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호남정맥 16차 유둔재~어림마을(담양군 남면 ~ 화순군 이서면, 동면) 산 행 일 : 2009. 09. 12.(토) 산행코스 : 유둔재 ~ 백남정재 ~ 북산 ~ 꼬막재 ~ 장불개 ~ 안양산 ~ 둔병재 ~ 어림마을 (도상거리 16.5km + 2.5km(입석대, 서석대 둘러보기), 10시간 30분) 산행참가 : 21명. <산행지도>
그동안 한국의 여러 산들을 많이 둘러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매스컴에서 광주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광주의 진산 무등산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 가기 어려운 무등산의 이모저모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산행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토요일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우장을 챙기며 다소간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바뀌었지만, 가을비는 조금밖에 오지 않으니 새벽에 조금 내리고 금방 맑아져서 무등산을 지날 때쯤에는 비 온 뒤의 청명함을 고대하며 버스에 올라 양재를 출발했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려 창평 IC를 빠져나올 무렵 잠시 눈을 떠 보았는데, 길은 젖어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잘하면 무등산을 볼 수도 있을듯하다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서 버스 기사님이 깨우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떠 보니, 지난번에 버스에 승차했던 가암리 자창마을 앞에 도착해 있다. 유둔재는 고갯마루에 있고 그곳까지 10여분 걸어 올라야 하는데, 산행 들머리인 유둔재는 이미 지나쳐 와 버린 상태이고 버스를 돌리기도 예삿일이 아닌 듯하여, 워밍업 겸 걸어서 올라가기로 하고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유둔재 남쪽 가암리 자창마을 앞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나서니 비바람이 날리고 있다. 일단은 우의를 입고 출발!
04:12 유둔재로 올라서 무등산 방향 들머리로 들어선다. 빗방울이 세차지는 않지만 조금씩 내리고 있고, 등로는 잡목들로 덮여 있어서 산행이 쉽지 않게 진행된다.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한두 개 넘는 사이에 갈림길에서 짧은 알바도 한두 차례는 기본인 듯하고, 송전탑 공터에서 잠시 쉼을 하며 여유를 찾는다. 몇 차례 임도를 지나게 되는데, 임도가 잡목으로 뒤엉켜 있어서 오히려 진행이 더디다.
백남정재를 지나는데, 도상거리 3.5km 정도를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칠흑 같은 어둠과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잡목들로 인해 진행이 여간 힘들지 않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이 정도밖에 못 오다니...ㅉㅉ
오늘 산행에서 가장 급경사인 북산 오름길을 오르는데, 잡목이 없어서 차라리 평지길보다 속도가 빠르다.
북산 헬기장 직전 능선 분기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어지는데, 만약 쉼을 하지 않았다면 그냥 직진해서 알바를 하였을 듯 한 곳이다.
북산 헬기장은 억새로 덮여 있어서, 구름에 가려진 북산 정상을 향해 그냥 지나친다. 그래도 모처럼 시야가 트인 개활지로 나와서 그런지 다들 표정이 밝아진다.
돌아본 북산 정상 직전 헬기장 모습.
북산(782m) 정상 도착.
구름이 없었으면 무등산이 한눈에 조망되었을 텐데, 보이는 게 없으니 그냥 신선대를 향해 계속 진행한다.
날씨가 맑았으면 이런 모습일 텐데..ㅉㅉ (다른 곳에서 퍼온 사진)
신선대 도착. 뒤쪽 하얀 구름 속에서 무등산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환호하는 총무님.
신선대에 도착한 백두들.
안부 너머로 무등산 북동 능선 오름길이 보인다.
신선대 바위 위에 자리한 묘지 주위에 둘러선 백두들.
새찬 북서풍을 피해서 신선대 바위 남쪽 평평한 곳에 아침 식당을 마련하고, 원래 예정은 규봉암까지 가서 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신선봉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신선대 위의 묘지도 무등산을 배경으로 한컷..ㅋㅋ
맑았다면, 이런 모습! (펌) 무등산 좌측 뒤편으로 안양산도 보인다.
새찬 북풍을 피해 신선대 아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신선대 증명을 남긴다.
