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나 시인, 시집 『은신처에서 내려오는 봄』 발간
◉출판사 서평
정안나 시인의 시집 『은신처에서 내려오는 봄』(작가마을)이 계간 《사이펀》이 기획하는 ‘사이펀현대시인선’ 18번으로 출간됐다. 정안나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간 그녀가 보여준 모더니즘 시편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나 정안나 시인만의 특유의 감성적 어법을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은 그녀의 문장들이 일반적인 어법들과는 배치되는 듯해 보이지만, 그것이 정안나 시인만의 개성적인 이미지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정안나 시인은 독특한 자기 세계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시인이 자기 색채를 가지지 못하면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안나 시인이 이번 시집 『은신처에서 내려오는 봄』은 시인 정안나를 확고히 다지는 시집이 되리라 여겨진다. 또한 정안나 시인은 모더니즘시를 창작하지만 우리의 주요한 현실을 잊지 않는다. 대다수 모더니즘 시인들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이야기를 시로 쓰는 것과는 달리 시인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현상들을 마주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창작해나가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주목할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좋은시는 시대성을 잘 담았을 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대상을 바라보는 진지한 방식, 정안나 시인만의 독특한 이미지의 표현들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타자적 교감’을 통해 우리는 색다른 시를 만나는 즐거움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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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나의 기억에 정안나 시인은 문학의 자율성이라는 테제에 결코 숨어 있지 않는 시인이다. 언제나 문학이 정치적인 것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이를 문학 담론의 바깥으로 이끌곤 하였다. 시민적 요구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서 정안나 시인을 보았다. 나는 그이의 시가 모더니즘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많은 평자들이 정안나의 시를 모더니즘으로 계열화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해석에 반대한다. 정안나 시인은 규정할 수 없는 사람이자 규정된 것을 해방시키는 자기 해방으로 시를 쓴다. 나는 시를 쓰든 사회 활동을 하든 뭐라도 하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좋아한다. 욕구불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의 시 쓰기가 아닌 다양한 활동들로 인해 쓸 수밖에 없는, 아니 시로 흘러들어가는 스미는 그이의 시작업을 좋아한다. 그리고 시에 나타난 무수한 타자들이 차이를 보이는 제 각각의 삶을 존중하며 그러한 삶이 무한한 하늘과 땅에서 성좌를 만들고 비추는 모습이 아름답다.
-김남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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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약력
시인 정안나는 부산출생으로 2007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A형 기침』『붉은 버릇』.『명랑을 오래 사귄 오늘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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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의 시
장희빈의 시
장희빈은 인형에 자신을 토하느라 박쥐 같았다 밤의 바늘로 찌르고 뜯고 묻다 아침은 너덜너덜 품에 안기기까지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는지 몰랐을까
장희빈은 사약으로 쫓아내는 인형
장희빈은 시에 자신을 토하느라 밤의 비늘로 찌르고 뜯었다 부정과 긍정의 수다를 내쫓아 갈망하는 박쥐가 될 때까지 착시를 설득하느라 두세 겹의 옷을 걸쳤다 사냥꾼이 사냥감이 되도록 갔을까
장희빈의 시인은 쫓아내야 한다는 플라톤
플라톤의 믿음을 찌르고 있다 믿음의 가장자리를 잡고 자신인지 시인지 찌르고 있다 잠들면서 끝난 바느질을 뜯고 있다 장희빈은
장희빈보다 오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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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목소리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신의 목소리다 아이 이름을 부르는 신의 목소리다 가족사진을 쓰는 아이가 맞아
재물이 궁하지 아이가 궁하진 않다는 신의 서사를 따라가는 오체투지에서
밤새 입시 기도하고 신의 자리를 보았을 때 신의 자리에만 비가 오지 않았다 기분 좋은 천국의 짠맛이었다
신은 칭찬을 잘해 칭찬 쪽으로 기어가면 아이는 데려올 수 있을까 아이는 될 수 있을까 절반은 몸 섞은 소금 기둥으로
서사를 흔드느라 주연과 조연을 한 방향으로 몰고 깃발을 흔드는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의 추임새에서
신이 천국을 만드는 날 돌연변이의 그 목소리에서 내 목소리를 다 썼다 화장실에 소금 기둥의 신을 내 던졌다
누가 저 목소리에 방울을 달지
어떤 목소리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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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다르다
치킨은 오지 않았다
치킨만 옳은 게 아닌 거라
반건조 오징어 땅콩과 잔기침으로 따라잡아도
눈으로 가슴으로 뜯으며 상상하는 맛집은 뭐가 다르다
협의한 완전한 것으로 모이고 싶다
승리를 기다리느라 벽을 향해 골을 흔드는 아나운서
선수보다 시청자보다 먼저 골인하고 침 튀기는
악마의 격정에서 채널을 돌리는 후반전
땀과 응원의 악마와 함께 치킨이 왔다
엘리베이터 열리면 치킨을 엘리베이터 밖으로 날려버리지
두 배의 일당으로 몇 시냐고 침 튀겨야지
못 버티고 보태면 아나운서와 뭐가 달라
모두 붉은 악마를 입은 모범생이야
침 튀기는 아운서들
역시 치킨이다 축구가 넘쳐나 맛은 지워졌어도
역시 악마의 침 튀김에서
식어도 식지 않은 소리 내는 사방에서
주지도 빼앗지도 않는
치킨이 월드컵이 되는 3시간
버티는 얼굴을 읽기 좋은 3시간
뭐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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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목차
시인의 말
차례
제1부
장희빈의 시
경찰서가 있는 풍경
가족은 있었던 일
곁
이복형제
작은 것은 사라지고 큰 것은 작아지는 곳
부산이라는 가마뫼에는
사람 친구의 기분
신의 목소리
전체가 보이는 연기
늙지 않는 죽지 않는 메뉴얼
우물의 닭
봄의 옥상에서
딴생각의 공터
플래카드
제2부
초이기주의자들
그러니까 그럴만해
속셈의 시간으로
콩쥐는 팥쥐엄마
토끼네
단골동화
재첩국의 아침
등을 정리하다
허름한 사랑
뭐가 다르다
붉고 푸른 새벽으로
손발이 없는 유감
피노키오의 마술
푸른 놀이터
우수에서 오수까지
제3부
벌이 벌벌 떨던 날
퍼즐가방
일천구백칠십구년 시월 십육일
사기와 궁기
수작
이것은 하나같이 썩은 거짓말이다
박수
코알라 이벤트
내 안의 외동
은자 누야
무명씨는 살아남아라
오늘도 소년은
만남의 광장
진동
그냥 좋습니다
제4부
가족의 탄생
꽃다발의 진보
꿈 중이니 말 시키지 마시오
갑가 을
날마다 처용대공원
다시 피는 꽃으로
낭만적인 거절
주인놈과 주인 놈
그날 이후
한 세트
도시를 깨우는 닭
판도라 상자
다시힘을내봄
피사의 사탑으로
복습의 시간
해설/클리세 비틀기, 관성의 힘에 대항하는 아찔함-김남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