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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입실역(入室驛) 철도문화재 지정 추진해야
입실역(入室驛)은 일제시대(日帝時代) 인 1920년 경주와 울산 간에 부설된 협궤선 경동선(慶東線) 시대를 거쳐 부산(부전)과 포항을 잇는 총 길이 147.8 ㎞의 동해남부선(東海南部線) 32개 역중 하나로써 한때 학생들과 울산(蔚山) 경주(慶州) 등지의 번개시장에 농산물(農産物)을 수송하던 완행열차의 정거장이자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곳이다.
1920년 3월10일 경동선 당시 최초로 역사(驛舍)를 신축하고, 이듬해인 1921년 10월 25일부터 보통역(普通驛)으로 영업을 개시해 오다가 1936년 12월 1일에는 지금의 역사를 신축하였고, 1967년 10월 15일에는 구내를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교통(道路交通)의 발달과 자가용 승용차의 증가로 하루 이용객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어 버린 간이역(簡易驛)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전원 카페와도 같은 입실역 전경
1920년 경주-울산간 경동선(慶東線) 부설 공사 때는 입실역(入室驛)의 북쪽 200여m 지점에서 초기철기시대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물(경주 입실리 청동기 일괄유물)이 일괄 수습되기도 했다.
그동안 입실역(入室驛)은 몇 번의 개보수가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1930년 전후로 만들어진 표준형 농촌지역 간이역사(簡易驛舍)의 건축양식(建築樣式)을 잘 반영한 역으로써 건축사적, 철도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부속시설로는 화장실과 수하물 창고동이 있다.
입실역 역전
여기에서 잠시 동해남부선이 탄생된 배경을 소개한다. 현재의 동해남부선(東海南部線) 철도는 1910년대에 개통된 '경편철도'(輕便鐵道 : 협궤철도)로서의 '경동선'에서 연유한다. 당시의 '경동선'은 대구(大邱)에서 경주(慶州)를 거쳐 울산(蔚山)을 왕래하는 철도였었다.
당시의 '경동선'은 경편철도, 즉 협궤철도(挾軌鐵道)로 나중의 표준궤도 또는 광궤(廣軌)라 불리던 폭 1.435미터의 선로보다는 훨씬 좁았다. 따라서 이 선로를 달리던 열차 역시 소형 협궤열차(挾軌列車)였다.
당시 울산과 경주역을 운행하던 협궤열차
‘경동선(慶東線)’은 처음 1912년 7월에 부산진(釜山津)과 동래(東萊) 간의 사설철도(私設鐵道)를 운영 중이던 조선가스전기주식회사가 동래에서 울산, 경주, 대구, 포항을 잇는 철도부설 허가신청에서 시작되었으나, 당시의 경제불황(經濟不況)에 따른 자금부족으로 1915년에 그 허가는 실효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16년 2월 1일에 조선중앙철도주식회사가 경부선(京釜線) 대구역(大邱驛)을 기점으로 동해안 학산역까지 연장하는 65.1km를 비롯하여 서악에서 불국사, 울산, 동래까지 그리고 울산에서 장생포간을 연결하는 총 연장 131.8km에 걸친 궤도 폭 2자6치인 증기기관차용 철도부설을 신청하여 2월 15일에 허가를 받았다.
이 노선은 1917년 2월에 대구(大邱)에서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1월에 대구와 ‘하양’간, 다음해인 1918년 11월에는 하양-포항 간이 개통되었다. 이를 동해중부선(東海中部線)이라 했다.
이 노선의 개통 배경에 대해 ‘조선교통사(朝鮮交通史)’는 “이 철도는 경상북도 남부의 웅도 대구(大邱)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하여 연선의 농업, 기타 산업의 개발에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동해안의 울산(蔚山), 포항(浦項)의 항만을 연결하여 해산물의 내륙수송 및 내륙물산의 일본, 조선 내 각 항(港)으로의 이출입에 활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 경주(慶州), 불국사(佛國寺)에 있는 신라 2천년의 고대유적을 세상에 알리는데 큰 편리를 제공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결국 이 노선(路線) 개설의 목적은 경주관광(慶州觀光)과 내외 물자수송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노선공사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즉, 국유철도(國有鐵道)가 아닌 사설철도(私設鐵道)이다 보니 언제나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순조롭지 못했다.
당시 동아일보(東亞日報)의 다음 보도는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1920년 5월 17일자 동아일보는 ‘울산철도공사 기공확정’이라는 제목으로 “카시이(香椎) 부산상업회의소 회두(會頭)가 대구(大邱)를 방문해서 조선중앙철도회사의 타케(武), 사토(佐藤) 양 전무와 스즈키(鈴木) 지배인과 회견하고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격의 없이 협의한 결과 현지 측량까지 필하야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 확립되었는데, 작금 경제가 어려워 자본에 여유가 없어서 공사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노선의 필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그냥 간과하지 않고 부산(釜山) 및 조선가스에 대해 정식으로 교섭을 개시 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1921년 10월 25일에 조선중앙철도 울산-불국사(佛國寺) 구간이 개통되었다. 동아일보(東亞日報)는 개통일자를 한 달 앞두고 ‘중철 울산선개통기’라는 제하에 “조선중앙철도의 불국사 울산간(18리 6분)신설 선로는 불원간 준공되겟슴으로 내 10월 25일부터 운수영업을 개시할 예정으로 목하 전혀 차의 준비 중이라더라”라고 보도하고 있다(1921. 9. 24).