신선대를 뒤로하고, 무등산 직전 안부를 지난다.
안개 자욱한 억새밭을 지나는 백두들.
지나온 안부 쪽을 돌아보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바로 구름이 몰려와서 시야를 가려 버리곤 한다.
돌아본 북산 조망.
억새밭을 통과하는 백두들.
물방울을 달고 있는 억새를 헤치며, 어느새 다가오는 가을을 느끼고 있을까?
꼬막재 도착. 정맥길은 직진해야 하지만 무등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 때문에 정규 등로가 없어서, 별 도리 없이 우회길인 규봉암 방향으로 밝길을 돌린다. 이천의 이상만 선생님이 모처럼 동행을 하셨다. 반가워유~!
08:02 규봉암 방향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은 광주시민들이 많이 산행을 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신작로가 나 있다.
길가에 있는 산딸나무. (사실은 잘 모름). 몇 개 따서 입에 넣어 보았더니 단맛이 난다. (혹시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 좀 알려 주삼..)
걸음을 멈추고 다들 한두 개씩 따서 입에 넣어 본다.
규봉암까지 아직 3.3km나 남았다는 이정석을 지난다.
왜 이곳이 신선대 입구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최근에 설치한 듯한 이정표가 있다.
잠시 더 진행하자 이런 이정표도 지나고,
이서 영평마을 갈림길도 지난다.
비구름에 휩쓸려온 자욱한 안개로 온통 희뿌연 상태지만, 등로는 뚜렷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규봉암 갈림길 도착. 비가 오는 와중에도 언제 다시 올까 싶어서 규봉암이 어떻게 생겼나 확인하러 간다.
<규봉암(圭峯菴)> 창건 연대가 확실하게 전하는 문헌은 없지만,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순응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지며, 혹은 고려초 도선국사,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이 절에는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이 쓴 규봉암의 현판이 전해 오다가 절취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 말에 왜적들과 전투를 벌였던 격전의 현장이기도 한데, 이성계가 전북 황산대첩에 나가 왜적과 싸우다가, 규봉암으로 도망친 왜군 폐잔병 12명을 생포했다는 기록도 있다. 1739년 3월 20일에 쓴 규봉암 상량문이 발견되어 당시에 규봉암을 재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지도서(1759)에 의하면 폐찰 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규봉암이 그리 크게 증축되지 않았거나 다시 폐찰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에 6.25 동란으로 사찰이 불에 타 10여 년간 폐허가 되었다가, 1957년 관음전과 요사채를 지어 복구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규봉암 옆에 있는 하늘을 찌를 듯한 기암괴석 광석대는 입석대, 서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석경(石景)으로 꼽힌다. (한국관광공사) "무등산 규봉암"이라 쓰인 높다란 누각대문을 통과하여 규봉암으로 들어선다.
대웅전 앞에서 샘물을 마시며 잠시 암자를 둘러본다. 암자 공사를 위해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 진입로도 없는데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 어느 분 왈 : 트랜스포머 영화도 안봤수..ㅋㅋ
날이 맑았다면 이런 모습.(펌) 흰 눈에 고드름까지.. 여름 산행에서 이런 모습 보면 좋을 텐데..ㅉㅉ
암자에 무슨 행사가 있는지, 이른 시간임에도 신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규봉암 뒤쪽 바위들이 불안해 보인다. (펌)
자욱한 안개로 인해 건물을 제외한 어떠한 조망도 허락받지 못하고,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 퍼온 사진으로만 볼뿐이다. (펌)
08:55 규봉암 우측의 입석. 입석 뒤쪽으로 석불암 가는 길이 있지만, 뵈는 게 없을 듯하여 그냥 장불재로 향하기로 한다.
장불재로 가기 위해 규봉암을 나서는 백두들.
석불암 갈림길을 지나고,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장불재를 향한다.
