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essay
거품
송 숙
맥주잔 넘칠 듯 말 듯 하얀 거품이 이쁘다. 거품 없는 맥주는 맥주 같지가 않다. 해가 바뀔 때마다 거품 들어간 다짐이 금세 또 다른 거품이 되는 것처럼, 맥주 거품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삼켜 버린다.
내 삶은 진솔했다. 그래서 오해도 있었고 친구랑 삐그덕 거리기도 했다. 진솔하다고 소주처럼 맑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외로웠다. 그리고 느렸다. 어느 하루가 담뱃재 같이 우중충 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이런 날에는 소주를 마시거나 생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동네 어귀 감자튀김과 케찹 종지를 두고 앉는다.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 졸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남은 인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살면서 삼켜야 하는 거품은 얼마나 많을까. 모닝커피를 내리며 작은 기다림에도 조바심이 생긴다. 이럴 땐 실종된 나를 본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보다 시간의 원금에 여백이 있어야 한다.
욕망 대신 의미를 채우며 이젠 서있기 보다는 엎드려 있는 것이 속이 편하다. 누룽지같이 구수한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계획 없는 구수한 삶은 자연적인 계절 같은 것이다. 주변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 아니라 질 것을 염려하며 오늘만 이쁘게 피어 있으면 오늘은 아름답다. 사랑과 선행이라는 꽃이 아름다운 거품으로 세상에 달려 있기를 그래서 눈부시기를, 꽃은 침묵하며 우리에게 나무의 거품을 피워 올린다.
나는 늘 없는 것만 생각했다. 이미 가진 것을 생각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마음 졸이며 살았다. 어쩌면 걷어 내어야 할 거품이 가진 것보다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바퀴를 자꾸 돌리며 채무자로 살았다. 내가 돌아오는 게 더 나았다. 거품이 꼭 나쁜 건만은 아니다. 다시는 이제는 외로워지지 말아야 한다.
얼굴에 팔자 주름이 생겼다. 팔뚝에 검버섯이라는 점이 몇 개 보인다. 인터넷 쇼핑으로 검색을 한다. ‘검버섯 없애는 크림’. 구매하기를 눌렀다. 이게 인생인 거지. 불편한 쇼핑, 불편하지않는 욕심, 거품 있는 희망. 깨닫지 못하는 이 프로. 이리 청춘을 그리워하며 산다.
두 아이가 각자의 삶을 챙겨 가정을 이루고 그동안 빌려 썼던 나의 품속과 이별했다. 감정적 독립이기에 따듯한 기억만 간직하고 진짜 이별이라 생각해야 한다. 미련을 둘수록 관심이 거품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을 테니 남은 내 인생만 생각하기로 한다.
건강이 조금씩 희미하게 늙어간다. 약간만, 아주 약간만 슬퍼하자. 신의 눈동자 안에 거품 걷고 있어 보자. 나에게 거는 기대는 이번 생애는 틀렸다. 거품 삭은 맥주 말고 거품 없는 차라리 소주가 되기로 한다.
짜릿하게 타는 소주처럼 생의 줄을 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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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숙 2009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으로 『서울 남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