 4월 23 ~ 4월 24일
산행구간 : 신의터재 - 무지개산갈림길- 437.7봉- 윤지미산 - 화령재 - 산불감시초소 - 봉황산- 비재
날씨 : 맑음
소요시간 : 8시간
도상거리 : 약 Km
4시 50분 신의터재 출발 먹는 만큼 간다는 전순영 대원의 지론에 따라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어제 아주머니께서 주신 포도즙과 냉장고에 넣어 얼린 물병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어제 말씀드리긴 했어도 아주머니께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가는 것이 미안하였다. 신의터재에 도착하여 뒤돌아보니 멀리 산등성이에 달이 지고 있다. 달이 저문다는 생각을 가져 본적이 없다가 이곳에서 달도 해처럼 저문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멀리 소쩍새가 외로움에 떨며 홀로 울고 있다. 소쩍새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며 코 끝이 찡하다.
백두대간 신의터재에서 화령재까지 11.3 Km 4시간 소요를 알리는 이정표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먼동이 트는 것을 보며 걷고 있으니 마치 새벽산책에 나선 것 같이 길이 편안하다. 나뭇가지 끝에서 기지개를 펴며 눈을 비비는 어린 잎새들의 푸르름과 분홍빛 진달래꽃은 시집가는 새색시의 고운 치마저고리를 생각나게 한다. 새들의 노래소리가 새벽공기를 가른다. 이경석 대원이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를 보며 "순영아! 피곤하지 않니?" 라고 말하니 뒤에 따라 오던 전순영 대원이 "아니요! 형 어제 잘 자서 피곤하지 않아요."라고 대꾸한다. 나와 황재석 대원은 이경석 대원이 전순영 대원에게 한 말이 아니고 어지럽게 조잘대는 새에게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바탕 웃음을 쏟고 지나간다.
7시 15분 무지개산 갈림길 도착
계속해서 앞으로 옆으로 방향을 비키며 누워 있던 일곱 봉우리가 무지개산 이라는 것을 어림잡아 본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골이 깊다. 기록에 의하면 무지개산 갈림길에서 437.7봉까지 55분 거리가 되고 437.7봉에서 윤지미산까지 25분 거리로 되어 있다. 멀리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안천이 따라 돌다 사라진다. 잠시 쉬면서 지도를 보며 현 위치를 확인해 본다. GPS를 꺼내서 고도를 확인해 보니 485m 가 나온다.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지도의 좌표와 GPS상 좌표가 일치하는데 고도에 차이가 난다. 윤지미산에서 고도를 다시한번 확인해 보기로 한다. 왼쪽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7시 50분 윤지미산 도착(538m)
무지개산 갈림길에서 35분만에 윤지미산에 도착했다. 우리팀 발에 모터를 달았는지 아니면 기록을 남긴 사람이 착오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예상했던 시간보다 45분을 단축하고 올라온 것이다. 주위의 돌들을 모아놓고 그 중에서 제일 큰돌에 윤지미산이라고 검은 글씨를 써 놓았다. 한쪽으로는 나뭇가지에 비닐 코팅을 한 표지판도 매달아 놓은 것으로 보아 모두 대간돌이들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윤지미산을 오르며 전순영 대원의 입담이 우리를 웃겨주어 이곳에 옮겨 본다. 우리들도 모두 알고 있는 연상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유명한 연예인 김지미와 나훈아가 파경에 이르게된 이야기란다. 어느날 나훈아가 김지미 발을 씻어 주며 "이 발이 누구 발 ?"하고 물어보니 김지미가 대답하기를 "훈아 발"이라고 대답했단다. 김지미도 가만 있자니 미안해서 자기도 나훈아 발을 씻어주며 물어 보았단다. "누구 발?" 나훈아 아무리 자기 마누라라고 하지만 엄연한 나이차이도 있고 해서 얼른 "지미씨발!!!!"이라고 대답한 것이 발단이 되어 이혼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깔깔...
9시 화령재 도착
윤지미산에서 화령재로 내려오는 길은 힘들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보니 좌측에 있는 바위가 특이하다. 진안 마이산의 바위처럼 바위 중간 중간에 작은 돌들이 박혀져 있다. 전순영 대원이 그 바위를 보면서 수십만년전 인간이 사용한 콘크리트란다. 그 옆에 흐르는 물은 그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있는 수도관이 터져서 흘러내리는 것이라며 지루한 발걸음에 웃음을 준다. 화령재를 가까이 두고 청원과 상주간 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산 하나가 잘리어 나갔다. 무수히 많은 나무를 절단 내고 지금은 산을 절단 내려고 포크레인 공사가 한창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또 하나 사라진다. 화령재 또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다. 그리고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으로 갈리는 25번 국도와 49번 국도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화령재 고갯마루에는 정자와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정자 천정에는 화령정 건립 안내 현판이 걸려있었다. 아침도 먹을 겸 화령정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9시 50분 화령정을 뒤로한다.
10시 50분 산불감시초소 도착
대간길로 들어서기 위해 화령재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데 건너편 밭에서 농사가 한창이다. 커다란 트렉터로 땅을 갈아엎으면 그 옆에서 이랑을 만드는 기계로 둥글게 이랑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옛날에는 호미로 흙을 파서 밭이랑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기계를 움직여 이랑을 만든다. 화령재 도로를 따라 보은 방향으로 300m정도를 내려오다가 대간길로 들어선다.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 잡목이 우거져 있다. 소나무 잡목사이로 간간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한 분이 초소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신다.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갈 봉황산 방향과 시간을 어림잡아주시고 형제봉을 지나 속리산으로 가는 대간 능선길을 가르쳐 주신다. 산불 감시 초소에 마주서 있는 봉우리에 극락정사란 절이 있다. 그 산이 대궐터라고 알려주시며 두리봉이라고 하신다. 할아버지에 대해 여쭈어 보니 그 할아버지는 산불감시원으로 산아래 마을에 살고 계시며 11월부터 다음해 4월말까지 아침 10시에 초소로 출근하여 저녁 6시에 하산하시며 일당을 받고 계시단다. 감시초소 안에서 무전기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온다. 인사를 드리고 봉황산을 향한다.
11시 35분 봉황산 도착(740.8m)
GPS를 꺼내 높이를 확인하니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 술취한 듯 747m ,746m등 자기 마음대로다. 무지개산 갈림길에서부터 우리를 헷갈리게 하더니 봉우리마다 헷갈리게 한다. 참다못한 우리들이 소리친다. "아!!! 물끓여."
봉황이 날개를 접고 내려앉은 보습으로 왼쪽날개는 상현리를 오른쪽날개는 상룡리를 품고 몸통은 봉황산이라고 하나 풍수지리에 어두운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봉황산에서 내려오는 대간 길가에는 노랑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비재로 내려오는 능선길이 잘게 부스러진 바위돌로 자갈처럼 깔려 있지만 틈새를 비집고 얼굴을 내민 노랑제비꽃이 더없이 예쁘다. 비재를 향해 가파르게 능선 길을 오르내린다.
오후 1시 비재 도착
비재 포장도로로 내려서니 형제봉으로 향하는 철계단이 가파르게 걸처져 있다. 갈령까지 운행하려 하였으나 탈출로가 마땅하지 않다는 말에 포기하고 오늘 산행을 여기서 접는다. 어제 만난 아주머니께 전화 해 위치를 알려드리고 도로를 따라 내려온다. 아주머니를 만나 신의터재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머니께서 우리가 걸어간 능선길을 손으로 가르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