지공너덜을 지나고,
<지공(指空)너덜> 장불재에서 규봉(圭峯)까지 사이에 무수히 깔려있는 너럭바위돌이 지공너덜이다. 무등산에는 산의 서사면에 덕산(德山)너덜과 동남사면의 지공너덜 두 개의 너덜이 있다. 지공너덜은 산의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3km 남짓 되게 깔려 넓은 돌바다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을 지공너덜이라 부르게 된 것은 인도(印度)의 승려 지공대사(指空大師)에게 설법을 듣던 라옹(懶翁)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명명한 것으로,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개의 돌을 깔았다고 전해온다. 지공너덜에는 크고 넓은 바위 사이로 보조(普照)석실이 있는데, 이곳은 한국 불교에 큰 빛을 남긴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송광사를 창건하기 전에 좌선한 곳이라 하여 보조석굴(普照石窟)이라고 부른다. 보조석굴 왼쪽에 높은 돌기둥으로 형성된 문바위가 있다. 문바위는 충장공 김덕령(金德齡)장군과 애마(愛馬)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맑은 날의 지공너덜 모습. (펌)
이서 영평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는데,
등로에는 마중 나온 두꺼비가 어서 오라 맞아준다.
맑은 날 이곳에서 올려다본 무등산의 모습(펌)
갈림길 한켠에는 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몇 곳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장불재 도착.
장불재 갈림길 전경.
<장불재>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고 있는 능선 고개로 해발 990m의 고갯길이다.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가는 유일한 등산로이다. 이전에 동복, 이서 사람들이 광주를 오갈 때 지나던 고갯마루다. 정상을 향해 왼편에 서석대, 오른편이 입석대이고, 이서면 쪽으로 능선을 따라 돌면 지공너덜과 규봉에 다다른다.
입석대 서석대 안내도 앞에서 예정된 탐방코스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언제 다시 올까 싶어서 비록 조망은 없을지라도 한번 가보기로 하고 입석대 방향으로 들어선다.
입석대 전망대 도착.
<입석대> 석축으로 된 단을 오르면, 5~6각형 또는 7~8각형으로 된 돌기둥이 반달같이 둘러 서 있는데 이를 입석대라 부른다. 이런 절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 온 입석대는 석수장이가 먹줄을 퉁겨 세운 듯, 하늘에 닿을세라 조심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람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이곳에 입석암이 있었고 주변에는 염불암 등의 암자들이 있었다. 입석대 안내판.
맑은날 보면 이런 모습인 입석대. (펌)
자욱한 안개로 인해 흐려진 입석대 모습.
주상절리 바위기둥들의 윤곽조차 희미하다.
입석대 증명.
인원수를 줄이니 겨우 누가 누구인지를 구분이 가능하다.
비록 비를 맞으며 '집 나오면 개고생'을 하고 있지만 표정은 뿌듯함과 자신감이 넘친다.
입석대를 배경으로 홍갑순님 내외분.
입석대를 뒤로하고, 서석대를 향한다.
입석대 주변의 주상절리들.
등로는 바위들 사이로 이리저리 위쪽을 향해 이어지고,
맑은 날의 풍경. (펌) 우측으로 군부대가 자리한 인왕봉과 무등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이 보인다.
손 승천 총무님 바위.
비스듬히 누운 바위가 정말 용이 승천하려는 듯 보인다.
승천하는 용을 올라탄 손경익 지점장.
안개 자욱한 무등산을 향해 오르는 백두들.
서석대 갈림길에 올라보니, 모든 게 흐릿하다.
광주 방향 조망은 사진으로만 감상하고,
무등산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인 서석대 갈림길 봉우리에 도착한 백두들.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 방향으로 군부대 경계선이 가로막고 있다. 이곳 고도가 대충 1,100m 정도로 거의 정상과 별로 차이가 없으니 이로써 만족할 따름.
맑은 날에 보면 이런 풍광. (펌) 앞쪽 암봉이 인왕봉이고 우측 뒤로 구름에 싸여 있는 봉우리가 천왕봉(1,186m)이다.
약간의 아쉬움을 가진채 천왕봉을 뒤로하고 서석대로 향한다.
맑은 날에 찍은 중봉 방향 조망(펌)
안개 자욱한 내림길을 잠시 내려오니 서석대가 있다.
<서석대> 바위기둥들이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다. 저녁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을 수정병풍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은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단다. 서석대도 역시 안개에 싸여 있어서 구분이 불가하다.
