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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파스타와 와인이 있는 작은 다락방 같은 곳이다.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있는 통에 부서진 성곽들이 병풍처럼 오월을 싸고 있다. 아늑하다. 그 성벽들이 수호신처럼 떠받드는 오월은 알람브라 궁전처럼 빛난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같다.
화장기 없고 조금은 어눌한 말솜씨에 정감 더해
- '오월 파스타'는 직접 개발하신 건가요?
= 네.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었지요. 파스타 면 제품 회사 '드 세코(DE Cecco)'에서 만든 카펠리니면으로 만들었습니다. 카펠리니면은 우리 국수 요리에 쓰는 면보다 더 얇아요. 2분 정도 삶아요. 알덴테(파스타 면의 심을 살려 조금은 딱딱한 상태로 면을 삶는 것)보다 조금 더 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을 생각했어요.
'오월 파스타'는 차가운 파스타다. 잘 삶은 면 위에 김씨가 얹은 것은 루꼴라 샐러드다. 그릇도 여느 파스타와 달리 우리네 어머니가 시집 올 때 가져오는 오목한 유리그릇이다. 한때는 유행도 했을 법하지만 지금은 조금 촌스럽게 여겨져 미소가 머금어진다.
김씨가 '오월 파스타'에 들어가는 루꼴라 잎을 준다. 전혀 맵지 않고 향긋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린잎이다. 루꼴라 잎은 어린잎일수록, 잘 큰 것일수록 맵지 않다.
"면 위에 토마토, 루꼴라 잎사귀, 모짜렐라 치즈, 호두, 라디치오 치즈 등이 올라갑니다. 그 위에 뿌려지는 소스는 올리브 엑스트라 버진과 고추기름, 마늘, 앤쵸비 등을 버무린 겁니다."
짠내가 날 듯한 순간에 토마토의 싱그러움이 강물을 박차고 올라오는 연어처럼 튀어 오른다. 아삭아삭 야채 잎을 씹을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호두가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전쟁 때 헤어진 가족을 만난 듯 반갑다. 토핑의 우거진 '정글'을 포크로 헤집고 들어가면 한 번도 볕을 쬐지 않은 속살 같은 면이 쭉쭉 들려 올라온다. 잔치 국수의 면보다 얇아 씹는 내내 독특함이 느껴진다.
차림표에는 '오월 파스타' 아래로 '오븐 스파게티' '새우 브로컬니크림' '까르보나라' 등 다양한 파스타와 '카프레제 샐러드' 등이 있다. 몇 가지 향긋한 커피도 있고 맥주와 샹그릴라(와인 칵테일)와 '제이콥 그릭' '뱅 오쇼' '빌라 엠' 등 와인들도 있다.
미어 터지던 광화문 ‘이탈리아 키친’을 접은 이유
이 차림표가 김씨 집에 등장 할 수 있는 이유는 김씨의 이력 때문이다. 작년까지 2년간 그는 광화문 '이탈리아 키친'을 직접 운영했었던 쉐프였고 그 이전에는 청담동 이탈리아 레스토랑 '라볼파이야'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요.
= 워낙 요리를 좋아했어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제과제빵학원을 다닌 뒤 '올리버 베이커리'에서 일했어요.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운 것은 '르 꼬르동 블루'에서였어요.
그는 몇 개월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 당시 디저트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는데, 문득 메인 요리를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프랑스로 향했다고 한다.
"양식의 기초를 배우고 싶었다"는 그는 막상 그곳에서 배운 프랑스 요리들이 우리네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2003년 귀국을 해서 양식 레스토랑 세계를 살짝 들여다보니 유행이 프랑스 요리에서 이탈리아 요리로 바뀌어 있더란다. 김씨는 그래서 "부랴부랴 이탈리아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요리를 배웠다." 실상 프랑스 요리를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요리가 기초다. 과거 유럽을 점령했던 로마인들은 요리의 기교와 와인을 전파했었다.
예쁜 '오월'이 홀딱 벗은 듯 텅 빈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태가 눈에 쏙 들어왔다. 자연을 사랑하고 기계문명을 비판한 '천공의 성 라퓨타' 같은 당당한 모습에 반했다.
"광화문 시절에는 쏟아져 들어오는 손님 때문에 정신도 없었습니다. 조용하면서 바람소리 듣고, 구름 모양 볼 수 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기쁩니다"고 그는 말한다.
(02)391-4418 (오월파스타 1만2천원, 기타 파스타 9천~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