이어서 개통일인 10월 25일자 동 신문에서는 ‘중앙철도 개업-불국사 울산간’이라는 제목으로 “예히 공사 중이던 조선중앙철도선로 불국사 울산간 18리 6분, 조치원 청주간 14리 1분은 각기 준공되어 전자는 내 25일부터 후자는 11월1일부터 영업을 개시한다는데 경관국에서는 개통의 당일 각 신역에 대하야 연대수송을 행한다하며 대구로부터 울산에 지하는 각역의 이정운임은 좌와 여하다더라”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불국사, 일실(一室), 모화(毛火), 노계(老溪), 울산(蔚山)이라는 역명이 보이고, 이 가운데 대구(大邱)에서 울산(蔚山)간의 철도운임은 거리 68.7리에 1등석이 4원83전, 2등석은 3원95전으로 되어 있다. ‘일실’과 ‘노계’는 ‘입실(入室)’과 ‘호계(虎溪)’의 오자(誤字)로 보인다.
90여년의 역사를 가진 입실역(入室驛) 주위에는 지금도 미약하나마 지난 1920년대의 경동선 협궤선로의 흔적이 남아 있어 철도기행(鐵道紀行)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입실역(入室驛)에는 또 약 100여m 남쪽 동해남부선 철로 변에 역무원(驛務員) 관사(官舍)로 만들어진 일본식 연립 목조주택 2동이 있다. 이 관사는 1990년 초까지도 역무원이 거주했으며, 최근까지는 민간인이 거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건물은 건축초기의 외형(外形)을 충실히 간직하고 있으며 창고와 우물 등의 부속시설(附屬施設)까지도 잘 보존되어오고 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일제시대(日帝時代) 목조 연립주택으로 추정된다.
플랫폼에서 바라본 입실역 풍경
토지(土地)는 개인소유 토지로 알고 있으며, 주변은 보일러 시설을 갖추기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構造物)을 만드는 등의 약간의 변형(變形)이 있고, 현재는 거주자가 없는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다.
때문에 시설물(施設物)이 파손되고 쓰레기가 방치되고 있으며, 목조라는 특징으로 부식(腐蝕)이 여러 곳에서 발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오랜 역사와 아담한 모습을 갖춘 이 역사(驛舍)도 오는 2009년이면 새로이 건설되는 전철노선(電鐵路線) 쪽으로 옮겨지게 되어 있다. 한국철도공사(韓國鐵道公社)와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이 오는 2009년부터 2012년 까지 총 2조 500여억원을 투입하여 동해남부선 울산-포항간 단선 73.2 ㎞를 이설하는 복선전철화(複線電鐵化) 계획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기존 동해남부선(東海南部線)의 모화(毛火), 죽동(竹洞), 불국사, 동방, 나원, 경주, 사방, 양동, 청령, 부조 등 10개 역은 폐지되고, 입실(入室)과 부조, 나원, 안강역은 이전되도록 되어 있다.
1920년 개통된 이래 당시의 건축양식(建築樣式)을 잘 갖추고 있는 경주역(慶州驛) 증기기관차 급수탑, 불국사역, 입실역(入室驛)과 철도관련 건축물 등이 모두 사라질 것은 자명하다.
복선전철사업의 연계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인 경주 역사지구(歷史地區)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지를 관통하고 있는 현재의 철로 이설(移設)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선로이설(線路移設)이 불가피하다 해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해 온 입실역(入室驛) 역사(驛舍)와 역무원 관사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동시에 강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업주체인 한국철도공사(韓國鐵道公社)와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대한 철저한 사전 문화재(文化財) 및 현상 조사를 요청해야 함은 물론, 그 보존(保存)을 강력하게 권고해야 할 것이다.
가칭 『동해남부선 철도역사관』등의 공익(公益)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국철도공사(韓國鐵道公社)의 동참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역무원 관사 전경(2동 중 좌측동과 창고)
마침 문화재청(文化財廳)은 등록문화재 제도를 통하여 사라져가는 철도시설 상당수를 근대문화유산(近代文化遺産)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경남의 진해역, 원주 반곡역, 남창역, 군산 임피역, 익산 춘포역, 순천 원창역, 구 곡성역, 서울 신촌역 등과 다수의 증기기관차 급수탑(給水塔)이 철도사적(鐵道史的), 건축사적(建築史的) 가치를 인정받아 소유 당사자(대부분 한국철도공사)와의 합의가 이루어져 근대문화유산(近代文化遺産)으로 등록되었다.
입실역(入室驛) 역사(驛舍)와 역무원 관사는 반드시 문화재로 보존되어야 한다. 이상의 주장은 입실리(入室里) 출신 어느 향우가 최근에 관련 단체에 제기한 것으로 필자의 생각을 가미한 것이다.
하루에 무궁화열차가 여덟 번 정차하고, 하루 평균 58명이 승차하고, 48명이 하차하는 초라한 기능에 급급하고 있는 입실역의 역사(驛舍)가 2년 후면 앞서의 다른 역사(驛舍)들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종적을 갖출 운명에 처해 있다.
측백나무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 불국사역(佛國寺驛)까지 도둑차를 타던 외동중학교(外東中學校) 시절의 아리디 아린 필자들의 추억도 함께 싸들고 말이다.
지난 90여년간 수많은 외동인(外東人)들의 애환과 추억을 담아 온 또 하나의 고향으로서의 정취(情趣)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철도공사와 경주시(慶州市) 당국의 특별한 배려를 기대하여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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