서석대 (퍼온 사진)
짙은 안개로 서둘러 서석대를 떠날 준비를 하는 백두들.
그래도 서석대를 답사했다는 뿌듯함은 가지고 내림길로 들어선다.
주변의 주상절리 암괴들이 마치 중국의 석림에 와 있는 듯하다.
목교 갈림길 이정표.
목교 갈림길 등산 안내도 앞에서, 사진으로 나마 무등산을 조망하며 현 위치도 확인한다.
무등산 공원 안내도.
목교 갈림길을 뒤로하고, 좌측 임도를 따라 장불재로 향한다.
군부대 삼거리를 지난다.
중봉 쪽에서 바라본 무등산. (펌)
군부대 삼거리 이정표. 이곳에서 장불재 방향의 임도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임도는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장불재로 이어진다.
다시 장불재로 돌아온 백두들.
장불재 이정표.
한 시간 전쯤에 비를 맞으며 입석대와 서석대 탐방을 갈까 말까 고민케 했던 안내도. 이제 비는 그쳤지만 시야는 여전히 짙은 안갯속을 헤맨다.
가야 할 안양산 방향의 백마능선이 조망이 훌륭하다고 들었는데,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을 듯하지만 시야가 맑아지기를 기다릴 수는 없어서 고민하는 백두들.
장불재를 뒤로하고, 한국통신 중계소를 지나 안양산 방향으로 호남길을 따른다.
KBS 방송국 중계기지국 앞도 지난다.
돌아본 KBS 중계소 모습.
만연산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이정표가 없었으면 그냥 별일 없이 능선 따라 진행을 했을 텐데, 주변 조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진행하는 능선 방향으로 "->만연산"이란 이정표 때문에 혹시 길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한참을 오락가락하며 백마능선이 어디 다른 쪽으로 이어지는지를 찾아서 헤매게 했다. 아마도 이쯤에서 광주광역시와 전남도 경계가 우측 아래쪽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직진의 능선이 안양산 방향의 백마능선이고, 우측길이 만연산 방향의 지능선으로 이어진다.
뚜렷한 능선분기점이 없고 표지기도 걸려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충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의 능선을 따르니,
차츰차츰 주위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고,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마능선> 장불재에서 방송시설이 있는 쪽으로 펼쳐진 능선인데, 가을이면 억새의 흰 손이 바람에 흩날릴 때 마치 백마의 갈기처럼 보인다. 장불재에서 이어지는 고산초원지대이기도 하다. 시야가 조금씩 트이며 가야 할 936암봉의 모습도 조금씩 드러난다.
돌아본 장불재 방향으로 통신 중계소가 보인다.
936암봉을 향해 백마능선을 따른다.
936암봉 오름길.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안내판. 실제로 암릉으로 가도 위험해 보이지는 않고, 시야가 없는 날에는 이곳이 안양산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우회 등산로가 있는 암봉도 진행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수만리 방향 갈림길에서 잠시 쉼을 한다.
안양산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름길을 쉬엄쉬엄 오르다가,
돌아본 백마능선 조망.
이제 무등산 쪽으로도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우측 수만리 방향 조망.
안양산 정상 도착. 그동안 비를 맞으며 걷느라 미처 먹지 못한 과일도 나누며 여유로운 쉼을 한다.
안양산(853m) 정상석과 무등산 방향 조망.
안양산 정상 증명.
안양산을 떠나며 이정표 앞에서 포즈를 잡은 손경익 쩜장. 쌍꺼풀 수술이라도 해얄까벼..ㅋㅋ
둔병재를 향해 안양산 내림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돌아본 안양산 정상.
주위에는 온통 야생화가 만발해 있어서, 탁 트인 조망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 준다.
우측 수만리 방향 조망.
좌측 안심리 방향 들판은 이제 황금색으로 변해있다.
둔병재 너머로 가야 할 622봉이 아직도 산행길이 많이 남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둔병재로 향하는 안양산 내림길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비온 뒤의 흙길이라 미끄럽기 그지없다.
12:47 둔병재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서서,
잠시 우측 임도를 따르면,
2차선 지방도가 지나는 둔병재에 위치한 안양산 자연휴양림 공터가 나오고,
휴양림 시설물들이 있는 공터 모습.
2차선 도로를 건너는 출렁다리 앞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쉼을 한다.
돌아본 공터 모습.
둔병재를 건너는 출렁다리를 건넌다.
우측 수만리 방향 조망.
좌측 갈두리 방향 조망.
<둔병재> 근대화되기 이전 이곳은 곡성, 화순, 광주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으며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들의 주둔지였던 곳으로 지금도 옛 성곽, 참호 등의 흔적들이 남아 있고, 병기를 만들었던 곳(쇠메기골)에서는 쇠찌거지(슬러그)가 나오고 있으며, 물을 넘겨오던 물목재, 장군대, 쇠메기골 등의 옛 이름이 남아 있다. 족발에 막걸리 한사발 하고 가자며..ㅋㅋ
출렁다리를 건너면 편백나무 조림지가 이어지고,
어느 선지자의 피땀으로 가꾸어진 편백나무숲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멋진 편백나무 숲!
임도길을 따라 오를 것인지, 정통 정맥길을 따를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임도를 벗어나 숲길로 잠시 오르면 육각정자가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팔각정으로 되어 있지만, 실재 모서리는 6개뿐이다.
육각정 안에서 바라본 안양산 조망.
여기서 파전이랑 막걸리 시키면 배달이 되는지를 두고 한참 동안의 실랑이가 이어진다.
팔각정에서 바라본 수만리 방향 조망.
육각정을 출발하여 잠시 능선을 따라가니, 임도로 올라온 팀이 도착해 있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벗어나니 능선이 완만해지더니 이내 조릿대 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전망이 트인 곳에서 바라본 우측 만연산 방향.
봉분도 없는 묘터에서 벌초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았더니, 멧돼지가 봉분을 파헤쳐 놓았는데 벌초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여.., 젊은이의 정성이 기특하다.
622봉 도착. 잡목이 조망을 가로막고 있어서, 그냥 그늘에 앉아 남은 과일들을 해치우며 한참을 쉰다.
622봉 내림길 주위에는 어름나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모처럼 만에 보는 어름이다.
벌초하러 온 사람들의 탈것들이 세워진 임도를 지나고,
어림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편안하고 호젖하게 이어진다.
송전탑도 지나고,
89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갯마루가 시야에 들어오고,
어림마을 직전의 대나무숲을 지난다.
대나무숲을 통과하여 돌아본 모습.
앞서간 사람들이 어림마을 고개에 도착하고 있다.
어림마을 고개에 도착하여 돌아본 날머리. "만지맥"이란 비석이 서있는 곳이 날머리다.
어림마을 고개에서 바라본 좌측 갈두리 방향.
다음 구간 들머리 모습.
우측 어림마을 방향. 앞쪽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보는 토끼 사육장.
어릴 때 시골에서 기르던 토끼들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림마을 앞 전경.
어림마을 마을회관에서 신발에 묻은 흙을 씻어 낸다. 회관 앞 수돗가에서 땀을 닦고 있는데, 차를 타고 지나던 주민이 물을 쓰지 말란다. "거참 인심 한번 고약다!" 혹시 맑은 물에서 홀로 흙탕물 일으키는 미꾸라지는 아닐런지..ㅉㅉ
화순읍에 있는 보석사우나로 이동하여 긴 산행에 쩔은 몸을 닦고,
지인?이 소개해준 "오메 인자 오셨소"란 음식점에서,
오리 수육과 흑두부 요리로,
궂은 날씨와 긴 산행거리를 무사히 이겨낸 뿌듯함을 함께 나눈다.
다들 수고하셨고, 행복~~ ~~!
역쉬!! 음식은 호남이여! 란 감탄이 절로 난다. 토하젓과 여러 가지 밑반찬이 맛깔스럽다.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맛있어서 그런지, 한참을 먹고 또 먹었다. 조금은 늦은 시간에 화순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한다.
무등산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런대로 아기자기한 산행이었던 듯싶다. 짧지 않은 산행을 즐겁게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 산행에서 뵙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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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중산행의 축축함이 다시 생각나는군요. 그래도 즐거웠던 시간이었읍니다. 항상 감사 합니다.
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